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도주 - 벼랑 끝으로 내몰린 루이 16세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5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791년 6월 21일 밤 1시경 루이 16세는 가족과 함께 변장한 뒤 튈르리 궁을 몰래 빠져나가 뤽상부르(룰셈부르크)쪽 국경을 향해 달려갔다가, 결국 밤 11시에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바렌에서 붙잡혔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10/380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5권 <왕의 도주 - 벼랑 끝으로 내몰린 루이 16세 Liberte>는 불과 하루 남짓한 루이 16세의 도주 배경을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절대군주에서 입법(入法)권을 국회에 넘겨주고 프랑스를 위해 절대군주에서 입헌군주로 내려오겠다고 선언했던 루이 16세. 그러나, 파리에서 몰래 빠져나가고 남겨놓은 <왕이 파리를 떠나면서 모든 프랑스인에게 보내는 성명서>는 그간 입헌군주로서 자신이 행한 행위가 강박에 의한 것으로 무효임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정치적 유서가 되버렸다.

루이 16세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형편없게 되었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겉으로는 혁명에 동조했지만, 절대군주제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글로 남겼다. 2년 동안 자신이 받아들이고 승인했던 수많은 법을 한순간에 부정했다. 게다가 그는 국회가 전보다 더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1791년의 현실을, 1,400년간 번영했던 군주제가 아니라 온갖 정치 클럽의 전제정 또는 무정부상태라고 진단했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305/380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입헌군주로서 자신을 부정하고 사실상 혁명을 부정했던 것이었을까. 혁명 이후 루이 16세의 몸은 튈트리(Tuileries)에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베르사유(Versailles)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정신은 궁정사회의 질서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절대군주인 자신을 정점으로 형성된 커뮤니케이션의 장, 사교계에 익숙한 그에게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 ~ 1990)가 <궁정사회 Die ho"fische Gesellschaft>에서 강조했던 '결합태(Figuration)의 중심'에서 '국회의 배경'으로 전락한 상황은 마치 중세인들이 '지동설'을 받아들여야 했던 충격처럼 다가가지 않았을까. 루이 16세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도주라는 길을 택한다.

국회는 세습적 군주제와 대의정부를 합친 형태의 헌법을 채택했고, 입법부는 상설기구이고 종교인, 행정관, 판사들을 인민이 선출하는 체제를 만들면서 입법권을 구고히가 가지며, 법의 승인권을 왕이 가지도록 했다. 국내외의 공권력도 똑같은 원리 위에 조직했고 삼권분립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 새 헌법이라고 하면서, 왕은 이 헌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사실을 각국 대사가 외교활동에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혁명이란 수세기 동안 쌓인 수많은 폐단을 척결하는 일이며, 그 같은 폐단은 인민의 잘못이나 대신들의 권한남용 때문에 쌓인 것이지 왕들의 권한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p243)... 무모랭이 대변했듯이, 왕이 생각하는 프랑스 혁명은 혁명세력이 생각하는 것과 원칙적으로 같았다. 그러나 과연 왕은 진심으로 그 사실을 인정했던 것일까? _ 주명철, <왕의 도주> , p244/380

그렇지만, 혁명에 대해 위선적이었던 것은 루이 16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혁명에 대한 (좌파)의원들의 태도다. 이들은 국왕을 이용해 왕당파를 무마하고, 적대적이었던 외국(특히 오스트리아 제국)과 국내의 반혁명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위선적이었다. 그들이 외치는 '국왕 만세'는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인질을 안도하게 하려는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면에서 본다면, 루이 16세 도주사건 직전까지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은 '궁정사회의 무도장'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자신의 진의를 가면으로 애써 감추고, 설사 알더라도 미소로 적당히 무마하며 넘어가는 사교장과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그들의 정치적 기만속에서 여러 법률들이 제정되어 나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루이 16세 뿐 아니라 프랑스 혁명 자체가 '궁정예법'의 패러다임에서 움직이는 앙시앵 레짐의 유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앙시앙 레짐의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한계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혁명의 완성은 과거에 대한 완전한 기억의 소멸로 끝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루이 16세의 도주 사건 후 분명해진 것은 가면 속에 진의를 숨겼던 왕이 본모습을 드러내면서, 국회 역시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는 없어졌다는 점이다. 혁명의 파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이처럼 4월 하순에 왕이 진심을 드러내기보다는 혁명에 동조하는 듯한 말로 쓴 편지는 좌파 의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좌파 의원들은 그것이 왕의 진심인 줄 알았을까? 비록 진심이 아닌 줄 알았더라도, 그들은 왕이 혁명에 동조한다는 편지를 전국에 알려 왕의 행동을 더욱 제약하고, 왕당파에게도 훌륭한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속내가 다르더라도 마지못해 맹세하는 행위는 장래의 행동을 규제하기 마련이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247/380

