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유대인, 몸

1.

[ ] 프라하의 유대인 작가: 카프카는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작가의 길을 생계를 위한 직업이나 부차적인 취미가 아닌, 자기 자신의 실존을 중차대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그 자신에게나 독자에게나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진지하고 심각한 일이었고 특히 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69

[ ]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은 우리를 아주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이라네. 마치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마치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내쫓겨 멀리 숲으로 추방된 것 같은, 마치 자살과 같은 불행 말일세. 책은 우리 내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네. 70

[ ] 19세기 중후반을 거치면서, 문학은 시민혁명, 산업 혁명, 도시화 시기를 거쳐 자수성가하여 중산층으로 발돋움했고 이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으로 가득 찬 낙관적 부르주아였던 아버지 세대에 대항하여, 아들 세계가 반기를 든 것으로 주로 문학과 예술에 탐닉하면서 유미주의 성향에 빠진 주인공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73

[ ] 카프카는 동부 유대인 극단의 연극에 큰 감명을 받아 [야만인]을 위시한 거의 30편 정도의 공연을 관람했다. 그는 그 공연에 대한 기록을 100쪽 넘게 편지와 일기에 남겼고 이 영향은 오래 지속되었다. 80

[ ] 이시디어를 느끼면서 이해하려면 몸을 먼저 평안하게 해야 한다. 이때 이디시어를 전체로 받아들이면 어떠한 통일성을 느끼게 되는 이 통일성은 너무나 크고 강력해서 두려울 정도이다. 이러한 인지와 감동, 통일성을 느끼는 매체로서의 몸을 강조하는 언어관은 카프카의 문학관과도 연결된다. 86
[ ] 서유럽이 외향적으로 흘러 공리주의와 과학 문화를 발달시켰다. 동유럽이 내향적으로 흘러 자기 자신의 영혼을 주시하고 과거에서 새로운 힘을 얻으려는 경향을 갖게 되자 동유럽의 유대인들도 내향적으로 흘러 지성의 등을 자신의 과거에 비춰 보고 거기에서 미래를 내다보려고 했다. 서유럽의 유대인은 서구화된 문명을 산출하고 동유럽의 유대인은 유대인 문화를 산출했다. 87

2.

[ ] 보고: 주인공 원숭이는 인간 사회에도 원숭이 사회에도 완벽하게 소속되지 않는 제3자로서 혹은 혼종적 존재로서 특히 자신이 동화하고자 하는 인간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105

[ ] [동물과 인간에 대하여]에서 하겐벡은 동물의 영혼에 인간적으로 접근하면 야생동물을 폭력적으로 길들이지 않아도 조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야생에서 포획한 동물들을 목적에 더 합당하게 그리고 더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면 유럽으로 데리고 올 때에나 나중에 유럽의 동물원이나 서커스에서 훈련시킬 때 더 수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9

[ ] 우리에게 동물이 인간보다 더 가깝지요. 그것은 바로 창살입니다. 동물과의 유사성이 인간과의 유사성보다 쉽지요...모두들 자기가 짊어지고 가는 창살 뒤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동물에 관해서 그렇게 많이 쓰는 겁니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에 대한 동경의 표현이지요. 그러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삶이란 인간의 삶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려고 하지 않아요. 인간의 삶은 고달프고 그래서 사람들은 적어도 그것을 환상 속에서 털어 버리려고 하지요. 115

[ ] 카프카에게 예술가들은 대체로 아름다운 가상을 만드는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몸 전체를 도구로 사용하면서 때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던져야 하는 절실한 기예를 구사하기 때문이다.129

3.

[ ] 변신: 잠자는 갑충으로서 방바닥뿐 아니라 벽과 천장에까지 기어다니고 더 나아가 천장에서 일부러 떨어져 보기도 한다. 잠자는 자신의 새로운 몸에 익숙해지면서 벽과 천장을 기어 다니고 누이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 소파 밑에 드러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한편으로는 기생동물로서의 안락하고 나태한 생활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탄자에 몸을 비벼 대거나 벽과 천장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면서 끈적끈적한 흔적을 남기는 갑충의 모습은 잉크로 써서 글을 남기는 작가를 상기시키면서도 자신의 온몸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85

