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이 선호되기 시작한 것은(색에 대한 선호도는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온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세기에 청색은 신학적으로 중요시되었고 예술적으로도 그 가치가 상승했으며, 13세기에는 염색업자들이 아름다운 청색 염료를 만들어 냄으로써 청색의 인기 상승에 공헌했다. 그리고 14세기 중반부터는 문장학적으로 중요한 색깔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2 세기 후인 16세기에는 종교개혁에 발맞춰 도덕적 차원에서 경건한 색이 되었다. 그러나 청색이 결정적으로 승리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라고 할 수 있다. 199

중세 신학에서 빛은 감각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시적이면서도 비물질적인 것이다. “표현할 수 없는 시계”인 빛은 그 자체로서 신의 현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ㅇㅣ런 문제가 제기된다. 만약 색이 빛이라면 색 역시 비물질적인 것인가?아니면 사물에 덧입힌 단순한 물질에 불과한 것인가? 교회의 입장에서는 ㅇㅕ기에 중요한 문제가 걸려 있었다. 만약 색이 빛이라면 색은 본디 신성한 성질을 띠는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 특히 교회 내에 색을 확산시키는 일은 빛, 즉 신을 위해 어둠을 몰아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색과 빛의 추구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만약 그 반대로 색이 단순한 껍질이자 구체적인 물질이라면 신성은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신의 창조물에다 인간이 신에게 이르는 ‘통로‘을 가로막는 부도덕하고 해로운 것으로 마땅히 거부하고 억제해야 하며 교회에서 몰아내야 하는 것이다. 68

혼합하는 것, 뒤섞는 것, 합병하는 것, 화합시키는 것 등은 창조주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질서와 자연 상태에 역행하는 것이므로 곧잘 악마가 하는 짓으로 여겨졌다. 직업상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염색공, 대장장이, 연금술사, 약제사 들은 물질을 ㄱㅏ지고 속임수를 쓴다는 느낌 때문에 일종의 두려움이나 의혹을 품고 있었다. 어떤 작업은 직접 하기를 꺼렸는데, 예를 들어 염색 작업실에서는 세 번째 색을 내기 위해 두 가지 색을 섞는 일을 기피했다. 색을 배열하거나 겹쳐 놓는 경우는 있어도 혼합하는 일은 없었다. 15세기 이전까지 염색에서건 회화에서건 색 제조법을 설명하는 책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초록을 만들려면 파랑과 노랑을 섞어야 한다는 설명이 전부였다. 116

14세기 중반 염색업자들은 검은색을 염색해낼 수 있었는데, 주된 원동력은 염색 분야의 화학적 발견이나 그때까지 유럽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염료의 도입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새로운 수요인 듯하다. 당시 사회는 양질의 검은색 천과 옷들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고, 염색업자들은 빠른 속도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었다.그러므로 여기서도 이데올로기적 요인과 사회적 수요가 화학적, 기술적 진보를 이끌고 촉진시킨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아니었다. 137

서양에서는 색에 대한 여러 가지 윤리가 아주 오랫동안 큰 줄기를 이루며 지속되어 왔닥 볼 수 있다. 12세기 ㅅㅣ토파의 예술에서부터 14-5세기 그리자유 기법의 세밀화와 종교 개혁 초기의 색 파괴 물결을 ㄱㅓ쳐, 17세기의 엄격한 칼뱅파나 얀센파의 회화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단절도 없이 오히려 일관성있는 논리를 지닌 채 이어져 왔다. 바로 색은 겉치레, ㅅㅏ치, 인위적인 것,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색이란 물질일 뿐이므로 헛된 것이고, 진실과 선을 왜곡하므로 위험한 것이며, 유혹하고 속이려 하므로 책망받아 마땅하며, 형태와 윤곽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게 하므로 거슬리는 것이다. 173

16세기 말부터는 청색이 완전히 ‘정중한‘색깔의 대열에 들게 되었다. 177 종교 개혁은 교회 장식이나 전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의상에서도 ㄷㅏ색 배합을 강력하게 거부하였음을 알 수 있다./중세의 색에 관한 윤리는 색조만이 아니라 색의 농도도 규제했다. 말하자면 고상하더라도 지나치게 진한 색깔의 천을 만들어 내는 화려하고 짙은 색을 내는 염료는 금지되었다. 반면에 종교 개혁이나 근대의 의상 규정들은 색의 농도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단지 색깔만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청교도주의나 경건주의 교파들은 세상의 허영심에 ㄷㅐ한 혐오에 ㄸㅏ라 개신교파 의상의 엄격함과 획일성을 강화했다./유채색들 중에서 청색을 유일하게 올바른 기독교인에게 어울리는 ‘정중한‘ 색으로 만들었다. 178, 179

