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타니 게이지. 

평생 니체를 탐독했고 

니체와 함께 사유했으나 궁극적으로는 비판적이었다는 일본의 니시타니 게이지.. 


어제 뭔가 검색하다가 

"니시타니의 니체" 이런 제목 글을 발견했다. "--의 니체" 구절을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게 연구 주제, 대상이 될만큼 독자적, 개성적으로 읽었다는 뜻일 것이긴 하다. 


하버마스의 니체. 

이 제목으로도 이미 본 것 같기도 한데 

아마 아주 흥미로운 얘기가 여기서는 나오지 않을 거 같다. 


푸코의 니체. 

이 제목은 이미 적어도 세 번 이상, 아티클들을 본 거 같다. 

여기서는 나올 얘기가 (진부하고 흥미로운) 적지 않겠지. 


하이데거의 니체. 

이 제목도 이미 (어쩌면 여러 번) 보았다. 하이데거가 쓴 

엄청나게 양이 많은 <니체>. 그걸 논평하는 것만으로도 '커리어'가 만들어지고 지속되겠지. 


아도르노의 니체. 

이 제목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이미 그것도 여러 번 나왔을 것 같음에도. 

내가 읽은 (극히 제한적인. 알고 보면 강의록도 방대하고, 미출간 원고도 방대하고... 그것들만 방대하냐 

기출간 책들도 사실 다작이고....) 범위에서 아도르노는 니체에게 양가적이고 저항한다. 심지어 헤겔보다 니체에게서 

더 영향 받았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심지어" 헤겔보다... 의 "심지어"에 주목하게 되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니체에게 

그의 전부를 주기를 거부한다 느껴지기도 한다. 니체의 이런 면모는 나는 대강만 읽고 차라리 오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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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0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아세요?? 알라딘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의 매일, 하루에도 몇번씩 ˝몰리의 니체˝를 보고 있다는 사실....

몰리 2019-09-03 11:50   좋아요 0 | URL
어휴 뭘요. ㅎㅎㅎㅎㅎ 읽어주시는
syo님과 단발머리님께 무릎 꿇고 엎드리며 감사하겠습니다.
 



하버마스의 이 책. 표지가 매력적이지 않은 이 책. 

이 책이야말로 "20세기의 가장 검은(어두운) 책"이라고 해도 되게 

검정색 표지의 책. 


이 책에 <계몽의 변증법> 비판하는 글이 있다. 

제목은 "신화와 계몽의 엉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모더니티가 성취한 합리성의 긍정적 면들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전혀 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여러 대목들이 있다. 


그런데 한편 진정 의아함. 

그들이 계몽의 "공과"를 쓰려고 했던 게 아니잖은가. 

그들은 "과"만 쓰려고 했던 것이고 그걸 분명히 밝힘. 그런데 왜 "공"을 쓰지 않느냐고 그들을 비판하는가. 


이런 일이 어디서나 언제나 일어나지 않나. 

아무튼. 예전 이 책 처음 보던 땐 그러는 하버마스가 

뭔가 좀... 한심해보이기까지 했다. 지금 다시 읽으면서는 

아니다, 계몽의 포기할 수 없는 긍정적 유산이 있다... 는 그의 입장에 전보다 더 

공감하게 된다. <계몽의 변증법>은 어떤 비판이 있든 무너지지 않을 책이지만 이 책과 같은 강도, 같은 열정으로 

계몽의 "공"을 말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도 어떤 비판이 있든 무너지지 않을. 


<계몽의 변증법>에 

사드의 인물 중 한 악녀가 자기 남자 형제가 악행을 (살인, 비역질, 매춘...) 

수단으로 어떤 부귀영화를 성취했나 과시하는 대사를 인용하는 대목 있다. 그리고 저자들이 붙이는 논평. 

"그녀는 과장한다. 오직 악행에만 보상할만큼 나쁜 지배가 일관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장만이 진실이다." 


그러나 과장만이 진실이다. 

인생에서 어려운 무엇이든, 그럴 거 같다. 

