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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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스러운데 공포스럽지 않게 다가와서 계속 생각나게 하는 공포를 심어두는 이야기~

 

 

기시 유스케의 책 <신세계에서>가 있지만 그를 처음 읽은 책은 바로 <가을비 이야기>였다.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은 한꺼번에 읽지 못했다.

한 편을 읽고 쉬었다가 다음 편을 읽어야만 했다.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공포스럽지 않게 전개하면서 나중에야 그 공포를 확장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가였다.

특히 비가 자주 왔던 기간에 읽어서 그런지 그 으슬으슬 감기 기운처럼 퍼지는 공포스러움이라니~

 



<아귀의 논>

 

"지옥은 꼭 땅 밑에만 있는 게 아니야. 이 세상 어디에나 있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각각 존재하고 있지."

 

 

사람의 사랑에 굶주린 아귀에 씐 남자.

그 남자의 업보가 안개처럼 그를 감싼다.

절대 그 누구도 그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

 

가을비처럼 처연해지는 이야기.

태어나가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다니...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이라니~

 



<푸가>

 

안 된다! 그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찝찝하고 찜찜하고 엄청 공포스러웠던 이야기.

꼭 밤에 잘 때마다 생각나서 누워있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

 

자다가 순간이동을 하는 남자.

별짓을 다해도 순간이동하는 걸 막을 수 없었던 남자는 온 방안을 납시트로 도배를 한다.

순간이동을 차단하는 데 성공한 듯 보였던 남자는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CCTV도 잡아내지 못한 그 남자의 순간이동의 끝은 어디??

 

이거 읽으면 밤에 잠 못 자요!!

 




<백조의 노래>

 

거룩하고 심오한 노랫소리였다. 그런데 그 안에는 악마적인 느낌을 주는, 벌의 날갯짓 같은 소리가 섞여 있었다. 본래의 목소리에 그림자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배음이다. 한 사람이 동시에 내는 목소리일까?

 

 

백조는 죽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죽기 전에 녹음된 100년 전 소프라노의 노래가 나온다.

그 소프라노에 대해 알기 위해 탐정을 고용한 사가.

그러나 탐정은 사가에게 자기가 알아 온 것을 듣는 걸 포기하라고 말한다.

알고 나면 후회할 거라면서.

그 소리 듣고 안 듣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그래서 사가는 그 결과를 듣게 되는데....

 

너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든 적당히 아는 게 좋아.

다 알려고 들지 마라~

 



<고쿠리상>

 

 

"고쿠리상, 고쿠리상, 저희 무력한 자들의 간절한 소원을, 부디, 부디 들어주십시오."

 

 

이런 거 제발 하지 마세요~

제발 아무한테나 소원 빌지 마세요~

재미로도 하지 마세요~

 

결국 그때는 잘 피해 갔어도 과거는 되돌아와서 미래를 잡아갑니다...

 

무심하게 읽었다가 나중에서야 슬금슬금 느껴지는 공포.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배우게 되는 삶의 반전들이 인상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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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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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 사람은 존의 열정과 맹렬한 확신이 예전의 그가 지니고 있던 다른 모든 모습을 지워버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존이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그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존이 아버지의 광기를 용서하게 해주는 아버지의 천재성 없이 그저 아버지의 광기만 닮아가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존 윌크스 부스는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한 사람이다.

그의 가문은 셰익스피어 배우로 잘 알려진 가문이었다.

아버지부터 형들과 자신도 무대에 섰다.

그리고 그 무대를 관람하러 온 대통령을 암살했다.

 

작가 캐런 조이 파울러는 존 윌크스 부스에게 서사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부스 가문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에피소드와 기억들을 통해 존 윌크스를 말한다.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국에서 건너왔다.

그들은 열 명의 아이를 낳았고 여섯 명만 남았다.

남자아이들은 아버지의 이력을 따라 배우로 성장했지만 배우로 성공한 건 에드윈뿐이었다.

 

존은 가족의 성향과는 다는 성향을 지녔던 거 같다.

