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기도 - 깊은 상처와 갈등을 해결하는 1500년의 지혜
안셀름 그륀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의마음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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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직장 상사와 심각한 갈등을 겪은후 마음 정리를 위해 펼쳐든 책.

˝갈등을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p6)˝

˝인간은 본질적으로 갈등하는 존재이고, 갈등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이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과의 갈등에서 자기 내면의 대립을 인정할 때 비로소 화해의 길이 열립니다(p38)˝

처음에 직장상사와 갈등으로 고민했는데, 갈등을 문제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갈등은 지금 내게 주어진 인생의 과제다. 이 과제를 풀어야 다음 과제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도 눈에 띄인다.

˝분노를 안고 잠들지 마라˝

일단 푹 자야겠다. 밤에 생각을 멈추고 잠들었다. 새벽에 마저 책을 본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 다툽니다`라는 자세 때문에 갈등이 더욱 커진다는 역설이 있습니다. 이런 도덕적 요구가 어떰 폭력을 휘두르는지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p48)˝

적어도 나는 지금 그 상사를 사랑하지 않는다. 솔직히 밉다. 인정하자. 인간 사이의 갈등이 생겼다. 그럼 이제 어떻게 풀 것인가?

갈등 해소를 위한 5가지 필요 요건(p53)

1. 갈등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직시하십시오.
2. 갈등 당사자 모두의 정당성을 인정하십시오.
3. 상대방이 진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십시오.
4. 상대방의 입장과 주장, 그의 의견을 따랐을 때 예상되는 결과를 꼼꼼하게 따져 보십시오.
5. 스스로를 꼼꼼히 점검하십시오.

˝명심하십시오. 나의 꿈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면서 나의 꿈과 마주해야 합니다(p56)˝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 같다.
적어도 갈등으로 생기는 분노가 호랑이처럼 밑에서 올라오는 것이 느껴지니, 이를 진정시켜야겠다. `수승화강` 또는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가 되도록 또 고민해야겠다.

이 책은 평소에는 손이 가지 않지만, 인간관계로 힘들어할 때는 내게 곁에서 잘 조언해 주는 성실한 친구로 오늘 나에게 다가온다.

둘 이상의 상반된 일을 추진할 때, 둘 이상의 집단이 같은 목적을 두고 경쟁할 때 갈등이 생긴다(헤드비히 켈너)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분노가 덮쳐 가시처럼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 쉽기 때문이다(성 버네딕토 규칙서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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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5-21 1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노를 안고 잠이 오나요?_?

겨울호랑이 2016-05-21 10:32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시나몬님^^ 아니요 저도 분노를 안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다만, 감정을 멈추고 `얼려버리고` 편안히 자요 잠 못자면 저를 화나게 한 사람이 더 좋아하겠지요?^^ 보란듯이 편하게 잤습니다 ㅋㅋ

비로그인 2016-05-21 1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ㅜㅜ 몸을 움직이는 일보다 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더 힘들고 어렵네요 제겐 ㅜㅜ
겨울호랑이님의 경지가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6-05-21 11:13   좋아요 2 | URL
저도 잘 되지 않네요 ㅜㅜ 다만, 가뜩이나 심란한데 그것 때문에 다른 소중한 건강, 관계, 사람들도 잃기에는 아까운 거 같아서요^^ 노력하고 있어요

2016-05-21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5-21 11:2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김영성님 네 많이 나아졌네요 이제 조금 더 여유있게 고민해야지요 딸아이와 놀고 있으니 편하네요 ㅋ 좋은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cyrus 2016-05-21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갈등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갈등의 원인인 당사자와 나 자신을 비교하려고 해요. 당사자의 잘못만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5-21 17:3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실제로 그런 것 같아요
각자의 입장이 있겠지요. 특히 회사라는 이익집단에서는요. 상사 입당에서는 아마도 제가 엄청 밉겠지요. 그냥 입장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월요일에 면담하기로 했답니다^^ 감사합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 광해군일기,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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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2명의 폐주(廢主)의 일기가 있다.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이 시기의 기록들은 실록이라는 제목 대신 일기라는 표제가 붙는다.

