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수들 중 그런 사람들을 이젠 충분히 보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과학사 1700-1900> 강의하는 교수는 그들 중에서도 그러니까, 어나더 레벨이었다. 아니면 whole new level. 

진짜 자기 전공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도 사랑하고 모든 단어, 모든 음절, 모든 "숨"에 열정 뿜뿜. 그의 말이 시작하면 

공기가 달라진다. 학교의 공기. 바슐라르가 구상한 그런 학교의 공기. 


하여튼. 그의 이 "whole new level" 때문에 

그같은 사람이 내 삶에서 가까이 어딘가에 언제나 있었다면 

내가 가지 않았을 소모의 길. 이게 갑자기 진짜 선명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내가 진작 알았고 이젠 내 삶의 일부일 습관. 뭐 몸의 습관, 그리고 정신의 습관. 

이것도 선명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억압. 기만. 협잡. 

이게 그냥 기억하는 생애 내내 내 삶을 구성했음. 

그같은 사람이 내 삶에서 가까이 어딘가에 언제나 있었다면 

그것들을 적어도 일부는 격파했을 것임. : 정말 이렇게 믿게 되었다. 


그런 사람의 무엇이 그렇게 특별하냐고? 

사실 이 점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서재에 포스팅을 100편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 지금 페이퍼가 급하고 시간은 거침없이 빠르게 가고 있어서 서재에 이 주제 포스팅을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지만 한다면. 그 왜, 천국을 입장하려면 답이 "yes"여야 하는 두 질문. 1. 너는 기쁨을 알았는가. 2. 너는 남들에게 기쁨을 주었는가. 이 두 질문에서 1.에 "yes"로 답할 수 있는 사람. 깊고 넓고 높이 "기쁨" 알았던 사람. 


저런 사람만이 남들에게도 자유, 행복 줄 거 같다. 남들의 정신을 (억압, 기만, 협잡에서) 해방할 거 같다. 


오직 억압, 기만, 협잡만이 남은 사람에게서 작지 않은 고통을 

거의 매일 겪고 있는 중이라 일어나는 착시 비슷한 걸수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