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Home 읽기 전 기대했던 건 버지니아 울프였다. 울프 얘기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책이 오기 전 위의 이미지는 본 다음이었고, 울프의 편지들은 


(그녀의 일기도 그렇지만. 일기와 비슷하게 내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선명하게 다르기도 한) 

이런 최고의 문장들을 이렇게 아낌없이 물쓰듯 썼던 사람이 최고의 작가가 아닐 수 없지. 도대체 여기 

무엇이 있는 거냐. 이런 경이감 안기는 문서들. 그것들을 읽고 있는 앨리슨 벡델. 


책에서 울프에 대한 언급은 위의 한 컷이 전부다. 

반면 Are You My Mother?에서는 꽤 방대한 언급이 있나 보았다. Are You My Mother?는 어머니가 

되고자 했지만 되지 못했던(않았던) 예술가. 딸인 자기가 그 예술가 되기... 에 관한 얘기로 읽을 수도 

있다는 거 같고 울프만이 아니고 여러 여성 작가들, 학자들이 등장한다는 듯.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 대한, 얼마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이해를 우리에게 주고 있을지. 


그런데 이 그림 속 앨리슨 벡델이 

울프의 다른 유명한 책들(<등대로>나 <댈러웨이 부인>, <자기만의 방>)이 아니라 

서한집을 읽고 있다는 게 


조금 의미심장해 보이기도 한다. 


니체의 인간적인 책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1권 628번 단장이 이런 내용이다. 

"제노아에서 저녁 어스름이 내리던 때 나는 종탑에서 들려오는 긴 종소리를 들었다. 결코 멈추지 않을 거 같던 소리. 

저녁 하늘과 바다 바람 속으로 사라져가는 길들의 소음을 누르면서 끝없이 막막하게 울려오던 소리. 섬뜩하고 동시에 유치하며, 우울하던 소리. 그리고 나는 플라톤의 말들을 기억했고 그 말들은 갑자기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인간사 무엇이든 아주 심각히 여길 가치가 없네. 그럼에도....."" 





(*영어판으로 보시면 조금 더 (훨씬 더) 와닿을 것입니다......) 


이 단장의 제목이 "Seriousness in play"라는 것. 

놀이에서 진지하기. 진지함에서 유희하기. 이런 것이 니체에게 극히 중요했다는 것. 

니체만이 아니라 모더니즘 작가들 아마 거의 전부에게. 그리고 아도르노에게도. 귀족적 모더니즘의 최후의 옹호자인 아도르노에게도. 울프에게도 그런 면모가 강하게 있는데 


그 면모가 가장 잘 보이는 울프 글들이 아마 편지일 것이다. 

앨리슨 벡델은 울프의 편지들을 읽고 있고, 그러는 자신을 그려 넣은 그 책은 

그 책 역시 마찬가지로 "진지함에서 유희하기, 유희에서 진지하기"의 모범 같은 책. 


저것을 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는 (태도와 지향, 감수성은) 

한국에서는 단련되기 힘든 종류일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감수성이라 해도 in your face, 아니면 on the n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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