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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향기 

  

시골 농로를 달려

푸르름이 차창 그득 채워지니

참지 못해 창을 열어

알싸한 바람을 얼굴에 맞는다

 

베어 낼 손 없어 웃자라   

길가 차지한 키다리 풀들이  

바람의 박자에 춤을 추니

그 싱그러움이 쏟아진다

 

아~! 

풀향기가 난다...

 



 
 
 

 

 

훈장...  

 

전화가 온다.

자전거와 부딪혀 아들녀석 

얼굴에 홈이 파였단다

가슴이 철렁한다  

많이 놀랐을텐데 

흉이 나면 어쩌나

  

모두가 운다. 

자전거 몰던 녀석도 울고  

다친 녀석도 울고 

옆에 있던 형 녀석도 울고   

아파서 울어 

놀라서 울어 

 

병원을 간다. 

얼굴에 바느질 한땀

밴드 떡하니 붙은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에 

엄마는 그래도 웃는다 

그래도 이만한게 다행이다 

 

훈장 하나 는다. 

엄마품 벗어나는 녀석들에게

훈장이 늘어난다 

엄마품에 있을땐 

애지중지 멍하나 없던 녀석들에게 

커가는 훈장이 늘어난다

  

훈장 하나 는다. 

품안에 꼬물거리던 녀석들이 

이만큼이나 자랐구나

벌써 이만큼이나 

엄마 가슴에도

져릿져릿한 

훈장 하나 늘어난다  

 

 

 




 
 
 

 

 

惡夢......<1>...또 

 

 

헉... 

헉... 

얼마나 걸었을까...  

또... 

 

이마에서 흘러 내린 땀이 오르는 무릎에 닿고 허공으로 튕겨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오르막 시멘트 포장길을 한참을 걷고 또 걸어 올랐다. 또...  

 

가쁘게 몰아 쉬는 숨은 폐속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듯 목을 조이며 차올랐고 어지럼이 느껴졌다. 등줄기를 타고 흐른 땀이 티셔츠에 흥건해짐을 느꼈다.

  

여기쯤이라고 느껴지는 곳에 다다라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인채 거친 심호흡을 연신 쏟아냈다. 높이가 느껴지는 스산한 찬기운이 등을 휘감고 지나갔다.  

 

춥다... 

 

수 없이 올랐지만 아찔하게 오른 길의 아득함이 무서워 이번에도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천천히 허리를 들어 앞에 보이는 주변만을 돌아 볼 뿐이다. 

 

익숙하다... 

 

별것 없어 보이는 단촐한 마을이다. 이상하리 만치 사람이 없는 동네에 다닥다닥 작은 상가들이 모여있고, 그 뒤로 고만고만한 다세대 주택들이 있다. 그러나 그에 반해 유난스레 크고 하얀 페인트로 칠해 진 한동이 덩그러니 서있는 아파트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어스름해진 저녁시간 아파트는 군데군데 불빛이 보일 뿐 그 어디에도 일렁이는 움직임 조차 보이지 않는다. 

 

'저길...가야한다. 저기...' 

 

후들거리는 다리에 다시금 힘을 주어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찔거리는 두통과 함께 맥빠진 몸의 휘청거림이 느껴진다. 아파트 진입로에 다다르자 간간히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누구도 비척거리는 모습의 낯선이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모두들 자신의 앞만 주시한채 묵묵히 운전해 갈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지 계단을 올랐는지 기억 없이 또... 어느 아파트 현관앞에 서있다. 몇호인지 매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도 역시... 누군가 손을 아래로 잡아 끄는 듯한 무거운 손을 들어 현관 손잡이 꾸욱 잡고 천천히 돌렸다.  

 

잠겨 있지 않은 문... 

끼이이이익!

  

넓지만 평범한 구조에 아파트가 익숙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서 조금 걸으면 현관 옆 열려진 작은방에 눈길이 간다. 늘 그렇듯이 벽에는 연두색의 작고 예쁜 원피스가 걸려있다. 언제봐도 참 귀여운 옷이다.  

