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기이한 풍경이 역사를 바꾸었다 기이한 풍경이 오래 나의 정신을 점령했다 기이한 것들이 자라나 손발이 되었다 기이하고 기이한 풍경이 우리를 신비롭게 했다 거기서 우리는 문득 태어났다 (기이한 풍경들)

저렇게 많은 풍경의 독이 네 몸에 중금속처럼 쌓여 있다(풍경의 해부)
기차는 자꾸 터널을 지난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수십 개의 내 얼굴을 바라본다/창밖엔 규정되지 않은 풍경들이 줄지어 서 있다.(터널)


군말 1. 기억의 행성에서 시인은 풍경을 중금속처럼 쌓여있는 독이라든가, 터널에 비친 기이한 자신의 낯설은 모습들을 보며 풍경으로 묘사한다. 이번 시집에도 어김없이 그 연장의 사유가 이어지는 듯싶다. 그 속에는 무엇인가 스스로 탈피시키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십 개의 내 얼굴...다른 풍경과 달라지는 모습으로 생각매듭이 자라는 것이다.


나의 삶을 살다가 또 다른 나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은 치밀한 환상이 필요한 일/내가 죽기 전에 다른 나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일은 정교한 시간 배치가 필요한 일//오늘도 내 속에 적절히 숨어서 내가 ㅇㅏ닐 가능성을 엄밀하게 엿본다 (나의 다른 이름들)


군말 2. 몇몇 시인들에게 보이는 ‘다른 나‘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 곁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과 삶. 죽음을 가정한다는 것이 삶을 끌어내는 견인차이지만, 그렇게 이분법으로 가르게 되면, 발라낸 개인만이 존재하게 된다. 하이데거 식으로 ‘세계-안(내)-존재’이기도 하지만, 사유는 거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존재로서 개인에 멈춘다는 이야기다. 정작 ‘발라낸 나‘는 말하는 존재이고 끊임없이 너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이다. 나는 나로서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과 삶이라는 극단의 이분법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비교해보면 현실보다 건강한 물음을 던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형용모순이다. 좀더 생각과 사유를 확장해보자면 죽음과 삶의 휴전선을 무너뜨려야 한다. 나 속에 끊임없이 나-너가 있는 것처럼, 삶속에 죽음이 스며든 것이 좀더 현실을 냉정하고 현실감있게 보는 것이다. 시인의 말을 덧붙이자면, 풍경이 필요하고 치밀한 환상이 필요하고, 정교한 시간 ㅂㅐ치가 필요한 일이다. 풍경의 독이 스미는 것을 즐겨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침묵지대는 툰트라지대처럼 추운가/낮게 가라앉은 빛들이 들끓는가/침묵은 규정될 수 있는가(침묵지대)


군말 3. 삶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충만은 즐겁게도 고독으로 채워진다 한다. 몽테뉴와 방향을 달리한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란 마지막 저서에서 그 기쁨을 노래한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는 노년, 그는 자신의 늙음을 한탄한다. 그러나 더 나이가 들면서 열정이 불꽃처럼 다시 샘솟는 것을 느껴 식물에 대한 모든 것에 빠져지내게 된다. 의무감에서 해방되어 오로지 그 자체에 집중할 때, 그 고요에서 오는 충일감을 찬양한다. 그 지대를 거닐어 보지 못한 자 고독을 논하지 말자랄까. 시인의 건강에서 연유한 산사 생활이든, 개인의 여건에서 상황은 각기 다를지라도 꽃의 고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 고독을 잃어버린 사람이자, 고독이 드리운 사랑의 그림자도 ㅇㅏ직 밟아보지 못해 낯선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토록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조금 속일 필요가 있었던 것, 그는 노란 색을 완전히 장악했던 걸까 노란색의 심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압생트가 ㅇㅏ니라 고독과 광기와 셈세함과 난폭함이 고루 필요했다. (압생트)

늘 걷던 길이 햇빛 때문에 달라 보이는 시간, 봄볕에 발을 헛디딥니다 햇빛 때문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달라지다니요 꽃과 나무와 마음을 변화시키는 봄볕에 하릴없이 연편누독만 더합니다(봄의 묵서)

그저 감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곳의 멈추었다 미끄러지는 모든 시간들을/순간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순간이 아무것도 아닌, 기이하고 아름답고 무서운 그런 풍경을(풍경의 귀환)

흰 꽃과 분홍을 마주 피워 올리며 나의 봄을 엿보려는 저 천리향의 미열은 봄눈에 좀 가라앉으려는지(천리향을 엿보다)

오늘 나는 와편의 좋은 습득자, 말라 검게 타 버린 묵은 매화 보고 돌아온 갈라진 마음을 수습하였다/습득으로 뜻하지 않게 수습까지 하게 된 참 장한 사연을 이러하다/오늘 수습된 마음을 습득하였다.(습득자)

군말 4. 시인의 오감이 느껴지는가, 소리를 음각하거나 양각하여 저기에 걸어놓는 모습이 보이는가 , 그리고 나의 다른 이름을 가진 풍경들...


