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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할 때 이것을 들었는데 

헤라클레이토스. 니체도 거의 유보없이 존경, 찬탄 보내는 (소수에게만 그러지 않았나) 철학자. 


"같은 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이 말 하나를 놓고 42분 분량의 1/3은 쓴다고 해도 될만큼 많이 얘기한다. 

출연자 중 킹스 칼리지 철학과 교수라는 피터 애덤슨이, 저 말이 그리스어로는 

말 자체가 (그 소리가) 물의 흐름을 모방하듯 들리기도 하고, '같음'과 '다름'이 물도 가리키고 나도 가리키는지 

둘 중 하나만을 가리키는지가 모호하게 표현되어 사실 극히 수수께끼같은 말로 들리기도 한다는 얘길 한다. 그 점이

헤라클레이토스 동시대 사람들이나 여하튼 그를 읽은 독자들을 격분시키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서 '극딜'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에 일리가 없는 게 아닌데, 그 일리는 피상적인 일리다. 헤라클레이토스를 그가 보듯 보아선 이해한 게 아닌 게 된다.. : 애덤슨에 따르면 이렇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던 건가요? 

(He was wrong, then?) 


이라고 진행자 멜빈 브랙이 묻고 

피터 애덤슨이 0.3-2초의 망설임 뒤에 하는 답이: A rare event, but yes. 



*사람에게 반한다, 반한다까지는 아니라도 결정적으로 호감이 된다.. 하는 일은 이런 때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나. 

그의 한 마디가, 그라는 사람을 알게 할 때. 알게 하는 그라는 사람이, 도대체 생각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며 아니 그를 넘어 지적인 사람일 때. 내 경우는 그러합니다. 오늘 아침엔 애덤슨의 저 한 마디에, 그에게 호감이 되었습니다. 


**끝나기 직전으로 가면 니체, 헤겔, 하이데거에게 헤라클레이토스가 끼친 영향에 대해 잠시 논의한다. 

헤겔은 모르겠지만 하이데거는 읽어야할 것 같기도 하고 읽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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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chantment of Modern Life. 

저자 이름이 제인 베네트. 영국 소설(오스틴, 울프... 는 아닌가. 오스틴....)에서 바로 나온 것 같은 이름. 

아마 존스홉킨스 대학 정치학과 교수일 것이다. 그녀의 이 책은 01년 프린스턴 출판부 간. 


세계의 탈매혹화(disenchantment of the world)가 모더니티를 규정한다지만 그렇지 않다. 

세계의 매혹화, 세계의 재매혹화는 여전히 가능하며, 이것은 미학적인 관심으로 그치지 않고 

윤리적,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 이런 얘길 하는 책이라고 한다. 


2월 중에 니체 페이퍼를 끝내고 나면 

시작할 다음 페이퍼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저것. 울프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 체험. 세계의 '경이' 체험. 

세계를 상상하는 절대적 권한을 다시 찾는 일. 여기에 모더니즘의 유미주의가 있는 게 아니다. 이것으로 모더니즘은 

근본적 비판을 시도했다.... 뭐 이런 얘기. 


이런 얘기를 

아도르노가 하듯이 할 수 있다면 

........... 아 그러고보니 아도르노는 <문학노트> 같은 책에 

실린 문학 비평문들 쓰면서 사실 재밌었을 것 같다. 자기가 자기를 재미있게 함. 그랬을 것 같다. 이것이 저것과 만나고 

멀리 많이 보다가 가까이서 세밀하게 보고. 하여튼 재미의 많은 요소들이 언제나 가까이 있었을 것 같다. 


아도르노가 하듯이 할 수 있다면 

내가 비정규직일리가. ; 암튼 뭐. ; 그런데 쓰고 보니 

내가 그럴 수 없음과 별개로, 누가 그럴 수 있다 해도 한국이면 충분히 비정규직일수도! 

오히려 '그래서' 비정규직일수도! 


이렇게 밤에 서재에서 이런 거 쓰면서 노는 것이 나의 낙이다. 


