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뒤늦게 국정감사를 보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다. 밤 늦도록 잠을 설치며 봐야했다. 불편한 감정들이 선을 넘어 분노로 삐죽삐죽 솟는다. 아니오라는 질문을 받아안을 수 없는 조직. 오로지 예스!예스!만이 있는 조직. 항공기 사고의 대표적인 유형의 하나로 권위주의를 든다. 부장과 부기장. 아니오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아니오를 감히 들을 수조차 없는 비행기는 늘 참사로 이어진다.


-1.1 


안타깝게도 행정부가 행정을 모르고 기관장은 책임과 권한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현장을 목격한 셈이다. 말맞추기는 물론 공무원들의 변신이 위의 장들이나 문화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듯하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부디 엉뚱한 곳으로 엉뚱한 피해를 주는 자살특공대가 아니길 바란다. 모든 것을 지우려는 칼춤처럼 보인다. 과학이라고 과학만 믿으라는 철지난 반복. 과학 곁에 붙은 하이픈 -과학- 이 가진 팔들이 보이지 않는가. 미래세대와 인류에게 대놓고 이렇게 해도 된다는 "지구에 묶인 자"들에게 상징적으로 물먹이는 날이자 분기점. 치욕의 날에 한 몫을 했으니 말이다.



0. 


일터 정례회의를 마치고 조금 일찍 나선다. 저 멀리 올라오고 있다는 태풍의 경로가 걸린다. 예민하다. 서문을 읽고 완독을 찜한 책이다. 


0.1

 사실 1장은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읽었다. 몸문화연구소 저작의 애독자이기고 한데, 넘 밀도가 떨어진다 싶다. 어떡하지. 읽어야 돼 말아야 돼. 긴장하지 마시라. 그 다음도 이 장을 포함하여 술술 읽히고 용어수준이나 사유전개 수준도 맞추어놓아서 일괄되게 읽을 수 있었다고.


0.2 모든 피조물의 존엄. 평평한 존엄론도 좋다. 법적 검토는 간략하지만 설득력이 있다 싶다.



1. 


인류에겐 공산당선언의 울림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유령의 출몰을 알리는 신호. 그 총성으로 인간은 접힌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좌파의 시각은 여기에서 출발하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 주요한 텍스트로 삼는 피터싱어의 '종차별주의'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이 마르크스에 못지 않은 절규라는 걸 눈치채는 좌파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2.


 라투르는 과속방지턱을 예로 들면서 높이와 넓이 속도 등등 법-어린이-자동차-문화-경제-기술 -등등 수많은 것이 연루되어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가 행위자란 개념으로 얘기하는 것은 환원주의가 낳은 병폐때문이다. 그 사유에서 풀려나오지 않으면 주위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진보 역시 참이라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는 족쇄에 메여서 이리 헤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래위 수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생태막으로 둘러쌓인 여기가 지구다.


3. 


지구공학 편에서도 이런 팔달린 사유를 적극적으로 펼쳐줘서 고맙다라는 느낌이다. 과학만능주의하는 신화에서 애써 나오려하지 않는다. 그 알은 얼마나 단단한지 깃발만 세우면 우르르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이 우리이기도 하다. 달나라에 태극기를 꽂자라니...이미 여기는 산불화염이 난무하는데 말이다.


4.


 이 책들도 소환해주어 감사드린다. 윤리-존재-인식론, 윤리존재인식론은 우리의 인간우선주의 종차별주의 사물객체주의에 젖어있어 그 선입견과 편견을 깨나가기가 무척 힘들다.  천동설론자와 지동설론자의 공유된 시간보다 더 길 수도 있다.  사회의 퇴행을 보거나 맥락이 더 없어지는 자들의 출현은 더 어렵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그토록 확신에 차 역사인식에 문제가 없다고 하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 자만감을 보는 것이 무척 불편하다.


5. 


