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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문명과 사회 구성 원리에 관해서는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언급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가 걸어놓는 화두는 '관계론' 關係論 입니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 存在論 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p23)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신영복(申榮福, 1941 ~ 2016)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는 서양철학을 존재론으로, 동양철학을 관계론으로 규정한다. 존재론에서 개별 존재가 기본단위로 이로부터 확장을 추구한다면, 관계론에서는 기본단위가 망(網)이 된다. 마치 물리학에서 기본 단위를 '점'으로 보는 사상과 '끈 string'으로 보는 사상(초끈이론)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기초단위의 설정부터 두 사상은 다르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 實體性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증식 自己增殖을 운동 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p23)...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 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p24)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저자는 이러한 두 세계의 차이로부터 우리가 동(同)에서 화(和)로 나가야함을 강조한다. 존재론의 자기 증식적 성향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가치관의 변환을 촉구한다. 저자에게 고전은 단순한 옛글이 아닌 현실 문제의 해결방안을 촉구하는 현실의 목소리다. 다만, 우리가 고전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지만, 현대의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에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당대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평가에 저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동 同은 이를테면 지배와 억압의 논리이며 흡수와 합병의 논리입니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근대사회의 일관된 논리이며 존재론의 논리이자 강철의 논리입니다. 이러한 동 同의 논리를 화 和의 논리, 즉 공존과 평화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p46)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 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p141)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의 입장에서 고전을 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를 자본집중화로 인한 빈부격차와 인간소외, 신자유주의문제로 바라보는 저자는 인간관계의 회복을 통해 현대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死活的 공세 攻勢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본 축적 과정의 전형적 형태입니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와 존재론적 운동 형태를 지양하지 않는 한 다른 경로가 없기 때문이지요.(p33)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상품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통일물로 설명하고 이를 상품의 이중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상품은 교환가치가 본질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에 종속되는 것이지요. 상품은 한마디로 말해서 팔리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감성이 상품미학에 포섭된다는 것은 의상과 언어가 지배하는 문화적 상황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지요.(p197)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생각해보면,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가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처음을 분업(分業)을 통한 효율적인 생산을 말한 것으로 시작하면서 근대 경제학은 생산 중심의 경제학으로 변모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만, 같은 저자의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이 동감(同感)으로 부터 시작됨을 생각해본다면, 애덤 스미스의 경제철학에도 생산 이전에 교환이 중심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신영복 교수의 동양고전에 대한 성찰은 생산에서 교환 중심의 경제학으로, 근대 경제학의 시작을 <도덕감정론>으로 생각하는 학자의 현실 인식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신영복의 인식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의 사상과도 통한다. 


 자본은 자기증식을 할 수 없을 때, 자본이기를 멈춘다. 따라서 언젠가 이윤율이 일반적으로 저하되는 시점에 자본주의는 끝난다. 그때 비자본제경제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 그 충격을 흡수하고 탈자본주의화를 돕는 일이 될 것이다. 명확한 것은 생산 과정에 대한 과도한 중시와 유통과정의 경시가 자본의 축적과정에 대응한 대항운동을 실패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정하는 데에는 좀 더 근본적으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에서 보는 시점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p413) <세계사의 구조>中


 저자는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존재론-관계론'의 문제를 경제학에 대한 인식으로 끌어갔지만, 저자와 배경지식이 다른 이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문명(文明, culture)를 바라보는 아널드 J.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CH,1889 ~ 1975)와 정수일(鄭守一, 1934 ~ )의 입장 차이는 존재론과 관계론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를 정리해보자. 결론은 두 종류의 관계, 즉 동일한 사회 내부의 부분사회(커뮤니티) 간의 관계와 서로 다른 사회 간의 관계는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p44)... 이해할 수 있는 역사 연구의 단위는 민족국가도 아니요 정반대인 인류도 아니며, 다만 우리가 사회라고 이름 붙인 어떤 종류의 인간 집단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p49) <역사의 연구 Study of History 1> 中