.그 뒤(루이16세의 도주사건과 귀환) 여론은 왕을 폐위하라고 난리였다. 그러나 국회는 여론을 외면했다. 정치가들은 왕이 순진하게 꾐에 빠져 납치당했다고 하면서 도주의 혐의를 벗겨주었다. 대중은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압박했고, 파리 시장은 계엄령을 내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해 여남은 명이나 학살했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이나 옛 프랑스의 왕을 모두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세력이 있고, 대중은 거기에 속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을 쥔 사람들은 대중의 의견을 존중하고 타협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국을 이끌려고 노력한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10/380

루이 16세가 감행한 30시간의 모험은 완전히 실패했다. 루이 16세가 다스리던 왕국은 이제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음을 오지 마을인 바렌이 증명했다. 그것은 프랑스 왕국이 이제 국민국가로 거듭 태어났음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1790년 7월 14일의 전국연맹제가 상징적으로 보여준 연대감을 읽을 수 있다. 신분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왕의 군대가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연맹의 정신을 구현하는 국민방위군 앞에서 맥을 못 추는 현실에서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사건이 끝난 뒤에도 왕이 자리를 유지하긴 해도, 그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고, 수동시민들의 정치무대에 뛰어드는 일이 잦아지면서 혁명이 급진화하게 된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337/3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uth Korea and Japan court disaster 한국과 일본 법원의 참사


Yoon Suk-yeol has historic ambitions for his country’s relationship with its neighbour Japan. On August 17th South Korea’s president said that the two countries’ enmity, stemming from Japan’s colonial rule over Korea from 1910 to 1945, could be swept aside “amicably and promptly”. His enthusiasm is understandable - a bit of bonhomie could make both countries richer and more secure, especially in the face of rising tensions in the region.


 윤석열은 이웃 일본과의 외교관계에 대한 역사적 야망이 있다. 8월 17일 한국  대통령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통치에 기인한 양국의 적대감을 "우호적이고 신속하게" 해소될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열정은 이해할 만하다. 특히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이는 현상황에서 작은 친밀감이라도 이들 나라를 더 부유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His optimism makes less sense. The path to rapprochement is long and treacherous, and the journey could end almost before it has begun. In 2018 South Korea’s courts approved the seizure of assets from certain Japanese companies, on the basis that Koreans had been forced to toil on their behalf during the second world war. The liquidated assets would be given to the victims. The companies refused to pay, but the court’s final decision may come as early as Friday. Forcing the firms to pay up will enrage Japan, and will probably put pay to Mr. Yoon’s aspirations.


 (그렇지만) 그의 낙관주의는 타당하지 않다. 관계 회복의 길은 멀고 험난하며, 그 여정은 채 시작되기도 전에 끝날 수 있다. 2018년 한국 법원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국인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이유로 일부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를 승인했다. 청산된 자산은 피해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회사는 지불을 거부했지만 법원의 최종 결정은 빠르면 금요일에 나올 예정이다. (일본)기업들에 대한 배상 강제는 일본을 화나게 할 것이며 아마도 윤 대통령의 열망을 잠잠하게 만들 것이다.


 아침에 본 <The Economist>의 오전 briefing 기사. 빠르면 오늘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예정인 가운데 국내 언론들은 사안의 엄중함보다는 한일관계 개선과 일본의 우려를 집중조명하며 법원에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광복절에 일본과 관계회복을 경축사로 내보내는 대통령과 일본정부의 입을 자처하는 언론들 속에 우리들의 사법주권은 지켜질 수 있을까. 어설프고 역사의식 없는, 외신보다도 사안에 대한 파악이 안되는 대통령과 정부의 행태에 피해자들의 권리와 마음이 짓밟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지는 금요일 아침이다... 