죽기 전에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도르노 같은 분이 해보인 모범 쪽으로 가보고 싶기 때문에 

그런 건 어떤 걸까, 어떻게 해야 그 쪽으로 가나.. 이 방향 생각, 상상을 자주 하긴 한다. 지금의 미천한 ; 

하여튼 미천함으로도 조금의 변화는 일어나겠지. 아도르노나 바슐라르 책들을 읽지도 않았던 (그들의 이름도 몰랐던) 시절이 있었던 걸 기억해야지. 



*모든 문장 끝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를 붙여야 하는 포스트입니다. 

사실 거의 모든 포스트가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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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넘어서>의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에 이런 대목 있다: 


"심지어 논리의 배후에도 가치화가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 유형의 삶의 보존을 향한 생리학적 요구가 있다. 

분명한 것이 모호한 것보다 더 가치있어야 한다, 가상이 "진리"보다 가치가 없다 -- 이런 평가들. 

이들은 우리의 삶에 규제적 중요성은 가질지 몰라도 실은 전경 어림(foreground estimates)에 불과하다. 

우리라는 존재, 정확히 우리같은 존재의 보존을 위해 필요한 어떤 "어리석음 niaiserie"일 뿐이다." 


(*독어 원문이 그래서겠지만 

카우프만의 영어 번역에서도, 문장은 단순한데 번역은 쉽지 않다. 

정말, 말의 '템포'라는 것이 중요했던 사상가. 여하튼 그래서, 저 문장들은 대강 저런 얘기가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말 멋진 말들. ㅜㅜ 니체 형! 그러고 싶어진다...) 


카우프만이 저 단어, niaiserie에 역주를 붙였다. 

"Folly, stupidity, silliness: one of Nietzsche's favorite French words." 


'르상티망' 이 단어를 불어 그대로 쓴 것 포함해서, 이 '니에저리'와 

기타 몇 단어가 더 있다. 불어 그대로 쓰고, 그게 이 말은 불어로만 해야 한다 같은 판단도 있었겠지만 

그 단어 자체를 (소리나 모양 느낌) 좋아했기 때문이겠다 느껴지는 단어들. 


-rie로 끝나면서, 

집합명사이자 추상명사인 것 같은... 단어로 

bizarrerie도 있다. bizarre, 영어에서도 쓰는 이 형용사에 -rie를 붙임. 'bizarre한 짓거리, 행태.' 

어근이 되는 단어의 속성을 가진 것들을 싹 (싸그리, 싸그-rie;) 모으면서 추상화하기. 하여튼 -rie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 마치 불어를 쓰는 사람들의 정신적 습관의 일면 보여주는 것도 같지 않나. 슥슥슥 다 모으고 

추상화하기. bizarre는 그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비자'한데, 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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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kaufmann beyond good and evi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예전 지도교수는 

"니체는 rude하잖아!" 하셨다. 

특히 그렇게 보이는 글들이 있을 텐데 <선악을 넘어서>에서 "우리 학자들"도 아마 한 예. 

"학자, 평균치의 과학적 인간"과 "철학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혹은 "천재"를 대비하는 장. 


평균치의 과학적 인간들이 작업하는 방식, 그들의 영혼, 그들의 질문(혹은 질문없음) 등에 대해   

그들이 (우리가) 들으면 마음 편하지 않을 말들이 연이어 나온다. 


그들 영혼의 한 마디 요약이 이것이다. 

"찬탄을, 올려 봄을, 사랑을 모르는 느린 눈. the slow eye that rarely admires, rarely looks up, rarely loves." 


그들과 달리 철학자에게는 

"지배하고 내려다보며, 군중으로부터, 군중의 미덕과 의무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시선의 고귀함 the loftiness of glances that dominate and look down, feeling separated from the crowd and its duties and virtues"이 있다. 



"학자"와 달리 "철학자"는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 철학이긴 한 건지. 

그런 의문이 새삼 들기도 한다. 


어쨌든 오늘치 쓰기를 끝내면서 이걸 오늘의 인용할 양식으로. 

실은 어제 힘들게 쓴, 슬로터다이크 인용한 아마 9문장을 삭제하고 새로 7문장을 썼다. 

