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의 영역
최민우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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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p- 나는 할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직선으로 뻗어가던 상상의 점선이 입을 헤 벌린 고종 사촌형의 이마에서 멈췄다.

18p- 나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금과 아르바이트 시급을 저글링 하듯 굴리면서 학점이라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지그재그로 나아갔다.

27p- 말을 끝낸 순간 심장이 줄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풀썩 떨어지더니 고무공처럼 퉁퉁 튀었다.

64p- 아무떄나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데이터는 신호일 수도 있고, 잡음일 수도 있는데, 사실 둘은 같다. 신호는 의미를 가진 잡음이다. 잡음이 신호로 바뀔 때 우리는 단순한 매혹과 맹목적인 호기심을 넘어 의미의 세계로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간다. 맥락 없이 아무렇게나 교환되던 친밀함의 데이터는 연애라는 흐름에서 재해석된다.

163p- 이제부터는 아니야. 예언이 실현되었으니까. 끝났으니까. 이제부터는 너와 나의 미래야.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날거다.
소중한 걸 잃게 된다. 힘들거다. 용기를 잃지 마라. 도망치면 안 돼."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주인공을 향해 말하는 유언에서 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은 유언을 받고 유언에 대해 조금 무심하게 생각하며 살다가, 유언을 맞닥뜨린다. 주인공은 힘들게 취업을 하고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나게 된다. 유언은 제대로 작동한다. 주인공은 소중한 걸 잃게 되고 힘들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도망치지 않는다. 유언의 조언대로 주인공은 제대로 기능한다. 

 이야기의 등장하는 예언, 그림자, 신호, 패턴 같은 단어들은 사실 신선한 단어들이 아니다. 장강명의 소설에서는 신호 패턴이, 하루키의 소설에는 예언, 그림자가 등장하고는 했다. 신선한 단어들은 아니지만 그 단어들은 꽤나 신비한 힘을 가지고 이야기에서 잘 작동한다. 신선하지않은 단어들이 현시대의 이야기에 적용되고 잘 기능한다.

 발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설 속의 두 주인공은 꽤나 발랄하다. 새벽 여섯시반, 찜질방에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서로를 꼭 끌어안으며 심장 소리의 불규칙성을 느끼기도 한다. 비극적인 환경에도 주인공의 사랑은 발랄하다. 

 최민우의 문장들도 꽤나 발랄하다. 꽤나 새로운 표현들과 재밌는 표현들이 많다. 연재소설 답게 술술 읽히는 재미도 있는 이야기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정돈이 아쉽고 표지가 꽤나 진부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단어들로 현시대를 이야기할 표지가 예쁜 최민우의 신작이 기다려진다.




"사람들은 예언과 종말을 혼동하곤 한다. ...(중략) 하지만 목숨이 다하지 않는 이상 예언이 이뤄지고 나서도 삶은 이어진다. 실은 예언이 이뤄지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예언이라는 확고부동한 점이 있다고 삶이 분명해지지는 않는다. 그 점의 앞뒤에, 위아래에 다른 점을 찍는 건 우리 자신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직선으로 뻗어가던 상상의 점선이 입을 헤 벌린 고종 사촌형의 이마에서 멈췄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금과 아르바이트 시급을 저글링 하듯 굴리면서 학점이라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지그재그로 나아갔다.

말을 끝낸 순간 심장이 줄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풀썩 떨어지더니 고무공처럼 퉁퉁 튀었다.

아무떄나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데이터는 신호일 수도 있고, 잡음일 수도 있는데, 사실 둘은 같다. 신호는 의미를 가진 잡음이다. 잡음이 신호로 바뀔 때 우리는 단순한 매혹과 맹목적인 호기심을 넘어 의미의 세계로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간다. 맥락 없이 아무렇게나 교환되던 친밀함의 데이터는 연애라는 흐름에서 재해석된다.

이제부터는 아니야. 예언이 실현되었으니까. 끝났으니까. 이제부터는 너와 나의 미래야.

사람들은 예언과 종말을 혼동하곤 한다. ...(중략) 하지만 목숨이 다하지 않는 이상 예언이 이뤄지고 나서도 삶은 이어진다. 실은 예언이 이뤄지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예언이라는 확고부동한 점이 있다고 삶이 분명해지지는 않는다. 그 점의 앞뒤에, 위아래에 다른 점을 찍는 건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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