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공원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 일곱 명의 스토리텔러가 각기 다른 공원에 얽힌 추억을 들려주는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곱 사람은 '음악평론가 차우진, 건축가 오영욱, 패션디자이너 최지형, 뮤지션 대니애런즈, 모델 이유, 소설가 김중혁, 배우 유하준'으로 서울의 공원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덤덤하게 자신의 기억의 일부를 드러내는데, 읽다 보면 '올 봄엔 이 사람처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생각으로 공원으로 나설 이들을 위해 공원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 혹은 공원 주변의 다양한 상점, 식당, 카페, 예술공간들의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일러스트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올림픽공원 :: 음악평론가 차우진
어떤 장소는 원래의 의미대로 쓰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래서 올림픽 공원은 누군가에게는 도심 속의 레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족들과 나들이하는 공간으로, 아이돌 스타의 콘서트를 볼 수 있는 장소로, 록 밴드의 무대를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 공간으로 여겨질 수 있다. 혹은 그저 가을의 낙엽을 물끄러미 감상하기에 좋은 조용한 공원일 수도 있다. 이렇게 다층적인 의미가 가능하다는 것이야말로 올림픽 공원이 특별한 장소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 음악을 들으러 온다. 서울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찾아온다. 공원의 입구에 들어설 때, 희미하게 음악 소리가 들릴 때,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사람들 혹은 예쁘게 꾸미고 재잘거리는 아가씨들을 볼 때, 여기가 특별한 장소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드넓은 공원을 서울의 심장이라고 한다면, 쿵쿵쿵쿵-두근두근-쿵-쿵, 올림픽 공원은 그야말로 계절마다 비트가 넘실대는 유일한 장소다.
- 차우진의 <비트가 넘실대는 유일한 장소> 중에서

경복궁 :: 건축가 오영욱
아픈 역사조차 현재의 근거가 되는 법이다. 다사다난했던 경복궁의 역사는 오히려 현대의 광화문 일대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권력의 중심이 창덕궁으로 쏠리며 서촌 일대는 정치의 변방으로서 독자적인 중인문화를 이루기에 적합했다. 북촌은 창덕궁과 경복궁을 잇는 양반촌이 되었다.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이어지는 광화문 남쪽 일대는 장소적 상징성에 의해 제국주의 열강의 공관과 현대 서울의 업무 빌딩들이 지어졌다. 경복궁으로부터 파생되는 이런 다양한 역사의 스펙트럼은 어떤 게 우선이라고 할 것 없이 저마다 매력적이다.
굳이 피할 게 아니라면 광화문 일대의 여정은 경복궁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경복궁은 목적지로서의 점이 아닌 자유로운 산책의 출발점이 되기에 아주 적당하다.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는 유적이면서 광화문 일대의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 오영욱의 <과거를 향한 느릿한 산책의 출발점> 중에서

서울숲 :: 모델 이유
2003년 스물네 살에 이른 결혼을 했고, 몇 년 후 딸 '야니'를 낳았다. 아이가 걷게 되자, 나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가까운 동물원이나 공원으로 향하곤 했다. 두 마리의 반려견도 함께. 우리가 요즘 자주 찾는 공원은 서울숲이다. 워낙 공간이 넓어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은 탓에 올 때마다 아이와 탐험하듯 돌아다닌다.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어른인 나에게도 특별한 공간이다.
평소 말수가 적은 야니는 이곳에 오면 유독 여러 이야기를 재잘재잘 털어놓는다. 나는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학교에서 친구와 있었던 일, 제주와 누드리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나는 이때다 싶어 아이에게 궁금했던 것을 이것저것 물어본다. 셀카를 찍는 척 아이의 웃는 사진을 몰래 찍으며 혼자서 즐거워한다. 그러다 문득, '야니가 이 시간들을 기억이나 할까?'하며 조급해지기도 한다. 기억은커녕 더 크면 공부는 안 시키고 맨날 밖에서 놀게 했다고 투정부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뭐, "너 그곳에서 많이 뛰어다녔다고, 그곳에서 많이 웃음지었다"고 말하며 오늘의 사진을 보여주면 그만이겠지. 그러면 야니는 사진 속 어린 야니처럼 또 다시 해맑게 웃음짓지 않을까.
- 이유의 <아이와 함께 거니는 울창한 숲> 중에서

남산공원 :: 뮤지션 대니애런즈
처음에는 남산공원이 혼란스러운 서울의 중심에서 평온함을 지키고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바쁜 삶 중심에 서서 고요함을 지켜주는 곳이다. 복잡한 서울에서 사는 것이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남산공원을 찾으면 그런 마음이 슬며시 사라지곤 한다. 남산에 있을 때, 내 영혼이 그 평온을 닮아가는 모습이 좋다. 서울에 남산공원이 없었다면, 이곳의 삶은 내게 몹시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한국도 남산공원도 내게 어느 정도는 익숙하고 편한 곳이 되었다. 남산공원 길을 따라 조깅을 하다 보면, 남산을 낯선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행객을 발견하곤 한다. 어색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그들을 볼 때마다 처음 남산에 왔던 나를 떠올린다. 내게 길을 알려주던 사람들은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그들도 그런 나를 보며 남산을 처음 오르던 날을 추억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길이 있지만, 분명 그 길을 처음 걷기 시작하던 날도 있었을 테니까.
- 대니애런즈의 <분주한 서울의 고요한 중심> 중에서