<선악을 넘어서>의 위의 대목에 카우프만이 붙인 역주가 있다. 니체 저술 곳곳에서 보는 "자기과시, 지배, 군림의 요소"가 여기도 있다 얘기하는 역주. 카우프만의 이런 관점을 (니체의 "과대망상 megalomania") 니체 수용의 한 주요 요소로 보고 슬로터다이크는 한 줄로. 슬로터다이크는 "초인에서 "위버"의 의미는, 우월함의 환상에 다름 아니다" 이런 말 한다. 


전날 쓴 걸 전부 삭제하고 새로 쓰면... 음 두 배 써야 하지 않을까. 

허나 이미 적절한 페이퍼 분량을 넘은 다음이라 어떻게든 빨리 끝을 내야 할 단계. 

앞으로 돌아가서 줄여가면서 끝으로. 줄이고 다시 쓰는 일을 하면서도 6문장 원칙을 지킬 

지킬 박사. 지킬 박사 더즈 낫 하이드. does not hide himself behind his sentences. 그래도 어떻게든, 어느 날이든 그 날 자정이 되기 전까지는, 오늘의 6문장 원칙을 지켜보기로 함. 오늘은 지킴. 어제 쓴 것도 다른 파일에 옮겨두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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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 심오하게 들린다. 


바슐라르 책 어딘가에, 파울 첼란의 "새벽의 검은 우유" 분석하는 대목이 있을 것이다. 

흼 속의 검음, 검음 속의 흼에 대해 오묘하고 심오한 문장들이 있을 텐데, 적어둔 것 같아서 검색해 보니 

찾아지지 않는다. 조만간 찾아지겠지. 아마 <대지 그리고 의지의 몽상>이 출전일 듯. 지금 읽고 있는 책. 


아직 캄캄한 새벽에서 빛을 느끼기. 역동적으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숨어있는 책 찾아 가본 건 잘한 일이어서 

앞으로 수시로 가서 아무 책이나, 특히 불어 책을 한 권씩 사면서 

농협 하나로 마트에도 들러서 3팩에 만원하는 반찬도 사고 한 팩에 만원하는 참외도 사고 (이것들은 오늘 가격. 오늘 산 책들이 많아서 여기서 장을 볼 수는 없었는데 어떤 것들 파나 얼마 정도 하나 확인함. 참외는... 사러가 마트에선 요즘은 안 파는 날이 더 많다. 어디선가, 어쨌든 농산물은 농협 하나로 마트가 맛있다고 본 것도 같고. 정말 주로 그렇다면, 하나로 마트를 가기 위해 숨어있는 책을 가는 것인지, 숨어있는 책을 가다보니 하나로 마트를 가는 것인지.. 모호해지겠지) 


하여튼 책 한 권과 먹을 것. 사서 마을 버스 타고 집에 오면 

좋겠음. 언제 가든 집어올 책 한 권은 있을 것이다. 


1일 6문장은, 정말 어렵지 않은 목표인데 

뜻밖에도, 사실 계속 놀랍게도, 적지 않은 양이다. 매일 한다는 한에서 

정말로 한 달에 페이퍼 하나가 나올 정도의 양. 학기가 시작하면 매일 하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하다. 

그런가 하면, 새벽에 나가 저녁 시간에 들어오는 수업 있는 날에도, 3문장은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은, 아무리 피곤해 쓰러져 자고 싶은 상태라도 어떻게든 쓰고 싶을 것 같다. 그런 상태가 계속 된다면 

꾸준히 페이퍼가 쓰여지는 것임. 이게 상상하면 얼마나 놀라운지. ㅋㅋㅋ ; 아, 페이퍼 많이 쓰지 못하는 인문학자들이나 공감할 무엇. 몇 년 동안 쓴 페이퍼가 2개 뿐이고, 번역해야 했던 책도 있었고 하여튼 이러저러 사정이 있긴 했지만, 글을 꾸준히... 쓰지 못했던 지난 몇 년 앞에서, 혹시 올해 다 만회하는 거 아냐? : 이런 공상. 가능 불가능 가능 불가능 가능... 


정말, 매일 기록하면서 얼마나 지속되는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아야할 것. 

나쁜 일.... ㅇ 이 일어나진ㅇ ㅏㄶ겠지 행여. ;; 낙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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