 씰크로드학의 핵심은 씰크로드를 통한 문명의 교류상을 밝혀내는 것이다. 문명의 교류, 이것은 씰크로드학의 전편에 깔려 있는 밑그림이며 전장(全章)을 관류하는 물줄기다. 그래서 씰크로드학은 일종의 문명교류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명이란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통해 창출한 결과물의 총체로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으로 대별된다. 문명의 생명은 이러한 결과물에 대한 공유(共有)다.(p18) <씰크로드학> 中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는 저자의 깊은 성찰이 담긴 해설도 접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바라보고 미래의 길(道)을 확인하는 자세라 생각된다. 그리고,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저자는 독자들에게 한 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인문독서 입문서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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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1-25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은 관계론이 아닌 존재론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차이 인정은 영원히 차이를 좁히지 못하여 존재를 고착화 한다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존재론자들의 숨은 의도에 관계론자들이 여전히 많이 속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아무튼 새해 첫날부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즐건 설 명절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20-01-25 14:54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존재론과 관계론의 논쟁은 오늘날에도 계속 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연휴 되세요!^^:)

초딩 2020-01-25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0-01-25 14:55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설연휴에 복 많이 받으세요!^^:)

하나의책장 2020-01-26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0-01-26 11: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하나의책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안한 연휴 되세요!^^:)

종이달 2022-05-22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22 23: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종이달님
 

그리고 모든 도인 집에서는 어린아이를 치지 말라는 간절한 당부를하였다.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하날님을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게 곧 하날님을 치는 것이오니 천리를 모르고 일행 아희를 치면 그 아희가 곧 죽을 것이니 부디 집안에 큰소리를 내지말고 화순하기만을 힘쓰옵소서. 이 같이 하날님을 공경하고 효성하오면 하날님이 조와 하시고 복을 주시나니 부디 하날님을 극진히 공경하옵소서"라는 간절한 당부를 하였다. 후일 소춘 김기전(金起田)이 1921년에 천도교 소년호를 창립하고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것은 이 「내수도문」에 기초한 것이라고 전한다.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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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7 13: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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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7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회남자 & 황제내경 : 하늘, 땅, 인간 그리고 과학 지식인마을 20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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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강신주(姜信珠, 1967 ~ ) 박사는 <회남자 & 황제내경 淮南子 & 黃帝內經>을 통해 동양 과학사상과 서양 과학사상의 차이와 동양 과학사상에 기반한 동양의학(한의학)의 신체관을 설명하고 있다. 리뷰에서 동양의학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뿌리가 되는 동양 과학사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서양 근대 자연과학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양(量)으로 치환한다. 우리가 분석하려는 요소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는 주어진 조건으로 가정하게 된다. 'ceteris paribus, all things being equal'라 불리는 이러한 전제를 통해 일반법칙을 도출할 수 있게 되며, 세워진 수식을 통해 수리적 조작을 가능케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상과 주체의 엄격한 분리가 필요하다.


 서양의 근대 자연과학은 인간의 양적인 경험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전통은 이를 통해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일반화하려는, 즉 양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와 달리 동양 전통 과학사상은 음양오행론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질적 경험을 직접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제1성질(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 크기, 모양, 양, 운동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결여되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연에 대한 양적인 조작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었다.(p3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반면, 동양 전통 과학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는다. 기 氣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동양 과학의 태도는 관찰되지 않는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서양 과학의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결과 동양 전통 과학에서는 일반 법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되고, 이러한 차이로부터 동양 과학은 서양 과학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우리는 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기가 비가시적 invisible 이지만 감지할 수는 sensible 있는 것이다'라는 정의이다.(p51)... 우리는 동양 전통 과학사상의 중대한 특징 하나를 읽어낼 수 있다. 즉 기에 대한 경험이나 감지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객과화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서 객관화되기 어렵다는 표현은 양화되기 어렵다는 것, 즉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p52)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우리는 동양의 전통 과학사상이 기본적으로 '실험'을 통한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 즉 실험을 통해서 반박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동양 과학사상은 '실험'하고나 '조작'하기보다는 오히려 '설명'하는데 치우쳐 있었다고 할 수 있다.(p39)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이러한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의학은 서양의학과 다른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다. '편작'으로 대표되는 동양의학은 인체를 '유기체'로 바라보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점이 서양의학의 환원주의 reductionism, 還元主義 의 극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동양의학이 주먹구구식 의학이 아니라, 혁명적 사고의 전환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사진] 동양 의학과 서양 의학 차이(출처 :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13/2013041300268.html)


