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괜찮겠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의 팬>

  수없이 밝혀 왔지만 나는 이사카코타로의 팬이다. 2000년대 초반이었던가? 1990년대 말이었던가? 한때(뭐 지금도 그러하긴 하지만) 일본 소설 열풍이 일던 때가 있었다. 베스트셀러 상위권 대부분을 일본 소설이 차지하던 시절. 해서 나도 대체 얼마나 대단한건가...싶어 몇몇 작가의 소설을 몇권 읽어 보았는데 영 내 취향엔 맞지 않았었다. 첫인상이 그러했기에 선입견 비슷한게 생겨 그 후론 일본 소설엔 손이 가질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몇 년 후 이번엔 일본의 순수소설이 아닌 장르 소설들이 유행을 하기 시작했고, 워낙 추리 수사물을 좋아하는지라 다시 일본 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주 생소한 작가의 생소한 책을 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신치바'였다. 추리 같으면서도 아주 추리라 볼 수 없고, 단편들인데 아주 단편이라고도 볼 수 없는, 삽화만 보면 만화인가도 싶은 묘한 소설. 아주 재미있었고, 그래서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사신 치바' 다음으로 읽은 책은 '골든 슬럼버'. 세상에나!!! 어쩌면 이렇게나 재미있는 소설이 다 있을까.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도 주옥 같았고, 앞에 깔렸던 모든 장면들이 합체가 되는 마지막 결말에선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고 다른 작품을 사서 읽고, 또 사서 읽고 하다보니 나는 어느새 이사카코타로의 팬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 독서는 곧 휴식이며 오락이기에 '재밌는' 이야기가 좋고, 해서 나는 늘 소설만 읽는다.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스토리와 플롯과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 이사카코타로는 이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작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작가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로지 한국어 밖엔 할 줄 모르는 까막눈인데 말이다. 때문에 언제 번역되어 나올지도 모르는 책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수시로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에세이 번역 소식! 솔직히 생각도 못했었다. 일본에서만큼 한국에선 아주 대세인 작가는 아니기에..... 그래서 더욱 반가웠던 산문집 출간 소식에 실제로 방안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었다. 혼자 살기에 망정이지 누가 봤다면 분명 광년...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이사카코타로의 데뷔 10주년 기념 에세이집인 그것도 괜찮겠네(원제는 3652)를 읽게 된다.

 

<작가의 소설>

  에세이집에서 일단 제일 인상깊고 눈에 띄는 건 역시 자기 작품들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내가 에세이집을 간절히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도 여기 있었다.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혹은 어떤 계기로 그 작품들을 써내려 갔었을까....하는 것. 여기엔 치바(사신 치바)의 이야기도 있었고, 안도와 준야(마왕)의 이야기도 있었고, 나그네 비둘기(오듀본의 기도)의 이야기도 있었고, 보험조사관(칠드런)의 이야기 등 여러 작품들의 후일담이 존재한다. 이미 이 작품들을 다 읽고 그 작품들과 캐릭터들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흐뭇한 엄마 미소를 지으며 읽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재미있는 건 에세이집이 나올 걸 생각지 않고 에세이를 썼다가 나중에 한권으로 묶이는 과정에서 다시 작가가 후일담을 적어 놓았는데 그게 재미를 배가 시킨다. 참고로 나는 도라에몽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어쩌면 지금의 이사카코타로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인물일 테니까. (무슨 말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 보시라~ ㅋㅋ)

 

<작가의 가족>

  작품 이야기만큼 많이 등장하는 얘기는 당연히 가족이다. 특히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참 유쾌하신 분이다. 예를 들어서 카라멜콘과땅콩 봉지에 그려진 양보다 훨씬 적게 땅콩이 들어 있어 회사에 항의 전화를 한다거나, 길을 가다 언제 개를 마주할 지 모르니 주머니에 늘 개사료를 넣어 다딘다거나, 개의 건강의 척도는 코라며 코가 말라 있는 개를 보면 침을 발라 준다거나. 아버지 이야기를 읽을때마다 이건 혹시 유머집인가 싶을 정도로 웃겼다. 모두 전혀 꾸며내지 않은 실화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마 작가의 소설 속 유쾌한 인물들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가족은 작가의 아내이다. 이 산문집의 제목인 '그것도 괜찮겠네' 는 작가에게 아내가 해준 말이다. 작가가 오듀본의 기도라는 데뷔작을 책으로 냈을 때만 해도 그는 원래 전업 작가가 아니라 회사원이었다. 그것도 꽤 괜찮은 회사의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다고 알고 있다. 인세로만 먹고 살기 힘드니 적어도 3년은 지켜봐야한다고 편집자도 권했다 한다. 그런데 어느날 퇴근 길에 글만 쓰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고 아내의 반응이 어떨까 걱정했다 한다. 안된다고...말한다거나, 혹은 내가 더 열심히 벌게...라고 하면 그냥 계속 회사를 다니려했다 한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은 소쿨한 한 마디 "그것도 괜찮겠네"였다고 한다. 그래서 부담없이 회사를 그만두고(회사 사장님 반응 또한 쏘 쿨~ㅋ)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한다. 작가의 작품들 속 캐릭터들의 쏘 쿨함은 아마 아내의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일상>