 

이제 집주인을 만날 차례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점점 심장의 박동이 점점 빨라져 그 작은 진동이 머리와 가슴을 쿵쾅거리며 한껏 울려댄다. 넓은 거실에 다다르자 화려한 천정등이 그에 어울리지 않게 희끄므레한 빛만 겨우 내고 있다.  

 

집주인...   

집주인을 꼭 봐야겠다.

 

그녀는 희미한 불빛아래 딱딱한 의자에 앉아있다. 무서움마져 들게 하는 힘없이 늘어진 커다란 러플들이 층층이 쳐진 빛 바랜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 그녀의 머리 씌워져 퍼져 내려온 면사포는 거실 바닥전체를 덮을 만큼 넓게 펼쳐져 있다.

 

단 한번도 고개를 든 적이 없는 그녀...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듯 앉아있는 그녀...

 

그녀는 목과 등이 굽어진 기괴한 모습으로 숙여져 있다. 면사포 아래 그녀의 마른 몸에 앙상한 어깨벼와 목뼈가 도드라져 보인다.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어 보지만 역시나 그녀는 미동조차 없다. 조심스레 한걸음 한걸음 다가간다. 발이 더욱 무거워지고 심장소리와 호흡소리가 점점 더 커져 거실을 울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손을 내밀었다...  

 

팔을 길게 뻗었다. 닿을 듯 하다. 한발 더 가면...하지만 그러기엔 공포가 나의 다리를 멈춰서게 했다. 닿을 듯 하다. 조금만 더...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실 옆의 방문이 열릴 듯 말듯 딸깍거리기 시작한다. 매번 그녀에게 다가오면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방... 궁금하지만 이게 먼저다. 방문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금 손끝에 집중한다. 닿을 듯 하다 조금만 조금만 그녀의 사락소리를 낼 듯한 면사포가 느껴졌다. 조금만 더... 입에서 절로 신음이 쏟아졌다. 용기를 내 한발 더 다가서려 발을 내딛어 보려하지만 무언가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어 절로 몸이 흠칫 멈춰섰다. 더 나아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다시 손끝에 집중한다.

  

향...냄새... 

 

그때 온 신경을 관통한 지독한 향 냄새.... 정말 싫다. 절로 고개를 휘젓게 만드는 이토록 지독한 향냄새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싫어! 싫어! 안돼... 조금만 더... 싫어...! 읍~!" 

 

향냄새를 거두려고 팔소매로 코와 입을 막고 한 팔은 허공에 휘저었다. 하지만 향 냄새는 더욱 더 짙게 신경을 죄여오며 몸속을 파고 들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새차게 흔들렸다. 

 

"얘...일어나...지연아...꿈꾸니? 지연아~ 눈떠봐!" 

 

눈이 가늘게 떠졌다...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얘가 무슨 낮잠을 이렇게 오래 자...일어나..." 

 

엄마는 딸이 깬 것을 확인하고 창을 가리고 있던 무거운 커튼을 열었다. 쨍쨍한 여름 햇빛이 쏟아졌다. 손을 들어 눈을 자극하는 빛을 막아냈다. 아직도 손끝에는 사락거리는 면사포의 느낌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눈을 비벼 겨우 초첨을 맞춘다. 엄마는 방을 나가며 말했다. 

 

"세수만 하고 나와 점심 먹자...니가 좋아하는 국수 해놨어..." 

 

정신을 차리려 침대에 걸터 앉아 한참이나 손끝을 매만겼다. 헐렁하게 입은 티셔츠가 땀이 식어내리느라 등줄기가 서늘하다.

 

'다왔는데...다왔는데...'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세차게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 또 그 꿈 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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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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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물었다.

 



 

 

8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 100억이 생기면 뭐할꺼예요?

음...



되물었다.

아들 100억이 얼만큼 큰 돈인지 아니?