 공탁이란 채권자가 채무금 수령을 거부할 때, 수령이 불가능할 때, 채무자가 채권자를 확정할 수 없을 때 이루어지는 민법상의 행위이다. 공탁되는 순간 채무자는 해당 채무와 관련하여 법적 의무에서 해방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일본 민법 제494조, 정령 제22호에 의해 공탁하도록 일본 정부가 지시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_ 허광무 외, <전시 한인 노동력 동원> , p578/734


 미불금 공탁은 일본 기업의 채무 책임을 면해 주는 데 기여했을지언정 조선인 노무자의 권리 구제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조선인 미불금은 공탁하지 않더라도 제도적으로 이를 규제할 수 없었는데, 오히려 조선인 미불금을 축소/은폐하여 적립금에 포함시킴으로써 기업이 전쟁손실에 보전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공톽되지 않은 수많은 조선인 노무자의 권리 구제는 어떡할 것인가. 한/일 양국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이자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이다. _ 허광무 외, <전시 한인 노동력 동원> , p592/73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8-19 08: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사의식 없는...어설픈데,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ㅠ

겨울호랑이 2022-08-19 09:14   좋아요 4 | URL
네... 앞만 바라보고 정신승리하면서 검찰까지는 그럭저럭 갈 수 있었습니다만, 보다 폭넓은 식견과 투명함이 요구되는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서는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생각됩니다. 대통령으로서 능력의 한계는 대기업 사장 출신 전직 대통령의 사례에서도 짐작못할 바는 아니없습니다만... 패거리 정치의 전례는 과거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공신 숙청에서 유사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나마 한고조는 생전에 공신을 숙청하고 사후에 여태후가 실권을 휘둘렀습니다만, 취임 100일도 안 되는 시점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참담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9 09: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 강제징용 판결 참 걱정입니다...ㅠㅠ 우리는 꿇릴 것이 없는데 정부가 저자세로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없이는 온전한 해결법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9 09:17   좋아요 3 | URL
네 그렇습니다.... 스포츠 한일전의 결과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도, 대리인의 친일성향에 대해서는 아파트 가격만큼의 중요성으로 판단하지 않은 대가를 우리가 지불하는 것이겠지요... 정말 우리가 무엇에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 하는가를 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만, 그러기에는 피해자분들의 희생이 너무 컸다는 점이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마음 아프게 하네요...
 


제2차 아베 내각의 행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외교, 안보 정책 전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의를 끄는 것은 패전 이후 70년 만에 강대국 간 지정학 게임에 가담하려는 움직임이다. 지정학 게임의 요체는 대중 '억지' 전략으로, 한층 더 강력한 미일동맹을 구축하여 부상하는 중국, 특히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른바 '미국/일본 대 중국' 구도의 안전보장 전략을 말한다. 아베 내각의 지정학 게임은 자민당 보수우파 세력의 국가관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렇다면 어떠한 국가관을 말하는가. 아베 총리는 정권의 이념으로 '전후체제의 탈각'을 내걸었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02


 며칠 전 아베 신조(安倍 晋三, 1954~2022) 전 일본 총리의 총격 사망 사건이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와 극한 대립각을 세우던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를 비롯한 여러 망언, 대한(對韓) 수출규제로 한일 무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그에 대한 우리 일반의 인식은 정치인들과는 달리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역대 최장기 집권 총리임을 생각한다면, 그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에, 그의 사망을 맞아 아베가 총리로 재직하던 시기의 일본 정책을 돌아보는 페이퍼를 작성해본다. 


 중국 칭화대의 류장용(劉江永) 교수가 쓴 논문이 흥미롭다. 작금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중국 정책은 1세기 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각(1885.12~1901.6)의 그것과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내용이다. 논리적 비약이 없지는 않지만 수긍이 가는 부분도 적지 않다. 사실 아베 총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국가상(國家像)도 메이지 국가이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299


 서승원 교수는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에서 아베 내각의 정치적 특징을 외교 안보 전략에서 찾는다. 미국과 철저하게 한 편이 되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틀을 짜고, 이러한 구도에서 동북아에서 재무장을 실시하여 다시 메이지(明治)시대의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생각. 조슈 번(長州 藩)의 후예인 아베가 충분히 꿈꾸었을 목표다. 아베 내각의 주된 정책 방향은 '전후 체제 탈각'이다. 해군역사학자인 알프레드 마한(Alfred Thayer Mahan, 1840~1914)의 관점을 수용하여 현대 G2인 미국과 중국을 각각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에 위치시키고, 이들의 갈등을 이용하여 헌법9조를 고치고 재무장하고, 과거 일본제국의 영광을 찾겠다는 일본 극우의 발상을 '전후체제 탈각'의 내용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악과 그에 대한 사과를 부정하는 행태는 이웃인 우리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집권을 위해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이 일본 국민의 무의식에 자리했다고 평가한 헌법 9조를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 파괴하려는 무리수도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생전을 생각하면, 우리의 분노를 누구보다도 원했던 것은 아베 자신이 아니었을까.


