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사건은 가상계의 속편으로 읽힐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의 강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각각의 지나가는 경험을 물들이며 그 순간에 살아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유일무이하고 환원불가능한 성질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가치, 경험이 우리 생명의 펼쳐짐을 위해 자신을 주장하게 되는 그 순간을 산다는 느낌의 가치를?....이 질문은 위의 책들이 공유하는 기획을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교차로에 위치시킨다...이 기획은 작동 중인 사유와 느낌으로의 통합적인 미학적-정치적 접근이다. 6

활동주의 철학과 사건발생적 예술

특수하게 도래하는 활동의 특이한 느낌은 경험의 발생이 갖는 직접적 차원들이다. 그것들은 과정의 이중적 직접성이다. 첫번째 차원은 사건의 발생이 가지는 관계적 차원이다...효과적으로 무엇이-벌어짐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느껴진다는 것, 즉 등록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활동은 그것이 이제 막 도래하고 있는 경험의 문지방에 자리하고 있을지라도 어떤 식으로 유효하며 느껴지는가 하는 것이 ㅇㅣ 책 전반에 걸친 중심적인 질문이다. 두 번째 차원은 사건의 발생이 갖는 질적 차원, 즉 그것이 이와같음이다...사건의 직접적 향유로서 등록된다....겹쳐짐과 중계 속에서 그것들은 동일한 ㅅㅏ건 속에서 자신들의 상호 포함을 공통-지각한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공통-발생안에서 서로에게 속함을 함께-느낀다. 16-17

활동주의 철학의 핵심에 자리하는 관계적-질적 이중성은 이분법적이 아니라 차이생성적이다. 그것은 활동에 있어 동시 발생하는 차이들에 관한 것이며, 그들 사이에서 일이 벌어진다. 19

관여된 차이생성은 이를테면 주체-대상의 이분법 위에 씌워질 수 없다..그것들은 대상-같기보다는 활력적이다. 그것은 대상도 주체도 아닌 사건이다. 20

세계는 대상들의 총합이 아니다. 세계를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은 이행으로서의 자연의 복합성에 대한 환원적 추상에 참여한 것이다. “사물들을 믿지 않는”것은 대상들이 과정의 파생물들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며, 그것들의 출현은 추상적 활동의 구체적 양태들이 초래하는, 이행하는 결과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활동주의 철학은 주관주의적 철학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주체를 전제하지 않으며, 다만 “무엇인가”가 일어날 뿐이다. 주체의 지위가 ㅇㅏ니라 사건-활동으로 ㅅㅣ작한다. 21

우리는 자신이 회의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 의심의 여지 없이 하나의 실재적 ㅅㅏ건이다. 회의는 효과를 발휘했다. 우리는 막 결과적으로 회의하는 자가 된 것이다. 활동주의 철학은 전적으로 실재론적이다. 그것은 여하한, 그리고 모든 발효의 실재성을 긍정한다. 23

활동주의 철학은 과정에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사이의 이중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그것들을 부정하는 대신에 활동주의 철학은 그것들을 사건과 그 발효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다른 방식으로 긍정한다....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시간의 물음으로 만든다. 24 경험의 한 계기의 역동적 통일성은 그 “주관적 형상”이다. 사실 “특정한 주체”라는 것은 없다. 사건과 분리된 주체는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의 발생함에 종속된 사건뿐이다. 사건 자체는 주관적 자기창조이다. 말하자면 일어나는 변화의 ㅇㅣ 특이한 자기향유의 지금-어떻게 이다. 25 그가 “아는” 것은 그것의 ㅅㅣ작으로, 이는 소급적으로 아는 것이다. 하나의 경험은 오직 그 절정에서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안다. 26

“순수한”이라는 것은 출현적 경험의 단순한-능동적인 최초의 차오름을 가리키는 제임스의 수식어이다. 27 그것은 차고 ㄴㅓㅁ친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혹은 잠세적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모든 경험이 그 시초를 발견하는 고ㅏ정적 풍부함의 당혹함이다.”그것은, 어떤 종류의 무엇이든 될 준비가 되어 있지만, ㅇㅏ직 어떤 명확한 무엇도 아닌 것이다.” 화이트헤드의용어로 이것은 “순수한 느낌”이다....관건은 만들어지고 있는 경험의 풍요로움에 ㄷㅐ한 존중에서 이를 한다는 사실이다. 28

과정의 관계적/참여적 측면은 마땅히 정치적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고 질적인/창조적으로-자기향유하는 측면은 미적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30
활동주의 철학을 위해 그것을 구사하는 또 다른 파생적 구별은 실용적인 것과 사변적인 것 사이의 것이다....실용적이라는 것은 그것은 구성의 동의어로서, 과정적 차이생성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공통-구성하는 형성적 힘들로서 전개되는가를 말한다...이러한 실용적 전개는 그 과정에서 무엇이 도래하게 될 것인지가, 그것이 정점에서 그 자체의 “최종적 특성화”dㅔ 도달할 때까지 어느 정도 열린 물음으로 남아있다는 의미에서 늘 사변적이다./이러한 ㅅㅏ고에 의해서, ㅇㅖ술이라는 분야는 창조적 구성을 독점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라 불리는 영역은 실재적 존재의 변화를 독점하지 않는다. 31