 동양의학은 우리의 신체를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유기체'로 다룬다. 유기체란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전체의 변화는 모든 부분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통일체를 말하는 것이다.(p15)... 배를 절개해서 내장들을 직접 살펴보고 이것들을 치유하려는 유부 兪跗라는 의사는 서양의학의 해부학적 사유와 매우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해부학적 치료법에 대해 편작 扁鵲은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한다. 그러나 이런 해부학적 치료법에 대해 편작은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한다.(p1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편작 앞에는 이미 '유부'로 대표되는 '해부학적 의학'이 있었던 것이다. 편작의 새로운 의학이 해부학적 사유를 부정하면서 출현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동양의학이 해부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서양의학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성격을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p16)... 동양의학은 어떻게 인간의 몸 안에 오장육부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동양의학도 기본적으로는 해부학적 전통에서 왔다... 그들 역시 몸을 구성하는 각각의 장기를 직접 관찰했고 그것들의 위치를 경험적으로 확인했던 것이다.(p132) <회남자 & 황제내경> 中


 그렇다면, 동양 과학사상에 기반한 동양의학의 탁월한 점과 한계점은 무엇일까? <회남자 & 황제내경>에서는 동양의학의 탁월한 점으로 몸의 기능을 관계를 통해 해석한 점으로 꼽는다.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원리와 질서가 우리 몸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보편적인 도 道를 끌어낼 수 있다. 반면, 지금 사회에 적용되고 있는 질서를 통해 자연 nature 自然 법칙을 바라보기에, 혁명적 인식의 전환을 어렵게 만든다. 초기 동양의학이 혁명적 사고의 전환의 결과였음에도, 이후 획기적인 전환점이 없음은 이를 반증한다. 그리고, <회남자 & 황제내경> 에서는 그 예로 뇌(腦)의 기능을 발견하지 못한 동양의학을 들고 있다.


 <황제내경>에서 다른 장기도 물론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도 서한시대 동양의학자들이 생명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심, '일차적 중심(위장)'과 '이차적 중심(심장)'을 따로 설정해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일차적 중심'이 신체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관계를 상징한다면, '이차적 중심'은 신체 내부의 균형과 조화를 상징한다. 결국 '이차적 중심'은 최종적으로 '일차적 중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황제내경>의 탁월할 통찰이었다.(p13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왜 <황제내경>은 뇌가 정신활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통찰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동양의학자들이 정신활동이 직접 장기를 손상한다는 임상적 경험을 직접 추상화해냈기 때문이다.(p137)... 고대 중국인은 경험적으로 사실을 관찰하고 그에 주목했다. 이로부터 그들은 기쁨, 노여움, 두려움, 걱정 같은 정서적 반응이나 사유 같은 지적인 활동이 신체 내부의 장기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정신활동이 장기에 직접 속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오행론이 함축하는 유추논리이 부적절함이 확실하게 드러난다.(p138)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동양의학(한의학)과 서양의학 중 어떤 의학이 더 우수하고, 어떤 치료법을 선택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잠시 마케팅 Marketing 조사 기법을 머리도 식힐 겸 살펴보자. 


