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멋진 일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버티고, 2006-09-25.

 

  체코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인데 번역작은 단 세 권이다. 작가 자신이 마흔 아홉 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은 작가인가 했더니 그렇지 않았다. 보후밀 흐라발의 책은 정말 많았다. 금서로 지정되어 출판이 금지당하는 상황에서도 체코를 떠나지 않고 체코어로 글을 쓴 작가라면 왜 우리나라에서 이 작가의 작품이 작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체코라는 나라라는 언어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이 작가의 사상 역시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이 나라에서 보후밀 흐라발의 작품을 좋아할 리 없다. 이제, 이 작가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어 나올 수 있을까. 2016년 소설가들이 뽑은 소설로 보후밀 작가의 작품이 선정되었으니, 기대를 가져본다. 열정적으로 체코어를 배워 원서를 읽기에는 한계가 명확하기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 소설은 1965년 출간된 작품이고 소설의 내용은 1945년의 체코를 배경으로 한다. 1945년은 잊혀지지 않는 해이다. 대한민국이 광복한 해이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많은 나라들이 전쟁에서 벗어나며 독립한 해이다.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 불리는 만큼 이 책 역시도 전쟁과 냉전의 분위기를 가득 담은 슬픈 이야기로 흐를 것이라 짐작하긴 했지만 등장인물들은 초반부터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지금에서야 그 때가 전쟁의 막바지라는 것을 알지만 당시 살아가던 사람들에겐 전쟁의 종결이 다가오는지 알지 못할 1945년의 체코. 여전히 독일에 점령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체코인들의 모습은 일상을 살고 있지만 그들을 둘러싼 ‘전쟁’이라는 분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한편으론 그렇기에 극도로 우습게 보이는 행동들이 전쟁의 탓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수습 역무원인 주인공 밀로시 흐르마의 족보에서도 희화화되는 등장인물들이 비장미와 함께 등장한다. 밀로시는 가족의 이런 계보를 이어받는다. 


보통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은 나 같은 젊은이는 무슨 고민으로 괴로워할까? 물론, 나는 마을 사람들이 마치 우리 루카시 증조부나 최면술사 빌렘 할아버지, 또 단지 25년 동안만 전차를 몰고 그 후로 지금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사시는 내 아버지처럼, 나 역시 단순히 일하기 싫어서 내 몫의 일까지 다른 사람들한테 떠넘기려고 손목을 그은 거라고 생각하며,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p18


  전쟁 속 스물 두 살의 고민이 무언가, 시대적인 상황이 그를 자살로 몰고 간 것일까 잔뜩 궁금해하며 마음이 한창 아린 그때 밀로시는 말한다. 여자 친구와의 첫경험에서 실패했다고, 그것이 이유였다고. 지금 그토록 엄중한 시기에 그런 것을 이유로 자살하기엔 너무하지 않냐는 말이 튀어나올 듯하다. 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은 쉽다. 전쟁은 전쟁이고 개인에게 와닿는 일상의 고통은 그 종류와 강도가 다를 텐데도 ‘전쟁’을 들먹이며 밀로시를 비난하게 된다. 충분히 욕먹어도 되는 듯이 바라보게 된다. 밀로시도 그것을 느낀다. 누군가 자신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

  벽돌공의 도움으로 살아난 소심한 성격의 밀로시는 3개월 만에 기차역으로 복귀한다. 그곳은 늘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가 드나드는 곳이고 신호를 잘못 보냈다고 총살당할 뻔하며, 화물 차량에 빼곡하게 실려있는 죽기 직전의 가축들을 보아야 한다. 비둘기를 돌보며 승진에 목말라하는 역장에 기이한 행동만을 일삼는 후비치카로 인해 감독관이 파견되기도 하는 등, 사건이 끊이지 않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기차역이다. 이러한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여자친구와의 첫 경험의 실패로 자살시도를 한 밀로시와는 달리 후비치카는 전신기사 아가씨와 쉽게 밀회를 즐기며 심지어 옷벗기기 게임을 하다 역의 직인을전신기사의 엉덩이에 마구 찍어대기도 한다. 이 일로 조사를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독일인의 관점은 너무나 자신들 위주로 사고하는 것이 명백해서,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 죄가 성립하는 것 같지는 않군.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국가 공용어인 독일어에 대한 명백한 모독 행위라 볼 수 있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으로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역에서 사용하는 도장의 반 정도가 독일어로 새겨져 있으니까! 이건 명백히 독일어에 대한 명예훼손이야!” p82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계속 달린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독일군이나 독일군에게 필요한 물품을 실은 기차를 가리킨다. 체코만이 아니라 점령지 곳곳에서 달리며 내키지 않으면 총을 쏘아대며 체코인들을, 점령지의 사람들을 공포로 몰고 갈 것이다. 여전히 이러한 기차가 칙칙폭폭 마구 내달리는 체코, 기차역에서 일하는 밀로시는 이러한 공포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까. 총살당할 위기에서도 벗어난 밀로시가 전쟁이라는 공포에서 자살결심을 하지 않는 것은 놀랍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외친다.


