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십년 써 본 공책 중 

Fenice link 더 노트. 이 공책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공책이었다. 

알라딘 양장 공책도 많이 써보았고 흔히 쓰는 스프링 노트도 여러 종류 써보았는데 

페니체 공책이 가장 쓰기 편하고 가장 잘 써지고 쓰고 나서 결과가 보기 좋았다.


위 이미지 제품이 만오천원 정도로 검색되는데 

한때 네이버샵에서 대규모 세일을 했다. 이 때 좋아보여서 일단 두 권인가 구매했다가 

너무 좋아서 여덟 권인가 추가 구매. 7천원 이하였다 기억함. 4천 5백원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쓸수록 좋길래 사들여 쟁인 것 중 아직 한 권도 다 쓰지 않았어도 또 사려고 검색했을 때 네이버샵에서 

사라진 뒤였다. 지마켓이나 쿠팡에서 검색이 되긴 하는데 가격이 두 배, 혹은 그 이상 느낌. 


사실 내게 공책은 

그 오래전 초중고 다닌 사람에게 그렇겠듯이 

가격이 백원 단위라야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물건이다. 

물론 흔한 공책이 삼사오천원 정도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서 

흔한 공책은 오히려 사지 않는다. 이면지 묶어서 씀. 돌아다니는 종이들 많음. 




좋은 공책은 비싸다는 것. 

그런데 서재의 달인 선물로 도착한 알라딘 본투리드 소프트PU 공책. 

이것 오늘 처음 써보았는데, 아니 이것도 


무지 좋음. 

마음에 무지 듬. 

써보셨나요들. ; 

사실 기대가 없었고 

열어 보면 단순 소박, 공책의 미니멀리즘인데 

연필 들고 적기 시작하자 필기의 마법도 작동 시작하는 느낌이었................. 

잘 써집니다. 잘 보이고요. ㅎㅎㅎㅎㅎ; 


이 공책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 



(*이것도 쟁여볼까 해서 검색해 보니 무려 만원. 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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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의 <과학 정신의 형성>에서 며칠 전 보고 

밑줄 쫙이었던 문장. 파란색 형광펜이 "가장 중요함"의 색이다. 그 다음이 분홍색. 

그 다음 주황색. 그 다음 녹색, 마지막이 노란색. 형광펜을 살 때 노란색과 녹색은 타스 단위로 

사기도 하고 (두 타스........) 파란색 분홍색 주황색은 다섯 자루 단위. 노란색으로 바탕색 칠하고 

그 위에 파란색을 칠하면, 녹색 효과도 나면서 가장자리는 파란색으로 남기도 한다. 


false rigour is a block to thought. 


이 사실 (이 진실) 절감한 바 없는 인문학 종사자, 없지 않을까. 

후대를 위해 모범을 남긴 뛰어나신 분들(바슐라르도 그렇고, 부르디외도 그럴 것이고. 부르디외는 인문학자이기도 

한 것 같던데 말입니다. 아도르노, 벤야민 말할 것도 없고....), 그 분들이 했던 것 같은 작업을 할 

에너지와 역량이 없을 때 


가짜 엄밀함이, 그들 자리를 차지하는 거 같다. 

하나마나한 구분을 하고 따를 이유가 없는 논리에 집착하고. 




지금 읽는 어느 책이 

저 가짜 엄밀함만으로 쓰여진 책이라 

......... 참 지겹고 힘들다. 이 책을 겨냥하여 "가짜 엄밀함은 사유를 막을 뿐"의 사례라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쓰고 싶기도 했는데 


그게 또, 그런 비판이 하겠다고 해서 바로 성립하는 게 아닌 것이기도 하다. 

이런 미세한 일에까지, 자격이 필요하다. 앞 뒤 맥락, 전체 분위기가 그런 말을 해도 되는 사람이 있고 

해봤자인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후자인......... ㅜㅜ 것이다. 내가 저런 비판을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해도 되는 사람이 꼭 되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게 한 삼십 년 걸리는 일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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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sessed by Memory: The Inward Light of Criticism.

해럴드 블룸이 86세? 89세? 적어도 85세 넘어서 낸 책. 제목만으로는 

비평집으로 보일 만한데, 문학 연구자의 문학과 삶 회고록. 


발자크의 짧고 강렬했던 삶에 대해 말하면서 

"그가 끝없이 마셨던 그, oceans of strong coffee" 이런 구절 쓴다.


oceans of strong coffee. 

발자크는 하루 수십 잔을 마셨다던가? 

수십 잔 마시면서, 보통 인간이면 필사도 못할 양을 쓰고 또 썼다던가. 

그리고 그의 뇌혈관이 (심혈관이?) 터졌다던가. 그러고 보니 발자크 책도 꽤 사들였고 

호평받은 발자크 전기도 집에 있다. 그러게 그는 어떻게 길지 않은 삶 강렬하게 살았나 

얼른 알아보고 싶기도 하다. (.....) 그러나 발자크 책들, 발자크 전기 읽을 시간은 올해도 없겠지. 