  <회남자 & 황제내경>을 읽다보면 우리는 마케팅 조사 기법 중 정성 Qualitative 定性 조사와 정량 Quantitative 定量조사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정량 조사 기법은 객관식 문항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의향을 파악하는 분석 방법인 반면, 정성 조사 기법은 개념 도출을 위해 사용하는 분석 방법이다. 전자가 객관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파악하는데 활용되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전혀 새로운 사실, 제품 등의 소비자 수용성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진] 정성조사 정량조사(출처 : https://www.weetechsolution.com/blog/strengths-and-weaknesses-of-quantitative-and-qualitative-research)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일반적인 법칙/치료법을 추구하는 서양의학은 우리가 아픈 상황에 직면했을 때 눈 앞의 치료를 위해서 바람직한 반면, 동양의학은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우리가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병원을 이용하고 있기에 별로 놀라운 결론은 못된다.)


 <회남자 & 황제내경>은 이처럼 동양과학과 서양과학 사상 기반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의학의 차이까지를 넓게 바라보고 있다. 어느 의학이 더 우수한가에 대한 질문과 답에는 주관차이가 존재하겠지만, 동양 의학 역시 해부학적 사실에서 출발했다는 점과 인식의 전환이 있었음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회남자 & 황제내경>은 우리에게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좋은 교양서적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대상 - 주체'와의 관계를 정리한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서양의 분리법에서는 내포 intension와 외연 extension이라는 유명한 논리적 개념들이 출현하게 된다. 여기서 내포가 어떤 개념이 함의하고 있는 속성들을 의미한다면, 외연은 그 개념이 가리키는 대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음양 陰陽에 의한 의한 분류법에는 내포와 외연이라는 논리적 관계가 성립될 여지가 전혀 없다. 단지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유사성에 의한 유비 analogy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점에서 유비적 사유는 마치 시 詩에서의 '은유'나 '직유'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p55) <회남자 & 황제내경> 中


PS. '대상-주체'의 관계를 분리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서양과학이라면, 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동양과학이라고 정리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동양과학은 통계학에서 말하는 '공분산 共分散, covariance : 2개의 확률변수의 상관정도를 나타내는 값'을 고려한 과학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동양과학 사상으로부터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 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을 '유비'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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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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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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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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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7: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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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8-10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분야에 깊이있는 독서를 하시고,
늘 글도 꾸준히 쓰시는 호랑이님.. 부럽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8-10 22:48   좋아요 2 | URL
에고. 아니에요. 저는 북프리쿠키님께서 독서 모임을 통해 여러 분야의 책을 깊이 있게 읽고 계시는 모습이 많이 부럽습니다. 한동안 더운 날이 이어진다니 북프리쿠키님께서도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병경백자  兵經白字>는 게훤(掲暄, 1613 ~ 1695)이 저술한 병법과 관련한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병법과 관련한 100자 운(韻)을 제시하면서 병법과 관련한 내용을 구성한다. 상 중 하로 구성된 3권은 각각 지부(智部), 법부(法部), 연부(衍部)로 되어 있으며, 이하 세부 주제어를 제시하여 각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의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지만, 글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상반된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기에 현실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법부>의 '과장하기'와 '축소시키기' 편이 그렇다.

 

 과장하기(張) : 아군의 위엄을 과장하여 적의 사기를 빼앗고 변칙적인 계책을 내어 승리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장되게 위세를 부려 실용적 이익을 성취하는 것이니, 허약한 군대에게는 좋은 방법이다.(p132) <병경백자> 中

 

 축소시키기(減) : 자신의 정통(精通)하고 능숙한 능력을 감추는 것은 적군의 성대한 기세를 약화시킬 수 있으니, 오직 축소시키는 것만이 적군의 강력함을 이길 수 있고 오직 축소시키는 것만이 적군의 강력함을 가지고도 아군을 어렵게 만든다. (p134)  <병경백자> 中

