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기-지식인

[ ] 지라르의 욕망이론이야말로 지식인들에겐 일정한 매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이야말로 책에서 읽은 대로 살려고 무의식적이건 의식적이건 애를 쓰고 있으며, 자기가 전범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경쟁자로 변하는 것을 거의 매일 눈앞에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은 대로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중개의 집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스승이 어느 날 갑자기 경쟁자로 등장하는 날의 절망과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지식인으로서는 그 두 체험이 다 같이 고통스러운 체험이며, 피하고 싶은 체험이지만,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제자로서 나는 스승을 모방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 안 그러면 그에게 증오심을 느낄 테니까 - 스승으로서의 나는 제자들의 모방이 불가능한 곳에 가 있으려고 애를 쓴다 - 안 그러면 그에게 경쟁심을 느낄 테니까! 끔찍한 악순환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 계층의 삶이다. 1987. 3. 19 전문

볕뉘.

어제는 오후부터 밤늦도록 그림을 그리다. 선하나만 긋는 데도 몇 시간을 허비했으니 그리 진도를 많이 나간 것도 아니다. 아크릴화는 빨리 말라 빈틈을 원하는 색과 원하는 질감으로 채우기가 힘들다. 물의 물기를 묽게하면 빈틈을 채울 수 있으나 색을 내기 어렵고, 뻑뻑하게 하면 물감이 쉽게 마르고 캔버스를 맨질맨질하게 색을 입히기 어렵다. 집중하다보면 눈이 쉽게 피로해져서 사실 책보는 것과 그리 다를 바가 없기도 하다. 늘 달라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늘 달라질 수 있을까? 직접 대놓고 질문을 해본 적은 없지만, 지나가는 말들은 ‘그게 되겠어요‘나 ‘오래 살지 못할 거예요‘의 그 사이 어디쯤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끙끙댔다.

책읽기는 곤란하고, 조심스럽다. 빛이 보이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눈보라가 치고 어둠이 짙게 내린다. 옷자락을 잡았다 싶으면 여지없이 그 옷자락은 너덜너덜해지며 손아귀를 벗어난다. 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걷는다. 걷다가 뒤돌아서면 마음이 지고 핀다. 참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이 대목이 좋다. 이렇게라도 남기고 기억하고 싶은 게다. 본디 그런 것이다. 그 삶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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