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결정하면 아마도 복덕방에 가게 되겠지만 

일단 피터팬에서 매물 보고 있다. 내가 갈 수 있는 한에서 (이걸로 먼저 확 좁혀진다)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 있었다. 나무 많고 조용한 동네. 조용하다고 내가 알고 있는 동네. 집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어떤 느낌일지 이미 알고 있는 동네. 이것으로 이미 안심이 되는데, 구조가 또 내가 원하던 그것이었다.  

문을 열면 짧은 복도 지나 왼쪽이 거실, 오른쪽에 부엌이 미닫이 문으로 (옛날 집처럼) 분리되어 있었다. 

부엌엔 긴 가로 싱크대. 개수대 앞의 창문. 이 집에서 부엌 문을 반은 닫고 개수대 앞 창문은 열고 좋아하는 

방송이나 강의 틀어두고 음식 만들고 있으면 행복하겠다고 바로 상상되었다. 이게 부엌인지 방인지 

이게 집인지 방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부엌이 분명히 분리 가능한 곳이 주는 

만족감이 있는 거 같다. 


매물 등록이 최근이었다면 

바로 가보고 이사 결정했을 수도. 

아직 계약 안되었다는 댓글이 있긴 했지만 4년 전 매물. 


아무튼. 부엌.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공간 아닌가. 

그리고 식기세척기. 이것은 꿈의 가전으로서..... 





넓은 부엌에 식기세척기도 있다면 

그 집에서는 부엌에서도 페이퍼가 써질 거 같다. 식탁에서 식기세척기 소리를 들으면서

아도르노의 "진보"(아도르노가 이 제목으로 쓴 에세이가 있다)를 읽게 될 것이다. 


"널리 비방된 18세기의 진보 이념이 19세기의 그것보다 얕지 않다. 

부르주아 계급이 억압 당하던 계급이던 동안, "진보"가 부르주아의 구호였다. 

진보 이념에 담길 수 있었던 열정. 그건 부르주아가 억압 받던 상황의 메아리다. 

부르주아 계급이 권력의 결정적 위치를 점한 이후, 진보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심오함이, 진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한 혐의로 18세기를 규탄한다." 


그리고 햄, 두부, 어묵 넣은 김치찌개가 끓기 시작하면 (돼지고기여도 좋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그러나 불안할 건 없는 게 남은 여생이 길지 않다며  

저녁 먹고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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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4-2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식기세척기 있는 부엌으로 가셔서 페이퍼 써주시기를 희망합니다....

몰리 2019-04-24 18:04   좋아요 0 | URL
식기세척기가 있는 넓은 부엌. 상상만 해도 좋아지니
상상만으로도 이미 과한 행복을 알게 한, 너 식기세척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