 

 개별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전체적으로는 서로 모순(矛盾)되는 듯한 위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병법서를 읽기 전 무엇보다도 자기 이해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를 잘 설명한 내용이 너무도 유명한 <손자병법 孫子兵法>의 다음 구절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말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만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지게 될 것이며,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게 될 것이다."(p106) <손자병법> 中

 

 따라서 용병을 아는 자는 출동해도 미혹되지 않고, [군대를] 일으켜도 막힘이 없다. 따라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는 곧 위태롭지 않으며 하늘을 알고 땅을 알면 승리는 곧 온전해질 것이다.(p257) <손자병법> 中

 

 많은 이들이 현대 기업의 경영(經營)을 전쟁에 비유하며, 병법서를 읽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현대 경영서적들이 옛 병법과 고대 전투를 사례로 다루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병법서에서 제시한 수 많은 방법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어떤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연후에 병법서를 읽더라도 크게 늦지 않을 것임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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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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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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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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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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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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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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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덕경


노자(老子, BC 604 추정)의 <도덕경 道德經> 에서는 무위(無爲)를 말하며, 자연의 법칙에 따를 것을 말하고 있다. 특히, 제16장에서는 자연의 이치에 따르면 오래갈 수 있으며,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고 말하면서 순리(順理)에 따를 것을 강조한다.

<도덕경 제 16장  第16章> 


지허항야至虛恒也, 수중독야守中篤也 

텅 빈 상태를 유지해야 오래 가고, 중(中)을 지켜야 돈독해진다.


천내도天乃道 도내구 道乃久 몰신불태 沒身不殆

하늘에 부합하는 일이 곧 자연(自然)의 이치다. 자연의 이치대로 하면 오래갈 수 있으며,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p145)'


2. 엔트로피 법칙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  우리 주변의 자연(nature)법칙에는 물리학의 법칙이 포함되며, 열역학의 법칙도 여기에 속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며, 엔트로피의 증가는 다른 말로 유용(有用)한 에너지의 손실을 의미한다.


'열역학은 우리가 아는 과학적 개념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놀라운 것이다. 제1법칙과 제2법칙을 합쳐서 하나의 짧은 문장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제1법칙),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2법칙)


제1법칙을 부연설명하자면 에너지를 창조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p50)... 제2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는 한 가지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이 벌금은 뭔가 일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그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Entropy)다.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츨정하는 수단이다.(p51)'


 엔트로피의 증가는 평형상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데, 이 극대점은 자유롭고 유용한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일정량의 에너지가 무용한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뜻이다.(p52)... 평형상태는 엔트로피가 극대점에 달한 상태이며,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롭고 유용한 에너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클라우시우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열역학 제2법칙을 요약했다. "엔트로피(무용한 에너지의 총량)는 극대점을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p53)'


3.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서 에너지는 변환되고, 변환되는 과정에서 에너지는 손실된다. 물론 에너지의 총량은 보존되지만, 유용한 에너지는 손실된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 했을때,  자연의 이치에 따른다는 '무위(無爲)'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엔트로피가 증가'되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으면 엔트로피의 억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을 것인지. 

 환경 오염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부(負)의 에너지인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당연히 행동해야 한다. 이때 우리가 선택하는 '무위(無爲)'는 단순히 비움(虛)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인 행(行)함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정한 '무위'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자는 그 컵을 채우려는 인간의 행위를 유위라고 부른다. 유위란 곧 존재에 있어서 허(虛)의 상실이다. 그러니까 그 반대방향의 행위, 즉 빔을 극대화(極大化)하는 방향의 인간의 행위를 바로 무위라고 부르는 것이다.(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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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2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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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2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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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2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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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2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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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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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 0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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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 0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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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 00: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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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 1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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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04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입춘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올해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겨울호랑이님, 따뜻한 일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2-04 11:03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한 해 좋은 일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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