그것이 아버지의 부재에 의한 것이었는지 한참 예민한 시기에 아버지의 본처에 의해 자행된 악다구니로 인한 상처에 기인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폭력성과 반골 기질을 가졌던 거 같다.

 

로절리와 에드윈 그리고 에이시아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들을 통해 보이는 그 시대의 일들과 가족의 일들을 읽다 보면 존 윌크스가 저지른 일이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부당해 보인다.

아마도 작가가 노린 점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이 장면은 그날 저녁의 연극에서 가장 믿을 만한 웃음 유발 대사이고, 메리의 폭소는 모든 사람의 웃음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메리가 이렇게 웃는 것을 듣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그 대사가 주는 재미 이상의 즐거움 때문에 링컨 자신도 웃기 시작한다. 그때 그의 귀에 뭔가 다른 소리가 들리지만 그게 뭔지 이해할 시간이 없다.

 

 

부스가 대통령을 죽였다는 말이 들렸을 때도 그들은 그 부스가 자신들을 지칭한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준을 목매달기 위해 몰려올 때 호텔 사람들이 그를 피신시키는 장면에서 <부스>가문에 대한 신뢰를 알 수 있다.

아마 그들이 잘못된 선택들만 했던 사람들이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위로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으로 알려지기보다는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 알려지고 싶어."

 

 

존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미국 역사에서 아버지 부스는 사라졌어도 존 윌크스 부스는 살아남을 것이다.

영원히...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이기에 허구는 없다.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진실을 찾으려 노력한 작가의 작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범인이 남기고 간 가족들에게 부여한 서사는 그 일에 대해 객관성을 가지게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그 속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가족이라 품고 가야 하는 건 있다.

아버지 부스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존에게 다른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까?

책을 덮고 남은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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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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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은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몇 주 후, 또는 몇 달 후에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리는 최고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한 피츠제럴드.

그가 발굴하고 번역한 글들을 모은 책 <어느 작가의 오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꽤 쓸쓸해졌다...

 

소설에서도 에세이에서도 씁쓸한 고뇌가 느껴졌다.

그가 지금 자신의 글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주었는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책 제목인 <어느 작가의 오후>의 시간이 피츠제럴드의 한때였다고 생각하니 뭉클하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원고를 두고 오랜만에 집을 나선 작가의 모습.

집으로 돌아와서 잘 다녀왔냐는 하녀의 말에 그날 하루를 설명하는 거짓말.

그 모습이 너무 슬프다..

 





자신의 삶이 점점 더 세상에서 멀어지고, 이미 충분히 캐 먹은 과거에서 뭔가를 새롭게 캐낼 필요성이 증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그의 삶은 새로운 식림(植林)을 필요로 했고,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의 토양이 그 숲의 성장을 다시 한번 지탱할 수 있기를 그는 바랐다. 그의 토양은 최고의 토양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귀 기우이고 관찰하는 대신 과시하는 약점을 일찍부터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에세이가 좋았다.

그의 어조는 담담하면서도 관조적이다.

 

<나의 잃어버린 도시>에서는 뉴욕이 피츠제럴드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이 열광했던 뉴욕은 피츠제럴드에게는 그리 열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쩜 뉴욕은 그의 기를 다 흡수해버린 도시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의 자신을 그려본다.

 

망가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글들이 마치 노년의 작가가 자신의 젊음을 되돌아보는 느낌이다.

피츠제럴드가 44세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노작가의 회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암울한 인생을 맞았던 피츠제럴드의 글은 잔잔하고 은은하게 스민다.

이야기와 글 곳곳에서 성공이라는 걸 하고 있던 시절에 왜 좀 더 자신을 절재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느껴졌다.

 

피츠제럴드의 짧은 생은 미완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까지 피츠 제럴드를 <위대한 개츠비>로 기억했었다.

이제부터 피츠제럴드는 <어느 작가의 오후>로 기억될 거 같다.

