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권력에 관한 것, 즉 누가 권력을 쥐어야 하고, 권력은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지만, 모든 권력관계가 정치적 관계인 것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지적은 본래적으로 정치적인 본성을 둘러싼 것이라기보다는 그 관계를 다루는 데서 보이는 정치의 태만을 둘러싼 것이다.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해온 정치권력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특유하게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적절한 매개 변수를 설정하지 못했다. 정치권력의 태만은 많은 점에서 지적할 수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다른 집단이 품고 있는 문화적 가치관에 대한 경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은 중요한 선(善)의 하나다. 아울러 정치적 올바름을 약화시키는 것에 굴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문화가 자유와 평등?특히 여성을 위한 자유와 평등?에 적대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 설령 그렇게 하는 것이 불쾌감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강력하게 그 문제성을 주장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앞에서 우리가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를 정치철학의 오랜 물음들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볼 것이 아니라 그런 물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으로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로서는 이제 그런 견해가 정당화되었기를 바란다. 페미니스트와 다문화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정치권력,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정의에 관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도록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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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12-05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2023년 서재의 달인. 북플 마니아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님의 성실함에 대한 작은 보상 🎁 이라고 생각해요.
한해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앞으로도 함께 합시다!

겨울호랑이 2023-12-05 08:1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을 비롯한 이웃분들께서 부족한 글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3-12-05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12-06 09:5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항상 좋은 격려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선거제도의 이해 (수정판)
데이비드 파렐 지음, 전용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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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에 우리 유권자는 투표하며, 그 후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지, 각 정당등은 몇 석을 얻었는지, 그 결과를 기다린다. 바로 여기서 득표수를 계산해 의석수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의 기능이다. 이제 선거제도를 정의해보자. 선거제도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24

데이비드 파렐 (Farrell, David M.)는 <선거제도의 이해 Electoral Systems>에서 선거제도를 '유권자가 행사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이는 개인이 명시적으로 표시한 의사표시를 전체 집단의 의지로 해석하는 여러 방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집단 의지'에서 어디까지를 집단으로 볼 것인가 하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유권자의 다수만을 집단으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소수 의견까지 집단으로 포함시켜야 하는가의 문제. 이로부터 비례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득표수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기준으로, '비례적(proportional)' 결과와 '비(非)비례적(non-proportional)' 결과를 낳는 선거체제로 분류하는 것이다. 비례적 선거제도의 핵심은 각 정당의 의석수를 자신들이 얻은 득표수에 가능한 한 근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비(非)비례적 선거제도에서는 한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 더 많은 표를 확실히 얻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강력하고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24

저자는 본문을 통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다른 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제도임을 말한다. 그렇지만,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또한 단점을 갖고 있다. 유권자는 자신의 후보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며, 특히 폐쇄식 정당명부제의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가 극대화된다. 부분으로 개인 의지와 전체로서 집단 의지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개인의 선택이 오히려 제약받게 된다는 점은 최선의 선거제도를 도출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여러 형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선거 공학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선거제도라는 사실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이 제도는 분명히 정당 지도부에게 상당한 정도의 통제력을 부여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제도 개혁가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비례성이 매우 높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여성이나 소수 인종 집단의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우수성을 감안한다면, 언젠가 모든 국가가 결국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149

특정 선거제도의 비례성과 정부나 정치체제의 안전성 정도 사이에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되었던 상반관계는 대부분의 경우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눈길을 끈다. 나아가 비례대표제에서 정부 안전성 정도가 높다고 결론짓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_ 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p351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선거법과 관련한 주요 논쟁은 정당의 이해관계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선거법 개선을 말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도 크게 군소정당의 입지를 늘리자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선거제도 개혁의 초점은 정당이 아닌 유권자에게 맞춰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비례대표제를 병립형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연동형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선출되는 대표가 누구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 여겨진다. 다소 극단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왜 우리는 공간(空間)으로 구획된 지역대표만 선출해야 하는가? 시간(時間)으로 구획된 세대별 대표를 선출할 수는 없는 것일까? 20대와 30대 유권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의석 수를 해당 세대에 맞게 배부하고 이에 대해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선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성별 비율도 함께 접목시켜 의원을 선출한다면 보다 근원적인 대의제가 확립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스치듯 지나가는 아이디어라 이러한 생각에 문제점이 있으리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대표없는 곳에 과세 없다(No Taxatioin without Representation)'는 말처럼 의무만 부담하고 권리를 행사할 방안을 갖지 못하는 계층, 집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함을 선거법 개정과 관련한 논란을 보며 마음 깊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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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1-30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인적으로 비례대표제가
이상적인 제도라는 점에는 동의
하지만, 2023년 한국에서는 현실
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현실정치는 상대방의 선의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시간과 세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11-30 16:11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제도 개선에 대한 전체의 공감대 형성이 된 상태에서 제3자에 의한 제도변경이 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의견수렴 노력도 없는 상태에서 국회의원들의 이해와 직결된 문제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문제있다고 생각됩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제3의 독립기관에서 추진하는 편이 더 바람직해 보입니다. 이도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을 보면 아직 갈길이 멀어보이네요...레삭매냐님 감사합니다. ^^:)

호시우행 2023-11-30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더 많이 뽑는 것은 그들만의 리그이므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나는 절대 반대합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제도 없애야 합니다. 그 속에 감추어진 은밀한 뒷거래의 민낯을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바로 매관매직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공정한 경쟁에도 위배되는 행위입니다.ㅠㅠ

겨울호랑이 2023-12-01 08:09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 말씀처럼 기득권을 가진 정당들이 정치판을 거의 양분하는 현 구조에서 비례대표제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소수정당이 자리잡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수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그리고 거대정당 외 다른 정당에 대한 선택이 가능할 수 있는 상식적인 국정운영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매번 선거때보다 보다 진전된 논의를 위한 선택이 아닌 이데올로기의 거대 담론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어 피로감이 많이 쌓이네요...
 