다른 악기도 아니 루트를 연주하고 있나요//누군가에게 루트, 라고 말해/그의 심장을 터뜨리기 위해 (그 악기의 이름은)
물이 문을 막고 있다/물을 꺾어 버리려면 문을 확 열어야 한다/물을 물리치려면 물을 들여놓아야 한다/지붕의 붉은 색이 더 깊어졌다.(물에 갇힌 사람)
당신은 잘 지냅니다/복사꽃이 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 봄날이 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아슬아슬 잘 지냅니다(봄, 양화소록)
당신의 소식이 더 이상 오지 않는 봄이 온다 해도 내게는 오래 간직한 낡은 마음이 있소 그것으로 족하오 낡은 마음은 봄에 다시 새로운 마음이 되오(구름의 서쪽)

부러진 뼈에 붉은 꽃이 얹혀 있다//붉은 꽃은 부러진 뼈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다(부러진 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회는 이야기를 하려는 열망이다/이야기하는 이는 물 긷는 장치에 묶인 낙타처럼 계속 원을 그리고 돌면서 부지런하게 비극을 길어 올리고, 매번 다시 이야기할 때마다 그 때의 감정도 되살아난다. 서사가 없었더라면 희미해졌을 감정이 생생하게 유지되고, 과거에 있었던 일과 거의 관련이 없고 지금과는 더욱더 관련이 없는 감정이 서사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밑줄은 감정의 생성때문에 긋다. 이야기가 감정을 되살리고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이다. 새로운 서사는 그렇게 새로운 감정을 융기하게 하고 번지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통찰과 맞닿아 있다면 시간과 속도를 그리 걱정할 일이 못될 것 같다.) 39

자아라는 것 역시 만들어지는 것, 당신의 삶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자, 모든 이로 하여금 예술가가 되게 하는 어떤 작업이다. 늘 무언가 되어 가는 이 끝없는 과정은 당신이 종말을 맞이할 때 비로소 끝나며, 심지어 그 후에도 그 과정의 결과는 계속 살아남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아라는 작은 우주와 그 자아가 반향을 일으키는 더 큰 세계의 작은 신이 된다. (몽테뉴는 ‘내 과제는 내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직업이며 유일한 소명이다‘라고 하였다. 예술에서도 최고의 예술은 자기 보존의 예술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85

작가의 재능이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독자이며, 책 속에서, 책을 가로지르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또한 다른 삶의 머릿 속에서, ㅁㅐ우 친밀하지만, 지극히 외롭기도 한 그 행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한 시인은 ‘고독이 발바닥 굳은 살처럼 ㄷㅏ져졌다/아프지 않게 생의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외로움이 밖으로 향하고 있다면 고독은 안으로 아래로 향한다. 중심과 관련된 행위인 것이다. 외로움은 끊임없이 부여잡고자 하는 구심성을 ㄱㅏ진 욕망이지만 고독은 가득차오르는 순간 밖으로 향하는 원심성으로 번진다.) 96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능력보다 침묵하는 능력을 가졌으면 삶이 훨씬 더 윤택해졌을 것이라고 한다. 침묵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로 글쓰기는 권장할 만하다. 결과가 아니라 아직 말이 되지 않는 나의 사유의 근육을 키우는 일만으로도 고독은 빛이 ㄴㅏ는 일이고, 글쓰기라는 행위자체가 현실을 거스르는 의미있는 일이다.) 100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탄생한다. ( 약한연결의 일본작가는 SNS의 성격이 같은 부류의 같은 사람들만의 깊이를 추구하는 강한연결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관점과 다른 생각을 갖게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자신을 ㅂㅏ꾸는 것은 사소하고 다른 시공간을 통한 약한 연결들이 자신을 침식하고 돌아보게 만든다고 한다. 삶이라는 것이 ㄱㅖ획적이고 목적지향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자유이겠지만, 스스로를 작품으로 만들기에는 너무도 협소한 고정관념일 것이다. 우연한 일들로 우리는 바뀌어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106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나병과 고통)/ 당사자를 당신 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통을 당신의 몸이나 가슴, 혹은 머리에 새기고, 그다음엔 ㅁㅏ치 그 고통이 자신의 것인 양 반응한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이러한 동일시는 ㅇㅐ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51, 158 ( 한센병에 대한 통찰이 이 책 가운데 가장 끌리기도 하였는데, 혼자 궁금해하던 것 가운데 사람들이 정치적 참여를 하는 과정은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인식이 전제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이 숙성된 뒤에서나 있을 수 있다는 진단때문에 이 대목을 더 ㅅㅐ기게 된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의 맹점을 인식하되, 자신을 벗어나거나 구조를 의문시하지 않는 경우도 ㄷㅐ부분이다. 인식은 나아가지 못하고 맴돈다. 그런 ㅅㅏ람들이 안타깝게도 대부분이다. 문제를 인식하기에 성숙하다고 보아야 ㅎㅏ지만, 이면을 살피려고 ㅎㅏ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다. 전체로 확장하려하지 않고 보고싶은 것만 보게되는 이분법의 아류에 머무는 인식은 ㅇㅣ렇게 따끔한 사유 속에 성숙으로 나아갔으면 싶다.)

