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 지내고 있어요. 별일 없고요, 심심하고 갑갑한 봄이라고 투덜댔는데 어젠 초여름 날씨더라구요. 카페에선 찬음료를 주문했어요. 이름도 길어서 메뉴판을 보면서 떠듬떠듬 주문했어요.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음료 안의 얼음이 다 녹았어요. 컵에 맺힌 작은 물방울들이 흘러내려서 얼른 냅킨으로 받쳐놓았어요.

 

잘 지내나요? 그런 날도 있고요, 덜 잘 지내기도 했어요. 책을 읽는 게 얼마나 하찮나 싶어서 우울하기도 하고, 주인공에 한참 감정이입해서 "얘, 그 남자는 아니야!" "그 길로는 가지마!"라고 소리내서 (진짜로 육성 폭발이라지요) 말리기도 했어요. 아, 그 소설은 뭐 한 백몇십 년 전에 씌인거긴 하죠. 그러면서 살짝, 아, 당신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어떤 와인에 (어떤 안주에) 어떤 영화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을까, 궁금해졌어요. 그러곤 조금 부끄럽기도 또 부럽기도 했어요. 이 오묘한 느낌은 뭐라 설명이 안되네요.

 

잘 지내고 있어요. 아이들을 등교 시키고 남편 출근 시키고, 아르바이트 하던 일은 뜸한 요즈음, 책장 정리를 하다가 문득 지난 봄 생각도 하면서요. "독서공감"을 다시 펴보았어요. 그 안의 통통 튀는 독서 느낌, 그때도 역시나 넘쳐 흐르는 공감능력. 그래요, 이것 때문에 내가 두번 째 책을 곧바로 사서 읽기 시작했나봐요. 하지만 이 두 책은 꽤 닮았지만 엄청나게 다르게도 보이네요. 이젠 공감을 넘어서 하고 싶은 말, 나아갈 길을 그려내는 것 같아요. 맞나요? 아, 당신은 잘 지내고 있네요. 내가 다 기분 좋아질 정도에요.

 

더운 날이 될거래요. 오늘도. 하지만 아직 저녁 퇴근 길은 차가울 걸요. 아니, 어쩌면 당신은 이런 날도 뜨거운 음료를 후후 불며 마실지도 몰라요. 잘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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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4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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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4 1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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