 

<위대한 개츠비>로 기억되었던 피츠제럴드가 화려하고 성공한 작가였다면

<어느 작가의 오후>로 기억되는 피츠제럴드는 그저 서럽기만 하다...

 

 

사색하기 좋은 글들이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가 그려낸 1930년대의 미국의 분위기는 무너져가는 그의 삶과도 같아서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던 그의 모습이 지금 우리와 겹쳐 보인다.

우리의 앞날도 그때와 비슷할 거 같아서..

피츠제럴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쳐나가려 했던 삶.

나도 그럴 때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버텨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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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이는 소녀들
스테이시 윌링햄 지음, 허진 옮김 / 세계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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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 어디에서도 신인작가의 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 진짜 괴물은 빤히 보이는 곳에서 움직인다.

 

 

내가 열두 살 때 우리 마을에서 소녀들이 사라졌다.

내가 좋아했던 리나도...

어느 무료했던 날 나는 엄마 옷장에서 스카프를 찾다가 보석 상자를 발견했다.

그 보석 상자 안에 리나의 배꼽에서 반짝이고 있었던 반딧불이가 담겨 있었다.

우리 아빠는 연쇄살인범이다.

나는 아빠가 수집해 놓은 증거들을 발견했고, 어느 날 아빠가 우리 집 뒤에 있는 숲에서 흙

이 묻은 채로 삽을 끌고 돌아오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엄마와 나 오빠는 동네 사람들에게 시달렸고, 엄마는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지만 목숨만을 건졌다..

 

 

"우리가 지금 상대하는 건 모방범 같습니다. 이번 주가 끝나기 전에 누군가 죽을 거라고 내기를 걸어도 좋아요."

 

 

 

20년 후.

클로이는 심리 상담사가 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소녀들이 사라지고 클로이와 상담했던 소녀까지 실종되었다.

<뉴욕타임스>기자 에런은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또다시 연쇄살인이 시작되고 있다며 아마도 모방범의 소행인 거 같다고 말한다.

 

악몽이 되풀이되는 걸까?

우리 아빠는 종신형으로 감옥에 있는데?

그럼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왜 나와 관계있는 소녀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내가 없었다면 그 애들은 아직 살아 있을까? 전부 다?

 

 

1인칭 클로이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익숙한 플롯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독자를 홀리는 뭔가가 있다.

 

나는 범인을 예상했고, 내 예상은 맞았다!

그러나 중간중간 너무 많은 유혹(?)이 나를 자꾸 다른 사람을 지목하게 만들었다.

사실 중반 이후부터는 주인공 클로이까지 의심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클로이만 의심했음 다행이게? 휠체어에 앉아 온몸이 마비되고 의식도 명료해 보이지 않는 엄마까지 의심했다.

진짜로 클로이 주변의 모든 이들을 의심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에 흠뻑 취했다.

마치 유명 스릴러 작가의 최신작을 읽는 기분이었다.

 

반전에 반전이라는 문구는 쓰고 싶지 않지만

마지막까지 범인의 입으로 범죄에 대해 듣기까지 안심하지 못했다.

 

 

 

더 웃긴 건.

내가 생각했던 범인이 맞았고, 그 범인의 자백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못 믿겠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내 마음의 범인은 누구란 말인가!!!

 

신인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운 디테일과 반전이 읽는 내내 마음을 졸이게 하는 <깜빡이는 소녀들>

기억해두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체크해야 할 작가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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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연극 킴 스톤 시리즈 4
앤절라 마슨즈 지음, 강동혁 옮김 / 품스토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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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답은 과거에 있었다.

 

 

 

킴 스톤 시리즈 4번째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으스스한 시체 농장이 배경이다.

3편을 건너뛰었는데 3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돌김 언니에게 핑크빛 모드가 잠깐 전개되었나 보다.

그러나 이 철벽녀 킴 스톤은 그 달달한 로맨스를 당차게 떠밀어 버린다.

독자로서는 안타깝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는 걸 안다.

킴 스톤은 과거에서 아직도 빠져나오는 중이니까..

 

시체 농장은 기증받은 시체로 다양한 상황에서의 부패와 곤충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법의학 연구소다.