정신의 무감각 – 스스로 냉담해짐으로써 살아남으려는 전략. 이것은 “비인간화”의 한 측면이자 실패한 복구과정이다. 이런 무감각은 자아의 경계를 수축시키는 것이다. 반면에 감정이입은 그 경계를 확장한다. 161 (얼마나 많은 냉담이 지금여기 공존하는가. 끊임없이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벌레취급하는 그들의 정신승리를 목도하는 것은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시간에 무감각하며 자신만 옳다는 반지성주의의 표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것조차 과분한 일인지도 모른다.)

10-20년 전부터 화가들의 관심은 대상에서 과정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당연한 결과로 빛의 예술, 동작의 예술, 체제에 ㄷㅐ한 간섭의 예술, 행동과 지각을 자극하는 예술이 등장했다. 나의 친구 루시는 이 변화를 ‘미술 대상의 비실물화‘라고 칭했다. 283

감정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정으로 타인의 현실적 존재를 알아보는 일이며, 바로 이것이 감정이입을 탄생시키는 상상적 도약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들어가 느끼다 286 ( 한 장소에 지나치게 머무르면 자신 조차 제대로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관성을 갖고 보고싶은 것만 보게 만든다. 그래서 늘 여기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시공간의 이동이 그러하며 일박의 공간이동은 미처 보지 못했던 관계들을 헤아리게 만든다. ‘관성의 착각‘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고정관계에 우리는 중독되어 있다. 그래서 스스로, 외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을 밀어내는 연습들이 필요하다. 주기를 갖고...)

우리는 정상적인 것과 미친 것, 좋은 것과 파괴적인 것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그 사이에 마치 뚜렷한 경계가 있다는 듯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서로를 취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 덕분에 즐거움을 얻고,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고 악몽을 꾼다. 302 (이분법은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이래로 버리지 않는 인식법이다. 여전히 그 방법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지식체계를 구성해나간다. 하지만 2의 N승만큼 봐야하는 것들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전체의 절반의 절반은 횟수를 거듭하면서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사유를 ㄱㅓ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전체를 향해서....또 ㅎㅏ나는 총체를 가정하면서 ㄴㅐ려와야할 것이다. 여전히 흑백이 횡행하는 세상이기에 말이다.)

볕뉘.

0. 고독에 대한 시리즈 가운데 한권을 주말에 읽다. 맨스플레인에 대한 선입견때문이었을까, 선입견과 달리 수려한 글쓰기와 깊이에 매료되어 몰입하였다. 돌아오는 길, [어둠 속의 희망]도 구해 읽었는데, 십여년의 시차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하고싶은 이야기를 이렇게 작품으로 풀어내는 모습이 놀랍다.