 헌법 9조는 자발적인 의자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외부로부터의 강요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후 그것이 깊이 정착되었습니다... 헌법 9조는 일본인의 집단적 '초자아' 이자 '문화'입니다.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는데, 문화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세대의 차이를 넘어서 전해집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헌법의 무의식> , p32


 도고 가즈히코(東鄕 和彦 2015)는 아베 총리가 내거는 전후체제 탈각을 대체로 안전보장, 역사인식, 그리고 국가의 재군축이라는 세 측면에서 파악한다. 첫째, 전후 일본에 계승되어 온 평화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자국의 방위와 세계평화를 위해 군사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 도쿄재판에 유래하는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배제하고 위안부 문제나 난징사건과 관련하여 사실관계를 넘어서는 국제사회의 일방적 비판에 대해 분명하게 반론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셋째, '이해득실을 초월한 가치'의 경우는 전후 사회에 있어서의 자연과 전통/문화의 상실, 그리고 그 배경으로서 자신과 그 주변을 넘어선 사회전체, 공공(公共)을 중시하는 정신이 결여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04


 일본에 해외에 파견할 군대가 있었다면 국지전이라고 일으켰겠지만, 평화헌법으로 인해 그럴 수 없었던 제약, 대신 외교적으로 이웃나라인 우리와 끊임없는 분쟁을 일으켰던 아베였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 애통한 마음을 갖기 어렵다. 기껏해야 한 인간이 소멸해간다는 생물학적인 죽음에 동병상련의 마음 정도가 그의 죽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애도의 한계라 여겨진다. 일본과 우리가 현재 경제전쟁 중임을 생각한다면, 적장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정유재란 때도 조선 장군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에 조문을 표했던가. 오히려,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물러가는 적을 하나라도 잡으려 했던 전례를 생각해 본다면,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이들의 행태는 솔직히 이해되질 않는다.


 아베 정권은 태생부터 한국 비판 세력이었다. 위안부 문제 등 한국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사람들이 일본의 극우파이자 아베 정권이다. 그 이유는 한국과 중국만이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에 강한 반론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극우파로서는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해서는 강대국인 중국 한수 아래로 생각하는 한국을 세게 때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 한국을 때릴수록 극우파들은 일본 내에서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_호사카 유지,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p216/382


  요약하자면 아베 내각의 지정학 게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일본의 미일동맹에 대한 경사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다. 이러한 미일동맹 제일주의는 역으로 전략적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또한 대중 억지력의 향상 보다는 동북아 안보딜레마를 심화시킬 개연성이 크다. 둘째, 아베 내각에 들어서면서 거의 모든 대외전략이 중국문제로 수렴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최근 혐중/반중 일색의 국내 여론과 중국에 대한 대항 의식은 과거 러시아에 대한 그것과 유사한 측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셋째, 지정학 게임과 가치관 외교의 충돌이다. 정치체제결정론적 사고는 외교의 이념화, 관념화를 가져오며 냉철한 국익판단과 전략적 유연성을 필요롤 하는 지정학 게임과는 양립하기 힘들다. 넷째, 과거사를 매개로 한 정체성의 정치는 중국을 이질적 체제로 타자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역사수정주의는 대외관계에서 새로운 외피가 필요했는데 이는 지리적으로는 해양국가, 정치체제로는 민주국가,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보편적 가치였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57


 정치인 아베 신조는 죽었음에도, 최근 심각해지는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그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는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법인세 감세, 사회보장제도 개악, 민영화 추진, 노동 규제 완화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새정부정책의 주된 방향이 이미 실패로 입증된 아베노믹스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극우 정치인 아베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부채가 일본 뿐 아니라 남은 우리에게도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담한 금융 정책, 기동적 재정 정책, 민간 투자를 불러일으키는 성장 전략인 '세 개의 화살'로 장기간 계속된 엔고와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탈출하여 고용과 소득의 확대를 도모한다'는 아베노믹스의 핵심 기조가 모두 언급되어 있다. _ 안베 유키오, <일본 경제 30년사>, p345/456


