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편지

[ ] 공명- 그와 같은 난세에 깊은 산속에서 책을 읽고 지내는 인간의 삶이 허락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놀라움이다. 현실의 삶의 소용돌이를 자기 정신 속에서 진실하게 반영하면서도 그 소용돌이에서 직접 비켜선 자리나 개인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문화다.....현실세계를 고도의 반성과 사유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개인이 자기 바깥의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의해서 한낱 동원의 대상으로 내몰리지 않아야 된다....자기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경작‘할 수 있는 자유! 자기 생활의 독립과 품위를 보장하는 문화! 221

[ ] 길에 관한 명상: ‘길들인다‘는 것은 주체가 아닌 것을 주체에게 본질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뜻인데, 그 현상을 우리말에서는 ‘길들인다‘고 나타낸다. 밖에 있는 길을 안에 들여놓는다는 표현이다. ‘안‘이란 물론 인간의 안, 인간의 의식, 인간의 감각의 ‘안‘에 ‘들여놓는다‘는 뜻이다. 31 길 ...>길들이기..> 기르기, 이렇게 ‘길‘은 인간의 곁에 가까워지고마침내 인간 자체의 능력, 인간이 자기 안에 갖추게 되는 ‘기술‘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객체였던 것이 주체의 내용이 된다. 32

[ ] 길:하늘에도 길이 있고, 물에도 길이 있고, 땅에도 길이 있고, 짐승들에게도 길이 있으며 짐승과 식물과 사람 사이에도 길이 있게 되었다. 이처럼 ‘길‘이라는 말에는 운동과 규칙성, 객체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 그리고 ‘관계‘따위의 - 인간 의식이 세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인식 형식이 모두 들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침내 ‘길‘은 ‘길이‘라는 추상적인 형식에까지 이르는데 이것은 일차적으로 공간적인 개념이면서도 시간적인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그러니까 ‘길‘이라는 말은 실체, 관계, 운동, 시간, 공간, 기술이라는 개념을 모두 가지고 있다. 32, 33

[ ] 길:언어체계란 인간의 경험인 머릿 속의 산과 벌판, 강과 바다를 시간과 공간의 축 위에 표시하기 위한 좌표계이고 낱낱의 단어는 그 지점의 좌표 값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마음‘이라는 혼돈의 공간에 가로세로 줄을 긋고 그 줄의 교차점마다 이정표를 세우는데 그 이정표의 문면이 우리가 낱말이라 부르는 사물이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해서 길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길은 마음 속에도 있다. 이 마음속의 길은 비가 와도 허물어지지 않고 지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말‘이라는 것은 어느 문명에서나 신성하고 신비한 힘을 가진 실체로 오랫동안 믿어왔는데, 그것은 이처럼 ‘말‘이라는 것이 ‘길‘이 내면화된 것으로 인류의 경험의 요약이며, 자신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길‘은 ‘진리‘ ‘지식‘ ‘힘‘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된다. 이렇게 쓰일 때의 ‘길‘이란 곧 ‘말‘이다. ‘길‘ ...> ‘말‘..> ‘진리‘라는 길을 밟는다. 35

[ ] 혁명의 본질: 포석 조명희; 타성을 휘어잡고, 그것의 주인이 되자고 할 때 비로소 인간은 짐승에게서 갈라선다. 마음이 없으면 마음의 아픔도 없다. 마음은 아직, ‘밖‘에는 없는 것을 자기 안에서 꿈꾼다. 이 꿈과 현실을 비교한다. 꿈이 현실이 되게 하려고 행동한다. 그는 성공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좌절하더라도 그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좌절한 것이다. 그는 인간답게 살았다. 257 노예제도가 나쁘다는 아무런 윤리적 선험 원칙도 없다. 노예들이 싫다고 할 때 비로소 원칙이 생기는 것이다. 노예가 되느냐 자유민이 되느냐, 그것은 취미의 문제다. 적어도 형이상학적인 아무런 근거도 없다. 어느 쪽이 ‘옳다‘는, 다만 노예든 자유민이든 그 속에 있는 자는 계속 그렇게 있고 싶은 타성을 지닌다. 그것을 바꾸려는 시도가 오히려 귀찮음으로 대해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316 노예의 달력에는 늘 여름만 있고 자유민의 달력에는 겨울도 있다. 겨울과 폭풍을 두려워하는 자 - 그것이 노예이다. 322 이상 감정이 흐르는 하상에서

볕뉘

흔적들을 다시 보면서 많은 느낌들이 생겨난다. 몇 편의 소설 속에서 작가로서 위상보다는 끊임없이 사유하는 모습이 더 감겨오른다. 아포리즘도 그러하다. 어쩌면 그의 흐름들이 온전히 담겨있는 이 책으로 갈증을 목축이고 있다는 느낌. 더 살펴볼 수밖에 없는 아릿함이 배이기도 한다. 아직 옮기지 못한 밑줄들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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