전반적으로 적정한 분량에 주제들이 밀도있게 전개되어 읽는데 불편함이 없다. 특징적인 메시지나 SF흐름까지 짚어주어 읽고 싶

게 만든다.






0.3 선택하거나 하나 하나의 동선에 출렁거리는 슬픔과 아픔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은 '지구-사회적계급'이다. 새로운 인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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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914년(1915년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관하여>에서 신경증과 정신병의 차이를 다루고 있다.)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라는 제목을 달고 2장은 시작한다.  겨울눈밭에 늑대의 발자국 흔적. 이 있는 사진과 함께.


1. <<앙티오이디푸스>>에서 이 무의식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천 개의 고원>>이 만들어진 이유를 여기에 쓴 것이다. 그러니 가장 핵심적인 장이기도 하다.(물론 그는 반대할 것이다. 다 중요하다. 다 필요하다. 고무줄뭉치의 한 올을 당기면 그 긴장이 느껴진다. 어느 줄을 당기든 말이다.)


2. 프로이트는 환원주의자다. 모든 것을 거세로 몰아가는 자. 무의식을 열어버린 자이긴하지만 교묘하게 닫아버린 자이다. 


3.

발리바르를 비롯해서 알튀세르 사단?에는 <자본론>읽기 모임이 있었다. 그런 연유뿐만이 아니라 그 사유의 바탕에는 마르크스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라이히의 문제의식과 마찬가지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이 이론에 접목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봐야한다. 알튀세르는 궁금했다. 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똑같은 인간들이 재생산되는지 말이다. 그래서 그가 얻은 소결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울을 앓을 수밖

에 없다. 우울증, 신경증, 번아웃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의식이 만들어진다. 성과와 목표를 향해가는 눈옆을 가린 경주마의 비참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양산되는 우울의 무더기를 언급하지 않는다.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고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체 내팽겨쳐지고 있다. 그(녀)가 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의 무의식의 그물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증상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모호함이 시대를 관통한다.


4. 들뢰즈 가타리는 그런 연계 상에 있다. 이 책 곳곳에 그는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불러낸다. 이 책 <늑대인간>을 잘 읽어내야 한다. 그러면 절반은 온 것이다. '정신분석'이 아니라 '분열분석'이라고 하는 이유를 눈치챈다면 말이다.


5. 무의식은 생성되는 것이다. 이 점을 말하고 싶다 그들은. 그래서 무의식조차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던 것이다.

65 충분히 무리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바깥에, 아주 먼 곳에 존재하기. 버지니아 울프류의 가장자리에 있기, 또는 산책하기 ("나는 이것이다, 나는 저것이다라고 다시는 말하지 않으리").

67 무의식의 문제는 확실히 생식과는 아무 관련도 없으며 오히려 서식, 개체군과 관련된다. 그것은 땅이라는 충만한 몸체 위에서 일어나는 세계적 개체군의 문제이지 유기체적인 가족의 생식 문제는 아니다.

68 끊임없이 변화하는 저 나누어지지 않는 거리, 그 요소들이 매번 본성을 바꾸지 않고는 나누어지거나 변화되지 않는 저 거리. 다양체의 요소들이 갖고 있는 내포적 성격이자 그 요소들의 관계가 갖고 있는 내포적 성격이 아닐까? 이는 마치 속도와 온도가 속도들이나 온도들의 집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매번 본성상의 변화를 표시해주는 다른 속도들과 온도들 안에 감싸여 있거나 다른 속도들과 온도들을 감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양체를 측정하는 원리는 다양체 내에서 작용하는 힘들 속에서, 다양체를 점유하는 물리 현상들 속에 있으며, 정확히 말해 내부에서 다양체를 구성하며 또 그때마다 가변적이고 질적으로 판이한 흐름들로 나뉘는 리비도 속에 있다.

69 <늑대>, 그것은 무리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영으로부터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 매 순간 각각의 거리들은 분해할 수 없다 - 어떤 순간에 특정한 형태로 포착된 다양체이다. 영, 그것은 늑대 인간의 기관 없는 몸체이다.