1. 이야기의 힘, 고독, 글쓰기의 힘, 그리고 연대에 대한 부제도 잘 어울린다. 정작 사이글을 읽을 때는 딴 생각이 난다. 그래서 붙잡아 두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낌말들 : 안과밖, 구심성과 원심성, 욕구-욕망과 사랑, 기쁨-슬픔-욕망, 보이지 않는 것(숨은 것)을 다루는 이야기와 노출시키고 보여주는 이야기, 침묵할 수 있는 능력과 말할 수 있는 능력, 네트워크-접속(연결)과 관계, 굳건함과 관대함, 능동과 수동, 자유와 예속

1. ‘현대의 우울‘을 말한 바우만은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염두에 둔다. 유행이나 패션, 화장 등등 자본주의가 발빠른 외양을 띠게 되는 19세기 중반, 몸을 극한까지 밀어부쳐, 시대를 안은 그는 우울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고독을 쓸 수 있는 자였다. 그리고 그 자양분을 오로지 예술로 완성하고자 하였다.(보들레르 파리의 우울에서) 세기반이 지난 지금, 파리의 모습은 여전히 재림하여 날카로운 쾌락과 고통을 변주중이다. 살림살이는 여전히 반복되며, 닫힌 시스템은 삶과 사람들의 일상을 위태롭게 복제해낸다. 우리는 외줄을 타고 간다. 두 번 살 수 없어 이리 가야한다.

2. B 가 말한 타인이 없다를 느끼는 ‘외로움‘과 혼자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고독‘. 서로 다른 곳을 손짓하는 손끝. 소비만 있고 사유는 찾아보기 힘든 곳. 살아지기만 할 뿐 살아가기는 어려운 곳. 그 곳에서 외로움은 끊임없이 무엇을 끌어당겨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구심성이다. 욕망과 닮아있다. 반면고독은 제법 멀리가고자 한다. 사랑과 닮아간다. 사랑은 세상에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것에 관한 것이다. 사랑하는 ‘나‘는 조금씩 세상에 옮겨 심어진다. 욕망은 끊임없이 소비를 원한다면 사랑은 소유를 원한다. 욕망의 충족은 대상의 소멸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랑은 대상을 자기 것으로 하면서 커지고, 오래 지속될수록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욕망이 자기 파괴적이라면 사랑은 자기 영속적이다.(바우만의 리퀴드러브에서) 외로움이 초조와 불안에 가깝다면, 고독은 굳건함, 그리고 사랑과 섞이는 점이지대는 관대함과 너그러움이라는 정서가 배여있는 것은 아닐까. 외로움이 소비와 짝이라면 고독이나 사랑은 만들어 나아가기와 단짝은 아닐까.

3. S가 말한 ‘고독은 어떤 색깔일까. 갈색이어야만 할까.‘ 연민과 사랑을 슬며시 끼워넣는다면 어쩌면 슬픔에서 기쁨으로가는 중은 아닐까. 기쁨으로 인한 욕망이 슬픔으로 연한 욕망보다 강하고 짜릿하다면, 고독은 연갈색에서 노랑으로 그리고 분홍사이 쯤 어디를 거닐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조용미 기억의 행성에서)

4. 우리는 D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거나 울림을 얻으면, 그 이야기는 우리의 본질적인 일부가 되거나 심지어 그 이야기의 후예자나 후계자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 읽은 이야기의 혈류가 그 누군가가 살아온 이야기의 혈류와 만나는 것 같지 않은가, 같이 읽은 책은 우리의 공통 조상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고독의 먼사촌이 사랑의 먼사촌으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존버거 벤투의 스케치북에서) D가 말한 ‘불확실성을 가질 수 있는 소극적 능력‘만이 아니라 작은 시간들을 그러모아 손에서 손으로,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은밀하게 전해지는 희망의 불씨같은 것은 아닐까

