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리어왕

1.

[ 1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햄릿 없는 햄릿은 상상 불가능하고, 우리가 햄릿을 읽고 보는 이유도 햄릿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햄릿에 끌리게 되는 걸까? 그럿은 햄릿에서 볼 수 있는 양극의 신비로운 공존 때문이다...햄릿은 우리의 반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보편적인 사고와 행위는 있음과 없음, 선과 악, 허구와 실재,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이분법적인 사물 인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작은 햄릿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초탈하여 마음의 준비가 최고 이며 순리를 따라야지라고도 말한다. 이런 무심한 마음가짐 때문에 우리는 햄릿이 이분법의 세계에 속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햄릿의 중간에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독백이 놓여 있어, 인간의 존재문제를 가장 포괄적으로 다뤄내고 있다. 저자는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옮겼다. 216-217

[ ] 아무 상관 없어. 우린 전조를 무시해.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잖은가. 죽을 때가 지금이면 아니 올 것이고, 아니 올 것이면 지금일 것이지. 지금이 아니라도 오기는 할 것이고. 마음의 준비가 최고야. 누구도 자기가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지 모르는데, 일찍 떠나는 게 어떻단 말인가? 순리를 따라야지. 199

2.

[ ] 리어: 언니들 것보다 더 비옥한 삼분의 일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말은? 말하라 코딜리아: 없습니다. 전하 리어: 없습니다? 코딜리아: 없습니다. 리어: 없음은 없음만 낳느니라. 다시 해봐.

[ 1 ] 코딜리아에게 사랑은 말이 아닌 침묵이고 행동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제자리인 가슴을 떠나 입으로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182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까닭은 그녀의 진실에 대한 집착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녀가 가진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우리가 모든 사물을 있음과 없음, 진실과 허위, 선과 악, 미와 추 같이 상반되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류하는 거의 본능처럼 굳어진 습관 말이다. 184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진실에 충실한지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이다. 그 정도는 때로 섬뜩할 지경이다. 우리가 코딜리아의 순수함이나 사랑과 진실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거리감을 느낀다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89 리어왕은 코딜리아보다 훨씬 더 경직되고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사고한다. 그의 입장은 ˝없음은 없음만 낳느리라˝라는 말에 요약되어 있다. 그의 사고 체계에서 있음과 없음은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벅이고, 그 둘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낳는다. 186

[ 2 ] 리어가 ˝제 새끼를 잡아먹는 놈˝보다 코딜리아를 대하겠다는 선언. 앞으로 다가올 모든 태풍과 광기와 선악의 투쟁과 생사의 고통과 그 비극적인 결말을 잉태한 이 우주적인 미움과 분노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 근원은 리어가 삶과 우주에 대해 품고 있는 절대 긍정의 힘이다...리어의 절대 긍정과 절대 부정이 내포하는 세계가 바로 이 인물의 폭이며 크기이기 때문이다. 192 리어왕의 비극은 이분법적 사고의 승리인 동시에 패배라 할 수 있다. 코딜리아에게 이분법적인 없음 말고 다른 표현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리어의 가슴속에 있는 절대 긍정의 에너지가 그 반대편인 절대 부정 쪽으로 실핏줄말큼이라도 흐를 수 있다면 리어왕의 비극성은 줄어들었을 것이다....리어는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을 절대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옳다라는 관성)...빛과 어둠, 물과 바람, 하늘과 땅이 서로를 껴안으려고 돌진하나 화합하여 공존하는 법을 모르고 무질서하게 뒤섞여 휘몰아칠 때 우리는 이 현상을 태풍이라 부르고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이 그리할 때는 광기라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이러와 코딜리아의 이분법적 사고는 모든 갈등과 비극의 근본 원인이다. 193 사랑은 있음과 있음의 직접 대결이 아니라 없음과 있음의 간접 대결이다. 195

[ 3 ] 리어는 자신이 선하다고 나서서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 온갖 죄인들을 욕하면서 자신을 그들과 구분하여 ˝난 지은 죄보다는 덮어쓴 게/더 많은 사람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 밑바닥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 그리고 자신은 선한 쪽에 속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그의 비극은 거의 자신이 유발시킨 것이지만 그 가장 커다란 원인은 그가 의식하지 못한 채 따르고 있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211 그의 표현방식도 문제다. 자기에게 고통을 주은 원인을 질병으로 정의하여 공격이나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여전히 이분법적 발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공격의 대상이 밖에서 안으로 옮겨 왔으므로 고통이 증폭될 뿐이다. 212