모두 똑같아, 너희 독일 놈들도 바보들이라고. 아주 위험천만한 바보들이지. 나야 고작 자기 자신이나 조금 다치게 하는 바보일 뿐이지만, 너희 독일 놈들은 항상 남을 해치는 바보들이잖아. p48


  밀로시의 말대로다. 미칠 것 같은 상황에서 절대로 남을 해치지 않는 것. 그러나 끝까지 그렇게 될까. 밀로시는 선택한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에 폭탄을 던져넣는 것을. 그것은 결국 그의 죽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떻게 소심한 밀로시가 이러한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천만에요. 이렇게 편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아! 저도 이제 남잡니다. 후비치카 씨처럼 그런 남자가 됐다니까요. 너무 멋진 일이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동안 제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짐을 벗어 버린 느낌입니다.“ 나는 책상 위에서 긴 가위를 집어 들어, 날을 벌렸다 철컥! 소리나게 닫았다.

    “이렇게 제 과거를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p117


  밀로시는 오래전 “독일군은 탱크를 돌려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라”라는 최면을 걸면서, 꿋꿋하게 부대 전체를 향해 혼자서 대항한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그때 목숨을 잃었지만 할아버지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자신이 일찌감치 할아버지 생각을 했다면 폭탄을 던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감행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가슴속엔 할아버지의 이 정신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다만, 이 숨겨진 자의식, 자존감을 일깨워준 것은 그를 ‘남자로 태어나게 해 준’ 사건이다. 그렇다. 그는 역에 들린 누군가의 도움(?)으로 첫경험을 성공한 것이다. 그것이 밀로시로 하여금 전환을 이루게 했다.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폭탄을 던져 엄중히 감시받는 기차를 폭파시킬 행동력과 함께 그 행동력을 강화할 정신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첫경험의 실패 때에는 근방의 폭격이 있었고 첫경험의 성공 후에 그는 폭격을 하러 떠난다.

  눈 내리는 기차역. 눈이 아름답게 내리는 밤. 밀로시는 최선을 다해 폭탄을 던지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독일군 병사에게 발각되어 총에 맞기까지 한다. 서로 총을 겨누며 눈밭에 쓰러진 채, 서로에게 죽음만이 마중 나온 상황에서 밀로시는 독일 병사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는다. 그가 엄마, 엄마 외쳐서이기도 하고, 그도 자신도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평범한 같은 인간인데도 서로 총을 쏘며 죽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서로 좋아할 수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병사의 손을 잡고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 열차의 폭탄 터지는 소리만이 그를 조금이나마 기쁘게 만들었다. 그에 힘입어 우편열차 열차장이 독일인에게 했던 말을 자신도 병사에게 말한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


  그들이 그랬다면 서로가 총을 겨눌 일도, 타지에서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긴 하다. 눈 밭 위로 흘러내렸을 그들의 피가 얼마나 붉을 것인가.

  자존감과 자의식을 되찾은 밀로시는 그의 생에 마지막 순간, 독일군에게도 관대하다. 평범한 이들이, 소소하게 일상을 살아가며 첫경험에 실패한 것에 충격을 갖는 소심한 청년이 나라를 위해 제 의지를 가다듬는다. 기껏해야 권력을 쥔 이들의 더 큰 권력욕이 불사른 전쟁에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삶에서 수많은 첫경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스러져갔다. 지금도 여전히 특정한 이들이 제 야욕과 엉터리 정의로 세상을 지배하려 난리를 친다. 그깟 경험이야 하지 않아도 될 소소한 시민들이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제지시킬 방법은 정말 폭탄뿐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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