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 ] 슬픔? 그건 간직 못하지. 내 주머니보다 크거든. 나보다 크거든. 내 세계보다도 크거든./그걸 간직하는 유일한 방법은 분노로 바꿔놓는 것./나는 돌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힘껏 팔을 휘둘렀다. 더는 아무것도 창조할 게 없어서 신은 사라져버렸구나./돌을 던져서는 깰 수 없는 것이 있었네. 맞힐 수 없는 바람이 있었네. 뚜벅뚜벅 걸으며,/차라리 나는 돌이 되고 싶었다./그래서 돌아보았다. 후회로 남는 때가 마침내 가장 반짝이는 법이라고......사랑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전부 들었다. 시인의 말.

[ ] 내가 쓰러져 꿈꾸기 전에 - 죽음이 인생을 엿보려고 사람에게 사랑을 심어놓았다...아직 내게 남은 재앙이 있다면 오늘 자정이 가기 전에 보내주기를.

[ ] 얼음은 깨지면서 녹는다 - 사라진 시간의 그림자. 죽음, 슬픔, 분노. 어둠속에서는 항상 인간이 깨지고 있다. 이번 생의 시절을 모른 채 서둘러 내게 온 청춘처럼, 그 방 유리창에는 돌멩이가 날아온 흔적이 있다. 거절된 고독이 있다./ ...고독은 해부되지 않는다...눈동자 속 지진으로 뻗어가는 핏줄처럼 지금은 누군가 뭉쳐 던진 달 하나의 밤. 내가 한걸음 나설 때 모두가 움직인다.....희고 거대한 바위가 시간의 협곡 속으로 천천히 굴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 ] 저지르는 비 - 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려보낸다....슬픔은 풍경의 전부를 사용한다.

[ ] 그해 안부 - 그것을 낙엽이라 부를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없는 것이 텅 빈 시간을 찔러, 몸이라는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몸이라는 압정에 박혀 영혼이 날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 ] 노랑에서 빨강 - 아무리 살펴도 건너편이 보이지 않아서, 오늘을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방황에 대해서도 살았다고 쳐주는 겁니까?......오늘이기를 멈추지 못하는 오늘에게 자연사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날개 없이 날아가는 것들에게만 가능한 일 같습니다. 마음처럼? 이를테면, 사랑과 슬픔과 분노. 그것이 중력이라면, 도대체 내가 던진 돌은 언제 땅에 떨어진단 말입니까? 저 달은 언제 땅에 떨어진단 말입니까?....어딘지 모를 오늘을 날아가다 그만, 사랑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슬픔이 무엇인지 분노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고....비가되어 떨어지는 거라면, 비를 맞고 아플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 속에도 신이 있구나.나는 , 잠겨 있구나.....언젠가 오늘을 건너갈 수 있다면, 나는 생각 속에 몰래 머리를 숨겨놓을 것입니다.

[ ] 이 슬픔에는 규격이 없다 - 한가지 일은 그리워하는 것. 다른 한가지는, 잊는다.

[ ] 그림자 섬 - 낮 동안 낮게 끌려다니던 그림자가 밤이 되자, 나를 커다란 보자리로 싸서 들고 간다.....어둠속에서도 모두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비로웠다. 만지지 않는데도 느낌이 남아 있다는 것이, 죽은 후에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빗방울에도 얼굴이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고, 목소리에도 해변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

[ ] 눈사람 - 구원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 마음을 가져가는 것으로 찾아온다....함께라는 말 속에 늘 혼자 있는 사람과 혼자라는 말을 들고 늘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너를 일으켰을 때, 네 눈에 박혀 있던 돌멩이처럼

[ ] 사과 - 외진 냄새로 얼룩지는 저녁에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뺨을 맞았다. 맞을수록 익어간다.

[ ] 내가 계속 나일 때 - 나는 그냥 살았을 뿐이다. 나는 계속 나였다. 내가 끓었을 때 그가 왔다. 그리고 식어가는 시간이었다.

[ ] 더 어두운 색 - 밤새 덮어놓아도 꺼지지 않는 불이 있어서 그 불을 지나온 눈동자 같은 색 밤새 흘려보내도 마르지 않는 물이 있어서 그 물을 건너온 목소리 같은 색.....난로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그는 벽에 일렁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인두로 지졌다....마침내 희미한 집들이 더 어두운 밤을 게워내는데 겨울이 아무리 뜨거워져도 난로는 타지 않는다.

[ ] 귀가사 - 빨갛게 끓고 있는 찌개 속에서 설탕의 맛을 알아채는 것처럼, 그는 정말 자글자글 끓고 있는 내 몸 어딘가에서 슬픔을 읽어내고 있는 것일까?....사랑은 새로운 운동장 건립 공사 같은 것..그렇다면 슬픔은 그 공사에 고용된 인부들 같아서 현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포대에 담아내듯이 슬픔이 나를 내 인생에 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지......어쨌든 오늘 우리가 취했다는 것은 서로를 향해 출렁이고 있다는 뜻이다...부딪치며 몸속에 소용돌이 하나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잔에 알코올을 붓고 내 영혼을 녹여 마시는 자는 누구일까?

[ ] 개와 산책하는 비 - 문득 치욕으로부터 잊혀지지 않을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공포감을 느끼면/톡톡 바닥에 떨어진 매미를 발끝으로 건드리며, 죽었나 살았나/조금씩 비가 듣는데, 이제 제가 운 울음 하나 건사하지 못하나

볕뉘

0. 바쁜 한 주였다. 아니 바쁜 중순이라고 할까? 매일 매일 모임을 했으며, 하루하루 책 한권이상은 읽었고, 정신없이 오고가며 이동을 하였다. 그 와중에 이 시집은 물끄러미 나를 고이게 만들었다.

1. 마침 레비나스를 시작해서인지 그 사이 사이로 그 그림자들이 연신 비치는 것이다. 그동안 갇힌 유아론에 대한 확장인지 확증일지 모르는 생각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듯했다. 시인의 시어들이 서로 물려 윤곽이 잡힌다. 그래서 그 자연스러움을 물고 있는 놀라움에 연식 탄복한다. 다시 모임에서도 그랬다. 멤버들은 시종 편차가 없이 시와 시인을 애정했다. 전 시집과 지금 시집의 간극을 놀라와했으며 확장에 대해서도 긍정의 안부를 말했다.

2. 선무당이 아니라 신과 이승을 이어주는 말 벗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그런 무당. 이 시집을 잊지 못하겠다 싶다. 아껴 써둔다. 거꾸로 반틈의 메모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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