일반적으로 폭군이라고 모두가 인식을 같이 하는 연산군과는 달리, 최근 광해군은 개혁군주로서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는 인조반정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병자호란이라는 외침을 최소한 겪지 않아도 되었으리라는 아쉬움에서 출발한다.몇 해 전에 개봉한 <광해_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 역시 이러한 아쉬움의 또다른 발로가 아닐까.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광해군에 대한 상이한 시선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광해군 관련해서는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 (역사비평사 2000) 과 오항녕 교수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너머북스 2012) 등이 이러한 상반된 관점이 잘 대비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을 읽기 전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광해군의 이미지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록속의 내용을 간적적으로 접하고 나서는 그와 같은 내 생각이 편향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왜란 중 분조(分朝)를 이끌며, 백성들의 참상을 몸소 체험한 군주였다.
전란 후 백성들의 피폐한 삶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였지만, 계속된 궁전의 중수는 백성들의 짐을 덜어주지 못했다. 또한, 아버지 선조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기에, 계속된 숙청을 하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서인들을 중심으로 한 인조반정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오히려, 백성보다는 집권계층의 권력 다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에게 개혁군주라는 칭호가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와는 반대로,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분명히 시대적인 흐름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었지만, 당시 시대적 이데올로기인 사대주의에 배치되었기에, 그는 사대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결국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광해군일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광해군 실각`의 2가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서민들의 경제적인 부담과 전례없는 외교의 실시. 이와 관련해서 경험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난다.

광해군은 왜란 후 피폐된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궁궐중수를 실시했다. 왕권강화 측면의 이면에는 어느 정도 Keynesian economics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2007년의 외환위기 당시 4대강 건설 등을 통해 국가경제를 위기에서 건져내려는 일련의 노력을 했고, 그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외교면에서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표방해서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이명박 정부는 실패로 판명된 자원외교와 미국 편향의 외교 정책으로, 외교면에서는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인종`스러운 정책을 펼쳤던 것 같다.

다른 분야는 제외하고, 경제와 외교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겪었던 시대는 그다지 좋은 시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광해군을 통해 우리 시대를 비교해서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한, 지도자의 혜안은 분명 중요한 지도자의 덕목이지만, 그러한 혜안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리더십임을 광해군 일기를 통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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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상곡(夜想曲) 2017-02-04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은 이시기에 필망했어야 했다!!!!!!

겨울호랑이 2017-02-04 15:19   좋아요 1 | URL
^^: 조선 전기와 후기는 여러 면에서 다른 사회였던 것 같습니다. 천.지.인님 말씀처럼 사회개혁이 있었다면 이후 다른 역사가 펼쳐졌을 수도 있었겠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야상곡(夜想曲) 2017-02-07 0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은 그냥 임진왜란때 망했어야 했습니다.
오로지 그것만이 한민족의 다른 해법이었으니까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선조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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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당시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며, 당대에 율곡 이이, 서애 유성룡, 여해 이순신 등 우리 역사의 많은 위인들이 활동한 시기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기다. 예전 1980년대 MBC에서 ˝조선왕조 오백년˝이라는 드라마를 했을 때, 어린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임진왜란>은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담고 있는 선조실록에서 내가 특히 관심있게 본 부분은 `정여립의 난`이다.

정여립의 난은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하여, 모반을 꾀했다는 혐의로 집권세력이었던 동인(東人) 세력이 대거 숙청을 당한 사건(기축옥사)의 시초가 된다. 내가 `정여립의 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당시 가혹한 추국을 받던 중 사망한 이 발, 이 길 이 두 분이 선조이기 때문이다.