5. ‘함께 글쓰기‘는 저항행위라고 한다. 미래가 무엇을 품고 있든 상관없이, 지금 이순간을 지키기위해서 강요된 침묵으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것들과 함께 그 순간은 지나가겠지만 지울 수 없는 가치를 얻는다. 이것은 현재의 아주 ‘사소한‘ 구원이다. 이 ‘사소한‘ 형용사를 안고 어떻게 시간을 다시 살아갈 것인가. (벤투의 스케치북에서) 고독의 시간은 이렇게 사랑의 그림자로 다가와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사실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족. 데카르트는 영혼과 몸을 격리시키고, 학문을 원심분리하여, 분리된 몸과 영혼, 꿈 사이 최종소비의 즙으로 ‘나‘를 가득채우시도다. ‘악마의 맷돌(시장이 아니라 사유)‘ 창시자인 데카르트에게 온전한 사유의 구할을 빼앗겼다. 우리 사유의 구제를 위해 신체로부터 정서, 영혼, 신을 이어붙여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거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시작이다. *벤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소리와 색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가을밤)
마른 연못에 물이 들어차고 연못에 벚나무와 느티나무의 검은 가지와 잎과 흐린 하늘 몇 쪽과 빗방울들이 만드는 둥근 징소리의 무늬들 가득하다/비 오는 날 숲의 모든 소리는 물소리 뒤에 숨는다.(소리의 거처)
고요하다와 쟁쟁하다/소리에도 빛과 어둠이 있다는 걸, 그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물소리는 몸의 실핏줄을 통과해 다른 음색과 리듬으로 미묘하게 바뀐다(물소리에 관한 소고)
토마토의 속이 붉은 속이 미세하게/나뭇잎처럼 흘러내린다/차가운 심장이 파랗게 엎드리고 있는/토마코는 싱싱하다/푸른 씨를 가득 물고 조용히 뛰고 있다....///우듬지의 나뭇잎들이 꺾일 듯 휘어진다/수만 결의 바람이 뒤집히며 일제히 파닥인다/비스듬히 썰린 채 흘러내리는 과육들,/토마토는 부드럽게 상한다(오후의 세계)
초록의 여러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서 몸은 느리게 회복되었고 탐구가 게을러지면 다시 아팠다/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꺼내어도 새로운 다른 초록이 나오는//눈을 감고 색의 채도나 명도가 아닌 초록의 극세한 소리로 분별해야 한다는 것(초록을 말하다)
보라빛 꽃들, 삶의 바깥으로 한번 슬쩍 나가보라고 권하는 보랏빛 꽃들이 사방 천지에 가득한 한여름 숲(여름 숲)
모든 상처는 왜 내상이 되고 마는 걸까 붉은색과 검은색의 심연이 죽음이거나 비애인 것은 얼룩 때문이다//커다란 얼룩 때문에 내 몸은 천천히 어두워지고 있다/나도 한때 다른 색의 상처를 가졌던 적이 있다 (얼룩)
오랜 격정으로 숲이 대낮에도 어둠을 불러들이곤 했다는 걸 당신은 알지 못하리라//어둠으로 회오리치는 붉은 숲은,(어두워지는 숲)
그들의 이마를 어루만지니 열꽃이 살며시 번졌습니다.//저 고요한 분홍이, 숲의 물소리를 낮추고 있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그 분홍빛 아래서 당신은 또 한나절 나를 견뎠겠습니다.(분홍을 기리다)

2.

(천장을 바라보는 자는)내가 보았던 것은 하늘의 우물이라고 말할 수밖에//천장을 보며 보냈던 시간들은 우물이 말라가는 시간과 같아

3. 몸

초록의 여러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서 몸은 느리게 회복되었고(초록을 말하다)
내 몸속 세포의 흐름이 저 물소리의 우주적 운율과 다르지 않아 또 몸에 귀 기울여야겠구나/이젠 몸을 떠나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있겠나 묻지 않는다(물소리에 관한 소고)
이 시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오랜 철학적 물음에 마침내 해답을 얻는다//이곳의 원인은 저곳에 있다는 새로운 이론은 하루가 지나자 낡아버리고//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에 대한 참고 문헌이 완성디고 있다는 느낌이//몸에 대한 편견 없이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는 물음은 너무 오래되었으므로(어딘가 다른 곳에서)
너에게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가지 않으려고/헛되이 나는, 이 먼 곳까지 왔다(헛되이 나는)
저렇게 많은 풍경이 너를 거쳤다/저렇게 많은 풍경의 독이/네 몸에 중금속처럼 쌓여 있다(풍경의 해부)
몸과 마음이 모퉁이를 세게 돌다 부딪쳐 머리가 깨어지는 사고가 난 자리를 잘 살펴보세요/오늘도 포근하고 단정한 잠자리와 슬픔이 소량 필요합니다(송과선, 잠)
수식득격, 란이 아닌 사람의 어떤 마음도 이와 같다 할 수 있을까 야윌수록 높아지고 깊어지는 무엇이 있을까격//걷고 또 걷고 누르고 누르면 독필이 된다 (야위다)
욕망을 삶의 방식으로 치환하고/공을 색의 방식으로 변환한다/맹목의 감각으로 퇴화되어가는/신성함이다/늘 반목하는 눈이다(맹목의 감각)

4. 그리고 꽃과 흑백

인간은 반복되는 존재다, 라고 말해도 겸손을 위장할 수 있을까 어느 생에선가 내가 살아낸 적 있는 삶을 당신이 지금 왜 똑같이 살아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가장 무서운 형벌은 반복을 반복하는 것 (흑백)
매화초우도, 탐매행....

