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오랜만이에요. 치바씨.>

이사카코타로는 원래 시리즈 물을 잘 내지 않는 작가이다. 유일한 시리즈물이라곤 '명랑한 갱 시리즈' 뿐. 그런 이유로 치바가 무려 8년 만에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그 반가움이 그 어떤 신간 보다 몇곱절이나 컸다. 게다가 '사신 치바'는 내가 이사카월드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기에 더욱. 이번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다. 이사카코타로 그 특유의 플롯은 단편 보단 장편에 더 적합하기에 또한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을 몰고 오는 이 사신의 귀환을 나는 쌍수 들고 환영했다. 다만 맛있는 음식 아껴 먹는 심정으로 작년에 출간된 4권의 신간 중 제일 마지막으로 출간된지 7개월만에 치바씨와 재회하게 되었다.

 

<치바씨는 모범 사원.>

치바는 모범 사원이다. 조사의 결과가 '가'(가는 조사 8일째 죽음, 보류는 미래 어느 순간까지 죽음 보류이다.)일게 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신들은 조사 기간 일주일 중 처음 하루 정도만 조사 대상과 접촉하고는 나머지 6일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사신들의 행태에 치바는 화가 나기도 한다. 일이란 것은 절대 즐겁지 않고, 힘들지 않으면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 치바. 그 역시 대부분의 조사 결과는 '가'일 테지만(그럼 이 작품 주인공의 조사 결과도 '가'냐고?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 보시라^^) 그는 결코 직무태만의 자세를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충실히 대상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의 일에 이리 엮이고 저리 엮이며 독자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음악 오타쿠 치바씨.>

'사신'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데스노트'의 '류크'를 떠올리지 않을까? 나도 치바 보다 류크를 먼저 접했기에 처음 '사신 치바'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데스노트 같은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류크와 치바는 달라도 너무 다른 캐릭터이다. 류크에겐 사과가 최고라면 치바에겐 '음악'이 최고다. 인간들이 만들고 이루어 놓은 문명들에 크게 관심 없는 치바이지만 단 하나 '음악'만큼은 사랑한다. 아니, 사랑을 넘어선 '집착'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작품 전반에 여러 음악들이 소개가 되는데(이건 사실 이사카코타로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특징기도 하다.) 작품 전체 내용과 참으로 잘 어울려 bgm으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해낸다. 이 작품에선 특히 The four seasons의 'sherry'라는 곡이 자주 언급이 되는데, 나 또한 유투브에서 찾아 듣고 완전 빠져 버렸다. 처음 들어보는 곡 아니고 익숙한 곡인데도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야마노베 부부에 감정 이입이 돼서 였을까 굉장히 애틋하게 다가온다.

 

<괜찮아요? 많이 어색했죠?>

8년 만에 돌아온 치바가 가장 달라진 점은, 본인은 의도 하지 않았지만 본격 개그캐릭터화 되었다는 것이다. 사신들은 인간이 아닌 '사신이기에' 당연히 인간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조사 기간 중엔 조사 대상의 주변 인물로 등장하기에 '인간처럼' 굴어야 한다. 그래서 치바는 본의 아니게 자꾸만 모모 아이돌의 로봇 연기도 울고 갈 발연기를 선사한다. 이런 점은 '사신 치바'에서도 당연히 드러나긴 했는데, 이번 작품이 장편이어서일까 그런 치바의 발연기가 너무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자주 튀어나와서 책을 읽는 내내 큭큭대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자주 대화의 초점에서 벗어나 버리는 치바의 대사들. 때문에 딸을 잃고 2년간 죽은 것처럼 살아있던 야마노베 부부조차도 치바 덕에 자꾸만 웃게 되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사신'인 그 덕분에 삶의 활력을 얻기도 한다. 이런 점이 바로 치바의 가장 큰 매력이고, 이런 이유로 치바가 이사카코타로 작품들 속 캐릭터들 중 단연 인기 1순위인 것이다.

 

<치바씨, 죽음은 무섭지만 무섭지 않아요.>

작품 속에서 치바는 야마노베에게 묻는다. "죽음이 무서운가?"라고. 딱히 답이 궁금한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꾸만 '죽음'에 대해 묻는다. 주인공인 야마노베는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딸의 죽음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답을 얻었을까? 그는 파스칼의 팡세를 인용하여 답을 건넨다. "인간은 죽음과 불행과 무지를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일본 동북 지방의 대지진을 바로 눈 앞에서 겪고(이사카코타로는 동북 대지진이 직격으로 지나간 센다이 지역에 살고 있다.) 난 후의 작품이어서였을까, 죽음에 대해 한없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나도 자꾸만 나이가 들고 그에 비례하여 부모님도 계속 연로해지시며,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도 계신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니 딱히 무서워 할 일은 아니지만, 야마노베가 작품 말미에 던진 그 말에 격한 공감을 표할 수 밖에 없겠다. "죽음은 무섭지만 무섭지 않아요."

 

<알고보면 퍽이나 상냥한 치바씨에게 경의를.>

작품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경의를 표한다는 것은 귀찮은 일을 대신 해달라는 뜻이다.' 치바는 야마노베 부부와 일주일간 함께 하며 온갖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해낸다. 결코 자신은 딱히 그들을 도우려 한게 아니라 그저 조사의 일환일 뿐이라고, 그저 어서 일을 마치고 음악을 실컷 듣고 싶었을 뿐이라고 강조하지만. 늘 쿨한 척, 인간에게 관심 없는 척 하지만, 사실 그 어떤 인간들 보다도 더욱 '인간적'인 치바씨. 그에게 경의를!!!

그래서 야마노베 부부의 복수가 성공을 했느냐고? 사이코패스 혼조는 죽고, 치바의 보고는 '보류'여서 야마노베 부부가 살아 남았느냐고? 책 속에서 직접 확인하시기를^^ 그저 한마디 덧붙이자면 아주 아주 '이사카코타로'다운 결말이었다고 밖에는.

 

<우리 또 봐요. 치바씨.>

사신의 7일 관련 어떤 인터뷰에서 속편을 또 쓸 생각은 없지만, 편집자의 '할아버지가 되면 과연 어떨까요?'라는 질문에 '그때는 생사관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요.'라고 답했다는 이사카코타로. 언제나 새로운 작품에 목말라 있는 팬들을 위해 오래 오래 건필해주시고, 꼭 치바도 또 한번쯤 다시 만나게 해주시기를. 그리하여 먼,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또 봐요. 치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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