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일부 재편집한 콘텐츠임을 밝힙니다*

 

 

 

 


EP. 4

오로라를 보다

 


 



둘이서 오로라를 보러 간 적도 있다.

전부터 한 번쯤은 오로라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에 가면 1년에 250일 동안이나 오로라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 1주일 동안 머물면 분명히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여행 일정을 잡았다.


분명히 오로라는 떴다. 그 증거로 오로라의 자기가 그래프로 기록되는 것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하지만 오로라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기대하던 밤이 돼도 주변은 온통 밝기만 했다. 여름철이었기 때문에 알래스카는 백야였던 것이다. 이래서는 오로라가 보일 리가 없었다.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겨울에 오면 확실히 볼 수 있어요. 아주 아름다워요.”


그런 내가 딱했는지 현지인이 다가와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추위를 잘 타기 때문에 일부러 여름에 온 것이었다. 결국 평생 오로라와는 인연이 없겠구나 하고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과학 지식이 미천하다고 해도 어둠이 잘 찾아오지 않는 백야의 계절에 일부러 오로라를 보기 위해 머나먼 알래스카까지 찾아오다니. 쓸데없이 시간과 비용을 낭비했다. 

요코 역시 과학과는 담을 쌓았기 때문인지 “정말이지 당신은 참!” 하고 나를 탓하거나 불평을 늘어놓기보다 “아, 그렇구나. 아쉽네요”라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너무나 싱거운 반응에 내가 다 허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그날에 대한 보상을 줬다.

그로부터 2~3년 후에 요코와 함께 야간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밤이 깊어지자 기내 전등 불빛은 약해졌고 승객들은 서서히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나만 독서 등을 켜고 책을 읽고 있었다. 독서 등은 옆자리와 딱 중간의 천장에 있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옆자리 손님에게 피해를 줄까 봐 불을 켜기 힘들었겠지만, 이날은 옆자리에 요코가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독서는 당신의 일이잖아요.”


그 말과 함께 독서 등 켜는 것을 허락해준 그녀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튜어디스가 발소리를 죽인 채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손님, 창밖에 오로라가 나타났어요.”


그 말에 창문을 연 나는 황급하게 요코를 깨웠다. 독서 등을 끄고 우리 부부는 뺨을 맞댄 채 창 아래를 내려다봤다.

우리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거대한 빛의 향연.

빛의 장막은 색깔과 반짝임을 시시각각 바꾸면서 하늘 가득 평온하게 춤추고 있었다. 그것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마치 우리 부부만을 위해 하늘에서 연출해준 선물 같았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함께 여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새삼스레 가슴이 뜨거워졌다.


 


 


_<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출간 전 연재 5회 계속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반생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첫 만남에서부터 소박하고도 별난 일상, 남편밖에 모르는 아내의 사랑스러운 모습, 그리고 긴 이별을 준비하기까지의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편지.

힘들고 숨 가쁜 인생을 동행하는 사람, 떠올리면 미안하고 고마운 누군가가 당신 곁에도 있습니까?

 

저자_ 시로야마 사부로

일본 경제소설의 아버지. 해박한 지식과 통찰로 기업과 조직의 생리, 직장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경제소설을 잇달아 발표하며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이전 소설과는 전혀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 표정, 사소한 행동까지 함께 살아온 날들을 꼼꼼하게 써내려가며 아내를 잃은 슬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환기시켰다.

그러던 중 2007년에 세상을 떠났고, 미처 완성하지 못한 원고를 그의 서재에서 발견한 둘째 딸 이노우에 기코가 편집부에 전달해 비로소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가 완성됐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어린 고백으로 독자의 마음을 울렸고, 일본 TBS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화제를 일으켰다.
대표작으로 《소설일본은행(小説日本銀行)》《황금의 나날(黄金の日日)》《관료들의 여름(官僚たちの夏)》《임원실 오후 3시(役員室午後三時)》《가격파괴(価格破壊)》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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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2017-08-0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한 기회로 보게 된 오로라라니..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