당시 추국 책임자가 `송강 정철`이라 하여 (최근 연구에 의하면 추국 책임자가 유성룡이라는 설도 있다 <유성룡인가 정철인가>) 지금도 문중에서는 정철 집안과는 혼인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기축옥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서가 나와 크게 관계가 없을 때, 우리는 어느 정도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우리는 역사를 주관적인 감정을 가지고 보게 된다. 사람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주관적인 관점의 역사 해석은 해석하는 사람의 위치가 `개인`일 경우에만 한정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의 위치가 `공인`일 경우에는 그런 주관성은 허용될 수 없다. 역사 왜곡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얼마전 ˝국정교과서˝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축옥사`가 발생한 때와 지금 내가 사는 시간은 약 400 여년의 간격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 때 사건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불과 수십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래서, 근대사를 주관적인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려고 하는(아니라고 하지만) `국정교과서` 문제는 우리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축옥사`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가문에 있어 불행했던 과거를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감정이 휩쓸리는 그런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사실과 역사 앞에서 `개인`과 `공인`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선조실록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ps. 작가과 작품은 독립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나라 가사문학에서 손꼽히는 작품인 <관동별곡>이 별로 좋아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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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19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에 교과서에 있는 ‘관동별곡’을 배웠는데, 엄청 지루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5-19 17:1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저도 사실 대학교 입시 때 고생했습니다. 무조건 국어문제에서 1문제 이상 출제되었지요^^

2016-05-19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5-19 17:2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김영성님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이 너무 주관적으로 가서 읽는 분들이 불편하시진 않을까 했는데 너그럽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다른 분들의 좋은 글과 의견을 통해 많이 배워가고 있습니다. 격려에 깊이 감사드리며 행복한 하루 되세요^^
 
미솔로지카 1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105
그레그 베일리 외 지음, 박인용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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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켈트 신화, 게르만 신화, 슬라브 신화, 북유럽 신화, 아서왕 신화 등을 명화, 조각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

우리에게 생소한 켈트신화, 핀란드 신화 등을 접할 수 있어 유럽의 신화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다만, 그리스 신화의 경우에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르네상스, 근대 화가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 신화 생성기의 작품 소개가부족한 것이 다소 아쉽다.

신화에 대한 내용 파악보다 그림 감상과 신화의 대강을 파악하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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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 인종.명종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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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명종의 치세에서 두드러진 것은 이들 왕보다는 인종의 계모인 문정왕후다.

조선의 측천 무후를 꿈꾸던 그녀의 시대가 인종과 명종의 시대라 할 수 있겠다.
인종은 불과 2년 남짓의 짧은 재위기간을 보냈고, 명종은 문정왕후 사후 역시 2년 정도 재위기간을 지냈기 때문에 왕의 뒤에서 실제 권력을 쥐었던 그녀의 존재가 더 커보인다.

문정왕후는 인사문제와 불교 부흥 정책을 펼쳐, 사대부들의 많은 비판을 받는 인물로 실록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가 유교 중심 국가임을 감안하면, 문정왕후의 불교 부흥 정책은 당대 사대부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문정왕후는 역사에 '악녀의 대명사'로 남게 된다. 그녀에 대한 '악녀'평가가 공정한 것인지, 아니면 기득권에 의해 왜곡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를 파악하는 것도 또다른 역사의 과제인 듯하다. 다만, 나는 조선 전기에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여성 지도자가 이미 있었다는 사실에서, 여러 공과를 말하기 전에, '문정왕후의 섭정' 의의를 찾고 싶다.

동시에, 이 시대에는 척신(戚臣), 훈구파들이 득세하게 된다.
문정왕후의 집안인 파평 윤씨가 중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세력을 꺾고 득세하게 되는데, 이러한 외척과 사림의 대결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게 된다. 선조때부터는 다시 사림에게로 권력이 넘어가며, 정조 이후 순조부터 고종 대원군 시기까지는 풍양 조씨, 안동 김씨 등이 정권을 잡는 세도정치시대가 된다.

조선 전기에는 새로운 나라를 정립하느라, 정권에 대한 내부투쟁양식이 주로 '왕권-신권'의 구도였다면, 조선의 체제 정립에 따라 '신권'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른 갈등이 새롭게 떠오른다. 이런 다양한 양상의 갈등구조는 조선 사회가 그만큼 다양화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조선=당파싸움'이라는 공식에 익숙해져서 '또 싸움이냐?' 라는 시선으로 조선시대를 바라보기보다, 각 갈등의 원인과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여러 사안별로 나누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역사를 하나로 규정하기 보다, 역사 속의 다양하게 나타난 삶의 모습을 배우기 위해 역사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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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2016-05-18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동김씨의 정순왕후가 더 악명높지 않을까요?

겨울호랑이 2016-05-19 17: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신갈나무님
저도 정조 개혁을 뒤로 돌린 정순왕후가 더 많은 실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