  왜 아베노믹스는 실패했을까. 확실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세 개의 화살'이 전부 과녁을 벗어나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나 디플레이션의 원인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의 진짜 요인은 소비 증가 부진이었고, 그 배경에는 임금의 하락과 상승 부진이었다. 아무리 금융을 완화시켜도(첫 번째 화살),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기업이 이익을 보도록 배려해도(세 번째 화살) 임금이 늘지 않는 한 일본 경제의 '재생'은 없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또한 공공투자의 확대(두 번째 화살)는 소비 부진에 의한 수요 부족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세 개의 화살' 중 비교적 목표에 근접한 화살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재원 문제도 있고 화살 수량에 제한이 있어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말았다. 둘째, 아베노믹스가 사람들의 삶의 향방에 너무 무관심했고, 임금을 올리는 등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했음에도 반대로 소비제 증세, 사회보장제도 개악 등 생활에 해를 입히는 정책을 계속해서 취한 것이다. _ 안베 유키오, <일본 경제 30년사>, p406/456


PS. <일본회의의 정체>에서는 일본 종교계와 결탁한 극우세력의 실상이 자세히 그려진다. 일본 신도가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본정가의 모습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러길 바라본다...


 신도 종교의 중심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신궁. 그리고 전후 일본 우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이끄는 거대신흥종교 '생장의 집'. 양대진영의 지도자들에게 우파계 종교인이 호소함으로써 두 진영의 두터운 지원을 받으며 발족한 '일본을 지키는 모임'. 이 구도는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즉, 일본회의라는 존재의 배후에는 신사본청을 축으로 하는 신도 종교단체와 생장의 집의 그림자가 조직과 인맥에 드리웠고, 어쩌면 자금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_ 아오키 오사무, <일본회의의 정체>, p42/418


 일본회의와 그 핵심, 주변에 있는 '종교심'에 의해 움직이는 종교 우파의 정치사상은 확실히 그러한 위험성 - 전쟁 전으로의 회귀 - 을 내재한다. 자민족 중심주의, 천황 중심주의, 국민주권의 부정, 지나치기까지 한 국가 중시와 인권의 경시, 정교분리의 부정.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는 이나다의 논리도 '국가의 제사'로 여겨지던 전쟁 전 국가신도의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  _  아오키 오사무, <일본회의의 정체> , p384/418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22-07-10 17: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장기 불황을 엔저 정책으로 탈피하려던 아베노믹스가 실패하고 그로 인한 후유증이 심각해서 일본이 더이상 선진국이 아니게 될 것이라며 국가의 경제 정책 실패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는 책이 있더라구요.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도 걱정되구요.

겨울호랑이 2022-07-10 21:29   좋아요 4 | URL
네, 아베노믹스는 여러 면에서 동일한 실질가치를 달러로 환산한 명목가치로 눈속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예전부터 있었음에도 최근에야 비판이 주목받는 듯 합니다... 찾아보니 알려주신 책은 이번에 새로 출간된 책이군요. 오거서님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2-07-10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10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2-07-10 23: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사카 유지 교수를 처음 알게 되었네요. 앞으로 또 한일 관계에 어떤 변화와 변수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2-07-10 23:36   좋아요 4 | URL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계 한국인으로 일본과 관련한 정치현안 논의 시 섭외 1순위 전문가로 알고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과 오마이뉴스에서 깊이있는 논설을 하시는 분이라 참고하시면, 향후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시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22-07-12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베 총리 사망한 사건에 꽤 놀랐습니다. 하루아침에 그럴 수가...

겨울호랑이 2022-07-12 18:36   좋아요 1 | URL
건강이 좋지 않아 총리 사임을 했다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뜰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의 죽음이 일본을 군군화의 길로 더 빨리 몰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게 할 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게 하네요. 여러 면에서 혼란스러운 국내외 상황입니다...
 