음...



되물었다.

아주 아주 많은 돈 아니예요?

어...!



되물었다.

그래 그래 엄청 큰 돈이지?

아...!




답했다.

우린 그렇게 큰 돈 필요없어

치...



답했다.

나는 그래도 엄마가 그 돈 생기면 좋겠다

엄마도...







 
 
 

 

 

16화 

 

맹이 공원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팔짱을 끼고 앉아있다. 더웠는지 자켓은 벗어 무릎위에 접혀 올려저 있다. 옆에는 커다란 등산용 배낭이 놓여있다. 짙은 검은 썬글라스에 살랑거리는 치맛자락 그림자가 비쳤다.  

 

"저기 3D 바로바로 센터에서 나왔습니다." 

 

맹이 고개를 들자 맑은 눈동자를 한 정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맹은 팔짱을 풀고 일어났다. 그녀는 일어나는 맹의 덩치에 놀라 한걸음 물러났다. 맹은 들고있던 자켓에 팔을 끼우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남자분이 오실 줄 알았는데..."

 

"아~! 그러세요? 어쩌죠? 한번 확인해 볼까요? 전 저보고 가라고 해서..." 

 

맹은 자켓의 매무새를 바로하고 자신의 앞에 서있는 여대생을 위아래도 훑어내렸다. 정윤은 벤치위에 있는 커다란 등산용 배낭을 보며 물었다.

 

"오늘...전달하실 물건 있으시다고..."  

 

"지금...그런 차림으로는 힘들텐데..." 

 

맹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윤은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맹의 표정에 움츠러 들었지만 옷차림을 내려다보고 생긋 미소 지으며 맹을 올려봤다. 

 

"그런가요? 오늘 제가 알바 첫날이라서 그래요. 집이 요 근처니까 금새 갈아입을 수 있습니다. 신경쓰이시면 지금 갈아입고 올까요?" 

 

"아닙니다. 맡기도록 하죠. 저기 저 가방만 전달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좀 힘들겁니다. 가야할 곳이 만만치 않은 곳이라" 

 

정윤은 씩씩하게 걸어가 벤치에 올려져 있는 배낭을 들어 어깨에 훌쩍 올려 매고 거뜬하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오아~  좀 무겁긴 하네요. 하지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보단 통뼈라..." 

 

맹은 그런 그녀를 귀엽게 바라보며 쪽지를 내밀었다. 정윤은 쪽지를 받아들고 빤히 들여다 본다. 

 

"그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거기에서 어떤 분을 만나게 될겁니다. 누군지는 직감적으로 아시게 될겁니다. 그런 장소에서 만날 분은 그 분 뿐일테니까. 센터에서 페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정윤은 쪽지를 접어 핸드백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아~ 그건 의뢰자분이 주시는 대로 받으라고 했는데 30이하로는 받지 말라던데...히힛...그래도 그만큼이나 받아도 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말씀드렸듯이 첨이라..." 

 

맹은 쭈뼛거리는 정윤의 표정을 보며 말없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5만원짜리 두장과 수첩을 꺼내 건냈다. 

 

"이건 활동비 입니다. 일에 대한 페이는 거기 수첩에 계좌번호 적으세요 그쪽으로 송금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의사항은 가방은 그 분을 만나게 될때까지는 절대 열어보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만약 중도에 포기하게 되거나 전달에 실패하게 되면 그건 거기에 적힌 두번째 위치에 가져다 놓으시면 됩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임무완수 해 주길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꼭 완수하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윤은 맹의 수첩에 계좌번호를 적은 뒤 돌려주며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종종 걸음으로 걸어갔다. 맹은 그런 정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걸었다. 