  산문집을 읽으며 제일 반가웠던 점은 작가도 나처럼 방구석 귀신이라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집에 박혀 지내는게 제일 좋다는 작가. 나도 이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나의 집인지라, 엄청난 동질감을 느끼며 반갑기 그지 없었다. 작가는 주로 집에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한다. 아참! 아이가 어렸을 적엔 육아도 담당했었고(아내는 직장 생활을 했기에). 그렇게 늘 똑같이 재미없는 일상을 하다보니 에세이로는 쓸 이야기가 없어 에세이 청탁을 받을 때마다 굉장히 어려웠다 한다. 해서 이렇게 책 한권으로 에세이들이 묶여 나오다니 감개무량하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의 이야기는 심심한 관계로 상상하여 쓰는 소설이 자신에게 더 맞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똑같이 심심한 일상을 사는 나에겐 어찌하여 소설을 쓰는 능력을 주시지 않는 건가.... 잠시 신께 투정도 해보았지만, 멋진 작가들이 써주는 재밌는 이야기들을 읽는 일상에 만족하기로 했다.

 

<작가의 집념>

  산문집 속에서 또 인상깊었던 것은 12지에 관한 에세이였다. 같은 신문사에서 매년 그 해 띠에 관한 에세이 청탁을 해오는 모양이던데 늘 쓸 거리가 없다는 얘기가 태반이다. 그래서 그 에세이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이 사뭇 진지하고 힘겹기만 한데, 그 진지함에 웃음이 나고 만다. 원숭이....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이야기에서는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ㅋㅋㅋㅋ 그렇게 매년 힘들게 한편 한편 에세이를 썼음에도 작가는 꼭 12지를 다 채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 에세이집이 일본에서 나오던 시점을 기준으로 5개의 동물이 남았다 했으니 내년쯤이면 12지를 모두 채우는 것일텐데, 과연 결과가 어찌될지 상당히 궁금하다.

 

<작가의 취향>

  이 산문집 속에는 작가가 추천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과, 영화, 음악이 나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소설은 우리나라에선 거의 접할 수가 없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시마다소지' 같은 작가의 작품은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꼭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작가처럼 음악을 반찬 삼아 맨밥을 먹는 데 도전도 해 볼 참이다. 어떤 음악이 반찬으로 제일 맛있을까?

 

<다시 작가의 팬>

  소설만 줄창 읽어대는 편독가가 읽은 몇 안되는 산문집. 물론 재밌었다. 원작은 존대어가 아닌 모양이던데, 번역본은 존대어여서 그런지 굉장히 다정하고 친근하게 느껴졌고,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스노우캣은 그 아기자기함을 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던 작가의 사생활(?)을 조금이나마 공개적으로 훔쳐볼 수 있었고, 작가의 혈액형(B형이라 한다. 의외였다 나는 A형이나 O형일거라 짐작했건만....)이나 취향등을 파악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책이었다. 왠지 작가와 한결 친해진 것만 같은 착각도 들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일본어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들을 이제 원서로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아마 국내에 번역될 가능성 제로인 가이드 북을 꼭 읽어 보고 싶어서 말이다.

 

<팬이 작가에게>

  『 p.73 작품의 의미라든가 의의, 반전이나 트릭, 시험에 나올 '작가가 하고픈 말'과는 상관없이 재밌게 읽으면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멋진 음악은 멋지게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와우, 이거 좋은데'하면서 웃음 짓고 싶어서, 저를 채근하는 외침이 듣고 싶어서 책을 사러 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도 크게 소리치고 싶습니다.(하지만 머릿속에서 진작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의 외침은 별로 멋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압니다.) 』

 

 책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는 나의 독서관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그런 '재미'를 작가의 책속에서 자주 느끼기에 나는 작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미 당신의 외침은 충분히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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