홉스는 절대적 주권자를 창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절대적 주권자는 그 명령이 어떠한 세속적 제한(홉스는 주권자가 여전히 신에 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고 믿었다)에도 구애받지 않는, 권력의 분할되지 않는 원천이다. 이 주권을 쥐는 주체가 단 한 명의 인간(즉 군주)이라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홉스는 군주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군주의 의지는 일정하고, 의회와는 달리 내적 분열에 빠지는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절대군주에게 의탁하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너무 위험하다. 그 대안으로서 우리는 지혜롭고 유덕하며 민중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게 하자고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말 그대로는 ‘최선자의 통치’를 의미하는 귀족정(aristocracy)을 지지하는 논의인데, 최소한 19세기 중반까지 대다수의 정치철학자가 이 논의에 납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은 국민 투표라는 드문 기회에만 행해지는 것일까? 그 이유로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정치적 결정의 배후에 놓인 쟁점들을 이해할 능력이 단적으로 없으며, 그래서 이러한 사안을 다루는 데 더 뛰어난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결정을 맡긴다고 하는 널리 퍼져 있는 믿음을 들 수 있다.

우리는 민주 사회에서 보통의 시민들을 상대로 하는 인터뷰나 설문 조사에서 정치적 지식의 수준이나 관심이 낮게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형적으로 그들은 지도적인 정치인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주요 정당들의 정책이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하지 못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한 가지 설명은 현행 민주주의가 사람들에게 정치적 지식이나 기능을 획득할 동기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민주주의란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아니라 민중 전체에게 국가적 사안에 대한 최종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지속적인 싸움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수자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토론을 하기 전 단계부터 자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결책에 찬성 투표만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대신에 그들은 상대편의 주장을 들어보고 나서 판단을 형성하려고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요구하는 바가 많은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종종 복잡하고 자신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해 보이는 정치적 쟁점들에 관심을 가지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쟁점들에 관해 결정할 때 자제하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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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보았듯이 민주주의적 관념들의 영향력 있는 원천이었던 루소조차도 민주주의는 인간이 아니라 신들에게만 적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배적인 조건들을 고려할 때,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당시 실행 가능한 정부 형태가 아니었다.

정치권력에는 두 측면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권위로서, 바꿔 말하면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명령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서 인식한다.

홉스는 늘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며 죽음의 위협에 맞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하는 것만이 가장 현명한 태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가능한 한 더 많은 힘을 모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이 없는 삶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영원한 전쟁’으로 만드는 것은 불신으로부터 생기는, 다른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다.

시장은 사람들이 저마다 사용하고자 하는 재화나 서비스에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데 근거하여 작동한다. 그리고 공공재의 문제성은 바로 그것들이 대가를 지불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제공된다는 점일 따름이다.

시민 불복종은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데는 허용 가능한 수단일 수 있지만, 언론의 자유나 평화적 저항권이 인정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정치적 의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더욱 엄격하다?는 것이 보통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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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government)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말하려는 것은 ‘현 정부’, 즉 특정한 시점의 사회 속에서 권력을 지니는 사람들의 집단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어떤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국가, 즉 그것에 의해 권력이 행사되는 내각, 의회, 법원, 경찰, 군대 등과 같은 정치 제도보다 더 광범위한 어떤 것이다.

그러한 도전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어떻게 이 목표들을 성취할 수 있는지의 물음을 제기한다. 이것들은 정치철학의 핵심적 물음이다.

우리는 정치에 관해 생각할 때 종종 스스로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가정들, 즉 기저에 놓여 있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아주 근본적으로 변하는 가정들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홉스가 저술하던 시대에는 정치적 논의 때 종교적 원리, 특히 성서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었다. 그의 항구적인 유산들 가운데 하나는 정치에 관해 순수하게 세속적인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의 목표는 아나키스트와 국가주권주의자, 민주주의자와 엘리트주의자, 자유주의자와 권위주의자, 국가주의자와 세계주의자 등등이 서로 논쟁할 때 쟁점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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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5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있습니다. 이 시리즈 5권 있는데, 현대철학과 정치철학이 얇으면서도 읽을만 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완독한 건 아닌데, 몇몇 절을 읽어보니 꽤 괜찮은 시리즈 였습니다. 여유가 되면 이 시리즈 싹다 갖춰놓고 싶어요..ㅎㅎ

겨울호랑이 2023-11-25 12:19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특히 철학 시리즈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신 yamoo님 말씀이니 믿고 시리즈를 정주행해도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추운 주말 건강하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