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지음, 허승일.박재욱 옮김 / 까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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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티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바탕으로, 예일대 교수인 저자가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전쟁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투키티데스의 작품과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면에서 장점이 있다.

1. 책에 있는 상세한 지도.
펠레폰네소스 전쟁 전반에 걸쳐 29개의 상세한 지도가 전쟁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주요 지명과 연계 사건이 지도에 기재되어 있고, 몇 번 지도(예. 4번 지도)를 참조할 것인지 알려 주기에 보다 생생하게 전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작품을 비교할 때, 아테네 패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시칠리아 전쟁의 해당지도는 도널드 케이건의 작품에는 진영, 배치, 세부지역 등에 대해서 보다 현대적으로 표시된 반면, 천병희 역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경우에는 진영과 전략 등에 대한 설명이 개괄적으로 이루어져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2. 현대 독자를 배려한 BC5세기에 대한 친절한 설명.
- 투키티데스는 전쟁 자체 서술에 중점을 두었기에, 동시대인들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였다. 이에 반해 당대 경제, 사회, 정치적 설명이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친절하게 되어 있어 이해도를 높여준다.

˝그래서 대개 무역균형을 유지해 주던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가 감소했고, 그 결과 식량 수입은 아테네 공동체의 자원과 아테네의 저항력을 감소시켰다. 포티다이아의 계속된 포위는 예비자금에서 매년 2,000 탈란트를 고갈시켰고, 이는 사용 가능한 전비의 4분의 1 이상이었다.(p103)˝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투키티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주된 뼈대로 하여 구성되었기 때문에, 전쟁 종료 6년 6개월 시점까지 투키티데스가 인용된다. (이때 이후에는 더이상 기록이 없다.) 투키티데스가 기록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전쟁 기록이 남아 있기에 때문에 전쟁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후대인이 서술했기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아테네 인 입장이 아닌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장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케이건 작품속의 투키티데스 작품에 대한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천병희 교수의 작품과 비교해보자.

˝이 끔찍한 상황에서, 데모스는 늘 그러하듯이 모든 일을 규율이 확실히 잡힌 상태에서 수행했다.(8,1,4)˝

같은 구절에 대한 천병희 교수의 번역은 다음과 같으며, 나는 아래의 번역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민주정체에서 흔히 그러하듯, 민중은 이제 공포감에 휩싸인 나머지 어떤 종류의 규율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8,1,4)˝

그래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보다 전반적인 조망을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두 작품을 펼쳐 놓고 서로 비교해가면서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케이건의 작품에는 투키티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해당 번호가 있기에 해당되는 구절을 찾아가면서, 또는 투키티데스 작품을 보면서 케이건의 지도 등을 참고하여 책을 읽는 것도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보다 생생하게 전쟁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광주에서 대구로 나갔다.`에서 `광주`와 `대구`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지 않겠는가. ` 광주는 평야지대에 위치해있고, 대구는 분지에 위치해 있다` 라는 지형을 그릴 수 있는 사람과 이에 대한 배경지식없는 사람의 전쟁사에 대한 시각은 큰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여러가지 면에서 비교가 많이 되고, 그런 면에서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생각할 점을 준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민주주의 국가와 전체주의 국가 등 모든 면에서 상이한 세력간의 다툼은 지금도 나라를 달리해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같다.
최근 읽은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는 작품을 따라가느라 현재의 나와 연계된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같은 주제에 대해 다시 글을 읽으니 보다 세부적인 면까지 눈에 들어온다. 특히, 강대국간의 전쟁 발단 원인이 된 `플라타이아 전쟁`에 대한 다음의 서술이 인상 깊었다.

˝그러나 중립이란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테베인이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었고, 플라타이아의 여성과 아이들이 아테네에 있는 상황에서 플라타이아인들은 `양편 모두를 친구로`받아들일 수 없었다.... 플라타이아인의 곤경은 열강들 사이에 낀 소국의 의지할 데 없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독립성은 그러한 동맹의 세계에서는 환상에 불과했고, 단역을 맡은 국가들은 기껏해야 헤게모니 국가들 중 하나의 보호와 호의에 기댈 수 있을 뿐이었다.˝ p118

케이건이 작품에 `플라타이아 전쟁`에 대해 적은 자신의 글은 요즘 사드(THAAD)배치로 어수선한 우리의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별도의 주석은 사족이 될 것이에 더이상 언급을 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고 생각된다.

한편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도 눈에 들어온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힘이 충분하든지 충분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을 똑같이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들이 대부분의 시도들에서 믿기 어려운 성공을 거둔 탓에, 자신들이 가진 힘과 자신들의 소망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4.65.4) p201

과연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성공` 또는 `로또`로 대표되는 `노력 이상의 극적이 성공`이 우리에게 정말 이로운가에 대해 투키티데스는 위와 같이 조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패가 서양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아는 것은 지식으로서 중요하겠지만,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지혜이라 생각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그리스 시대가 몰락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나간 사실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고민과 행동은 살아있는 현재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는 것을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다시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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