69 무의식이 부정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무의식에는 부정적인 것이 전혀 없으며 영점에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무한한 움직임만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점은 결코 결핍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받침대와 앞잡이로서의 충만한 몸체의 긍정성을 표현한다.

75 어떤 군인은 늑대가 되고 어떤 군인은 개가 된다. 두 가지 다양체 또는 두 가지 기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하나의 동일한 기계적 배치물, 다시 말해 "복합체(=콤플렉스)"에 대응하는 언표들의 집합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정신분석은 우리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오이디푸스, 오로지 오이디푸스. 왜냐하면 정신분석은 아무 말도,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은 모든 것을, 즉 군중과 무리를, 몰적 기계와 분자적 기계를, 모든 종류의 다양체를 으깨어 납작하게 만든다.

79 먹이라는 오이디푸스적 장치, 먹기 위해 짐승을 죽이기, 또는 썩은 고기를 처리하기 위해 먹어치우기. 재칼들은 문제를 적절히 제기한다. 그것은 거세의 문제가 아니라 "청결"의 문제이며, 욕망-사막을 시험하는 문제다. 어느 쪽이 이길까? 군중의 영토성이냐 무리의 탈영토화냐? 리비도는 극이 상연되는 기관 없는 몸체에 다름 아닌 사막 전체를 적시고 있는데.

80 개인적 언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전혀 없다. 모든 언표는 기계적 배치물, 다시 말해 언표행위를 하는 집단적 행위자의 산물이다.("집단적 행위자"란 말은 사람들이나 사회가 아니라 다양체를 의미한다.) 고유명은 개인을 지칭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 개인이 자신의 진정한 고유명을 얻는 것은, 가장 엄격한 몰개성화가 실행되고 난 후에 개인을 관통해서 지나가는 다양체들에 개인이 열릴 때이다. 고유명은 다양체에 대한 순간적 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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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여러 일정이 겹친다. 중학교 가는 마지막 계단길.(이사 온 곳에서 이리 가까운 줄 몰랐다.) 어머니와 산책도중 발견하다나니 여러 느낌들이 올라온다. 하루의 밤. 어머니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내려오는 길 대부분이 매진이다.(그 와중에 누가 부르기에 돌아섰더니 논산에서 올라오는 지인이다.) 버스를 예매하고 취소하고 기차를 다시 탈 수 있어 다행이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그럴 수 있다. 제법 편안하게 다음 일정으로 합류하다.


1. 대전 미술관, 머물기로 한 초정행궁 부근의 '운보의 집'을 잠시 들르다. 그리고 예술공장두레 주관 마당극도 관람하다.(제19회 농촌우수마당극큰잔치)


 2. 백팩에 넣은 책들이 제법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데로 견딜만 하다. (아무래도 라이딩의 힘인 듯.) 올라가는 길에는 기차 안에서 랭보가 손에 잡혔고, 불암산 그늘이 좋은 집에서는 <<인류세의 윤리>> 개요가 잡힌다. 대전으로 내려오는 길엔 <<생물학의 쓸모>>가 남은 동선에서 <<과학이 우리를 구원한다면>>이 손에 맴돌아 버린다.




3. 2박 3일이 2박5일처럼 길게 느껴진다. 많은 시간 책담과 삶담을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각들이 추스려진다. 두 책이야기를 안주삼아 전하고 나누다보니, 초연을 한 <산막골돌각시> 마당극의 늑대인간하고 겹쳐 놀란다.  의상 예술가의 <외줄타기 광대>의 옷만들기 이야기를 하다가 외줄타는 곡예사의 단편소설 얘기로 번졌고, 갇혀있는 삶들에 대한 나누기로 이어진다.


4. 청원은 무척 크고 넓다. 상당산성 휴양림에서 일박은 호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슬란드 여행객들의 놀라움과 경험을 식기 전에 맛보는 기분이기도 하다. 책여행한 경험을 찾아내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결국 찾아내었다.