그걸 말할 때, 과장만이 진실이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 

내 앞엔 한 할머니, 내 옆엔 여러 중딩이 앉았고 

할머니와 통로 사이 두고 대각선으로 오른쪽엔 다른 할머니가 있었는데 

내 앞의 할머니가 축축한 수건 같은 걸 꺼내서 손으로 탁탁 치기 시작했고 

이 소리 잠시 지속되니까 오른쪽의 할머니가 격하게 짜증을 표했다. 욕들이 쏟아져 나옴. 야이 씨*년아...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부터 듬. 나를 그렇게 만들 누가 내 삶에 있다면 

얼른 몰아낼 일이다. 그런데, 너무 늦게 알거나, 모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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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사드 후작의 책은 두 권이 있다. 

이것과 같은 출판사 같은 판형으로 나온 <소돔 120일>. 

<규방의 철학>을 구입하려고 어제 검색하다가 

같은 출판사 같은 판형으로 <규방의 철학>, <쥐스틴>, 그리고 기타 저술들을 묶은 책이 

중고로 나와 있는 거 보고 (눈을 믿을 수 없어한 건 아니지만... 조금 놀라며) 퀵주문.  



그러니까 Justine과 Juliette은 자매인데 

쥐스틴은 덕, 미덕을 대변함. 쥐스틴이 주인공인 <Justine>의 원래 전체 제목은 

<쥐스틴, 혹은 덕의 불운>. 줄리엣은 악덕을 대변함. 줄리엣이 주인공인 <Juliette>의 원래 전체 제목은 

<줄리엣, 혹은 악의 번영>. 


제목들이 웃기다. 지금 쓰면서도 잠시 웃었다. 

<계몽의 변증법>에 계몽이 어떻게 도덕을, 도덕철학을 청산하는가 주제인 장이 있고 

그 장 제목이 "줄리엣, 혹은 계몽과 도덕"이다. 제목의 줄리엣이 이 사드의 반-여주인공. 

10여년 전 <줄리엣> 읽으려다가 도저히 읽을 수 없던 기억 있다. 아무리 난교와 살인, 폭력, 배신과 

음모가 난무한다 해도 


숨막히게 고풍스러운 언어. 그리고 길다. 천페이지가 넘는다. 

"줄리엣, 혹은 계몽과 도덕"에서 인용되는 내용으로 보면, 재미 없을 수 없는 책인데 

몇 페이지와 대결하고 그걸 끝으로 덮어 둠. 10여년 만에 다시 읽으려 하는데 조금 달라져 있다. 

숨막히게 고풍스럽던 언어가 매력적이다. 심지어 사드도 이렇게, 더듬더듬, 시를 쓰듯이 더듬더듬, 그 세계와 그 인류를 탐구했구나. 



아침엔 철학자가 "치매와 기만" 주제로 얘기하는 걸 들었다. 

노인 간호가 제기하는 여러 도덕적 질문들이 있는데 그 중 특히 모호하고 

철학적 탐구가 요구되는 질문이 이거라면서. 치매 환자에게, 거짓말 해도 되는가. 

내 아내는 어디 갔냐고, 30년 전 죽은 아내를 찾는 치매 노인에게, 요앞에 잠깐 나갔는데 곧 올거라고 

답하는 것에 아무 문제도 없는가. 


특수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이 용인되는 상황에서 거짓말이 축적되면 너는 거짓말장이가 되는 것인데 

도덕적 차원과 존재론적 차원이 만나게 된다. (....) 상대에게 자기 결정을 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우리의 판단으로 상대에게 우리가 부여하는 지위. 이것엔 이미 까다로운 도덕적 의미("difficult moral baggage")가 있다. (....) 이런 얘기를 한없이 진지하게, 한없이 몰두해서 한다.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진행 중인 우리의 대화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 서양 지식인들..... 에게서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것. 

안 그러는 지식인도 있지만 그런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닌 것으로. 


아무튼 나는 이게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여전히 놀랍다. 

언제나 진행 중인 우리의 대화. 이게 된다는 게. 그게 되려면 필요한 "신뢰'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날이 갈수록 더 분명히 보고 알기 때문인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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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어제 입수한 책. 

epistemology. 철학 분과 명칭 중에서 

영어로는 이게 가장 간지난다 새삼 생각함. 에피스테메. 이 말도 멋있었었다. 푸코가 한국 들어오면서 

(들어오던 당시. 이십여년전.... 아니 들어온 건 그보다 훨씬 전인가. 인기 있던 시절.... 90년대 어디쯤) 

들었던 에피스테메. 