볕뉘.

0. 이렇게 밑줄들을 옮긴 뒤, 신형철작가의 논문수준의 해설을 본다. 꽃을 탐하는 나로서는 동지를 만난 듯 기쁘기도 하지만, 세세한 결 속의 음과 색을 헤아리는 경지까지 가지는 못했다. 시를 함께나누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숲으로 한발짝 옮기게 해주는 시집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지 않아 꽃도 풍경도 들어오지 않기도 하겠지만, 비단 나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런 꽃 봄을 꼭 볼 수 있는 나날이 몇 해나 될 것이란 말인가.

1.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니체보다 스피노자에 가깝게 귀기울여 본다. 영혼과 정신, 신체를 나누는 것에 극명하게 반대했던 렌즈 제조공 스피노자. 영혼과 몸을 데카르트가 분리한 연유로 과학을 얻고 무수한 사실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마음과 영혼의 거처를 편안히 하는 몸, 삶은 여전히 그 거처를 잃고 반복될 뿐이다.

2. 기쁨과 슬픔, 기쁨으로 생겨나는 욕망이 슬픔으로 생겨나는 욕망보다 훨씬 강하다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침묵할 수 있는 역량이 말할 수 있는 역량과 동일하다면 삶은 훨씬 풍부했을 것이라고도...목적인은 원인과 결과를 혼돈하여 제대로 된 삶, 기쁨조차 누릴줄 모른다고 한다.

3. 초록의 새로운 색과 소리를 찾는 기쁨은 어디로 연유하는 것일까. 아픔으로 시작하거나 외로움으로 나아가거나 적요로 출발하는지도 모르겠다. 고통만이 아니라 어떤 숭고함이나 작열하는 흰빛으로 문득 다가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묵으로 확장되거나 연장되는 신체의 배치가 다양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정신은 이렇게 신체로 이어지는 여러갈래 길이다. 그 깊이는 늘 만나면서 큰 울림들을 만들어낸다. 더 이상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기쁨은 그렇게 연유하는 것이다.

4. 길. 길은 어쩌면 물위에 난 수많은 길들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길들. 길은 어디에나 있다. 길은 어디에도 있다. 안의 길과 밖의 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높아지고 깊어진다. 야위워간다. 걷고 또 걷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브레히트의 ‘k씨의 이야기‘ – 소피스트 철학자에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입니다. ! 그 한마디에 귀가 먹을 정도의 박수가 쏟아진다. 거기서 k씨는 의문을 가진다. 혹시 소크라테스가 무슨 말을 덧붙였는데 박수 소리에 묻혀, 이후 이천 년 동안 다음 말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48

2. 정신과 관련된 정서들로부터 따라 나오는 모든 능동적 작용을 나는 마음의 강인함과 연결지으며, 마음의 강인함은 굳건함과 관대함으로 구별한다. 왜냐하면 나는 굳건함을, 각각의 ㅅㅏ람이 오직 이성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자 ㅎㅏ는 노력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편 관대함의 경우는, 각각의 사람이 오직 이성의 명령에 따라 우정의 마음으로 다른 모든 ㅅㅏ람들을 돕고 그들과 우정으로 결합하고자 ㅎㅏ는 노력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ㄴㅏ는 오직 행위자 ㅈㅏ신의 유용함을 목표로 ㅎㅏ는 작용은 굳건함과 연결시키고, 다른 이들의 유용함도 목표로 ㅎㅏ는 작용은 관대함과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절제심, 침착함, 위급 상황에서의 평정심 등은 굳건함의 종류들이다. 하지만 겸손함이나 ㄴㅓ그러움은 관대함의 일종이다/이런 정리들로부터 명백해지는 것은, 우리가 외부 원인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휘둘린다는 점이며, 마치 반대 방향에서 부는 바람들에 파도가 일렁이듯이, 우리는 출구도 모른 ㅊㅐ, 운명도 모른 채 동요한다는 점이다. 51

3. 실로 많은 오류들은, 오직 우리가 이름을 실재에 올바르게 적용하지 못하는 데서 생겨날 뿐이다 / 그들의 정신 속만 살펴본다면, 그들은 확실히 실수를 범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수를 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종이 위에 쓰인 숫자와 같은 숫자를 그들의 마음 속에 품고 있다고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62

4.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될수록, 그 이미지는 더 자주 생생해진다. 왜냐하면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될수록, 그것을 촉발할 수 있는 더 많은 원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71