활동주의 철학의 관심사는 존재론적이라기보다는 개체발생적이다. 32

이 책의 궁극적인 사변적-실용적 도박은, 이 열림이 승계된다고 할 때, 뒤따르는 그 경향의 이어짐들이 그 고유한 실천, 즉 글쓰기의 실천으로부터, 더욱 통상적인 의미의 다른 활동주의의 장들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과정의 맥박이 갖는 정치성이다. 33

가상은 “잠재적 실재성의 경험”을 달리 말한 것이다. 그것은 “잠재적인 것의 경험적 실재”라는 것이다. 잠재적인 것은 추상적인 사건 퍼텐셜이다. 가상은 잠재적인 것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그것은 추상화를 체험한 잠재적인 것의 현존재이다....들뢰즈의 “잠재적”은 화이트헤드의 “순수퍼텐셜”에 상응한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 순수 퍼텐셜의 활동은 개체 발생적 힘이 경험의 역동적인 확정적-형식을-취함에 협력할 때 그 경험의 계기로 “내입”하는 것이다. 잠세적 활동이 내입하는 것은 “활성화하고” 있는 것이다..36,37 놀라움을 세계의 생성에서 보편적인 구성하는 힘으로 만드는 것이다. 38 쥐의 진입과 물러섬.39

번개의 섬광. 섬광은 관계의 존재이다. 섬광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관계는 결과적으로 없었을 것이다. 활동주의 철학에서 존재하는 것은 느껴지는 것, 즉 유효하게 등록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발효하는 것이다. 44

비관계의 관계라는 구절은 사건의 개념 속에서 그것을 조건화하는 요소들의 차이생성적 지위와 작은 절대자로서 그들의 순전한 발생의 역동적 통일을 하나로 모으는 방식이다. 그것은 “불균등한 군집에 의해 조건화된, 그리고 개별적-절대적 자기창조적인 것”과 동의어이다. 45

비연접적 관계의 개념은 비관계의 관계가 “참여”의 의미를 변화시킨다는 구절로 요약된다. 일견 참여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배가되었다. 그것은 일단 기여하는 요소들의 군집의 장화fielding로 도래한다. 47 번개의 섬광은 (인과에 따라) 야기된 것이라기보다는 조건화된 것이다.48 과정-사건, 변화, 새로움의 산출,생성-은 모두 지속을 시사한다. 그것들은 시간 개념들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언제나 공통-내포하고 있다. 그것들은 ㅅㅓ로에게 상호 포함된다. 50 쥐-선

활동주의 철학은 존재의 힘들의 생태학을 고려한다. 한가운데서 생성하기. 인간적인, 아니, 인간적이며 그 이상인 자기향유의, 창조적 변화의 일어남. 57

볕뉘.

0. 모임이란 상호작용의 의례사슬들, 그 가운데 정서적 에너지가 높은 방향으로 흐른다고 한다. 그런이유로 감정과 정서에 대한 역할 또는 의례에 대한 책들을 살펴보게 된 것 같다. (사람,장소,환대가 이런 이론들의 흐름을 훨씬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든 것 같다.) 마사누스바움의 감정의 3부작, 주디스버틀러 감정이론 등등 주체의 문제가 관여된 이론들로 (여혐, 그 이후에서 비주체의 개념과 이론동향을 잘 묘사한 것으로 파악한다.) 굵직하게 살펴본 것 같다. 이러한 감정의 흐름들, 정서, 감성에 관한 것은 정동이론으로....또 다시 스피노자를 살펴보게 만들었고.....브라이언 마수미의 책까지 닿게 만들었다.

1. 가상계의 후속작인 이 책 또한 낯선 용어와 읽기 어려운 난해함이 많다. 그나마 비교적 간결하고 핵심이 들어있는 것은 이 책 서론이 아닌가 한다. 밑줄을 남겨둔다. 그리고 나머지 가상과 사건/가상계의 밑줄 흔적을 다 올릴 마음이다.

2. 비주체, 비철학, 세계는 없다, 이분법, 어쩌면 우리는 바닥을 같이 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허망함에서 우리의 일상과 모임, 사건에 연루된 느낌을 어떻게 보존하고 번지는지는 다시 짚어봐야할 것이다.

3. 어느 날 주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긴 후,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고, 그림을 그리고, 내가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 이후의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4. 이는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다. ˝나˝는 없고 ˝너˝도 없다. 그 사이 충만한 느낌들과 사건들....저자는 과정의 특이성을 말한다. 이분법이 아니라 얼마나 달라지는가...물론 깨닫고 앎을 추수리는 것은 이후의 일이다. 황당과 당황 사이......지성은 서로 나누게 쟁점화함으로써 더 나아지는 것이리라. 같이 다르게 읽기, 다르게 나누기가 절실한 시절이다. 정치가 미래를 보증한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우리의 삶은 얼마나 미학-정치적인가? 따져보자....서로...감정이 얼마가 강한 탄력성을 갖고 있는지 자유한국당과 친박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그들이 이 이론에 합당한 행위를 하며 자기 몫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추악-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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