아무튼 오래 두고두고 감탄했던 표현. oceans of strong coffee. 

 



19년 동안엔 새벽 2시 전에 일어나는 날이 많았고 (어떤 날들은 자정 전에, 심지어 11시쯤. 자기 시작하는 시각은 

7시 반부터 늦으면 9시까지) 가장 늦은 시각이라 해도 새벽 4시 쯤. 이렇게라도 확보되는 긴 오전 시간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런 패턴이 유지되었던 것일 것이다. 읽고 쓰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 그리고 방해, 끊김 없는 3-4시간. 이걸 매일 확보하려면 그래야 했다. 


이런 패턴 정착 후에 엄청나게 진한 커피를 연달아 마시게 되었고 (깨고 아침 먹기 전까지 4-6잔) 

아직까지 아무 이상 느끼지 않긴 하지만 이게 몸에 좋을 리가 (위가 오래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을 거 같고, 어제의 허기 습격도 어쩌면 너무 일찍 일어남 + 너무 커피 많이 마심과 관련이 있을 거 같기도 

하여, 연말부터 하던 생각이지만 올해는 조금 늦게 자고 조금 늦게 일어나기, 시간 확보할 다른 길을 찾아내기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고 있다.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일인데 

논문을 쓰지 않고(못하고) 보낸 몇 년이 있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인생에 손놓음" "커리어의 사보타주"란 뭐냐 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내 사례다.

어디까지 망할 수 있나, 망하고도 살 수 있나 보자면서 보낸 세월 같기도 하고. 사보타주에 협력한 여러 

외부 요소들이 있긴 했다. 아무튼 지원 최소 요건을 만든 게 19년의 일이고 19년 연말부터 지원하기 시작했다. 

1월에도 지원해야 할 곳들이 있어서 서류 만들어 보내느라 여기저기 걸어서 (문방구로, 우체국으로, 예전 재직했던 곳으로...) 오가야 했고 그러다 어제, 1월 8일, 몸살 비슷한 게 났던 거 같기도 하다. 


좋은 논문 많이 쓰고 

그 논문들 힘으로 바슐라르 전기도 쓰고 

그런 꿈이 있다. 새벽에 커피 연달아 마시면서 책 읽다 보면 

문장들이 유독 다 선명하게 보이고 다 의미심장해 보이고 내가 그것들의 해석에 할 일이 있을 거 같고 

..... 충만하거나 짜릿한 시간이 있다. 그걸 꼭 2시, 1시에 일어나서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있게 된다면 (안정적인 직장에 있게 된다면) 미친 생산력이 가능할 수도. 오 신이여. 제발 한 번만 미친 생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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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1-0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ceans of 이게 관용구처럼 쓰인다더군요. 제가 본 예문에서는 oceans of pain 이라고. Life is oceans of pain. 뭐 이런 문장이었던것 같아요.

oceans of pain 끝에 낙이 있다고 믿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거겠죠.
1월에 지원하신 곳들중에, 꼭 인재를 알아보는 곳이 있기를 바랍니다.

몰리 2020-01-09 15:09   좋아요 0 | URL
그런데 oceans와 커피의 연결은
한편 굉장히 신선하고 문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검은 바다. 커피라는 검은 (고통의?) 바다. 각성의 바다.
oceans. 발음도 뭔가 이런 표현들이 갖게 되는 의미 과장에 도움을 주는 거 같아요.
오... 하면서 열린 모음으로 경계를 확장하지만 션ㅅ, 다시 제한되는 경계. 몽글몽글.

덕담에 무한 감사드립니다! ㅜㅜ 아직 논문 실적이 미미해서 큰 기대 못하고 있지만
부지런히 쓰고 어떤 다른 삶이 열릴지, 열리나 안 열리나 ㅎㅎㅎㅎ 봐야겠어요.
 





어제 이 시각 배고픔 때문에 

그리고 이것저것 주워다 급히 먹느라 

그러고도 변함없는 배고픔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나 

아직 기억하고 있다 보니 지금 배고프지 않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고 축복같다. 

주워다 먹을 것이 있었기 때문에 배고팠던 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아 어쨌든 

다시는 배고프지 않으리, 결심했다. 아예 늘 많이 먹겠다. 


오래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잊혀지지 않는 강렬함과 함께 고교 시절 다이어리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다. 

그 학생이 어느 고교 출신이라고 다른 누가 수업 중에 말해서 어느 고교 출신인가 

알고 있기도 했는데 (뭐 그 자사고 특목고.....), 그 학생이 들려준 얘기는 

매일 일기를 썼고 일기에 모두를 썼고 일기에 그 시절 나의 모두가 기록되었고 나는 

어딜 가든 일기를 가져갔고 침대에서도 일기를 쓰다 끼고 잤다는 것이었다.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 세부가 있다. "나는 일기에 모두를 고백했다"? "일기가 내 친구였고 나는 일기를 믿었다"? 같은. 

