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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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파도가 왔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문학동네, 200.


  내가 느끼는 쓸쓸함과 고독, 더해진 안타까움이 자크 레니에를 향한 것인지 로맹 가리를 향한 것인지 모르겠다 싶을 즈음 책을 읽기도 전에 쓸쓸함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결론은 쉽게 지어졌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제목이 한껏 그러한 감정을 고조시켰고 ‘사람을 숨 쉬게 해주기보다는 짓눌러버리는 고독’에 가득찬 자크는 로맹 가리와 일체가 되어 버렸는데.

  열여섯 개의 이야기는 냉소와 허무를 자극했고 자크가 그러했듯 마지막까지 품었던 희미한 희망이 온전한 절망에 부딪치도록 내버려두었다. 판도라 상자 속 마지막까지 남은 희망이 저주로 귀결되어 버리는 버전인 양. 떠오르는 해에 이제 폭풍우가 끝났다 싶어 안도하는 순간 덮치는 가장 치명적인 파도라 일컫는 ‘아홉 번째 파도’, 그 또한 같다. 희망을 품지 않았다면 절망의 크기는 달라졌을 터이니.

 

하지만 그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쓰러뜨리고 뒤엎고 바닥으로 내던졌다가, 두 팔을 뻗고 두 손을 들어올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가, 지푸라기가 눈에 띄는 순간 매달릴 시간만 남겨놓고 놓아버리는, 먼 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세계의 끝, 새들이 페루의 외딴 바닷가 해변으로 찾아와 죽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전쟁, 혁명의 실패를 경험한 자크는 영혼의 위안이 되는 장소로 ‘시적이고 몽환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만 적막하고 고독한 그곳에서 그가 받은 위안은 깊지 않아 보인다.  새들처럼 그곳에 뛰어든 그녀는 “왜 이곳 모래언덕까지 와서 죽으려는 것인지 그에게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새”다. 이때 죽음의 이유는 곧 살아야 할 이유와 같은 말로 여겨진다. 그녀는 고독에 빠진 그를 구원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할 존재다. 그렇기에 그녀가 떠나고 희망이 사라진, 의미를 잃어버린 터전에 더 이상 남아 있을 것은 없다.

  분명 깔끔한 문체임에도 로맹 가리의 글은 마음을 질척이게 한다. 단편만큼 엽편이 가득한 이 소설집에서 연이어 인간의 양면성을 확인하고 나면 ‘인간의 성정(性情)에 민감’해진다. 끝내는 「벽-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속 금발머리 여인이 느꼈던 것처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감’이 밀려들어온다. 어쨌든, 버티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류트」속 백작 부인이 지켜내는 외교관 남편의 명예와 권위처럼 하찮아지는 기분이다.

  백작은 사교적이지도 않은 기질에도 불구하고 외교관으로서의 직업적인 수행을 잘 이뤄낸다. 이 모든 것은 ‘모범적이고 관례적인 모든 것을 지켜내는’ 생의 동반자 아내 덕분이다. 외교관 생활을 완료하기 전에 백작은 강렬한 예술에 대한 욕구로 골동품점에서 류트를 구매하고 젊은 류트 연주가에게 레슨을 받는다. 레슨을 거듭 받는다한들 서투른 백작의 연주 솜씨는 백작의 완벽한 예술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장롱 속 류트를 꺼내와 연주하는 백작 부인.

자신의 예술혼을 묵혀둔 채 사랑하는 남편을 위한 헌신적인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의 이야기인듯 싶었던 「류트」는 묘한 의혹으로 거듭 읽게 된다.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미묘함이 과한 상상이 아닐까 싶어 백작의 행동 하나하나, 아내의 말 한마디한마디, 골동품 상점 주인의 미소를 눈여겨보게 되는 맛. 로마, 지중해, 예술가, 16세기의 류트…. 로마 시대 카이사르에게 따라다녔던 그 의혹을 부추기는 이 단어들.


마치 그가 어떤 은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위한 그녀의 기도는 열렬하고 간절했다. 결혼생활 삼십오 년에 아이들도 다 자랐고, 자신이 말없는 애정―내밀한 부부생활에서도 표출하지 못하는 은밀하고 고통스러운―으로 감싸고 있는 그를 아무것도 위협하지 못하게 만들며 모범적인 삶의 절정에 오른 지금까지도 그녀는, 이스탄불 페라 호텔 내에 있는 프랑스 식 소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레이스 손수건을 쥔 채, 운명이 인간의 마음속에 탄생과 동시에 장치해두곤 하는 시한폭탄이 그의 내부에서 갑자기 터지지 않게 해달라고 몇 시간이고 기도하곤 했다. 하지만 완전히 노출된 햇빛 찬란한 긴 하루처럼 평생을 천직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느릿하고 차분하게 꽃피우듯 살았을 뿐인 사람을 어떤 내적 위험이 위협할 수 있단 말인가? ― 「류트」


  오래도록 감춰뒀다가 이제 폭발한 백작의 예술성은 거듭된 류트 레슨을 통해 완벽해질 법 하지만 백작 부인의 계획 아래 잘, 감춰진다. 백작 속에 있는 예술가 기질은 류트를 연주하는 것에서는 발현되지 않을 것이니까. 서투른 남편의 류트 연주를 완벽하게 포장해주는 아내의 성실함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 아내들의 꾸준하고 경직된 성실함이 세상의 진실을 가리는데 더없는 기여를 했음이다. 남편의 지위와 명예를 곧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며 지내온 아내의 불안과 초조로 일관된 기도의 이유는 가늠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지켜가는 것이 행복인가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의 ‘예술성’이 폭발되지 않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오직 신께만 드러냈을 백작 부인의 그 마음처럼 작가는 직접적인 단어나 묘사없이 이 코드를 그려낸다. 작가가 그려내는 대로 따라가며 그저 나는 절망하거나 냉소하거나 한번씩 웃기만 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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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4-10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저도 감명깊게 읽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쓴 작가 로맹 가리에 얽힌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제가 이 작가의 전기를 읽고 직접 만든 영상도 있으니,
재미삼아 한번 구경해 보세요~
https://youtu.be/vKy0n0XDJMM

모시빛 2020-04-13 12:50   좋아요 1 | URL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의 생은 참 인상적이죠.
그 생애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그렇고요.
마침 로맹 가리의 생애가 생각나는 날이네요.
oren의 영상으로 마음을 채우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