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맥주 마시다 이거 틀어 놓고 잠. 

레이먼드 게스였나 누가 이 책 이후 로티와 절연했다, 절연해야만 했다... 같은 얘기하던 거 생각함. 

그럴 만도 하다. 견딜 수 없는 심정 이해되기도 한다. 국가 부심("national pride")을 위한 처방. 철학자가 

하면 코미디일 거 같기도 하다. 나는 대학원 시절 도서관 대출해서 읽었는데 어떤 대목들은 정말 깊이 

공감했었다. 다 버리고 이 대목들에만 집중하시지. 이 대목들만으로 쓰시지. 이런 심정 들었던 거 같다. 

책이 집에 없는데 어떤 대목들에서 그랬나 어제 밤 궁금해져서 audible 들어가 오디오 버전 구입함. 

월트 휘트먼, 존 듀이 등이 미국 민주주의에 가졌던 꿈. 미국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전범이라면, 그것이 

보여줄 것은 새로운 유형의 개인의 탄생. 이런 얘기가 1장에 있다. 


바슐라르도 대단히 애국자시고 프랑스 부심 쩌시는데 

로티가 쓰는 저런 문장은 절대 쓰실 리 없으며 혹시 읽는다면 여러 곳에서 몸서리치실 것으로... 상상되었다. 

바슐라르의 부심은 특별한 종류일 듯하다. 프랑스인이 개인 차원에서 거둔 성취에 집중하는. 프랑스의 한 인간이 

보편에, 인류에 한 기여에 초점을 두는. 보편주의, 국제주의 이런 것으로 언제나 확장 중이어서 사실 "국가 부심"으로 좁혀질 수 없는.  



문학서들만으로도 그 점 명백하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학철학으로 확장하면 더는 못 알아볼 수 없게 분명히, 넓고 깊고 자유로운 정신... = 바슐라르의 정신. 

그 참 독특한 에너지. 


그의 책들을 읽고 내가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써서 그걸로 뭘 이루든 말든) 깊이 감사한다는 심정 실제로 자주 든다. 

그런가 하면, 그의 책들을 읽는 것까지는 온전히 내 마음이지만 쓰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점점 더 느끼기 시작한다. 그가 비주류고 (특히 영어권에서는) 그의 생각이 널리 인기있을만한 생각이 아니라는 

점도 장애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개인적인 작업이 되는 순간 (기존 작업들의 취합, 정리, 요약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겪게 되는 학습된 무력함/무능함 같은 게 있다. 설명하려면 길어질 얘기지만,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사실 

모두 아는 무엇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나는 이게, 대화와 논쟁을 제대로는 해본 적 없는 정신이 겪는 

어려움이지 않나 쪽이다. 그리고 대화와 논쟁, 이것이 가능하려면 같이 생각하기, 같이 기억하기의 경험이 

오래 축적되어야 한다 쪽이다. 같은 문제를, 같게 혹은 다르게, 그러나 같이 생각하기. 협력과 경쟁, 결투를 모두 체험하기. 


내가 페이퍼들을 너무 느리게, 너무 조금 쓰고 있을 따름이며 1인의 무능함이 여기 있을 뿐인 것으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고 (..... 아니 정말, 그렇지 않다는 판단이라서. 그렇다면 좋겠지만.....) 나만이 아니라 

우리 중 다수가 아는 곤경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곤경을 끝까지 추적하고 생각해서 격파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같이 생각하기, 같이 기억하기의 오랜 축적이 있어야 하며 그를 토대로 한 대화와 논쟁의 

경험이 있어야 하겠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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