 


"네...감사합니다. 이번건은 그 여대생에겐 비밀로 해 주십시요.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일 맡겨주시는거 잊지 마시구요. 네 약속했듯이 페이는 저희가 지불합니다. 그러니 비밀유지 동의 부분만 철저히 지켜주시면 됩니다. 네...네...그럼 이만" 

 

맹은 통화를 끊고 주차장을 향해 걸으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이쪽에서 출발했습니다. 네 공과 얘기된 시간과 맞추는데는 어려움이 없을거 같습니다." 

 

'그래 알았어 나도 그럼 슬슬 준비해야겠군...간만에 몸 좀 풀어야겠군. 병원으로 가면 내일쯤 준비하라고 전해 가서 지금 우리 상황도 좀 살펴주고' 

 

"네...알겠습니다."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는 허름한 여인숙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다. 고형사는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현장으로 다가갔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폴리스라인 앞에 서있던 경찰관에게 신분증을 꺼내들었다.

 

"사이버수사대 고준위경위입니다. 협조 연락 받고 왔습니다." 

 

고형사는 폴리스 라인을 익숙하게 들어올리며 여인숙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여인숙 방안에는 카메라를 들고 쓰러져 있는 남자 두명과 여자 한명의 시체와 흰색으로 사람의 형체가 그려진 부분을 찍느라 플레시가 연이어 터지고 있었다. 시체들의 신분증을 확인하던 형사가 고형사를 보고 손을 들어보였다. 고형사는 바닥에 표시된 것들을 비켜가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 왔어?" 

 

"네...오늘 남형사님은 재판 참관가셔서 제가 왔습니다. 자살 사건입니까?" 

 

"지금까지 정황은 그래 아직 유서는 발견하기 전이야. 보다시피 말끔해 타살 흔적은 없어 그리고 이 사람들 신분 확인 결과 사는 곳이 각자 다르고 나이대가 다들 다른걸 봐서는 자살을 위해 모인 사람인게 틀림없어"  

 

"그렇군요..." 

 

고형사는 형사가 넘겨준 봉투에 든 신분증들을 확인하며 다시 물었다.

 

"저를 부른 이유가..." 

 

"어 이거야 이거 좀 가져가서 확인해줘 증거등록은 해놨으니까. 여기 즐겨찾기 되어있는 사이트 중에 자살관련 카페가 몇개 있어 어느쪽이랑 연루되었는지 보고 연루되었든 아니든 수사 좀 부탁해 두군데는 벌써 닫았던데 운영자 찾을라면 고생 좀 하겠지만..." 

 

"네...알겠습니다. 그런데 한명은 어딨습니까? 살았습니까?" 

  

고형사가 노트북을 파우치에 넣고 일어나며 물었다. 같이 앉아있던 형사도 일어나며 끼고 있던 라텍스 장갑을 벗어 바지주머니에 넣고 쟈켓 주머니에 들어있던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으며 말했다. 

 

"음...응급처치하고 병원으로 옮겼어 지금쯤 자네 아버님 병원으로 갔을꺼야 여기서 옮길때 의식이 없었는데 지금 상황이 어떤지 연락은 안왔어 고형사가 가서 한번 확인 좀 해줘 우리과 경찰관 한명 있을거야 우선 신변확인 좀 해주고 노트북에 관련사항은 협조 좀 부탁해" 

 

"그런데 휴대폰은 안나왔습니까?" 

 

"아 그렇지 이봐 여기 휴대폰 좀 가져다 줘." 

 

옆에서 시체 수습을 위해 움직이던 경관이 고형사에게 휴대폰 4개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다들 짰는지 통화내역은 지워져 있어서 따로 의뢰해 놨으니까 통화기록은 따로 보내줄께. 두개가 스마트 폰이야 아마 확인해 볼게 있을거 같아" 

 

"네...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고형사는 폴리스 라인을 걷고 나와 입구에 서 있던 경찰관에게 가볍게 거수경례를 하고 차에 올랐다. 증거물 봉투들을 조수석에 올려놓고 시동을 걸기 위해 키를 꼽았다. 그때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공~ 어디야 이틀째 집에도 안들어오고 소식도 없고 애인 생긴거야? 나 버려진거야?" 

