벤야민-아도르노 서한집 영어판. 

갖고만 있다가 어제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이들, 놀라운 사람들임. 20대 청년들이 어찌나 진지하고 온전한지. 


아도르노의 <미학강의> (한국어판 제목이 <미학강의>, 영어판은 한 단어 Aesthetics) 

제 20강에, 루카치의 리얼리즘론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모더니즘 예술을 옹호하는 두어 페이지 분량 내용이 있다. 

강의여서, 녹취가 된다 해도 그게 나중 책이 되리라 예상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튼 강의여서, 더 강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도 있다. "나는 루카치의 <현대 리얼리즘의 의미>에 반대하는 글을 썼는데 그 책의 해석과 관련해서가 아니었다. 그러기엔, 달리 말해 생산적인 미학 논쟁을 촉발하기엔, 루카치의 논의 수준이 너무 낮다": 이런 문장 그렇지 않나? 아무리 루카치가 의지로, 그 자신의 지성을 억압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선전을 담당했던 거라 해도, 아도르노의 이런 평가를 그의 귀로 들었거나 눈으로 읽었다면 


슬프고 (슬프거나) 분노했을 거 같다. 

애초 글로 발표된 논쟁("강요된 화해")에서는 

"수준이 너무 낮다" 같은 표현은 없었던 거 같다.  


아무튼 이 20강에 

어마어마하게 날카롭고 중요한 통찰들이 줄을 잇는다. 

"역시 최고다!" 어쩌고 포스트잇 노트를 연달아 붙였다.   




월초엔 어김없이 audible에서 

새로운 강의 구입하고 들어보게 되는데 

오늘 받은 강의(이건 "중세의 위대한 정신들")도 

1강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지금 내게 중요하게 해주는 말이 있었다. 


타인이 하는 한 마디 말이 

어떤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나. 이것 사실 놀랍지 않나. 

아니 정말로, "진리 탐구" 이걸 하는 사람들이 이 세계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이거 아니냐 했다. 

지금 당신은 진리를 말했습니다. 이렇게 타인에게 느낄 때 일어나는 그 미세한 변화. 그 변화 없이,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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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보면서 넷플릭스 회원 유지해야 되나 

진지하게 고민될 정도, 한 달에 한 40분? 90분? 찔끔찔끔 보면서 회원은 유지하고 있었다. 

정신 없고 시간 없고 

영화나 드라마나 예전처럼 재미있게 보게 하는 그 무엇도 더는 내 안에 없는 거 같고 

그렇긴 한데 지하철에서 단 5분을 보더라도 그게 또 지하철에서 5분은 중대한 5분인 것이다. 

그 사이 세 개의 역을 지날 수도 있다. 견디기 힘들게 긴 5분일 수도 있고 지나간 줄도 모르는 5분일 수도 있는 5분. 

지하철 안에서 시간 빨리 가게 하는 법으로 넷플릭스가 아직까지는 갑이다. 


몇 달 이 정도로만 넷플릭스 보다가 

<빌어먹을 세상 따위> 이거 2시즌 보면서 

도저히 멈출래야 멈출 수가 없어 

정주행, 생사를 같이 함. '생'은 몰라도 '사'를 어떻게 같이 하냐면 

작은 죽음들을 부단히 견뎌 내면서 지나가는 게 시간이고 생이 아니냐고 

..... 암튼 그 느낌 있지 않은가, 그 강렬함. 내가 여기서 살기만 한 게 아니다. 나는 여기서 다시 살았다.... 







노년이 누리는 최고의 즐거움은, 젊은 시절 사랑했던 책들을 다시 알아가는 일. 

그렇다고 애덤 스미스가 말했다던가. E. M. 포스터가 말했다던가. 


그럴 거 같다. 노년에 

최초로 읽는 책인데 재미있는 책은 

많지 않을 거 같다. 반면, 젊은 시절 사랑까지는 안했더라도 

읽고 (어렴풋이든 잘이든) 알던 책들을 다시 알아가는 일은 

정말 즐거울 거라 상상된다. 


그리고 드라마도 그럴 거 같다. 

