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 대가천 2(은어낚시); 나는 은어를 본다/물의 힘줄 속에 그것들의 길이 있다/물의 힘줄을 은어들이 당겨 강이 탱탱해진다//나는 은어를 본다/강의 힘줄이 내 늑간근에도 느껴진다/그 밖에 중요한 것은 없다//나는 은어를 본다/언어에 기대어서/이건 물론 중요한 게 아니다//누가 강의 힘줄을 풀어놓느냐/강에는 은어가 올라와야 한다/그 밖에 중요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하석, [고령을 그리다]에서

2.

[ ] ‘당연하다‘는 판단에 숨은 차별 감정: 차별 문제에 있어서 ˝이는 차별이 아닌 구별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당연하다‘라는 말을 인습적, 비반성적으로 사용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그러는 것은 당연하다. 여자는 당연히 그래서는 안된다. 중학생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일본인은 당연히 그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모든 논쟁을 별다른 고민 없이 ‘당연하다‘는 말로 귀결시켜서 끝내 버리려는 나태한 ‘당연주의자‘이다./차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원래 그렇다‘, ‘당연하다‘,‘자연스럽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왜냐하면 그들은 분위기만 읽고서 마이너(소수자)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깨달을 생각도 없다. 14,15

[ ] 어떤 구별로 인해 실제로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은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의식적으로라도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제안이다. 장애인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하며, 운좋게 미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운 좋게 명석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할 것이 아니라, 이를 엄연히 부채로 받아들여야 한다....성공한 사람도 본인이 겸허한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이들이 겸허한 것은 열성형질을 가진 사람, 일에서 실패한 사람, 인생에서 행복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비굴해지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범죄에 물들지 않고 사는 것에 비한다면 무한대로 쉬운 일이다...이들 역시 상대적으로 열악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나 불운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한다. 12, 13

[ ] 공격성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이를 무비판적으로 배제하고 부정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차별 감정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 안에 틀림없이 존재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공격=악의를 일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온갖 악의와 그 표출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떠올리며 현실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은 악의와 싸우며 그것이 폭주하지 않도록 단단히 제어하는, 이러한 노력 속에서 생의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인간의 악의를 천편일률적으로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악의가 있기에 삶이 풍요롭다. 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그 삶이 가치를 결정한다. 11

[ ] 어째서 그는 (현재적, 잠재적) 피차별자이고 나는 아닌가? 20; 우리는 이 질문을 걸고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차별 철폐를 향해 매진하는 것도, ‘차별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포기하는 것도, 모두 아니다. 우리 안에서 꿈틀대는 차별 감정을 비판해야 한다. 차별 감정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비판 정신‘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이론과 실천도 자기비판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면,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면, 일단 고개를 돌려 외면해도 무방하리라. 20( 이상을 실현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장애인이나 여성 등 공인된 피차별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대의 강한 흐름에 몸을 내맡긴 채 역차별을 단행하기 쉽다.)

[ ] 나는, 평소에 ˝평범하기 싫다.˝ ˝어떻게든 나를 평범함에서 빼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즉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셈이다. 이는 ˝평범한 세계˝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여러 차별과 차별의 징조를 최대한 알아채고, 그것들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바꿔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다.....각자 자기 안에 깃든 ‘자기만족에 빠진 자신‘을,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자신‘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이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을 경계하는 것이다....문제는, 이른바 ‘낮은 곳‘이 이미 ‘높은 곳‘이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낮은 곳에 있는 자의 복종이 악취를 풍기는 오만이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차별 감정과 진지하게 마주한다는 것은 ‘차별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을 열어서 파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 차라리 모두 내던지고 죽고 싶다고 바랄 정도로, 즉 차별로 괴로워하는 사람과 ‘대등한 위치‘에 이를 때까지 자기 안에 숨은 나태함과 눈속임과 냉혹함과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다. 204, 206 나카지마 요시미치, [차별 감정의 철학], 바다출판사 에서

3.

[ ]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사람답게 사는 삶은/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7

[ ] 현대 한국인은 ‘내 것‘ ‘내 새끼‘에 빠져있다. 남의 것을 더 소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서양이 목적 지향적이고 동양이 관계 지향적이라고 했지만, 현대 한국인은 전쟁의 트라우마을 여지껏 앓고 있는 ‘이해관계 지향적‘이라고...잘해줘 봤자 즉각적인 이득이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남을 무성의하게 대해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12, 13

[ ] ˝참 피곤하게 사네.˝ ˝너 혼자 그런다고 변해?˝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아˝....역설적으로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할까 봐 가장 두려운 듯하다. 41

[ ] 비건은 형용사: 완벽한 비건을 몇 명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들을 더 ‘비건적‘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훨씬 효과적이라고. 동물을 살리는 데도,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공중 건강을 위해서도 말이다. 일단 비건-친화적인 사회가 되기만 하면, 실천하기가 점점 쉬워지면서 비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건은 내게 정체성이나 명사이기 이전에 형용사이다. ‘비건적‘인 작은 노력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비건은 소수자 운동을 넘어서서 정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54

[ ] 덴마크, 독일, 스웨덴에서는 이미 ‘육류세‘의 도입을 의회에서 검토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국민 건강 때문이다. 가디언지는 이 제도가 5-ㅔ10년 내에 도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wework‘같은 기업은 사내의 모든 공식 식사에서 육류를 금지했으며, 업무를 위한 식대도 육류의 경우엔 환급을 안 해주기도 결정했다. 71 이상, 김한민, [아무튼, 비건] 에서

4.

[ ]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가고 있는 중일까요?˝/˝나도 가고 있는 중이에요.˝/˝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가요?˝/˝나도 나에게로˝ 0 김숨, [너는 너로 살고 있니]

5.

[ ] 서른세개의 동사들 사이에서: 빛의 옥상에서/서른세개의 날개를 돌려라//오다 가다 오르다 내리다 흐르다 멈추다 녹다 얼다 타오르다 꺼지다 보다 듣다 생각하다 말하다 삼키다 뱉다 잡다 놓다 울다 웃다 주다 받다 묻다 답하다 밀다 당기다 열다 닫다 떠오르다 가라앉다 부르다 사라지다 넘다//서른세개의 동사들 사이에서/하나의 파도가 밀려가고 또 하나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니/세상은 우리의 손끝에서 부서지고 다시 태어날 것이니//기다리지만 말고 서른세개의 노를 저어 찾아라/세계의 손끝에서 마악 태어난 당신을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 에서

볕뉘.

1. 이하석 시인의 젊을 적 시집이다. 사진 속의 그는 모서리가 남아있다. 천둥의 뿌리를 왜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는데 이 시 안에 힌트들이 있다. 쉰여섯. 조금은 미숙한 나이. 아니 많이 미숙한 나이. 나에겐 그 나이가 버겁다.

2. 책들을 조금씩보다 놀랍기까지 했다. 어쩌면 한꺼번에 기획을 하듯이 같은 말이, 아니 다른 색의 말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폭포같은 하지만 비수같이...침끝같이 온몸에 박혀버린다.... 참 아픈 어쩌지 못하지만 어째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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