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립 투표가 부결되었다. 제삼자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므로), 아쉽기도 하다(뭔가 커다란 변화가 있을 뻔 했는데). 하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것은 투표 운동 기간 동안 영국 사람들이 보여 준 성숙한 모습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영국 사람들은 분명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나는 그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투표 운동 기간 동안 영국 공영 방송 비비씨가 보여 준 모습은 어떠했을까? 독립했을 경우의 난감한 상황과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국수주의적인 태도를 비판해 댔을까? 아니더라. 철저하게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면 중립인 척 하면서 실은 외면을 하고 말았을까? 아니더라. 스코틀랜드가 독립하여 노르딕 국가들을 모델로 할 경우의 긍정적인 모습과, 또 그 실천의 어려움도 같이 보여주더라.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작가들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더라. 제삼자 입장에서 비비씨의 이러한 다큐먼터리를 보고 나는 "아,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나름 비젼이 있는 거구나!" 하고 느낄 정도였다. 

아마 비비씨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비씨에 고무되어 독립파로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은 아닌가? 나는 그런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독립 투표 전후로 비비씨의 위상은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비비씨를 공정한 보도자로, 믿을 수 있는 매체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꺼꾸로 비비씨가 중립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를 상상해 보자. 어쩌면 그것은 비비씨 종사자들의 악몽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정말로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게 되어 버렸다면 비비씨는 국가 반역죄를 저지른 셈이 되지 않는가? 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비비씨 사람들에 동의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국민들(스코틀랜드 사람을 포함하여)에게 제공하여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 공영 방송의 존재 이유라면, 비비씨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사회가 존경스러운 것은 이처럼 절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언제나처럼 꿋꿋하게 해내는 기관들,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 어떤 정치인도 비비씨에 압력을 넣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국민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물론, 비비씨를 비난하는 댓글 하나를 비비씨 사이트에서 본 기억이 나긴 한다). 

이에 비한다면 한국의 문제는 매우 분명하다. 한국의 장점은 더 실용적이고 덜 이념지향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때로는 지나치게 상황 논리적으로 흘러가 버릴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법원도 검찰도 상황 논리(정치 논리)가 최우선적인 고려 사항이 된다. 어제 한국 식당에서 읽은 신문 기사에 따르면 아파트 관리실도 전체 주민에 대한 공정한 서비스보다는 부녀회를 더 잘 모시는 것이 우선적 고려 사항인 것 같다. 한국의 대통령이나 아파트 단지의 부녀회장이란 완장은 무엇을 뜻할까? 원칙 적용의 예외가 되는 것! 대통령이니까 국회의원이니까 남자니까 여자니까, 혹은 늙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허다한 사람들이 예외로 빠져 나가버리면 원칙의 적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바보가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어제 읽은 신문에 따르면 김부선씨처럼 싸워야 할 것 같다. 그런 뜻에서 멀리에서나마 김부선씨께 존경을 표하고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뭔가 앞뒤가 안맞는 글이 되어 버린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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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14-10-0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비비씨에 대해 너무 일방적인 예찬을 한 것 같다. 더 알아보니 비비씨가 꼭 칭찬받을 만한 일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스코틀랜드 독립과 관련해서도 공정성을 유지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또, 예를 들면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대해 공정한 보도를 했는가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비판적 시각이 엷어진다면 비비씨도 강자(정권) 쪽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비판적으로 감시하는 시선들이 있고, 그것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비비씨의 공정성을 만들게 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