그런 세부 때문에 (당시 듣던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게 한) 잊혀지지 않는 강렬함이 된. 아무튼 그 학생은 

공부로 끝장을 내야 간다는 의대 학생이었고 의예과 학생들이 사실 다 그렇게 공부로 끝장을 낸 거 같은 

느낌인 건 아니긴 한데, 그는 유독 (유독 감출 수 없이) 문장 하나를 써도 "razor sharp"한 지성, 어김없이 

느껴지게 하던 학생이었다. 말로도 일기에 대해 얘기했지만 작문으로도 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내게 생겨난 일기 로망. ㅎㅎㅎㅎㅎ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를 읽으면서 받았던 것과 다르지 않았던 자극. 

그러나 나는 그렇게 일기를 지속적으로, 애착하면서 썼던 해가 없고 

그러려고 연초에 시도는 여러 번 했으나 어김없이 며칠 가지 못했다. 19년에 있었던 여러 일들과 함께 

20년엔 나도 매일 종이에 손으로 기록할 것들이 있는 데다가 기록할 힘도 있을 것 같아서, 알라딘 서재의 달인 

사은품으로 도착할 다이어리를 굉장히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기대했던 데일리 다이어리는 포함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고 보니 데일리 다이어리는 굿즈로도 나오지 않았던 듯하다. 

해서 방금 나는 이리저리 검색한 다음, 데일리 다이어리 하나 주문했다. 

매일 기록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힘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까 늘 많이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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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1-0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의 로망...

전 글씨가 괴발개발인지라
일기를 쓰고 싶어도 안되더라구요.

작년에 받은 노트? 다이어리도
다른 분에게 드렸어요.

몰리 2020-01-09 17:53   좋아요 0 | URL
일기 이미지들 검색해 보면
완전 악필이어도 꾸준히 오래 쓴 일기같으면 리스펙트..... 이긴 하더라고요.
저도 성공한 해가 없는데, 올해부터 시작해서 손일기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리스트는 말하자면 당대의 믹 재거(외 여러 락스타 이름들이 나열됨)였다는데 

그의 연주회에는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여성 팬들이 있었고 그들은 울고 실신하고 

그들의 몸을 그의 발치(에만 제한된 건 아니고....)에 던졌다. 


그의 삶을 쥐고 흔든 여자들이 있었다.

그의 이십대에 같이 살았으며 그와의 사이에 세 아이들을 낳았던 마리 다주. 백작 부인 마리 다주. 

그가 삼십대 후반에 만나 오십대 초까지 같이 살았고 진정 삶의 동반자였던 캐롤라인 공주. 

마리 다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고 나중 바그너와 결혼하면서 아버지 리스트의 심장을 찢었던 딸, 똑똑하고 감정이 풍부했고 제멋대로였던 코시마 리스트. 이 세 여자들이 가장 거세게 흔들었겠지만 이들 외에도 그의 삶에 번민과 기쁨을 안겼던 여러 여자들이 있다.  


길고 상세한 전기(무려 세 권으로 나온 전기가 있다)로 읽는다면 

다르게 느껴질 거 같기도 한데, 7시간이 못되는 강좌로 그의 삶에 대해 전해 들으면 

말년에 그의 삶에 일어난 일은 이전 그가 알던 인간들과의 결별이 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리 다주와 원수가 되고 캐롤라인 공주와 여러 복잡한 이유로 헤어지게 되고 딸 코시마와 한편 거의 

의절하게 되고. 


세 아이를 함께 낳았지만 그녀가 그에게, 그도 그녀에게 원수였던 마리 다주. 

마리 다주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살롱을 운영하기도 했던 인물이라서 그녀가 죽었을 때 

리스트는 신문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가 남긴 기록이 있다. 


"위선이 끼여들지 않게 하자. 그녀의 생전에 흘릴 수 없던 눈물이 그녀가 죽었다 해서 흐를 리 없다. 

다주 백작부인에게 허위를 향한 위대한 사랑, 위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 사랑과 열정은 가끔 찾아온 

희열의 순간엔 사라졌지만 그 희열을 그녀는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 내 나이가 되면, 축하가 그렇듯이 

조의도 당혹스럽다. 세상은 세상대로 가야할 길을 가고 인간은 인간대로 살아야 할 삶을 산다

할 일을 하고 상실을 슬퍼하고 고통을 치르고 실수를 하고 관점을 바꾸고 그러다 죽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죽는 것이다."   


1877년. 리스트가 66세일 때의 일. 




이런 두꺼운 책이 세 권. 

전기를 쓴 앨런 워커는 음악학 교수던데 

나는 그의 열정도 놀랍다. 이 정도 분량으로, 지극히 호평 받은 전기를 쓸 수 있었다는 게. 

나는 뭐하고 살았던 건가 (그렇게 오래 학교를 다녔으면서),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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