거의 매년 마라톤 정주행 하던 <식스핏언더>. 안 본 지가 몇 년 된 거 같은데 

한 70세 되어서 보면 이걸 본 역사에서 가장 집중하고, 가장 흥분해서 울면서 볼 거 같다. 

21세기 초는 저랬었다고.... 이제 영원히 사라진 그 세계가 저거라고, 어쩌고 하면서 울 수도. 


그런데 이 드라마도 그렇다. 

이 드라마도, 노인도 사랑할 거 같은 드라마. 노인 아닌 네가 지금 이걸 사랑한다면 

노인인 너도 반드시 그걸 사랑할 드라마. 


막 엄청난 비평이 나왔을 거 같기도 하다. 

막 엄청나지는 않더라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들을 재미있어서 하는 글을 내가 쓸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러지는 못하므로..... (한숨). 


그 세계가 들어가 살고 싶은 세계가 전혀 아님에도 

상쾌한 공기, 바람을 느끼게 하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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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게이의 프로이트 전기에 

윌리엄 제임스가 프로이트 이론에 어떤 입장이었나 말하는 대목이 있다. 


프로이트의 생각들은 고정 관념이고 

프로이트의 꿈 이론과 함께 할 수 있는 어떤 작업도 없고 

정신분석의 상징 이론은 위험하고 (...) 등등. 그의 꿈 이론을 놓고 보면, 프로이트 자신 "주기적으로 환각 체험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회의적이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적대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동료 심리학자에게 쓴 편지에서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이 그 아이디어들을 그것들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밀고 가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우리가 그 아이디어들이 무엇이었나 알 수 있을 테니까. 인간 본성의 이해를 위해 그들이 밝혀 줄 빛이 있다." 


영어 원문도 적어두자. 

He expressed the hope that "Freud and his pupils will push their ideas to their utmost limits, so that we may learn what they are. They can't fail to throw light on human nature." 



이 문장과 함께 윌리엄 제임스는 내게 

신이 되셨. 


다고 방정 떨어야겠다. 

뭐 어쨌든 그 비슷한 심정이다. 

이미 적지 않게 그의 책들 갖고 있지만 읽은 건 거의 없는데 

그 책들 읽기 위해 해야 할 희생이 있다면, 그 희생이 무엇이든 달게 하고 읽겠습니다.... 

맹세합니다. 심정. 


시간. 시간이 문제다. 


독창성, 개성, 개인의 성장에 우호적인 정신적 환경에서 이것이 아마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어떤 미친 생각이든, 그것이 갈 수 있는 끝까지 가게 하기. 끝까지 가게 한 다음에 (다음에야) 그것의 

정체를 안다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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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가 미국(미국산) 학문이나 예술을 고평하던 건 

지금까지 내가 본 걸론 단 한 번이었던 거 같다. 19세기말-20세기초 활동했던 사회학자 윌리엄 섬너의 

Folkways. 이 책을 유별나게 칭송하던 대목이 그의 강의록 어딘가에 있다. 


미국은 정신의 사막이고 그러니 생명 있고 비범한 모두가 시드는 곳 쯤으로 말하는 대목은 많다.

오늘 <미학 강의> 조금 읽었는데 이 책에도 있다. "미국에서, 예술과 관련하여 객관 정신이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이다. 예술 수용을 떠나 존재하는 예술의 진리, 객관성을 

미국인들에게 이해시키기는 불가능하다" : 대강 이런 말 한다. 치약 광고에서 하얀 이빨을 보이며 웃는 젊은 여자가 대변하는 다른 객관 정신, 광고 산업이 부단히 생산하는 현대의 신성들이 만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곳이 미국이다... 내용으로 덧붙이기도 한다. 상처를 주고 모욕도 주기. 


60년대까지, 어쩌면 70년대까지도 

유럽 지식인들에게 미국은 우습기만 했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심지어 바슐라르도, 꽤 여러 곳에서 미국을 가볍게 조롱하는 말들을 한다. 

