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포함 상호대차 도착한 세 권 책을 받으러 

도서관에 가려던 게 오늘 오후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일로 미루고 

오후엔 최애 반찬 고추장 멸치와 버섯 볶음을 만들었다. 


고추장 멸치는 

저렴하고 맛있고 보관도 꽤 오래 할 수 있고 한 번 만들어 두면 든든한 밑반찬. 이게 있으면 

장조림, 두부조림, 계란찜 등 보관을 오래는 못하는 것들을 만들면서 1식 2찬. 


국물용 멸치를 머리 떼고 내장 뗀 다음 

기름에 (대량 기름에) 튀기듯 볶고 나서 멸치 따로 건져내고 

남은 기름에 '고추장+간장조금+물엿' 섞어두었던 걸 넣고 이것이 끓어오를 때 불 끄고 

건졌던 멸치를 다시 넣은 후 버물버물. 뒤적뒤적. 멸치 손질이 좀 큰 일이긴 하다. 1.5kg 대량 주문해서 

어떤 땐 거의 반나절 멸치 손질만 하는 때도 있다. 소분해 넣어두고 먹을 만큼만 손질하기도 하지만 소분하는 것도 일임 사실. 하여튼 손질된 멸치가 있다면 초간단. 그리고 맛있음. 물에 밥 말아서 밥 한 숟갈 멸치 한마리. 





16년 여름 New York Review of Books에 

<안나 카레니나>의 영어번역에 대한 글이 실렸다. 

노문학의 영어 번역에선 전설이기도 한 콘스탄스 가네트 여사의 옛번역과

신예, 부부 번역가들인 리처드 페비어와 라리사 볼로콘스키(*하여튼 어려운 이름)의 새번역을 비교한다. 

이 글 읽고 나서, 번역에 대해 이 정도 얕은 논의밖에 못하나 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같은 의문이 

남았었다. 가네트 번역이 독자에게 봉사하는 좋은 번역이고 부부 번역가들의 새 번역은, 원작에 충실하겠다는 의도 하에 실은 야만을 저지르고 있다... 입장. 이런 문단 등장한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 

번역가는 누구의 관심에 봉사해야 하나? 번역이 자신의 즐거움과 이해를 돕지 방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크게 바라는 게 없는 독자의 관심인가? 아니면 원작이 어떤 건지 (원작의 "느낌"을) 알고 싶다는 많이 아는 독자, 혹은 매저키스트 독자의 관심인가? 


What side are you on? Whose interests should the translator serve? Those of the reader of simple wants, who only asks of a translation that it advance rather than impede his pleasure and understanding? Or those of the more advanced (or masochistic) school who want to know what the original was “like”?" 


그게 아니죠. 아니에요. 

당신이 제시한 두 유형 중 

전자에서, 즐거움은 몰라도 '이해'는 실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방해받았을 경우. 

후자에서, 그 독자가 원저에 가까운 번역을 원하는 게 '매저키스틱'해서도 아니고 

원저가 어떤 "느낌"인가 알고 싶어서인 것도 아닐 수가 있어요. 번역에 대한 당신의 이해가 얕고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게 저 문단에 드러납니다. : 이런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이런 글을 읽고 잊고 있다가 조금 전 다시 찾아보았는데 

공격 당했던 부부 번역가 중 남편 쪽, 기타 관련자들이 보내온 반박의 편지들이 9월에 실렸다. 

원래의 글에서 바로 위의 문단을 선택하고, 그에 답변하는 대목이 있다. 다음과 같이: 


"번역가는 저자, 그리고 원저에 봉사한다고 말하겠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번역가의 접근과 스타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유능하고 또한 꼼꼼한 한에서, 저자와 원저에 봉사할 때 믿음직한 번역이 나온다. 

독자는 그 번역을 즐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순수히 취향의 문제다. 그런데 

저자에게 합당하게 봉사했는지 아닌지,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농담>의 번역에 관한 쿤데라의 

이야기도 분명히 하듯이..... 


As a translator (of early Italian and Portuguese texts) and lifelong reader of Russian literature in translation, I would argue that the translator serves the author and the original text. Period. How he goes about doing so depends upon his approach and style; but assuming that he is competent and scrupulous, the result will be a reliable translation. The reader may or may not enjoy it, but that is purely a matter of taste. On the other hand, it is not a matter of taste whether the author is well or poorly served, as Milan Kundera’s account of the various translations of The Joke makes very clear."


the translator serves the author and the original text. Period. 

이 문장 내겐 정말, 그래요! 누가 이 말을 해야 했어요! 심지어 이런 의견도 소수의견

되고 있는 시대 아닌가요? : 뭐 이런 오바하며 반응. 저 "Period."에 거의 감동할 뻔............  


이 문단 말고 (이보다 더) 재미있고 생각을 자극하는 대목들이 있다. 출처: 

http://www.nybooks.com/articles/2016/09/29/on-translation-tolst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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