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일 수 있는 방법


오소희,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이 여행의 기록이 터키라는 건 부수적인 것 같다. 터키라는 나라는 동서양의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로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물론 전적으로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글이 아니라 여행에 대한 에세이기에 터키라는 도시는 여행을 떠난 작가의 감흥을 불러 일으켜주는 소재가 될 뿐이기도 할 것이다. 그 특유의 느낌과 기억을 제공해 주는 것. 그래서 작가는 터키라는 나라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고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에 따라 내가 행해볼 여행지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오소희 작가는 많은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담은 책을 쓰고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의 꿈을 심어준 작가이자 현재는 동화작가로 그 영역을 넓혀 글을 쓰고 있다.

  작가의 여행기가 책으로 나왔을 때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은 ‘터키’라는 장소에 대한 매혹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이 첫 출간되었을 시기에도 여전히 ‘여행’은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꿈이자 매혹이었으니까. 또한 터키 역시 대표적인 여행지로서 각광받는 곳이니까.

  여행기에서 장소가 부수적이 되는 것은 이 책이 여행을 한 ‘사람’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이 여행기에 대해 많은 반응이 인 것은 감성적인 문체와 더불어 어린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난 엄마의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아직 어릴 뿐인 아이는, 한국말조차 서투를 듯한 아이는 낯선 땅으로의 여행에 엄마와 동참하고 때로는 엄마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더구나 세 살 아이는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잖은가. 이 모든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강렬한 자극제가 됨과 동시에 희망과 열망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이 말투는 희망적인 뉘앙스이지만 또한 비관적인 뉘앙스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이 글을 읽으며 엄마들은 희망을 꿈꾸었을까, 체념을 되새김했을까.

  여행을 좋아하여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여행을 두루 다녔다는 작가는 아이가 태어나서도 그 여행의 기억을 잊지 못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선택한다. 어쩌다 한번의 경험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리다시피 하는 이 삶에 대해 사람들이 물으면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고 말한다.  “좋으니까요.”

  어쩌면 혼자서 하는 여행과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해야 하는 것과 해야 할 것과 생각하는 것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남과 동시에 자신의 아이와도 만나는 여행을 하게 된다. 다행히도 아이는 칭얼되지 않으며 엄마의 여행의 방식에 함께 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알아간다. 또한 작가 역시 낯선 이들과 부대끼면서 그 속에 아이를 둠으로써 한발짝 관조적으로 아이를 바라보기도 하며 ‘내 나라’에서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일깨운다.  


아이가 그 옛날 술탄의 삶에 관심이 없듯 오늘 구석에 핀 들꽃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생생하게 현재를 좇는 아이의 눈은 죽은 자의 흔적을 따라가느라 치열하게 피어나는 생의 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그런 일은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일어났다. 아이의 보폭은 좁고 일정은 늘어졌지만 아이는 그렇게 걷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작고 조용하고 낡은 것들이었다. p45


  여행이 가져다주는 매력은 그것일 것이다. ‘일상’이라는 잣대에서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생각들을 얻는 것. 그것은 감사한 일이며 어떻든 성장하는 일이다. 작가가 혼자서 하는 여행과 자신의 아들과 하는 여행의 차이는 무얼까. 아이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하는 ‘엄마’가 있고 아이를 위해 ‘여행’을 하는 엄마가 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아마도 조금이나마 누군가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그것을 ‘엄마’의 문제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되면 ‘나’는 잠재워야 한다는 사고, 문화의 영향일지 모른다. 작가가 말하는 대로 “좋으니까요”. 인생을 살아가는 선택의 방식이 내가 좋은 것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삶은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행복이란 경험의 수와 폭이 많을수록 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아침’이란 어휘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서울에서의 아침이란, 오로지 바쁨과 서두름 속으로 나를 채찍질하는 시계의 분침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아침은 눈과 코와 귀로 음미되고 스며드는 어떤 것이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것에 대해, 위대한 우주가 내게 또 한 번 손길을 내밀어준 것에 대해 저절로 마음으로부터 경배를 올리게 되는 정결한 순간인 것이다. 그 자애로운 우주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인간이 펼쳐놓은 잡다한 그물에 얽혀 허우적거리고 마냥 조바심냈던 나날들이 부끄러워진다. p210


  누군가의 눈엔 한없이 이기적인 엄마이자 생각이 모자란 엄마로 비쳐질 수도 있고 마냥 행복한 이의 가진 자의 여유로운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래서 어쨌든 이 작가에 대해서 이 글에 대해서 부러움과 시기가 공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어 우리 역시 선택할 수 있는 또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삶의 방식은 내 것이지만 우리는 그 방식을 여러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다. 여행 역시도 타인의 여행의 기록을 통해 내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이다. 마침 이 ‘엄마’의 여행의 선택에 대한 답변이듯 터키에서 만난 노부부의 삶에서 작가의 대답을 얻는다.


한 터키인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여행을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짐작할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이기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꿈은 이기적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꿈이라는 것의 속성이 현실을 배반하기 때문에, 꿈꾸는 자를 얽어매고 있는 지독한 현실(생계나 가족 같은)에는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기적이지 않기 위해 꿈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메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후회가 남지 않는 것만이 더 나은 것일 것이다.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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