시민들에게는 비밀에 붙여져 있지만 법의학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에 보스의 명령으로 견학을 간 킴은 다양하게 연출된 시체들 틈에서 몇 시간 전에 살해된 진짜 시체를 발견한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고, 입속엔 흙이 가득 들어 있고, 제모가 된 여성 시체.

단서도 없고, 신원도 파악하기 힘든 와중에 또다시 시체가 발견된다!

이번엔 살아있었다.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여성은 병원에 실려가서 의식을 찾지만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우리나라 같으면 지문 검색으로 누군지 알아낼 수 있겠지만 영국은 그런 시스템이 아닌가 보다.

이 부분이 엄청 답답했다. 게다가 뭔가 미국과도 다르고 우리와도 다른 경찰 시스템이 돌아가는 모습은 고구마 백 개 먹은 느낌이다.

 

게다가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전작에서 별로 안 좋은 인연이었던 거 같은 트레이시 프로스트 기자가 한밤중에 전화해 시체 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다.

거기에 하나 더 미결 사건이자 킴 스톤의 담당 사건도 아닌 사건을 늘어놓으며 킴을 분노케 한다.

이런 스트레스들이 몰아칠 때 킴은 오토바이를 조립한다.

양아버지가 될 뻔했던 분의 취미였지만 킴에게도 감정을 다스리는 취미가 된 오토바이 조립.

그리고 그녀에게 동반자가 생겼다.

바니라는 이름의 반려견.

조금도 틈을 주지 않는 킴 스톤에게 생간 어마어마한 변화다.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지만 성폭행은 매시간, 매 분, 매초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했다.

절대 잊히지 않고 계속 되풀이되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

치욕을 당하고 절대 잊어버릴 수 없어서 자신에게 그 치욕을 안겨준 이들을 처단하기로 마음먹은 사람.

잠깐 놀린 거라고 생각했던 가해자들은 절대 알지 못했던 그 수치심이 시간이 흘러 칼날 같은 비수로 되돌아왔을 때 가해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킴 자신의 과거도 동화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정신병, 상실, 학대, 잔인함의 온갖 형태를 경험했다. 그 시절의 기억이 킴의 내면에 살아 있긴 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것들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그런 것들을 추진력으로 삼았다.

 

 

 

온갖 안 좋은 기억을 죄다 가지고 있는 킴.

그래서 피해자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는 킴.

그런 이유로 가해자가 되어 버린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킴.

나는 그래서 킴 스톤이 좋다.

 

킴은 그 모진 시련을 겪고도 법의 수호자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끈질기게 범죄를 파고든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몰아가는 게 킴의 장기다.

그런 그녀의 모자란 인간관계 대응력과 조직에서의 정치력을 메워주는 이가 바로 파트너 브라이언트이다.

사건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킴의 곁에서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브라이언트가 있어서 안심이 된다.

우디 경감이 브라이언트를 킴 곁에 두는 이유를 알 거 같다.

 

이번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킴 언니.

그래서 죽음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된 킴 언니.

사건도 해결하고, 몸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킴 스톤 시리즈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킴은 그 어떤 형사들 보다 피해자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아픔을 알기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킴 스톤 같은 형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안전하게(?) 스릴을 즐길 수 있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모두 잊어버린 사람조차도 킴에게서 위로를 받고,

킴을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조차도 그녀에게서 믿음을 발견한다.

퉁명스럽고, 곁을 안 주고, 말도 잘 안 섞는 언니지만, 그 겉모습 안에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은연중 알게 되기에 한 번 독자가 되면 계속 킴 스톤을 응원하게 된다.

 

보슈와 홀레에게 빠져 있으면서도 그런류의 여형사가 없어서 서운했었는데

킴 스톤이 그 자리를 삼켜버렸다.

 

여전히 거슬리는 표현들이 있지만 그건 아마도 킴 스톤 시리즈 전체의 분위기를 마땅하게 표현할 우리 말을 찾기 어려워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5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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