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일부 재편집한 콘텐츠임을 밝힙니다*

 

 

 

 

 

EP. 5

약속 시간에 자주 늦다

 

 

 



요코의 단점다운 단점이라고 하면 자주 약속 시간에 늦는다는 것이다. 

요코는 ‘눈앞에서’라는 말을 마치 인사말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눈앞에서 전철 문이 닫혀서요”, “눈앞에서 마지막 택시를 놓쳐서요” 등등.

어느 날은 내가 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는데, 평소와 달리 요코가 먼저 와 있었다.





“어머, 오늘은 당신이 늦었네요.”


그러고는 식당 주인을 향해 물었다.


“저기요, 저 지금 20분 전에 와서 쭉 기다리고 있었죠?”


식당 주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시간을 지켰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20분 전이든 아니든 간에 지금까지 늦었던 시간을 벌충해주지도 않는데 하는 생각에 나는 미소가 지어졌다. 

요코가 화장실에 잠깐 간 사이 식당 주인이 와서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진실을 알려줬다.


“사실 아내 분은 2~3분 전에 오셨어요. 거짓말을 해도 눈감아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모처럼 일찍 오신 게 무척 즐거우셨나 봐요.”


그로부터 1~2년 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지가사키 시내의 단골 국숫집에서 만나기로 했을 때 요코가 나타난 시간은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흐른 뒤였다. 

5분이나 10분 정도 늦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고, 그 즈음에는 요코 나름대로 노력하면서부터 지각하는 횟수도 줄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나 많이 늦었을까?

국숫집은 손님의 회전율이 빠르다. 나 혼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식탁을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따가운 눈총이 쏠리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마침내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뛰어 들어온 요코는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창백한 얼굴이었다.


“요 근처에서 앞차랑 접촉 사고가 났어요. 난 확실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큰 사고를 일으켜 두 번 다시 차를 타지 않게 된 나와는 달리, 요코는 지금껏 접촉 사고 한 번 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다행히 다친 사람이 없고 상대방의 자동차 수리비만 물어주면 되는 정도였다.


“그 정도로 끝났으니 다행이네.”

“미안해요.”


요코를 위로해줬지만, 그녀는 미안하다고 거듭 말하면서도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이 들었잖아.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지. 먼저 주문부터 해.”

“나이 들었다고 해도….”


요코는 어지간히 충격을 받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인지, 접촉 사고에 대한 일을 머릿속에서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했다.


“아무튼, 얼른 국수 시켜.”


나는 꾸짖듯이 재촉했다. 하지만 요코는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듯억울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나이 들었기 때문에 생긴 사고가 아님을 나중에야 알게 됐고, 나는 ‘진작 알아차렸더라면…’ 하고 오랫동안 후회했다.

그 사고는 사실 요코의 암세포가 이미 혈액으로 흘러들어가 뇌 기능을 저해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_<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출간 전 연재 끝.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반생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첫 만남에서부터 소박하고도 별난 일상, 남편밖에 모르는 아내의 사랑스러운 모습, 그리고 긴 이별을 준비하기까지의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편지.

힘들고 숨 가쁜 인생을 동행하는 사람, 떠올리면 미안하고 고마운 누군가가 당신 곁에도 있습니까?

 

저자_ 시로야마 사부로

일본 경제소설의 아버지. 해박한 지식과 통찰로 기업과 조직의 생리, 직장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경제소설을 잇달아 발표하며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이전 소설과는 전혀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 표정, 사소한 행동까지 함께 살아온 날들을 꼼꼼하게 써내려가며 아내를 잃은 슬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환기시켰다.

그러던 중 2007년에 세상을 떠났고, 미처 완성하지 못한 원고를 그의 서재에서 발견한 둘째 딸 이노우에 기코가 편집부에 전달해 비로소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가 완성됐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어린 고백으로 독자의 마음을 울렸고, 일본 TBS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화제를 일으켰다.
대표작으로 《소설일본은행(小説日本銀行)》《황금의 나날(黄金の日日)》《관료들의 여름(官僚たちの夏)》《임원실 오후 3시(役員室午後三時)》《가격파괴(価格破壊)》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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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2017-08-07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마지막이라니요 ㅠㅠ 일주일 동안 재밌게 보았습니다.. 출간되면 꼭 사서 보고 싶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