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개가 짖지 않는다 앞집 개가 짖지를 않는다
한번 짖기 시작하면 일 분 간격을 두고 두세 시간을
내리 짖던 녀석이 짖지를 않는다 손님 온 것도 아니고
도둑놈 온 것도 아닌데 무슨 외상(外傷)이 있어서가 아니면
그렇게 짖을 이유가 없는 놈이 설 쇠고 며칠 사무실을
나오지 않다가 나와보니 딱 짖지를 않는다 며칠 전
들른 내 친구가 저 녀석은 아무래도 동물병원 가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될 것 같다고 했었는데 정말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지 짖지를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간혹 짖기도 한다 짖기는 짖지만 한두 번
컹컹거리다가 딱 그치고 만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달라진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제 주인이 정신병원에
데리고 갔거나 아니면 제가 그토록 못 잊어하거나
아파하던 문제가 해결되었거나, 해결은 안 되었어도
제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었거나 어떻든 달라졌다
달라진 건 좋으나 나는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조금
편하기도 하지만 어딘가 불편하다 제가 한참 짖어
댈 때 내가 저를 많이 미워했기 때문이다 저렇게
짖자면 저는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아휴, 저놈의 개 어디 나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남들 괴로워하는 모습 보면 당연히
같이 힘들어야 할 텐데, 자꾸 미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미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졌으면, 아니
당장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문제는
그런 마음이 들고 나면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또 괴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워하는
것은 미워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저 개가 짖기 시작한다면 나는 녀석을
사정없이 미워하리라 혼신의 힘을 다해 미워하리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미워하리라 젖 먹던 힘을 다해
미워하리라 그리고 후회의 구렁텅이에서 주님, 나의
주님을 부르리라 그분은 나를 미워하지 않으리라
-<문학과 사회(27)>,2014.
*
"그러니까 미워하는 것은 미워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포함하는 것이다"
어쩜 이렇게 평이한 문체로 인간의 문제를 적확하게 꼬집을 수 있을까.
모순된 감정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사이사이에 놓인 그 모든 애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