나는 일상생활의 대량 생산품에서 색채가 상당히 제한되었던 까닭은 신교도 윤리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마치 ㄱㅣ술적으로는 색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으나 사회윤리가 이를 거부한 듯하다. 182

18세기에 들어서 새로운 안료가 점점 많이 생겨나, 작업장에서 색소를 선택하여 빻고 혼합시키고 칠하는 오래된 방법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대체되면서 경쟁하거나 혼란에 빠졌다. 이 새로운 제조 방법은 작업장마다 달랐고 심지어 화가마다 다른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17세기 말에 있었던 뉴턴의 발견과 스펙트럼의 부각은 점차 색의 질서를 바꾸어 놓았다....그리고 원색과 보색의 개념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으며,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같은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의 개념도 생겨났다. 18세기 말의 색상 ㅊㅔ계는 18세기 초와 완전히 달라졌다. 185

페르메이르의 노란색, 흰색, 파란색 터치 위로는 특유의 음악성이 흐른다. 바로 이 음악성이 우리를 ㅁㅐ혹시키고 그를 자기 시대뿐 아니라 아마도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화가이게 하는 것이다. 189

예전의 대가들은 화가가 어떤 경지까지 올랐는지 알아보는 기준으로 살갗의 묘사를 삼았다. 데생보다 채색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결정적인 논거로 내세운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즉 색깔만이 살을 가진 인간에게 생명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색깔이 곧 회화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살아 있는 생물에게서만 회화가 나오기 때문이다. 195

괴테의 색채론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 이 책 내용을 보충하였는데 가장 고유한 장은 ‘생리학적인‘ 색을 다룬 부분일 터다. 여기서 작가는 색 인식의 주관성과 문화적인 성격을 힘주어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 당시로서는 거의 혁신적인 생각이었다. 226

일본인들의 감성에는 파랑인지 빨강인지, 또 다른 색인지 보다는 그 색이 광택을 지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일본어에서 흰색을 가리키는 말을 예로 들자면, 가장 불투명한 흰색부터 가장 번쩍거리는 흰색까지 단계적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이름을 지닌다./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빨간색 계통을 갈색 혹은 노랑, 나아가 초록이나 파랑으로부터 구분하는 데에 별로 중요성을 두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면 어떤 주어진 색이 있으면 그것이 건조한 색인지 축축한 색인지, 그리고 부드러운 색인지 거친 색인지, ㅁㅐ끄러운 색인지, 꺼칠꺼칠한 색인지, 즐거운 색인지 슬픈 색인지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색은 다른 감각 요소와 짝을 이루어 ㅇㅣ해되므로 빛깔이나 색조 따위는 핵심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291

이러한 ㅅㅏ회 간의 차이는 사실 근본적인 것이다 이것은 색인식의 문화적 성격이나 거기서 비롯하는 색에 대한 명명현상등을 강조해 줄 뿐 아니라, 여러 다른 감각과 관련한 복합적 지각 현상과 공감각 역할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또한 이 차이점들은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나타나는 감수성을 비교 연구할 때 신중해야 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293

오히려 파랑이 다른 색, 특히 빨강, 초록, 하양, 검정보다 상징성이 ‘덜 강한‘색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인지도 모른다/파랑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점, 조용하고 평화적이며 아득한 느낌과 함께 거의 중립적인 색이라는 점이다. 물론 파란색은 꿈꾸게 ㅎㅏ는 색이지만 이 멜랑콜리한 꿈은 약간 마취제 같은 일면을 가진다.300

파란색과 물의 관계, 그리고 특히 파란색과 차가움의 관계다. 이에 대해 길게 언급하기에는 이 책의 지면이 모자랐지만, 이것은 파랑색을 살필 때 아주 중요한 문제다. 특히 근대와 현대에서 그러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따뜻한 색이나 차가운 색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간과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순전히 관습적인 문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는 ㅍㅏ란색이 따뜻한 색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했다. 17세기에 ㅇㅣ르러서야 파란색은 점차적으로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19세기에 비로소 ㅍㅏ랑은 차가운 색으로서 자리매김하였다./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물이 ㅍㅏ란색으로 인식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과거의 그림들을 보면 물은 모든 색으로 표현이 가능했지만 상징적으로는 초록이 물의 색으로 꼽히곤 햇다. 15세기에 와서야 ㅇㅣ 초록이 ㅈㅓㅁ차 파랑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302

볕뉘.

0. 책방에서 책을 확인하고서야 구입했다. 상징사를 전공으로 문장,인장,이미지들을 연구한 거장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관심은 문양, 상징, 색 등이 있었는데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했다.

1. 명불허전이라고 할까. 매끄럽고 깔끔한 기술이 마음에 든다. 미셸 파스투로 이름을 기억해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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