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교육의 근본 문제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고, 사적인 동시에 일반적이며 

독창적인 동시에 규제된 저술들을 도발적으로 접근하는 데 있다. 

좀 더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개별 주체로 이해되는 인간 존재와 관련하여, 객관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한 활동을 결정하는 일이 도덕적 삶의 근본 문제다. 한 번 더 바꾸어 말하자면, "사회적" 행동을 위한 "개인의" 의지를 형성하는 일이 도덕 교육이 할 일이다. 도덕 교육은, 한 영혼의 고독에게 객관적 이상이라는 자양을 공급해야 한다. (................) 


어떻게 정신이 정신에게, 도덕적 의식이 이성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덕적 의식이 가져온 이성적 판단 앞에서 우리가 체험했던, 그 갑작스런 두려움을 기억하라. 

터놓고 이성적인 도덕 교육, 전적으로 이성의 토대 위에 세워지는 도덕 교육에 반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이가 진리처럼 객관적인 도덕 법칙, 그것이 갖는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성격 앞에 정면으로 설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도덕 법칙의 필연적 성격을 이해시키는 것이 그 법칙의 일반적 성격을 이해시키는 것보다 더 쉽다. 게다가 아이에게는, 필연과 절대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타고난 적성이 있다. 사춘기는 절대의 시대, 진리의 최대 가치를 믿는 시대다. (.........)


도덕적 의식이 은밀하며 혼란 상태에 있게 해선 안된다. 

도덕적 의식에게, 이성적 행동의 영역에서 도제 시절을 거치며 그를 통해 거대한 빛을 

받을 수 있게 하라. 사람들은 흔히 선한 의도를 말한다. 선한 의도는, 행동의 결과에 대한 섬세한 성찰이며 그 성찰은 자신의 증거 전부를 지성에서 얻는다. 



바슐라르가 1934년 한 학회에서 발표했던 글. 

제목이 "과학 문화의 도덕적 가치"이고 전체가 위의 책에 실려 있다. 

머리 뽑으며 해독했지만 (그러고도 오독의 연속이겠지만), 이 문장들이 

불어 사용자들에겐 어려운 문장들일 수는 있어도 (진정 생각하고 반응하며 읽어야 하니)

모호한 문장들은 전혀 아닐 것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영어로도 그런 문장들을 수많은 저자들이 썼고. 

정말, 사춘기 때 이런 문장들을 읽으며 "이성적 행동의 영역에서 도제 시절"을 보냈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자랄 땐 없었다고! 그래서 이 서재에 백 번은 쓴 것 같은 불평을 마지막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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