5. 오직 자유로운 인간들만이 진정으로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72

6. 작가의 역할은 상황을 진실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독자가 더 이상 그 상황을 피해 갈 수 없게. 72

7. 소비주의는 모든 질문하는 행위를 소비해 버린다. 과거는 쓸모없는 것이 된다. 83

8.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바리케이트를 세우고, 팔을 들고, 단식투쟁에 들어가고, 인간 사슬을 만들고, 소리치고, 글을 쓰는 것)은 미래가 무엇을 품고 있든 상관없이, 지금 이순간을 지킥 위해서다/서사는 순간을 지울 수 없는 무엇으로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이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들릴 때, 선적인 시간의 흐름은 멈추고 ‘사소한‘이라는 형용사는 의미 없는 것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역사의 목적은, 시간을 탐색하고 정복하는 일에서 모두가 형제 혹은 동료가 되기 위해 시간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85-88

9. 어떤 이야기에 감명을 받거나 울림을 얻으며, 그 이야기는 우리의 본질적인 일부가 되는, 혹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낳고, 이 일부가, 그게 작은 것이든 광대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하자면 그 이야기의 후예 혹은 후계자가 된다./누군가 읽은 이야기의 혈류가 그 누군가가 ㅅㅏㄹ아온 이야기의 혈류와 만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되고 있는, 혹은 앞으로 ㄱㅖ속되어 갈 어떤 모습에 보태진다. 90

10. 가난한 자들은 온갖 종류의 계략을 꾸미지만 가장하지는 않는다. 부자들은 보통 죽을 때까지 가장만 한다. 그들에게 가장 흔한 가장이 성공이다/오늘날의 희망은 손에서 손으로,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은밀하게 전해지는 무엇이다/모든 것은, 그것이 얼마나 완전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것이 실존하기 시작했던 때 지니고 있었던 것과 동일한 힘을 가지고 항상 실존 속에서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이 점에서 동일하다. 93,94

11. 인간 정신이 어떤 외부 물체를 현존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한, 곧 그것에 대해 상상하는 한, 인간 신체는 외부 물체의 본성을 함축하는 방식으로 변용된다. 97

12. 이성의 본성에는 어떤 영원의 관점에서 실재들을 지각하는 일이 속한다. 104

13. 길거리 시장의 정반대다. 그곳에서 핵심은 흥정이다. 길거리 시장에서는, 모두가 최선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창고형 슈퍼마켓에서는,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도둑놈으로 여겨진다/직원들의 권리에 대한 도둑질, 농산물업계, 전 지구적인 식품 유통업계와 연결된 그 회사의 도둑질, 한때는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쥐고 있던 주도권,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 변종과 종자, 비료, 기를 가축들 등에 대한 결정권을 뺏어 간 것. 한 때 이런 것은 지역 내에서 현실에 맞춰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오늘날은 거대 기없이 생산자를 공급하고, 생산될 게 무엇인지 지시한다. 전 지구적인 농업이 미리 계획되고 이ㅆ는데, 목적은 자연 전체를 상품으로 ㅂㅏ꾸는 것이다. 110

14.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기쁨에서 생겨나는 욕망이 슬픔에서 생겨나는 욕망보다 더 강하다. 111

15. 목적인에 관한 교의는 자연을 완전히 전도시킨다. 왜냐하면 이러한 교의는, 실제로는 원인인 것과 결과로 간주하고 결과인 것을 원인으로 간주하여, 본성상 첫번째로 오는 것을 가장 나중에 오는 것으로 만들고, 또한 최상의 것이며 가장 완전한 것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13

16. 만약 인간에게 있는 침묵할 수 있는 역량이 말할 수 있는 역량과 동등하다면, 분명히 인간의 삶은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다./정신이 내적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아니라 외적으로 규정되는 경우, 그 정신은 혼동되고 단편적인 인식만을 갖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둔다 117,118

17. 사고하는 실체와 연장되는 실체는, 때로는 이 속성에 의해 인식되고 때로는 다른 속성에 의해 인식되는, 하나의 동일한 실체다/드로잉을 하는 연장되는 무엇의 외곽선 - 연장되는 무엇 또한 하나의 구성요소임을 종이 위에, 드로잉의 표면에 보여 주는 것이다./드로잉의 선은 초조하고 팽팽하다...드로잉을 그리는 ㅅㅏ람은 끊임없이 연장되는 것 안에 홀로 있습니다/물체들은 운동과 정지, 빠름과 느림의 관계에 따라 서로 구분되는 것이지, 실체의 관계에 따라 서로 구분되는 게 아니다. 119-122