"미국 교수들 특유의 그 내용 없는 유창함..." 이런 말도 하신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이해될 뿐 아니라 격하게 이해되기도 해서 

미국적 정신, 미국적 풍토라는 게 그들 시대에나 지금이나 있긴 있나보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런가 하면 이미 그들 시대에 부당했고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지 않나는 생각도 든다. 


피터 게이의 <계몽시대>. 

이미 60년대에 나온 책인데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계몽시대 주제로 이런 연구 할 역량이 있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종교개혁과 인본주의, 루터와 에라스무스가 서구 정신을 놓고 벌인 싸움 다루는 Fatal Discord. 약 천페이지 

분량도 분량이지만 극히 비범한 책이다. 이 정도 책이 나오고 주목받는 나라가 어디 더 있는지. 


 


fatal discord erasmus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책에 번역에 대한 논의도 적지 않은데 

(에라스무스, 루터 둘 다 성서 번역을 새로 했으니) 

........... 엄청나다. 이건 인간 정신과 관련하여 모두가 최고 수준인 곳에서만 

나올 수 있는 논의이고 문장이다.... 며 주먹을 불끈. 그러게 되던 여러 대목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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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원스어폰어타임 인.... 어나더 라이프 

ta로 가르쳤던 수업에서 한 학생이 "쌤 취향 아주 좋다" 한 적이 있다. 

지금 그 말을 기억함. 주변에 놓인, 쉼없이 사들여 쌓아 놓은 책들 보면서 


그 말이 진실이라 생각함. 

뭐 전부 고전 아니면 명저 아니면 걸작 아니면 컬트 아니면 

저주받은 걸작이거나.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거나. 

"좋은 취향"의 정의를 주진 않더라도 보면 알 수 있게 할 책들. 

그런 책들이 집에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사들입니다. 


며칠 전 도착한 그런 책으로 위의 책이 있습니다. 




"아무도 편지 쓰지 않았던 시대, 전기를 쓰지 않았던 시대의 황량함이 있다." 

도로시 오스본과 17세기를 주제로 쓰던 에세이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다. 

"그러다 그 헐벗은 풍경이 소란과 전율로 채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책들 사이의 공간을 

서로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울 수 있다." 


로마인들은 고대 세계가 알았던 최초의 편지 작가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우연이 우리를 위해 

보존한 최초의 편지들이 그들의 것이다. (...) 그리스 문학은 황량함의 성격을 여전히 간직한다. 

사유의 위대한 범위와 힘이 거기 있다. 인간의 역량과 무능을 분석하는 경이로운 날카로움이 거기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라는 아마도 유일한 예외를 제외하고, 거기 속하는 누구도 개인의 기벽으로 후대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 


The Letters of the Younger Pliny. 

이 서한집 해제가 저런 식으로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인용은 얼마나 적절하냐고 감탄했다. 

아무도 편지 쓰지 않았던 시대의 황량함. 그러다 누가 쓴 편지가 등장할 때 일어나는 소란과 전율. 

위대한 책들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는, 대화하는 이들의 목소리들. 


이 책과 같이 

펭귄판 <자본> 1, 2권도 구입했다. 

3권을 구입해야 다 구입한 것이 되긴 하는데 

어쨌든 1권, 2권은 구입했으니 3권 구입도 멀지 않았다. 

1권의 해제를 조금 읽었는데, 이해된다. ㅎㅎㅎㅎㅎㅎ 

어릴 때보다 (그러니까, 나이 덕분에) 더 이해되는 것들이 있기는 있다. 

시간만 확보되면 읽을 거 같다. 시간은 아마 .... 확보되지 않겠지. 아마 정신없이 1년, 5년, 10년이 가고 

<자본>도 해제만 조금 읽은 게 다인데 "내 이러다 이럴 때가 올 줄 알았다"인 때가 오겠지. 


이걸 언제 다 끝내냐 탄식하던 

채점을 (헤라클레스의 과업임) 하여튼 방금 끝내고 나서 

이제..... 읽고 싶으며 읽어야 하는 책을 읽어야지 하다가 

..... 이 공황 상태를 "좋은 취향" 자화자찬하는 포스팅을 수단으로라도 

빠져나오는 게 우선 같았다. 그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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