노을공원 :: 배우 유하준
우리 집은 노을공원 근처에 있다. 그래서 더 놀랐을지도 모른다. 집 근처에 이렇게 근사한 공원이 있다니. 새로운 놀이터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곳은 2012년 <아드레날린>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며 처음 찾았다. 캠핑을 소개하는 코너였기에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노을공원을 자주 찾는다. 서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캠핑장. 한강을 등지고 하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곳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간단한 캠핑장비를 들고, 노을공원에 간다. 처음엔 캠핑이 불편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불편함 너머의 것들을 알고 있다. 혼자 하는 캠핑은 소음에 익숙한 나에게 안정을 주고, 친구들과 함께할 때는 지친 내게 웃음보따리를 선물해준다. 가족들과의 캠핑은 무뚝뚝한 나를 수다쟁이로 만들곤 한다. 시작은 누군가의 연락이었다. 함께 캠핑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아마 평생 이런 즐거움은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의아할 것이다. '정말 캠핑이 그럴까? 집에 있는 게 더 편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스쳐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만 집안의 문턱을 넘어보면 어떨까. 분명 지금은 모르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유하준의 <모닥불 앞에서 보내는 따스한 하룻밤> 중에서

도산공원 :: 패션디자이너 최지형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는 시간은 언제나 6개월 앞질러있다. 가을에는 봄과 여름을, 봄이 오면 돌아오는 가을과 겨울의 옷을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계절에 살고 있는지 미처 느끼지도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낼 때가 많다.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낸 지 8년 정도 됐을까, 문득 잠시 멈춰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순간의 시간, 찰나의 바람, 자연의 색감, 계절의 냄새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절실해진 것이다. 어깨 위에 올려진 모든 짐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떠나고도 싶었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대신,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일을 끝낸 평일 저녁이나 주말 낮 즈음에 공원에 찾아가 시간을 보냈다.
신사동에 사무실이 있을 때는 주로 도산공원으로 향했다. 힘든 시기를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일까. 도산공원에서의 기억은 특별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유를 망각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나를 발견할 테지만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13년이라는 디자이너로서의 시간 동안 일과 휴식의 사이를 오가며 나름의 균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휴식이라는 게 별건가 싶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만일 뿐이다. 나는 오늘도 동네의 작은 공원으로 향한다. 오늘 잘 쉬기 위해, 내일 잘 살기 위해.
- 최지형의 <강남의 작은 섬> 중에서

여의도한강공원 :: 소설가 김중혁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2000년 즈음, 나는 여의도의 한 신문사 문화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무언가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여의도 공원으로 달려가서 한강을 바라보곤 했다. 글을 쓰는 일은 힘들었고, 인터뷰를 하는 일은 더 힘들었으며,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섭외를 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기사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 하찮은 나의 능력이 몹시 부끄러웠고, 섭외 거절을 당하고 나면 내가 쓸모없는 인간처럼 생각됐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암담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잔잔한 강물을 자주 바라보았다. 강물로부터 수많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물은 거울이 되어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거기에 앉아 있는지 비춰주었다. 물 속에 초라한 내 모습이 어른거렸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모든 것이 두렵다'는 무력감을 이길 때까지 나는 공원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공원에서 나올 때면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는 막다른 길이 아니라 거대한 계단 같은 곳이었다. 앞만 바라보면서 더이상은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위쪽을 바라보니 새로운 길이 있었다. 공원에서 나는 자신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한 계단 위로 올라서는 법을 배웠고, 쉬는 법을 배웠다. 세상에 막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길이 없다면 돌아나오면 되는 거였다. 돌아나오는 길도 엄연히 길이었다. 나는 계속 글을 썼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길이 없다고 느껴지면 다시 공원에 가서 물을 보았다. 그해 겨울,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 김중혁의 <한강에 가서 물을 바라보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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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신간알리미 서비스를 통해

김중혁 작가님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해서 보니 중혁님을 포함해

서울에 사는 일곱 사람이 쓴 그들의 공원에 관한 이야기란다.


일곱 사람 중에는 역시 중혁 작가님이 제일 익숙하고, 책 그리고 칼럼으로 여러 번 읽은 적 있는 음악평론과 차우진과

내게는 로필3로 기억되는 배우 유하준 이렇게 세 명이 익숙하다.


중혁 작가님의 글 중에


세상에 막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길이 없다면 돌아나오면 되는 거였다. 돌아나오는 길도 엄연히 길이었다.

나는 계속 글을 썼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길이 없다고 느껴지면 다시 공원에 가서 물을 보았다.

그해 겨울,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라는 글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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