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 황제내경 : 하늘, 땅, 인간 그리고 과학 지식인마을 20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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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강신주(姜信珠, 1967 ~ ) 박사는 <회남자 & 황제내경 淮南子 & 黃帝內經>을 통해 동양 과학사상과 서양 과학사상의 차이와 동양 과학사상에 기반한 동양의학(한의학)의 신체관을 설명하고 있다. 리뷰에서 동양의학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뿌리가 되는 동양 과학사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서양 근대 자연과학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양(量)으로 치환한다. 우리가 분석하려는 요소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는 주어진 조건으로 가정하게 된다. 'ceteris paribus, all things being equal'라 불리는 이러한 전제를 통해 일반법칙을 도출할 수 있게 되며, 세워진 수식을 통해 수리적 조작을 가능케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상과 주체의 엄격한 분리가 필요하다.


 서양의 근대 자연과학은 인간의 양적인 경험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전통은 이를 통해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일반화하려는, 즉 양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와 달리 동양 전통 과학사상은 음양오행론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질적 경험을 직접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제1성질(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 크기, 모양, 양, 운동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결여되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연에 대한 양적인 조작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었다.(p3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반면, 동양 전통 과학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는다. 기 氣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동양 과학의 태도는 관찰되지 않는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서양 과학의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결과 동양 전통 과학에서는 일반 법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되고, 이러한 차이로부터 동양 과학은 서양 과학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우리는 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기가 비가시적 invisible 이지만 감지할 수는 sensible 있는 것이다'라는 정의이다.(p51)... 우리는 동양 전통 과학사상의 중대한 특징 하나를 읽어낼 수 있다. 즉 기에 대한 경험이나 감지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객과화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서 객관화되기 어렵다는 표현은 양화되기 어렵다는 것, 즉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p52)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우리는 동양의 전통 과학사상이 기본적으로 '실험'을 통한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 즉 실험을 통해서 반박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동양 과학사상은 '실험'하고나 '조작'하기보다는 오히려 '설명'하는데 치우쳐 있었다고 할 수 있다.(p39)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이러한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의학은 서양의학과 다른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다. '편작'으로 대표되는 동양의학은 인체를 '유기체'로 바라보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점이 서양의학의 환원주의 reductionism, 還元主義 의 극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동양의학이 주먹구구식 의학이 아니라, 혁명적 사고의 전환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사진] 동양 의학과 서양 의학 차이(출처 :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13/2013041300268.html)


 동양의학은 우리의 신체를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유기체'로 다룬다. 유기체란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전체의 변화는 모든 부분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통일체를 말하는 것이다.(p15)... 배를 절개해서 내장들을 직접 살펴보고 이것들을 치유하려는 유부 兪跗라는 의사는 서양의학의 해부학적 사유와 매우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해부학적 치료법에 대해 편작 扁鵲은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한다. 그러나 이런 해부학적 치료법에 대해 편작은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한다.(p1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편작 앞에는 이미 '유부'로 대표되는 '해부학적 의학'이 있었던 것이다. 편작의 새로운 의학이 해부학적 사유를 부정하면서 출현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동양의학이 해부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서양의학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성격을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p16)... 동양의학은 어떻게 인간의 몸 안에 오장육부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동양의학도 기본적으로는 해부학적 전통에서 왔다... 그들 역시 몸을 구성하는 각각의 장기를 직접 관찰했고 그것들의 위치를 경험적으로 확인했던 것이다.(p132) <회남자 & 황제내경> 中


 그렇다면, 동양 과학사상에 기반한 동양의학의 탁월한 점과 한계점은 무엇일까? <회남자 & 황제내경>에서는 동양의학의 탁월한 점으로 몸의 기능을 관계를 통해 해석한 점으로 꼽는다.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원리와 질서가 우리 몸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보편적인 도 道를 끌어낼 수 있다. 반면, 지금 사회에 적용되고 있는 질서를 통해 자연 nature 自然 법칙을 바라보기에, 혁명적 인식의 전환을 어렵게 만든다. 초기 동양의학이 혁명적 사고의 전환의 결과였음에도, 이후 획기적인 전환점이 없음은 이를 반증한다. 그리고, <회남자 & 황제내경> 에서는 그 예로 뇌(腦)의 기능을 발견하지 못한 동양의학을 들고 있다.


