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앞서 양전자를 발견했던 앤더슨 Carl David Anderson, 1905 ~ 1991이 우주선의 안개상자 사진 안에서 미묘한 입자의 궤적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즉 그 입자는 분명히 전자가 아닌데다가 양자보다 가볍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그 입자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새로운 입자(즉 중간자)라고 생각했다. _ 유카와 히데키,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 p113 


 유카와 히데키(湯川 秀樹, 1907 ~ 1981)의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은 여러 면에서 베르너 하이젠 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 ~ 1976)의 <부분과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에세이다. 물리학을 전공으로 하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전공이야기를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 함께 인생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 우리는 핵분열이라는 뜻밖의 과정이 충분히 가능한 것임을 인식했다. 아주 무거운 원자핵의 경우는 외부로부터의 작은 자극만 주어지면 저절로 분열이 일어날 수 있었다. 따라서 원자핵에 중성자를 쏘면 당연히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전에는 왜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_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 p100/284


 과학자들이 물리학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는 점외에 이들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의 국민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공통점을 갖지만, 책을 읽으면서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과학(科學)에 국적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기 때문일까. 하이젠베르크나 히데키가 각국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책에 담긴 그들의 생각과 두 나라의 다른 전후(戰後) 처리 방식이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 가을 힘들게 군복무를 하면서 보니까 주변에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히틀러의 이른바 평화 정책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면, 독일 국민들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히틀러와 그의 신봉자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될 거예요. _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 p101/284


 처음에도 말했듯이 중간자 이론은 오늘날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 이 난관을 벗어나게 되면 하나의 큰 해결점에 도달할 것이다. 사은 四恩의 첫째는 천황 폐하,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 스승과 벗의 은혜, 중생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지 사은 四恩을 잃지 않고 연구에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_ 유카와 히데키,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 p116


 다른 한 편으로, <부분과 전체>는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이론을 도출하고 인정받기 위해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 ~ 1955),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 ~ 1962)와의 진솔한 토론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것에 비해 히데키의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은 기초를 모르는 신입생에게 강의하는 노(老)교수의 기초 강의록 같은 면을 보인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는다.


 물질로부터 정신으로의 길, 이것이 현재 자연 과학이 추적하고 있는 길이다. 이것은 실로 먼 길이다. 언제쯤에나 완전히 통하게 될지 모른다. 물질의 측면에서는 물질과 화학이, 정신의 측면에서는 심리학이 그리고 그 가운데 생물학과 생리학이 각각의 길을 개척했다. 그러나 그 중간에는 아직도 미지의 광대한 황야가 있다. 우리들은 더 많은 실증적인 사실을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밑을 관통하는 법칙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_ 유카와 히데키,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 p83


 개인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에서 법칙에 대한 히데키의 문장에 시선이 머무른다. '더 많은 실증적인 사실을 통한 객관적인 법칙의 발견'이라는 히데키의 문장 속에서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 ~ 1814)의 이성(理性)을 떠올리게 된다. 사물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사물과 일치시키기 위한 이성의 사용. 이성을 활용한 과학의 탐구라는 점에서 하이젠베르크와 히데키는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히데키의 이성은 자기 이익(또는 자기 집단 이익)을 위한 '도구적 이성'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Force의 어두운 측면과도 같은 이성의 서로 다른 면을 가져간 것이 하이젠베르크와 히데키의 사고 차이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객관적 진리란 사물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 사물 자체와 일치하는 것을 뜻하다... 인간의 인식능력으로 사물 자체가 우리의 표상을 통해 실현되거나 우리의 표상이 사물 자체를 통해 실현되거나 할 수 있지만, 두 경우가 서로 긴밀히 얽혀 있어서 명확히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 전리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이성과 상충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표상은 결코 사물 자체와 일치할 수 없다._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계몽이란 무엇인가> <유럽 군주들에게 사상의 자유를 회복할 것을 촉구함> - P156

 

 국가에 봉사하는 '관직'의 의무에 합당하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이성의 '사적' 사용이라 일컫고, 반면 그런 관직의 의무에서 벗어나 단지 '식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개진하는 것을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 일컫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성의 '사적' 사용은 도구적 이성을 가리킨다. 그런 경우 공동체의 구성원은 '단지 수동적 태도만 취하게 하는 기계적 장치'의 일부로 기능하며, 이성 사용의 보편타당성 여부를 따져서는 안 되고 국가의 명령과 관직의 의무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반면 이성의 '공적' 사용에서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전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_임마누엘 칸트 외, <계몽이란 무엇인가> , 해제, p254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부분과 전체>를 읽기 전 간략하게 훑어보기 좋은 두 권의 책 소개를 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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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15 17: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지만 어려울 것 같은 ㅠㅠ 울집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네요. 사줘야겠어요. ㅎㅎ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9-15 19:05   좋아요 3 | URL
아이가 과학을 좋아하나 봐요. 어려운 공식보다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전개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니님 아이와 함께 좋은 시간 되세요!^^:)
 

물질로부터 정신으로의 길, 이것이 현재 자연과학이 추적하고 있는 길이다. 이것은 실로 먼 길이다. 언제쯤에나 완전히 통하게될지 모른다. 물질의 측면에서는 물리학과 화학이, 정신의 측면에서는 심리학이 그리고 그 가운데 생물학과 생리학이 각각의 길을 개척했다. 그러나 그 중간에는 아직도 미지의 광대한 황야가 있다. 우리들은 더 많은 실증적인 사실을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밑을 관통하는 법칙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은 객관적인 (따라서 또 상대적이고 개념적이지 않을 수 없는) 지식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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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토대 위에 ‘양(Quantity) ‘을 수힉적으로 측정하며 운동을 예측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과학. 유도원•주전원 가설에 기초한 「알마게스트」는 하늘을, 「지리학」은 땅을 설명하는 확고한 고대 과학의 정점을 이루며, 중세 천문학을 ‘알마게스트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전락시킨다. 코페르니쿠스에 의한 대전환이 일어나기 전까지 프톨레마이오스는 어떻게 중세 유럽과 이슬람 과학계를 지배했는가. 이를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1」에서 다룬다.