 6월 4일, 영국군과 12만 명의 프랑스군은 독일군의 공격에 밀려 개인 무기와 모든 차량 등 장비를 뒤에 남겨둔 채 됭케르크에서 철군했다. '다이너모 Dynamo 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됭케르크 해안에서의 영국군 철수는 9일 동안 계속되어, 33만 8,000명을 무사히 철수시켰다. 그 철수 작전에서 온갖 종류의 선박 887척을 모아 들인 영국 해군과, 나흘 동안 29대의 비행기를 잃으면서 적의 비행기 179대를 격추시킨 영국공군의 업적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병력을 무사히 구출해냄으로써 안도감을 느낀 영국은 기습 반격을 가했지만, 영국군은 이미 철저하게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 많은 장비를 프랑스에 버려두고 탈출했기 때문에, 1940년 여름에는 잉글랜드 군 1개사단만이 제대로 무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_ 버나드 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 , p847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3개월만에 치르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달도 안되는 시점에 치뤄지는 선거라 불리한 지형에 포진한 야당에게는 쉽지 않은 선거였다. 아직 개표가 되지 않은 시점에 실제 결과도 여당 국민의 힘 압승이 예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선거가 불안정한 신임 대통령에게 경고가 되주길 바랐지만, 주권자의 뜻은 힘을 모아 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다만, 역대 2번째로 낮은 50.9% 투표율로 실망감을 표현했다는 점도 분명 의미있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결과는 아쉽게 나타났지만, 이기기 쉽지 않은 선거라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지난 대선때보다는 편한 마음이 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철수하는 덩케르크 작전을 지켜보는 영국민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많은 이들이 살아 돌아왔지만, 전쟁의 패배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패배한 전쟁에서의 작은 승리'의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위스턴 처칠(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1965)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러한 감동적인 철수작전의 한계와 작은 승리의 의미가 명확하게 지적된다.  짙은 안개 속에서 거의 눈에 띄이지 않은 영국공군의 활약은 크리스토퍼 놀런(Christopher Edward Nolan, 1970 ~ )의 영화 <덩케르크 Dunkirk>에서 시각적으로 부활한다. 


 영화 <덩케르크>에서 하늘에서는 독일군과 전투 중인 영국공군들이 있다. <덩케르크>의 세 개의 공간 - 육지, 바다, 하늘 -  중 적을 공격하는 무대는 하늘밖에 없다. 이들은 작은 선박들이 군인을 싣고 돌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 중, 바다로 추락한 '콜린스'(잭 로던)는 피터에게 구조 당하고, '파리어'(톰 하디)는 연료가 떨어져 덩케르크 해변에서 포로가 된다. 영화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와 끝없이 펼쳐진 해안가에 따로 모인 몇몇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고립감을 강조한다. 공중에서의 영상은 특히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공군들을 클로즈업 하거나, 공군들의 시점과 유사한 각도로 전투기 안에서 보이는 바다, 해변, 공중의 풍경을 시원하고 속도감있게 담아내 현장감을 느끼도록 했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인터스텔라>에 이어 <덩케르크>를 반드시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놀란의 작품으로 인식시켰다. _ 서곡숙, 이현경 외, <미국 영화감독 1> , p146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이뤄진 헌신이 가져온 작은 승리. 이 작은 승리는 바로 이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1940년 7월 ~ 10월)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戰況)이 바뀌는 변곡점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서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냈을까. 또는 만들어냈다면 발견할 수 있을까...


 선거 결과와는 무관하게 다른 한 편으로 가능성도 발견한다. 시/도지사 투표와 다른 교육감 선거결과를 보면서, 유권자들이 맹목적으로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약을 보고 자신의 삶을 바꿀 인물을 선택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개개인은 다를 수 있겠지만, 집단지성의 힘으로 발현되는 투표 결과를 보면서 유권자의 선택을 단순한 '욕망', '이기심', '이념' 등으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정치인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광주의 투표을 33.6%가 말해주듯, 이제는 '잡은 물고기'로 지지층을 생각하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정치인과 정당은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이것이 한동안 이어질 어두운 시대의 개인적인 희망이 될 듯 싶다...