 

고형사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통화를 이어갔다. 

 

'음... 여행 좀 왔어... 미안 미리 얘기 못해서' 

 

"오늘 저녁은 들어오는 거야? 음...음...그래 알았어 그럼 근처 마트에서 만나자 장 좀 봐야해 냉장고가 텅 비었어... 음... 그래 그래 알았어 수고~" 

 

고형사는 전화를 끊고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응급실 입구에 들어서자 주변이 온통 정신없는 의사들의 움직임에 고형사는 잠시 서서 주변을 살폈다. 고형사의 눈에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강동서에서 나오신 분 맞으십니까? 공조수사하게 될 고준위경위입니다." 

 

응급실 침상 옆에 있던 경찰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네...저는 강도운경장입니다. 좀전에 위세척 끝냈지만 의식은 아직입니다. 담당 의사 말로는 생명유지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뇌손상에 대해서는 검사를 더 해봐야 할거 같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의식이 돌아와도 취조는 불가능 할 수도 있답니다." 

 

고형사는 이야기를 들으면 훑어 읽어내리던 서류를 돌려주며 주변을 돌아봤다. 정신없는 응급실에 현기증이 느껴졌다.

 

"수고했습니다. 계속 응급실에 있어야 하는겁니까? 중환자실로 이동은 할건지..." 

 

"가족과 연락중입니다. 하지만 연락이 잘 안되네요...여기엔 계속 있을 순 없으니 중환자실로 옮기게 될겁니다." 

 

"그럼 계속 수고 하십시요. 혹시 병실 옮기게 되면 연락주시구요." 

 

고형사는 경찰관에서 자신의 명함을 건네고 응급실에서 나와 원장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때 자신의 앞에 맹의 성큼거리며 걷는 뒷모습이 보였다. 고형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용히 따랐다. 원장실 앞에서서 문을 노크하는 맹은 안에서 기척이 나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와~ 안그래도 전화 기다리던 참이었어" 

 

맹은 원장실 안에 있는 쇼파에 허리를 세운 자세로 걸터 앉았다. 원장도 보던 서류를 덮어 정리하고 맹의 앞에 앉았다.

  

"95호 96호 준비 부탁드립니다. 오늘중으로 마무리가 될거 같습니다."  

 

"그런 얘긴 전화만 해도 되는데..." 

 

"지나가던 길이기도 했고 차와 공이 상황 좀 살펴 달라고 해서요. 때가 다가오니 슬슬 걱정스럽나 봅니다. 직접 확인하는건 아직도 두려운가 봅니다. 그럼 준비에는 문제 없는걸로 알고 저는 잠시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맹이 일어서자 원장은 일어나 인터폰을 울렸다. 

 

"최간호사 여기 맹 나가니까 모니터링 해드려" 

 

'네...원장님 전 701호에 있겠습니다' 

 

맹이 원장실 밖으로 나왔다. 원장실 밖에 서있던 고형사와 눈이 마주쳤다. 맹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고형사의 눈을 피하며 몸을 틀어 윗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고형사는 그런 맹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서있다. 원장이 열린 문틈으로 아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문을 활짝 열었다. 

 

"거기 서서 뭐하냐 들어올거 아니냐?"  

 

고형사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아버지를 보며 헛웃음을 웃어 보였다. 원장실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원장은 책상의자에 앉으며 좀전에 보던 서류를 다시 꺼내들었다.

 

"저 사람 누군데...병원에...아니 아버지와 함께 있는걸 자주 봅니다. 누굽...니까?' 

 

"으...음...글쎄...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이쪽 업계관련자야...네가 알아야 할 사람은 아니니까 신경 안써도 된다." 