18. 우리는 보통, 우리가 있는 곳에서 이백 피트 이상 떨어져 있는, 또는 우리가 판명하게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모든 ㄷㅐ상을, 우리로부터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모든 대상을, 우리로부터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고 상상한다...그것들 모두가 ㅁㅏ치 시간의 한 계기에 놓여있는 것처럼 간주한다. 137

19. 모든 것을 신의 무관심한 어떤 의지에 종속시키고, 모든 것은 그의 만족에 달려 있다고 제시하는 의견이, 신은 모든 것을 선의 계기에서 실행한다고 보는 관점보다는 진리에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20. 나는 습관적으로 혼란에 빠집니다. 혼란을 마주함으로써 종종 어떤 분명함을 얻기도 하죠/지성으로 인식하는 한에서, 우리는 필연적인 것 ㅇㅣ외에는 아무것도 욕망할 수 없으며, 참된 것 이외에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신체의 유동적인 부분이 외부 물체에 의해 신체의 무른 부분에 대해 표시를 남기도록 규정될 때, 유동적인 부분은 무른 부분의 표면을 변화시키며, 말하자면 자신을 자극하는 외부 물체의 무른 부분 위에 남기게 된다... 인간 정신은 매우 많은 것을 ㅈㅣ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신체가 좀 ㄷㅓ 많은 방식으로 배치될 수 있게 됨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다./정신은 그 신체가 다른 신체들과 더 많은 것을 공통으로 지니면 지닐수록 더 많은 것들을 적합하게 지각할 수 있다는 점이 따라 나온다. 145,147,148

21. 우중은, 원인으로서의 돈이라는 관념으로부터 얻는 기쁨이 아니고서는 어떤 다른 ㄱㅣ쁨도 거의 상상하지 못해 신체에 인색하게 되는데 그 만큼 자신의 재물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기 ㄸㅐ문이다. 151

22. 스피노자는 세 가지 형태의 지식에 대해 서술했다. 첫째, 소문과 인상에만 근거하여, 전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제 멋대로의 지식. 둘째, 적절한 개념을 활용하며 사물의 성질에 집중하는 지식. 그리고 셋째,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는, 그리하여 신에게 이르는 지식. 153

23. 드로잉을 할 때, 나는 종종 순간적으로 신체의 생리현상과 비슷한 어떤 일에 가다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드로잉이라는 행위 혹은 드로잉을 하려는 ㅁㅏ음은 어떤 원형, 논리적 추론에 앞서 있는 어떤 것에 닿아 있다./드로잉를 할 때 나는, 하늘 길을 찾아가는 새나, 쫓기는 와중에 은신처를 찾아가는 산토끼, 혹은 알 낳을 곳을 알고 있는 물고기, 빛을 향해 자라는 나무, 자신들만의 방을 짓는 벌 들에게 조금 ㄷㅓ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다./드로잉은 무언가를 꼼꼼히 살피는 형식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려는 본능적인 충동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욕구, 점을 찍으려는 욕구, 사물들을, 그리고 자기 ㅈㅏ신을 어딘가에 위치시키려는 욕구에서 나온다/모든 드로잉은 각자의 존재 ㅇㅣ유를 가지고, 독창적인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매번 드로잉을 ㅅㅣ작할 때마다, 우리는 그때만의 서로 다른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모든 자발적인(주문받은 것과 구분되는) 드로잉은 비슷한 ㅅㅏㅇ상력의 작동을 거쳐 ‘이륙‘해야 하고, 그 상상력의 힘으로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 155-157

볕뉘.

0. 존 버거, 스피노자, 존 버거의 스피노자. 드로잉을 했다는 스피노자의 그림은 발견할 수 없다. 스피노자 안으로 스며들어 존 버거가 드로잉을 말한다.

1. 그의 말인지, 스피노자의 마음인지 행간을 헤아릴 길이 없어 그냥 옮겨 적어본다. 어찌되었든 스피노자로 가는 길목, 드로잉으로 가는 길목 한껏 기대에 부풀게 만드는 글과 그림이다.

2. 프리지어 꽃과 꽃병, 한 송이에 그 열쇠를 담고 싶다. 꽃말이 아마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라던가....

3. 드로잉과 이 멋진 책을 선물하고 싶다. 꽃 봄이네요. 벌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