 <황제내경>에서 다른 장기도 물론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도 서한시대 동양의학자들이 생명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심, '일차적 중심(위장)'과 '이차적 중심(심장)'을 따로 설정해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일차적 중심'이 신체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관계를 상징한다면, '이차적 중심'은 신체 내부의 균형과 조화를 상징한다. 결국 '이차적 중심'은 최종적으로 '일차적 중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황제내경>의 탁월할 통찰이었다.(p13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왜 <황제내경>은 뇌가 정신활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통찰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동양의학자들이 정신활동이 직접 장기를 손상한다는 임상적 경험을 직접 추상화해냈기 때문이다.(p137)... 고대 중국인은 경험적으로 사실을 관찰하고 그에 주목했다. 이로부터 그들은 기쁨, 노여움, 두려움, 걱정 같은 정서적 반응이나 사유 같은 지적인 활동이 신체 내부의 장기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정신활동이 장기에 직접 속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오행론이 함축하는 유추논리이 부적절함이 확실하게 드러난다.(p138)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동양의학(한의학)과 서양의학 중 어떤 의학이 더 우수하고, 어떤 치료법을 선택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잠시 마케팅 Marketing 조사 기법을 머리도 식힐 겸 살펴보자. 


  <회남자 & 황제내경>을 읽다보면 우리는 마케팅 조사 기법 중 정성 Qualitative 定性 조사와 정량 Quantitative 定量조사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정량 조사 기법은 객관식 문항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의향을 파악하는 분석 방법인 반면, 정성 조사 기법은 개념 도출을 위해 사용하는 분석 방법이다. 전자가 객관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파악하는데 활용되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전혀 새로운 사실, 제품 등의 소비자 수용성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진] 정성조사 정량조사(출처 : https://www.weetechsolution.com/blog/strengths-and-weaknesses-of-quantitative-and-qualitative-research)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일반적인 법칙/치료법을 추구하는 서양의학은 우리가 아픈 상황에 직면했을 때 눈 앞의 치료를 위해서 바람직한 반면, 동양의학은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우리가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병원을 이용하고 있기에 별로 놀라운 결론은 못된다.)


 <회남자 & 황제내경>은 이처럼 동양과학과 서양과학 사상 기반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의학의 차이까지를 넓게 바라보고 있다. 어느 의학이 더 우수한가에 대한 질문과 답에는 주관차이가 존재하겠지만, 동양 의학 역시 해부학적 사실에서 출발했다는 점과 인식의 전환이 있었음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회남자 & 황제내경>은 우리에게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좋은 교양서적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대상 - 주체'와의 관계를 정리한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서양의 분리법에서는 내포 intension와 외연 extension이라는 유명한 논리적 개념들이 출현하게 된다. 여기서 내포가 어떤 개념이 함의하고 있는 속성들을 의미한다면, 외연은 그 개념이 가리키는 대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음양 陰陽에 의한 의한 분류법에는 내포와 외연이라는 논리적 관계가 성립될 여지가 전혀 없다. 단지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유사성에 의한 유비 analogy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점에서 유비적 사유는 마치 시 詩에서의 '은유'나 '직유'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p55) <회남자 & 황제내경> 中


PS. '대상-주체'의 관계를 분리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서양과학이라면, 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동양과학이라고 정리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동양과학은 통계학에서 말하는 '공분산 共分散, covariance : 2개의 확률변수의 상관정도를 나타내는 값'을 고려한 과학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동양과학 사상으로부터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 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을 '유비'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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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08-10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분야에 깊이있는 독서를 하시고,
늘 글도 꾸준히 쓰시는 호랑이님.. 부럽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8-10 22:48   좋아요 2 | URL
에고. 아니에요. 저는 북프리쿠키님께서 독서 모임을 통해 여러 분야의 책을 깊이 있게 읽고 계시는 모습이 많이 부럽습니다. 한동안 더운 날이 이어진다니 북프리쿠키님께서도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