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서 소설의 기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전쟁과 욕망일 것이다. 이는 거시적으로 패전과 항전이라는 바탕 위에 배신과 질투라는 인간존재의 가장 내밀한 부분들을 예리하게 스케치해간다. 다만 그 말로가 어떤 희망이나 가능성을 제시하기보다는 암울하고 퇴폐적인 시대상황 속에 매몰되는 군상이나 미래에 대해 냉소적인 전망을 내비친다는 점에서 나름의 한계를 띠고 있을 뿐이다.


    사람, 짐승, 귀신이라는 제목을 단 이 소설이 전하려는 메시지도 전쟁과 욕망에 관한 여러 변주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이는 훗날 <위성>이라는 장편의 사상적 바탕이나 추형雛形을 살펴볼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총 4개의 에피소드를 다루는 이 소설은 얼핏보면 전혀 다른 대상과 주제, 즉 하나님의 꿈, 고양이와 살롱의 문인들, 대문호의 영혼과 염라대왕, 여인과 유복자라는 각각의 사정과 類가 다른 존재들을 다루는 것 같지만 종국엔 하나의 인간문제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꿈>에서는 신이 자신의 고독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닮은 인간을 만들었고, 그를 통해 고독을 해소하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신의 고독을 빼닮은 인간 남녀 또한 각자 저마다의 고독자로 처해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양이>에서는 무능하고 나약한 당대의 중국 지식인의 모습을 살롱에서 일없이 지내는 고양이에 겹쳐 보여주는가 하면,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지적인 살롱의 여주인이 남편의 외도에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억압적 전통관이나 관계의 부조리성에 쉽게 길들여지는 모습을 고양이에 빗대어 풍자하기도 한다. <영감>이라는 이야기 속에서는 허울 속에 가려진 지식인의 변명과 문단의 병폐적 일면을 꼬집기도 하고, <기념>이라는 이야기에선 한세대의 우울과 그릇된 욕망이 단절되거나 극복되지 못한 채 오히려 다음세대로 전가, 지속된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하간, 신의 꿈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그 꿈이 낳은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다시 전쟁을 거치며 고양이처럼 변해버린 당대의 지식인군상을, 활력을 잃은 당대의 지식인의 모습을 다시 죽은 문호의 영혼으로, 당대 인간의 욕망과 좌절을 다시 반복해서 이어갈 유복자로 형상화하며, 인간이 지닌 근본적 한계와 던적스러움을 갈파한다.  


     *전종서의 글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가 그리는 주인공들의 내면심리가 무척 섬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드는 비유와 수사의 활용이 내게는 퍽 생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