아홉시까지 안 자고 버티다 일찍 일어나도 세시 정도로

수면 패턴 정상화 되었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7시가 되면 누워야 하고 밤 1시면 깨야 하는 

고달픈 주기로 복귀했다. 이제 그만 눕고 싶으며 누워도 된다고 (오늘은 1시도 전에 깼다) 

호소하는 몸에 맞서 안 자고 버텨 보려고 포스팅 시작. 



맥주의 유혹이 듬. 

아직 당연하지 않고 놀라운 일인데 

언젠가부터 맥주보다 잠이 더 좋다. 지금 자고 늦게, 네 시쯤 깰 수 있다면 잘 거 같다. 

원하면 아무리 이미 많이 잤어도 또 잘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도 삶은 고달팠었지. 

그런데 지금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갱년기. 

이게 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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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받은 책 중엔 이것이 있다. <원자론적 직관>. 바슐라르의 초기 과학철학 저술. 

책이 표지도 (표지 디자인 최소화의...) 매력적이지 않고 제목도 사실, 확 끌 제목은 아니겠지만 

바슐라르 독자라면 


오 이게 영어 번역이 마침내 되었다! 할 책. 


역자는 80년대에 바슐라르 입문서를 썼지만 그 책이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어서 

그런 책이 있는 줄, 그런 책을 그라는 사람이 썼는 줄도 아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세월은 빠르게 흘렀고 은퇴한 지도 오래인 Roch C. Smith. 16년에 그의 그 책이 증보, 재간되면서 

재간된 책의 서문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Roch C. Smith.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서문 마지막 문단은 이런 내용이다. 




"메리 타일즈의 조언과 제안에 감사를 표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을 주제로 한 그녀의 독창적인 연구를 나는 오래 존경해 왔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그린스보로 캠퍼스의 수석 연구 사서인 마크 슈마허에게 깊이 감사한다. 인용되는 문헌들과 인유들이 제기한 많은 문제들을 그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일린 리조-패트런에게도 큰 빚을 졌다. 그녀는 내 번역 원고를 읽고 예리한 통찰이 담긴 논평을 주었다.  


내 세 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먼저 로쉬 주니어. 로쉬 주니어는 자기 원고를 써야 할 때에도 시간을 내어 내 원고를 읽었다. 폴. 수 이론과 원자론이 어떻게 음악 이론과도 연계하나에 대해 폴과 토론할 수 있었다. 마크. 번역하면서 제기되던 지적인 이슈들에 대해 마크는 자주 그의 사려깊은 생각들을 들려주었다. 이 번역에 미덕이 있다면, 그 미덕은 전부 여기 적은 이들과 내가 대화할 수 있었다는 행운 덕분이다. 결함이 있다면, 그건 단호히 오직 나의 것이다. (.....)"  




별로 어렵지 않은 문장인데도 번역은 잘 되지 않아서 번역은 개판이다. ㅎㅎㅎ 

내가 주목했던 건 그의 세 아들에게 하는 말. 


한국에서, 주말에 오페라를 같이 듣는 가족도 아마 희귀하겠지만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하는 가족(부자)는 하도 희귀하여 실은 부재한다 해야하지 않을까. 


"과학" "문학" 이 말을 발음하면서 

거기 깊은 의미 담기게 하던 유럽지성사 교수. 

왜 그런 일이 (단어 하나에 자기 삶을 담는 일이) 한국에서 극히 드물게만 일어나나. 


삶을 (정신의 삶을) 거부당했고 거부하기 때문 아닌가. 


만인을 얄팍하게 만들어야 지배가 쉽다는 사정이 작동하는 거 아닌가. 

지능이 미덕인 사회는 만인을 얄팍하게 만드는 사회고, 이 사회에서 지배의 관철이 쉬운 건 

지능은 위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인을 얄팍하게 만드는 한, 지배는 계속된다. 아닌가. 

지성은 위조할 수 없다. 지성. intellect. 이런 말이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실체적 의미가 없다고 느끼지 않나. 

서울대에 지성이 있음? 어디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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