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덮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The Course of Love,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6.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를 읽으며 보통의 소설이 생각났다. 한때는 보통의 책을 즐겨 읽었는데 이 책은 보통이었다. 흥미를 몰고 온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형식이지만 그래서 형식미는 더 이상 새롭지 않았고 줄거리와 작가의 철학적 견해에도 독창적이고 깊이있는 통찰이 없었다. 보통의 글이 재미가 없어졌나 했는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제목을 다시 보며 알았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의 동화는 보고싶지 않고 재밌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후의 일상에 대해서는 넌더리 날 만큼이나 잘 안다는 생각과 맞물려 소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이다.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그 어떤 아는 체, 철학적인 말보다 그냥 상황을 보여주며 스스로 느끼는 것이 더 강렬하게 와 닿는다고 생각했다. 결혼 이후의 생활과 부부의 생각들에 관한 것으로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그래서 보통의 이 소설보다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가 더 강렬했고 같은 내용에 대해서라도 더 생각하게 했고 느끼는 것이 컸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지고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말해 라비와 커스틴이라는 평범한 이들의 결혼생활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제도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라 말하는 작가의 사랑의 의미가 결혼 생활과 맞물려 어떻게 전개될지 보는 것은 익숙한 길로 달리는가, 돌아가는가, 전혀 다른 길로 가는가에 대한 궁금증과 같다. 보통 결혼이 사랑의 결말이라 생각한다고 보면 보통은 이와 다르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여러 편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접한 후에야 라비는 몇몇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ㅡ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ㅡ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작가도 지적했듯이 결혼은 낭만과 환상의 감정에서 결정하고 결혼생활은 낭만을 현실적으로 얼마나 잘 조리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간다. 어찌보면 한마디로 ‘꿈깨라’ 아닌가. 결혼도 결국 보다 친밀한 사람에 대한 관계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진짜 러브스토리가 이런 것이라고? 결혼하고 난관을 겪고 돈문제로 걱정하고 자식을 낳고, 그리고 외도라… 이것이 서양스타일인지 결혼생활이라는 보편에 필연적으로 포함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외도의 문제는 특별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고’ 정도로 인식하게 되는데, 이토록 당연한 수순의 이야기로 배치되면, 그렇다는 것은?

  일상의 사소한 일에 이견이 시작되면서 점점 쌓이고 커져가는 서로에 대한 감정과 결혼에 대한 의미. 상대방에게 느꼈던 애정과 충만함이 사그라지고 점점 토라짐과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증가하고 또한 무심해지며 마침내 섹스 또한 시들해지는 중에 외도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이 외부적이면서도 내부적인 ‘사건’을 맞닥뜨리며 외도 당사자는 스스로의 내면에 귀기울인다. 오로지 그 행동에 대한 ‘제발저림’으로 논리를 통해 이 난관을 극복하려는 외도 당사자의 노력이 참, 눈물겹다. 그리하여 마침내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새롭게’ 바라보고 이에 대한 기존의 관념적이고 통속적인 개념을 숙지하는 과정. 이 일련의 과정에서 결론을 어떻게 내리느냐가 결혼의 종지부로 가는 건가. ‘외도’라는 큰 사건이 없다면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끔 하는 계기는 무엇이 될까. 한국의 경우라면 외도보다 ‘시댁과의 관계’ 고부관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거기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을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이 모든 것을 거쳐, 지속발전한 관계를 이루기 위한 결론은 낭만은 좀 묻어두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소설에서 드라마에서 본 이야기들에 몰입되어 현실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좀더 우호적이 될 것과 더불어 완전히 이해받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결혼이 준비되었다고 느끼는 때라고 말한다. 파트너는 완벽하게 서로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취향의 차이를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옳거니 하다는 것이 매우 현실적인 조언임을 실감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참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마침내 행복한 미래를 위해, 특별함을 특별화하지 않아야 하는 삶으로 전진해야 한다. 이 모든 난관 뒤에 그 어떤 깨달음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기도 하면서, 애처로운 일인듯이 여겨진다. 왜,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수많은 간접경험으로 학습함에도 불구하고 적용에 이르러서는 실패하고 마는가.


그들은 함께 이뤄온 것에 황홀한 충성심을 느낀다. 다투게 되고 화나고 웃음 나고 어리석고 아름다운 그들의 결혼 생활은 틀림없이 그들만의 것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여기까지 온 것,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광기를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노력하고 그때마다 새로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결혼 생활을 지켜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여기까지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많기도 많았을 텐데, 이별이 자연스럽고 거의 불가피한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결혼 생활에 머무른 것은 기이하고도 신기한 업적이며 두 사람은 그들만의 전투로 단련된 상흔 입은 사랑에 충성심을 느낀다.


  라비와 커스틴의 이 이야기들, 그리고 다다른 결론. 전투로 단련된 상흔에 느끼는 사랑이여. 이 전투의 승리는 승리인가. 영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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