5.

가만히 있으면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 그 방법은 더 기묘하고 짜릿하기도 하다. 몇주전 다녀온 피렌체는 다른 여행객들이 겪지 못하는 날 것들을 오히려 많이 얻었을 것이다. 벽에 붙여둔 지명을 자꾸 보게 된 일도 그렇고,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정말 다르다. 책여행을 하면서 꼭 가고 싶다는. 인구 30만. 갓난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는. 지인들 입여행에 그만 부러워졌다.


6. 맥락이 없는 자들의 대거 출현을 저지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스토리와 맥락을 짚어주는 자들의 출현이다. 뭐라도 하자. 시간이라는 외줄을 걷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좁고 비좁은 외줄에서 충분히 곡예할 수 있도록 그 길을 넓히고 뛰어노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


-1. 벗이 빌려간 책이 다른 이에게 옮겨진다는 소식이 왔다. 한 권은 정말 잘 봤고, 한 권은 어려웠지만 다른 이가 좋아할 것 같아 건넨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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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전시 관련 약속이 있어,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책을 접했다. 

마침 이 책이 저자가 바다 속 첫 불꽃놀이, 생명발광을 경험하는 대목이라 끊어버리기는 아쉽지만, 미루고 읽기 시작이다. 오호라 몰입하기도 괜찮고 문제의식도 좋다. 잘 읽힌다. 퇴근 뒤가 걱정이다. 아무래도 식사를 하면 마무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따듯한 커피 한잔에 브레드하니로 독서를 이어가기로 한다.  밖은 천둥이 치고 요란스럽게 비가 오다가 조금 잦아들었다. 


1. 진한 커피에 독서등을 켜고 한 통화의 전화만 받고 몇 시간이 지나 희망의 마무리 멘트를 접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뒤 무력함이 짓누르는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 이 책을 시작했다는 저자는 정답을 가지고 한 편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역사의 진폭 사이에서 나라의 상황에 따라 지금에 지치지 않으면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어제는 일본 후쿠시마 폐원전의 오염수를 방류한 날이기도 하다. 


2.

산책자이자 관찰자로서 저자는 베를린과 독일을 세심하게 살핀다. 그리고 그 눈은 매섭고 깊다. 그의 그물에는 역사의 씨실과 날실이 신경망처럼 늘 움직이고 있기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그는 도시의 문제을 상품이기때문이라 한다.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첫시도로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출발점을 마르크스와 칼폴라니로 잡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사서 파는 것이 아니라 살 곳이라고, 살아가야 하는 곳, 어울려 삶을 나누는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도 자본의 원심력이 작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세계적인 증상이자 악화로 치닫는다. 그래서 토지와 노동을 사회에서 발라낸 사회가 제정신이냐는 폴라니의 사유를 가져온다. 


3.

 


그는 르페브르를 소환한다. '도시에 대한 권리'가 대의 민주주의나 제도적 절차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르페브르의 권리는 사회적 삶의 급진적 전환. 도시공간의 생산에 공헌하는 모든 결정으로 확대한다고 하며 그 사례를 일일이 제시한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란 답변이기도 하다.


4. 저자는 지금의 우리 현실인식과 맹점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내 집 장만 이데올로기에 포획돼 집주인되기 경쟁을 하는 동안 주택의 탈상품화나 주택사회화를 위한 투쟁은 방기됐다. 151

"주택을 상품으로 보는 논리에 대한 비판정신을  한국의 중간계급과 노동 계급이 결여하고 있고 내 집에 갇힌 사회의 대중은 생존과 투기 사이에서 각자도생하며, 소유권에 대한 진지한 이의제기를 포기했다. 155 "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욕망을 지고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우리는 불평등 원인에 대한 많은 객관적인 연구와 논의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며, 불평등의 문제를 함께 풀어 가는 것보다 개인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해결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하지 못한다. 156


5. 독일 베를린의 문제 역시 150년 된 문제이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라 한다. 압축화된 지금 여기에 대한 시야를 점검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기에, 이 책은 여러모로 분기점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듣기도 싫고 아무 것도 접하기 싫은 지금,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그들은 더욱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지금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움직임으로 우리의 몸도 트였으면 좋겠다. 그들의 설레발을 얼마나 더 지켜볼 것인가. 우리도 또 다른 결의 도시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좀더 다른 삶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절망에 굴하지 않고 경험과 사유를 책으로 풀어낸 그의 작품에 경의를 표한다. 