앞으로 요시타카의 3부작 리뷰를 통해 과학사를 정리하고, 서구의 근대화를 이끈 첫번 째 요인인 ‘자본주의‘에 이은 두번 째 요인인 ‘과학‘의 역사를 정리할 계획이다...


고대 천문학이 도달한 지점으로 오로지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비단 이 저작의 수준이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노이게바우어가 말하는 것처럼 "그의 저작은 고대의 수학적 방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천문학의 성과를 사실상 전부 포함하며, 『알마게스트』 에 의거해보는 한 그리스나 오리엔트에서 알마게스트 보다 선행했으면서 이후에도 살아남은 전혀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알마게스트』가 그 후 수백 년에 걸쳐 수학적 천문학에서 기술과 계산의 기본 형식 paradigm을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P59

이 책은 15세기 중기부터 17세기의 30년전쟁까지, 북방의 인문주의 운동과 종교개혁을 배경으로 하여 중부 유럽을 무대로 한세기 반에 걸쳐 전개된 천문학과 지리학, 조금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세계 인식의 부활과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전작 「16세기 문화혁명」을 보완하는 의미로, 16세기 문화혁명과 나란히진행됐던 천문학 개혁의 전말을 추적하는 것이다. 왜 그리고 어떻게 서구 근대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탐색은, 「과학의 탄생: 자력과 중력의 발견」, 「16세기 문화혁명」과 함께 3부작을 이루는 이 책으로 일단 완결되는 셈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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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이론의 핵심은 행성 운동의 제1의 부등성과 제2의 부등성을 각각 이심원•등화점 메커니즘과 유도원•주전원 메커니즘으로 설명하고, 관측 데이터에서 도출된 유도원과 주전원 반경의 비, 그리고 그 회전주기로 행성궤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각 파라미터를 결정하는 데 적합하도록 각 행성의 특별한 배치를 신중히 선정하고, 그렇게 선정된 배치에서 관측하여 얻은 최소한의 데이터를 사용한다.  - P90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제창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지구중심의 세계상에서 태양 중심의 세계상으로 전환되었다는 것뿐만은 아니다. 만약 그것이 전부라면 관측과 기술을 위한 좌표계를 변환했을 뿐으로,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점은 지구를 행성 대열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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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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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 상태, 곧 세상에 대한 흐릿한 시각을 말할 뿐인 거시적 상태는, 에너지는 보존하면서 이 에너지가 결국에는 시간을 생성하는 하나의 혼합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p144)... 하나의 거시적 상태가 시간의 어떤 특성들을 지닌 특별한 변수를 선택하는 것이다.(p145)

거시적 상태 ☞ 에너지 ☞ 시간

카를로 로벨리는「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시간구분(과거, 현재, 미래)이 본질적인 차이가 없고 단지 에너지의 흐름(엔트로피)이 시간을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엔트로피의 증감에 따라 시간은 정방향으로도, 역방향으로도 흐를 수 있게 된다. 물처럼.

시간의 방향성은 실제적이지만 관점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세상의 엔트로피는 ‘우리와 관련돼‘있고, 우리의 열적 시간과 함께 증가한다. 우리는 이 열적 시간을 간단히 ‘시간‘이라고 부르는데, 이 변수 안에서 사물들이 순서에 따라 발생하기 때문이다(p203)... 우리는 서로 다른 고유의 시간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며, 시간의 속도 차이도 식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간들이 아닌, 우리가 경험한 범세계적이고 순서가 있는 시간, 이 단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p203)

물리학적인 시간은 아마도 그렇게 변화무쌍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식과 결합된 시간은 인과관계라는 접착제에 의해 응고되어 기억 속에 저장되고, 우리는 이 기억에서 시간의 의미를 찾는다. 마치, 유약을 바르고 열에 의해 구워진 도자기는 깨진 후에도 흙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개인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 시간은 명확한 방향성을 부여받고 엔트로피의 법칙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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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8-13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엔트로피 때문에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엔트로피 때문에 인간이 시간을 느낀다는 것으로 전 이해했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ㅠ
결국 인간은 아직 시간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어떠셨어요?^^

겨울호랑이 2020-08-14 07:35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책을 읽으면서 ‘시간‘의 좌표에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좌표에 인간이 시간을 설정한 것은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추가적으로 ‘이벤트 호라이즌 event horizon‘의 의미를 더 잘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시간의 의미에 대해서는 3차원 세계에서 사물을 인식하는 수단으로 시간은 객관적으로는 허구일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만... 부족한 제 생각일 따름입니다^^:)

초딩 2020-08-13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떨림과 울림 읽고 있는데 양자역학과 인트로피의 이야기네요~ 찜합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20-08-13 20:01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초딩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

초딩 2020-08-13 22:42   좋아요 1 | URL
모든 순간의 물리학의 카를로 로벨리 였군요~ 표지가 유사했네요~ 방금 교보 문닫기 3분전에 직원분에게 물어서 샀어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20-08-14 07:31   좋아요 1 | URL
^^:) 축하드립니다. 저는 초딩님의 책사랑은 못 따를 듯 합니다. 기분좋게 하루 마무리하셨겠네요. 오늘도 활기찬 하루 여시기 바랍니다.

초딩 2020-08-14 09:39   좋아요 1 | URL
:-) 박진감 넘쳤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