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 ] 낡은 패턴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패턴 자체를 조금 더 의식하는 것이다. 6 누구나 알고 보면 깊숙한 문제가 있고 함께 살기가 힘든 사람들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직 잘 모르는 사람‘뿐이다. 이것이 고전주의적 접근법의 하나이다. 7 나의 관심사는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끈기 있게 스스로를 분석하고 여러 가지 선택지를 시도해본 후에야 어떤 일이 나에게 ‘딱 맞는‘ 일인지 알 수 있다. 9

[ ] 본능을 따르면 반드시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론은 사랑에 빠지는 상대가 나를 이상적으로 보살펴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보살펴주는 사람이라 주장한다. ..어른이 되어 맺는 관계 안에서, 어릴 적에 아주 익숙했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한다...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너무 괜찮아서, 그러니까 왠지 매우 안정적이고 성숙하며 사려 깊고 믿음직해 보인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그런 올바름이 낯설고 과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을 태우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와 함께하는 삶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해서 좌절감을 느끼는 편이 편하고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5, 36

[ ] 우리를 폭발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상처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57

[ ] 우리는 ‘사랑‘이 마치 하나로 이루어져 더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인양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 사랑은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라는 매우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관계에 능숙해진다는 것은 기꺼이 사랑할 마음이 더 커지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자신의 이상하고 위험한 태도를 더 많이 의식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69

[ ] ‘가정적인‘이란 말은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할 때 주로 반복되는 실질적인 문제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장보기나 냉장고 청소부터 사촌을 저녁식사에 초대해야 하는지 여부나 휴가 때 작년과 같은 곳에 갈 것인지 등이 포함된다...하지만 예술을 대할 때 쉽게 인정하듯이 세세한 부분이 중요하다. 원대한 주제가 뚜렷해지는 작은 지점이 바로 세세한 부분이다. 시인이 단어 하나 선택하는 문제를 두고 고뇌하듯이 말이다. 74, 75 우리가 작은 것에 분개하는 이유는 그 다툼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니다. 다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다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다품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없다...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 어렵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외교분쟁처럼 다루는 것이다. 76

[ ] 그리스식 애정관은 다른 무엇보다 상대방의 좋은 면과 뛰어난 능력을 흠모하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가진 강력함이나 현명함, 친절함, 정직함, 재치, 혹은 아량을 접할 때 느끼는 설렘이라는 이야기다. 그리스인은 사랑이 모호한 감정이 아니라는 견해를 받아들였다...반면에 낭만주의는 상대의 약점이나 문제점도 포용하고 심지어는 소중히 여기라고 말한다. 또한 이 이데올로기는 사랑하는 사람이 날 가르치려 든다는 구조 자체에 반감을 갖는다. 81, 82 하지만 우리는 어린아이나 동료에게 가르침을 줄 때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번 할 때마다 칭찬을 열 번 하고, 충분히 기다려주기도 하는 방법을 사용할 줄 안다. 83

[ ] 우리의 괴로움과 불안을 잠재울 해결책은 특이하게도 비관에 있다. 사실 비관은 무척 매력 없게 들리는 개념이다. 비관은 실패와 관련이 있고, 더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을 방해하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부부관계에서 기대보다는 비관이 오히려 낫다. 89 서로가 실망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은 어떤 개인의 특별한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 명의 배우자는 그 사람만의 구체적인 문제가 있다. 하지만 어느 배우자든 똑같이 사람 미치게 하는 그만의 콤플렉스나 결정,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배우자에게 정말로 특별한 점은 우리가 그 사람의 가장 나쁜 면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사람의 매력은 아직 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서 그 또한 우리를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는 점에 있다. 93

[ ]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때맞춰, 든든하고 온화한 태도로, 극적이거나 격앙된 감정 없이, 자신의 성격 중 가장 까다로운 면을 알려주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고는 마치 재난지역을 안내하는 여행 가이드처럼 문제가 될 수 있는 지점을 상대방이 겁먹지 않고, 이해심을 발휘하며, 적절히 대비하고, 어쩌면 용서하고 받아들이기까지 할 수 있도록 주의를 준다. 112

[ ] 결혼하시오. 후회할 테니. 결혼하지 마시오. 그래도 후회할 테니. 결혼을 하거나 안 하거나 어느 쪽이든 후회하게 될 것이오. 세상이 어리석다고 비웃으시오. 후회할 테니. 세상이 어리석다고 슬퍼하시오. 그 또한 후회할 테니.....목매달아 죽으시오, 후회할테니. 목매달지 마시오. 그 또한 후회할 테니. 목을 매거나 안 매거나 어느 쪽이든 후회할 것이오. 목을 매든 안 매든 둘 다 후회하게 될 것이오. 선생들, 이것이 모든 철학의 정수라오. 138

[ ] 혼자 살든 부부로 살든 모두 문제점이 있다. 혼자 살면 외롭고, 함께 살면 답답하고 화나고 불만스럽다. 우리의 관계가 어떤 상태이든 간에 아주 비참하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결국 너무 급하게 부부관계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 말아야 하되, 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144

볕뉘

안전. 상처받는 두려움. 한 칼럼에서 이런 글을 봤다. 일터문화가 비교적 잘 유지되는 곳에는 안전함이 깃들여 있다고 말이다. 두려움으로 밀어부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중에 안전으로 열려있다는 말. 어쩌면 우리 몸은 아직 구석기시대여서 본능적으로 낚아채려는 것은 안전에 대한 욕구인지도 모르겠다. 식욕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동물 역시 사람을 보면 느끼는 것은 두려움이다.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동물이 더 무섭다는 말. 그래서 사람도 평생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조직은 성과를 향해 밀어부치고 그 두려움을 은연중에 조장하지만 결코 잘된 방법이 아니란 걸 말이다. 어쩌면 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남을 만나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며, 그 거리없음을 거리있음으로 시작해보는 것이다. 역시 비관이나 체념은 많은 것들을 도드라지고 보이게 한다. 관계도 그렇게 조심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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