 

평소와는 다른 딱딱한 말투의 대답에 고형사는 더욱 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응급실에 제가 수사 할 자살 환자가 들어왔습니다. 협조 부탁 드려요" 

 

"알았다. 너도 서류 챙겨서 원무과로 제출해라" 

 

"네...아! 아버지 그런데 이 병원에 지하 4층도 있었어요? 주차장도 3층까진데 얼마전에 보니 4층이 있더라구요" 

 

원장은 서류를 넘기던 손이 멈칫했지만 다시 자연스레 넘겼다.   

 

"병원사람 다 아는 걸 너는 이제야 안거냐? 하하...이 아버지 병원에 관심 좀 주지...의대 공부하고 병원일 도와 달라할때도 무심하더니 지금도 넌 너무 무심한거야. 이나마 이런 일 아니면 관심도 없었겠지? 그도 아니면 501호 환자 보호자 없었으면 내가 너 얼굴은 보고 살았겠나 싶다...안그러냐?" 

 

원장의 어설픈 큰 웃음소리에 고형사 역시고형사는 아버지의 당황한 모습을 보며 의심은 더욱 커졌지만 더 이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형사는 원장실에서 나와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창밖의 하늘이 어둑해져 있었다. 맞은편에서 나직히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에 수정이 눈에 들어왔지만 다가가지 않고 바라만 보다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처진 걸음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마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니 입구에 공이 기다렸다 자신을 보고 손을 흔들어보였다. 고형사는 자신의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들고 공에게 다가갔다. 

 

"왠 등산복? 여행했다더니 등산다녀온거야?" 

 

"어...간만에... 바빴나봐? 옷차림이 후줄근 하다...어째..."  

 

두 사람은 무빙워크에 나란히 올라서며 대화를 이어갔다. 고형사가 자신의 지갑에서 사야할 것들을 적은 목록을 공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한참이나 장을 못 봐서 살게 많다 밥 먼저 먹고 시작할까?" 

 

"안그래도 그러자 할려고 했는데 오늘 새벽에 밥 먹고 제대로 먹질 못했어" 

 

"뭘하고 다니더라도 끼니는 제때 챙기라니까 너 또 그러다 빈혈로 쓰러진다. 아버지 한테 나 혼나 우선 빈혈약 하나 먹자 가방에 들었지?" 

 

고형사는 공의 배낭에서 약병을 꺼내 알약 하나와 생수병을 건냈다. 

 

"고맙다. 곧 죽을거 같아도 난 아마 약 제때 못 챙겨 먹어 죽을지도 몰라"

 

 

오지우는 오래 된 아파트 단지의 낡은 놀이터 그네에 올라앉아 있다. 그의 움직임에 오래 된 그네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황량한 분위기의 아파트를 올려다 보고 있는 오대리의 무릎에 얹힌 서류가방 위에 사채광고 명함이 여러장 어지러이 올려져 있다. 들었던 고개를 떨구고 그 명함들을 한장 한장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던 오대리는 결심이라도 한 듯 입술을 혀로 한번 핥고 입술을 앙 다문다. 그리고 24시간 가대출가능이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천천히 번호를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대자 발신음이 울리고 금새 지나치리 만큼 명랑한 여직원의 음성이 쏟아졌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빠르고 친절한 대출 캐쉬캐....' 

 

오대리는 급히 종료 눌러버린다. 크게 한숨을 내어쉬고 가방 손잡이를 잡고 그네에서 벌떡 일어나자 가방 위에 있던 명함들을 모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신의 수치심을 묻어버리 듯 모래를 흐트려 명함들을 덮어버린 오대리는 아파트 단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의 손에 소주 한병이 들려있다.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아파트 현관을 열고 들어섰다. 센서등 아래 비친 오대리의 모습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복도 옆 작은 주방을 지나 거실겸 방에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불도 켜지 않은채 소주병을 따며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다. 

  

고개를 돌려 내다 본 커튼도 쳐저 있지 않은 베란다 밖의 풍경이 평화롭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술을 홀짝이며 창밖을 멍한 눈빛으로 흐리게 바라보던 오지우의 몸이 옆으로 스르륵 맥없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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