-1 앙리 르페브르 <<도시에 대한 권리>>란 책은 왜 없는 걸까. 읽는 내내 리차드 세넷 책 생각이 많이 났다.

12 도시가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의 독점적, 독재적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접근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일은 한 공동체를 사회적으로 통합하고, 민주주의적으로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14 정말 다양한 글자 폰트와 디자인의 역 간판.

17 이 거리를 걷다 보면, 베를린, 아니 독일 전역의 그 어디 보다도 많은, ‘걸림돌‘이라는 이름의 기림 돌을 만나게 된다. 독문학자 김누리는 이 슈톨퍼슈타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림돌‘이라고 표현했다.

25 어느 도시가 스스로를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하면서 도시의 상품화에 저항한다면, 그 도시는 아직 섹시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28 1920년대 만들어진 집합 주택 단지 중 여섯 개가 2008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됐다. 가난에서 발생하는 이웃 간 갈등과 분쟁을 겪으면서도 중정에 모여 함께 놀이하고, 토론하고 투쟁해 나갔던 주민들의 사회적 삶은 때로는 ‘공화국의 적‘에 맞서 함께 총을 드는 공동체로까지 발전했다.

59 초단기 임차인인 관광객이 들어가 사는 일이 일상이 될 때 원주민에게 이것은 저주가 된다. 실효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을 위시해 유럽의 여러 도시가 에어비앤비를 규제하는 법률을 서둘러 마련한 것은 매력적인 도시들이 직면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2023년에는 피렌체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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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비가 온다. 일어나보니 밤새 내린 모양이다. 안전 안내 문자도 어김없이 왔다( 스스로 긴급에 대한 기준을 정한 것인지조차 의문스럽지만). 책읽기가 길어져 새로운, 온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1. 완독. 시간을 보니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제법 진도가 빠르다고 여겼는데  카페, 맥주집, 음식점, 회식 뒤 강독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천 개의 고원>> 마지막이 1000페이지다. 이 사람들. 이렇게 맞추려니 글자는 작고 줄간간격도 조밀했지 싶다.


2.

 최근에 다시 불러낸 들뢰즈 읽기들이다. 무척 흥미로웠다. 원전을 읽을 때도 되었다는 느낌. <<안티 오이디푸스>>는 들뢰즈가 한참 유행이던 스무해전 쯤 사두고 다시 읽으니 읽었던 밑줄이 다시 올라왔다. 들뢰즈 안의 다른 저자들에 대한 앎이 부족한 상태가 여실히 보인다 싶었다.


3. 읽는 와중에 느꼈지만 맑스 자본론 원전을 읽는 느낌이었다. 해설서가 아니라

각주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절박함이나 전하고 싶은 간절함까지 보이는 듯하다. 읽는 내내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포괄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서문에 언급하듯이 정신분석이 아니라 분열분석, 무의식을 생산해낸다는 관점이 일관되면서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4. 어제는 마지막장 결론. 구체적인 규칙들과 추상적인 기계들을 반주를 겸해서 읽다. 정치-경제-사회-문학-철학-과학-음악-예술-역사-글쓰기-혁명까지 그 화려한  꼬치안주는 절절한 맛이다. 그 동안 만났던 저자들을 따로따로 하나씩 불러내는 맛.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맛.


5. 연삶술표(주기율표). 지도 한장, 함=앎=삶의 보물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읽어야할 저자들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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