[ 4 ] 시간은 숨어 있는 흉계를 드러내고 감춰진 잘못을 창피 주며 비웃지요. 27


볕뉘

0. 바닷가를 찾았다. 한 카페를 찜해두었는데, 책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도시같은 카페가 다소 시끄러웠다. 낚시인들이 들낙거리고, 중장년이 붐볐다. 파도가 보이는 곳. ‘블루하라‘라는 영문카페이름이 다 읽고 돌아서는 길에 인상깊다 싶다. 어쨌든 따사로운 봄날에 매듭을 짓는다.

0.1 물론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너무도 대단하거나 대단했다고 오르내리고 작품을 볼 안목과 마음이 서성거리지 않았기에 더 그러하였다. 친구의 몇 편의 시. 몇 편의 연극. 사랑하는 배우. 가까운 벗의 영화시나리오. 가까워졌다 아주 멀어진 친구의 작품. 달뷴에 희곡에 대한 글. 낭독에 대한 묘한 관심들....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자극을 했을 것이고..이것이 4대비극 한 질을 구매하게 했고....한 십년 전 스스로도 입질을 했었다는 사실이 당겨져 올라왔다. 이제 한 번 완독한 셈이다. 겨우.

0.2 문학, 특히 희곡에 문외한이고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약한 편이라 버거웠다. 인문사회학이면 그래도 몇 가지 개념에 술술 읽어나가지만, 유독 소설이나 문학은 인물을 잡아내는 것이 힘들고(워낙 그런면에서 효율만 바라는 독서가인지도 모르겠다.) 인물을 그려낼려고 하지 않았다. 고백이라면 고백일 수 있겠다. 그래서 실험적인 소설이나 단편, 중편들만 새겨보는 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0.3 연달아 읽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번역가의 비평문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이분법의 인물, 그것이 비극의 원점이자 영점이고 그것으로 분석을 그물망처럼 이어가고 있어서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완독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1. 마지막 책을 덮고 난 뒤, 왜 비평을 그리하였을까에 의문을 두어봤다. 에세이가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 활자이상을 담는 그 무엇. 한 인물 한 인물에 담으려는 논리, 감정(감성), 윤리라는 다소 경직된 설명으로 담을 수 없는 그 무엇. 그럴까. 대화 한 마디 한 마디에 감정이 강하게 섞여있거나 사물로 이어져 있는 표현이 전혀 만연체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말을 한다는 것. 언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그 말 속에는 사건이 잠재되어 있고, 빈말이 아니라 한 인물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 굳이 말한다면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번 낭독을 다시 해 봐야겠지만...)

2. 그리고 작금의 명멸하는 왕들에 대해 견주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무의식 중에 악함으로 꼬리표를 짓는 습관들. 그 초보적인 사유들. 비극을 잉태하는 인물들. 어쩌면 삶의 관점과 행동만큼만 역할이 주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순리를 받아들이고 이분법의 노예의 사슬을 끊는 순간에만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 수 있을 것인줄도 모르겠다. 과연 그러할까. 인간은 인지부조화의 생리를 가지고 있는데 반성을 가져올리도 만무하지 않을까. 여러 탑들은 너무도 높아만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 허물고 다시 쌓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3. 시간의 거울을 되비치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을 거는 일이다. 안으로밖으로 커지고 넓어지고 자유스러워지는 일이다. 나름 의미있는 이월의 독서였다.

4. 나의 사적인 도시가 아침 손에 잡혔다. 첫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사물을 대하는 한 예술가의 작은 끈으로 된 작품이었다. 사물을 달리 대하는 숫한 감정의 뿌리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웅얼거림...웅성거림...그것을 발견해내는 한 예술가의 흔적과 그것을 대하는 한 블로거의 글이 맺혔다. 그것은 이것과 저것에 매여 있지 않다. 서로 다르게 피는 일인지도 모른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다른 무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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