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놀>의 192번 단장이 

제목은 "완벽한 적수를 향한 욕망 (The desire for perfect opponents)"이고 

내용은 어떻게 가장 기독교적 국가인 프랑스에서 가장 탁월한 자유정신이 나올 수 있었는가. 

정말 이것도 니체의 "프렌치 커넥션" 보고 싶다면 중요하게 참고할 단장일 것이다. 


"기독교적 정신의 완벽한 유형을 보유했던 이 나라가 어떻게 비-기독교적 자유정신이라는 

반대 유형의 완벽한 사례들도 생산할 수 있었나 말해 보자! 프랑스의 자유정신은 자신의 내면에서 

위대한 인간들과도 겨루었다. 다른 나라의 자유정신들이 오직 도그마, 그리고 숭고한 실패들과 겨루었던 데 반해." 


프랑스에서 기독교가 실현한 정신의 고양, 이것의 다수 예들을 드는데 

하나가 저 포르루아얄 데샹 수도원이다. 나는 오늘 처음 들은 이름. 아 나는 프랑스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깊이 한숨 쉼. 저 수도원에서 학문이 꽃을 피웠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 수도원은 여자 수도원이다. 음. 자세히 더 알고 싶어지는 곳. 



The French free-spirit struggled within himself against great human beings, and not merely against dogmas and sublime abortions, as did the free-spirits of other nations. 


위대한 인간들과 겨루어 보기. 아니 그들을 만나라도 보기. 

이게 얼마나 중요한가 탐구하기 가장 좋은 곳이, 지금 한국일수도. 

어쨌든 20세기 후반부터는 도그마, 그리고 실패들과만 겨루어왔던 이곳에서. 


라고 쓰고 보니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누가 그를 발명해야 했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지금 우리의 대통령님 생각남. (이렇게 쓰는 게 매우, 못견디게 간지럽지만 씀....) 20세기 후반 이후 한국에서 나올 수 없었을 인물. (..........) 나오기 굉장히 힘든 인물. 


어느 날 수업에서 현정부의 지지자라해도 비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지지가 맹목적이 되는 때가 있지 않냐는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잠시 생각하고 나는 이런 답을 해보았다. <군주론>의 그 유명한 대목, 권력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길 원하나 사랑의 대상이 되길 원하나. 어쩌면 맹목적 지지가 아니라 사랑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권력을 한 번 사랑해 보는 일. 이게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서 꼭 해보아야 하는 경험이지 않을까. 


이것도 적고 보니 별로 말 안되는 거 같지만, 그런데 질문했던 학생과 나 사이에서 

말로 못박진 못해도 깊은 무엇이 공유되는 듯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