 우리는 그 구출 작전(다이내모 작전)을 승리의 상징으로 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철군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획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구출 작전의 이면에는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승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공군이 거둔 승리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우리 용사들은 귀환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공군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우리 공군의 엄호 공격망을 벗어난 적군의 폭격기만 보았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 공군의 공적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바깥으로부터의 침략에 대항하여 이 영국 섬을 상공에서 방어해야 할 경우 우리가 누리는 유일한 혜택이란, 바로 실질적이고 확실한 안심의 토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_ 윈스턴 처칠, <제2차 세계대전 上>, p412


 설혹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오랜 전통의 주요 국가들이 게슈타포의 손아귀에 이미 들어갔거나 들어가게 되어 나치 지배의 끔찍한 상황에 빠져들더라도, 우리는 결코 힘없이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나아갑니다. _ 윈스턴 처칠, <제2차 세계대전 上>, p41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2-06-02 08: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를 보며 덩케르크 작전을 떠올리시다니.. 호랑이님 남다르십니다👍 덩케르크 영화 보고 싶어지네요~

겨울호랑이 2022-06-02 08:33   좋아요 3 | URL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출근하면서 결과를 확인했는데, 다행히 경기도에서는 역전했네요. 그나마 작은 위안을 받은 아침입니다. <덩케르크>는 육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이라는 시간-공간의 교차 상황에서 영상과 음향이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로 기억합니다. 다만, 지나친 ‘영국 만세‘ 요소는 있습니다만... 어두운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을 보여줄 영화라 생각됩니다. 독서괭님, 좋은 하루 되세요! ^^:)

레삭매냐 2022-06-02 0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선 끝나고 치른 지선에서
야당이 승리한 적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선거는 어렵겠구나 싶었습니다.

민심의 향방이란 정말 가늠할
수가 없네요.

앞으로 2년 동안 어떻게 진행
될 지 우려가 되네요.

겨울호랑이 2022-06-02 09:25   좋아요 4 | URL
아무래도 선거 역시 대중심리의 영역이라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잘못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찍었다는 평가보다는 부족하지만, 일단 기회를 줘보자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들이 가진 권력이 크기에 걱정이 됩니다만, 대통령과 새정부에 대한 걱정과 우려보다는 크게, 기대감보다는 작은 어디에선가 그의 업적이 만들어지길 바라봅니다... 사실 더 큰 걱정은 5년으로 끝나지 않을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건 더 나중의 걱정거리겠지요.... 레삭매냐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전형적 보스는 지극히 냉정한 사람이다. 그는 사회적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 ‘상류사회‘에서 이 ‘프로페셔널 professional ‘ 은 경멸의 대상이다. 그는 오로지 권력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재원으로서의 권력뿐만 아니라 권력 그 자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p182)... 그는 ‘프로페셔널‘ 정치꾼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경멸당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연방의 중요 관직을 얻을 수도 없고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는 사실은 좋은 점이다. _ 최장집,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p183

간밤에 내린 비로 맑은 5월 아침. 매일 아침 이뤄지는 행차에 서둘러 출근하는 것도 익숙해지는 아침. 횡단보도 앞에서 선거 현수막을 보았다. 10년 넘게 ‘새정치‘가 무엇인지 끝내 알려주지 않은 채, 그는 인수위에서 우리 동네로 왔다.

덕분에 내일 아침 일찍 그에게 ‘-1‘을 안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자신은 소명의식이 1도 없지만 다른 이에게 정치의식을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서는 ‘보스‘기질이 있는 듯도 하다. 권력이 아닌 주가부양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새 보스‘일지도 모르겠다... 아, 새정치가 무엇일지 조금 알것 같기도 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05-26 1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오락가락할 때부터
참 이상하다 싶었는데, 결국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결국 자신이 타령을 해대던
새정치가 그렇게 공존불가
를 외치던 곳에 투항하는 것
으로 귀결되었네요.

정치의 희화화에 지대한 공
을 세운 것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26 11:21   좋아요 3 | URL
그렇습니다. 매번 출마-철회를 반복하면서 <황금어장>에서 보여줬던 좋은 이미지 다 까먹으면서 정치판에서 사라져 가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예전의 선한 이미지 대신 탐욕에 눈 먼 주식 브로커로밖에 보일질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네에서 철수에게 새생명을 줄 수는 없겠지요... 제 손가락을 위해서라도 그래야겠습니다...

Conan 2022-05-30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분당에서 출마했군요...
아침 일찍 그에게 ‘-1‘을 안겨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신선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5-30 08:07   좋아요 1 | URL
^^: Conan님 감사합니다. 최종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습니다만... 기본 소양이 부족한 이의 행동에는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토록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