[ ] 인간 언어의 습득과 상실은 진화와 퇴화의 분기점이자 동물 세계와의 경계를 기록한다. 한편으로는 잠자에게 언어의 상실은 인간 세계와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이제까지 세계와의 교류에 있어서 자신의 내면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일상화되고 자동화된 매체로서 작동했던 언어를 버림으로써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외부 세상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신의 정신과 몸을 느끼고 관찰하게 된 것이다. 몸은 이제 내면을 표현하는 매체로서 더욱 중요해지는데 더 이상 인간의 이성적 언어가 아닌 새로운 동물의 몸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186

[ ] 생명의 예술: 갑충인 잠자는 글을 쓰거나 사색을 하는 작가가 아니라 온몸으로, 그것도 자신의 체액으로 원시적인 흔적 남기기로 쓰기 행위를 한다...요제피네 역시 주는 성악가이지만 아름다운 가곡을 부르른 것이 아니라 휘파람을 불 뿐이고, 단식예술가에서 마찬가지로 어떤 창조적인 성과나 업적을 보여주는 예술이 아닌, 부정적 행위를 하지 않기, 즉 자신의 몸을 통해 보여주는 굶기, 먹지 않기일 뿐이다...이는 아름다운 예술이나 창조적인 예술과는 거리가 멀고 서커스의 기예, 기술에 가깝다....카프카가 묘사라는 몸의 예술은 당대에 자신의 몸을 사용해 과격하게 표현했던 예술 분파 삶의 예술과는 거리가 있지만 한편으로 목숨을 걸고 죽음에 이르도록 극도로 밀고 나가는 절박한 예술이라는 점에서 ‘생명의 예술‘이라 볼 수 있다. 188-189

[ ] 잠자는 누이의 음악에 몸을 움직이게 되는데 내적 변신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때 음악은 카프카에게 예술의 개념이 그러하듯 문화적이고 고양된 의미라기보다는 음성적 질료다.....이런 ....자신이 열망하던 미지의 어떤 양식에 이르는 길이 열리는 것 같았다라고 그는 쓰게 된다....단식 예술가에서 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단식하는가라는 물음에 그 이유로 ˝왜냐하면 저는 입맛에 맞는 음식(양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을 찾아냈다면 저는 정말 결코 세인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을 테고 당신이나 다른 모든 다른 사람처럼 배불리 먹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단식 에술가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양식에 이르는 길을 잠자는 발견한 것이다. 양식의 문제는 [어느 개의 탐구]에서도 다시 이루어진다. 우리의 양식이 대지에서 온다면 대지는 어디에서 양식을 얻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195

[ ] 잠자 역시 다른 단편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해 갑충으로서 ˝말라서 납작하게˝ 죽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죽는 인물들은 슬픔이나 비탄, 고통에 빠져 죽지 않는다. 주변 세계도 죽는 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애도도 표시를 하지 않는다. 주변 세계도 죽는 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애도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짐승 같은 죽음을 맞으면서도 내적으로는 자신과의 일치 속에서 평온하게 죽는데 예를 들어 단식 예술가는 계속 단식을 하겠다는 굳은 확신에서 행복감에 취해 죽고, 선고에서 게오르크는 ˝부모님, 항상 저는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라고 외치고 아버지의 선고대로 물에 빠져 죽는다. 잠자도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해 감동과 사랑의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해 보고˝ 자신의 평화로운 생각에 잠겨 죽어 간다. 198 이러한 죽음은 한편으로 법의 심판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다른 한편은 종교적 재판의 색채를 강하게 띤다...이들의 죽음은 동물에게나 사용되는 뒈지다라는 폄어로 표현된다. 보고에서도 원숭이의 동물로서의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뒈진˝ 원숭이라 부르고 있다. 206

볕뉘

0. 마저 읽다. 유대인으로 이력과 유럽 서부유대인과 동부유대인의 삶, 역사들. 다른 단편들과 이어서 설명한다. 일정부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1. 입양된 동양인이 자신의 몸으로 정체를 서구인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여성이, 장애인, 노인, 환자가 모든 사회적 약자는 이런 이중, 삼중, 사중의 정체에 시달리게 된다. 정상남자 백인의 유럽인으로 정체와 다른 모든 것은 시달린다. 어느 곳이나 삶의 울타리는 유사하다.

2. 창살에 벗어나는 길. 삶에 대한 질문. 어쩌면 이 삼중의 복선들에서 슬며시 답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삶만 묻고 삶만 배우기 시작할 것. 어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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