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 구호 현장에서 쓴 생생한 기록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11
케이트 에번스 지음, 황승구 옮김 / 푸른지식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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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은 난민들이 영국에 가기 전 머물던 프랑스 칼레(Calais)의 난민촌 정글(jungle)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영국인인 저자는 자원봉사자로서 구호품을 배급과 그림 등을 통해 난민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을 깊이 이해하는데, 이는 단순한 인도주의에서 나오는 감정만은 아니다. 자신의 나라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난민들이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감과 속죄의식 또한 저자의 행동 동기가 되었음을 책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때문일까. 이 책은 난민에 의해 씌여진 책보다 오히려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지금부터 난민을 홍수에 비유해보자. 수백만  파운드의 비용을 들여 칼레에 울타리를 치고 감시는 강화하는 일은 물이 흐르는 개수대를 마개로 틀어막는 일과 같다. 하지만 물은 계속 흘러들어온다. 영국으로. 왜 그럴까? 아마 영어를 쓰는 나라여서 소통이 쉽고, 영국이 공정하고 관대할 것이라는(아마도 잘못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난민들은 눈 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아픔이 있다. 그래서 영국에 사는 친인척과 재회하려는 마음이 더 간절한 것 같다.

 

 물은 왜 넘치게 되었을까? 영국이 그들 땅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총을 쏘아댔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 무기를 팔아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잿더미가 된 나라에서 극단적인 종교 무장 세력인 이슬람국가(IS)와 탈레반이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이들은 미친듯이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다닌다. 당신에게 어린아이가 있다고 상상해보라. 전 세계 난민의 절반이 아이들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 전쟁이 터졌다. 정부가 도시에 폭탄을 투하하고, 내일이면 테러단이 마을을 덮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부모가 떠나지 않겠는가?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中

 

 칼레에 건설된 난민촌 '정글'은 결국 2016년 10월 프랑스 당국에 의해 폐쇄된다. 그리고, 동시에 약 1만명에 달하는 난민들은 고통과 절망에 빠진 채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책 속의 처참하게 묘사된 그림과 당시 사진 속에서 자연스럽게 로댕(François-Auguste-René Rodin, 1840 ~1917)의 유명한 조각 <칼레의 시민들 The Burghers of Calais>을 떠올리게 된다. 백년전쟁 당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여섯 명의 시민들. 비록, 대의(大意)를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하지만, 이 조각상에서는 이들의 절망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칼레의 시민'의 진실은 극화(劇化)된 부분이 많다고 하나, 모든 것을 빼앗긴 난민들의 심정은 이 조각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진] 칼레의 시민들(출처: https://sites.google.com/site/adairarthistory/iv-later-europe-and-americas/119-the-burghers-of-calais-auguste-rodin)

 

 1347, 잉글랜드 도버와 가장 가까운 거리였던 프랑스의 해안도시 칼레는 다른 해안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거리상의 이점 덕분에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이들은 기근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1년여간 영국군에게 대항하나, 결국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들에게 다음의 조건을 내걸게 되었다.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그러나 시민들 중 6명을 뽑아와라. 그들을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다.” 모든 시민들은 한편으론 기뻤으나 다른 한편으론 6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딱히 뽑기 힘드니 제비뽑기를 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상위 부유층 중 한 사람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가 죽음을 자처하고 나서게 된다. 그 뒤로 고위관료, 상류층 등등이 직접 나서서 영국의 요구대로 목에 밧줄을 매고 자루옷을 입고 나오게 된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은 바로 이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출처 : 위키백과]

 

 결국, 칼레의 난민촌은 폐쇄되고, 거주하는 많은 난민들이 프랑스 당국에 의해 강제 등록되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던 영국이민의 꿈은 사라지게 되었다. (EU에서는 1997년 더블린 조약에 의해 난민이 최초로 발을 들인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저자는 '봄의 씨앗'을 발견한다.

 

 2016년 3월 7일. 됭케르크 시장과 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됭케르크에 엄청나게 개선된 새로운 캠프를 연다. 사생활이 보장된 가족 오두막집, 식료품이 잘 갖춰진 공동 부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난민 등록을 강요받지도 않는다. 진짜 보금자리도 아니고, 그들의 종착지도 아니지만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전보다 따뜻하고, 안전하며, 깨끗하다.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사진] 덩케르크 철수 (출처 : http://www.insight.co.kr/newsRead.php?ArtNo=113735)

 

 살고자 하는 난민들의 꿈이 '칼레의 시민들'처럼 무너졌다면, 1940년 5월 덩케르크 전투 (Battle of Dunkirk)가 벌어진 그곳에서 33만명의 연합군 병사들이 도버해협을 건넜을 때 가졌던 삶에 대한 간절함이 난민들을 통해 재현되고 있음을 책 속에서 발견하고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은  유럽 난민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결코 남의 일이라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얼마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예멘 난민 문제의 경우에서처럼 이제는 우리도 난민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난민이 영국에 들어오면 영국이 과연 어떻게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영국에서 일하며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데도 난민들에게 밀려 의료보험 혜택을 제때 받지 못하거나 원하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다면 어떻겠는가? 난민은 그렇게 돕고 싶어하면서 왜 정작 자국민인 영국의 노숙자에게는 관심이 없는가?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여러 곳에서는 위와 같이 난민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의 목소리도 표현된다. 그리고, 난민들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에 대한 답(答)을 주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주장이기도 한 난민문제에 대해 잘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면을 봐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입장, 난민의 입장, 그리고 인류의 입장. 자칫 주관에 휩쓸려 판단을 그르칠 수 있는 난민 문제에 대해, 이 책은 난민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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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0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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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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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8: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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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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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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