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치사상사연구
마루야마마사오 / 통나무 / 1998년 9월
평점 :
절판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를,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지루하게, 다 읽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름의 관점이 서게 되자 저자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아쉽게도 그때부터 이 책은 매우 지루한 책이 되어 버렸다. 이런 관념적인 책은 어느 일부분에만 부동의한다든지 하게 되지 않는 것 같다. 전부를 긍정하지 못한다면 전부를 부정하게 되는 것 같다.

해제를 쓴 김용옥은 저자 마사오가 이 “연구”를 이십 대의 나이에 썼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한다. 그만큼 이 저작이 기적과 같은 작품이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연구”는 이십 대의 저작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관념적이라는 뜻이다.

저자의 기본적인 문제 설정은 이렇다. 동양에서 일본만이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어째서일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의 근세 유학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근대적 사유의 맹아가 싹텄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 이후 그 맹아를 이어받아 근대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본의 근세 사상사에서 성리학이 사상적 도전을 받아 해체되고 근대적인 사유의 맹아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자연에서 작위로’ 라는 개념틀을 이용하여 꼼꼼하게 그려나간다.

그러나 이런 관념적인 지도가 현실을 제대로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관념론은 실증적 연구의 도전을 이겨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저자 자신이, “연구” 출간 30년 후에 쓴 영어판 서문에서 이런 진화론적 도식의 난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사회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주자학의 보급과 … 주자학에의 도전은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72페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 도식을 전부 파기한다 하더라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반주자학적 개개 학파나 그들 사이의 연관 관계에 대한 해석들은 살려낼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나는 후자에 있어서도 대단히 부정적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근세 유학(혹은 신유학, 혹은 주자학)에 대한 참신한 해설인 것 같다. 단순히 이론적인 논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원과 정치-윤리적 차원을 동시에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태극도설”에서 만물(인간과 자연)이 태극에서 나왔다고 한 것을 주자는 “태극이 곧 리”라고 해석하여 리 중심적인 학설을 세웠는데, 이것이 곧 주자학의 정통적 해석이 된다. 이 정통적 해석은 어떤 통일적 세계관을 도모한다. 인간과 자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등 모든 것이 태극 혹은 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통일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극 혹은 리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것으로 사유된다. 그러므로 세상만사는 도덕적 가치 관계에 의해 구획되는데 그 실제는 최대한 의리, 명분을 고양하고 최대한 욕망을 억누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신문물은 쓸데 없이 인간의 욕정을 자극하므로 억제되어야 한다, 시가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교훈을 주는 것으로 그 존재 의의가 있다, 등등.

그러므로 자연히 이런 도학주의적 관점에 반대하는 입장이 나오게 마련이다. 예컨대, 번개가 치는 것에 어떤 도덕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임금은 정치만 잘하면 되는 것이지 그의 성적 취향을 굳이 따져야 하는가? 공자의 제자 중에도 주먹이 먼저인 사람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다 안회처럼 조용히 명상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는 이론적으로 말해서, 도덕으로 덧칠된 리의 우위성을 부정하고 반대로 기의 우위성을 주장한다는 것, 리는 오히려 기에 종속하는 것으로 사유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기일원론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기일원론이 파괴한 것은 리 중심의 통일적, 보편적 세계관이었다. 예컨대, 인간은 사물과 달리 욕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의 법칙과 사물의 법칙은 다르고, 그런 관점에서 인간의 욕망 자체도 긍정되어야 한다, 인간 중에 안회와 같은 사람도 있고 자로와 같은 사람도 있으니 이들의 기질지성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고양되어 성인이 된다고 세상을 잘 통치하는 것은 아니다. 즉, 정치는 또다른 기술의 영역이다, 등등.

그러므로 리 중심적인 입장을 주자학 우파, 기 중심적인 입장을 주자학 좌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 마사오가 일본 근세 사상사에 있어서 반-주자학적 경향이라고 부른 것을 우리라면 그저 주자학 좌파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는 주자학 좌파든 우파든 똑같이 주자학적 개념 안에서,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사회 경제적 위치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태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라면 주자학 좌파를 넓게 봐서 실학의 일부라고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재미있는 문제들이 떠오른다.

첫째, 일본의 근세 사상사와 한국의 그것이 평행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는 아니고, 조선의 주자학, 특히 이황의 견해가 일본에 널리 소개된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저자 자신은 “연구”를 쓸 때 이러한 점을 소홀히 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근세 사상사를 비교 연구한 것이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그런 비교 연구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와 사회-경제 체제와의 관련성일 것이다. 마사오는 주자학 우파가 체제 안정적이므로, 예컨대 정립되어 있는 일본 봉건제에 잘 들어맞는다고 이야기한다. 일리 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체제라는 것은 설사 그것이 평형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평형은 항상 동적 평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체제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변혁을 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변혁을 꾀하는 세력이 항상 좌파인 것도 아니고, 정권 담당자들이 항상 우파인 것도 아니다. 프랑스 혁명사나 한국의 근세 사상 논쟁사를 보면 도드라지는 내용이고, 최근 터키나 예전의 이란의 예를 보더라도 결코 무심히 넘길 수 없는 부분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한 것 같다. 물론 이를 저자의 한계로 비판하고 가볍게 넘어가 버릴 수는 없다. 일본의 근대화가 위로부터의 혁명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정치적 근대화 과정의 모델로 여기고 있는 프랑스에서의 부르주아 계급같은 혁명 계급의 대두가 일본에서는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가 근대성의 맹아적 사유를 보이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일본의 근세 사상가들 대부분은 봉건제의 유지에 진력을 다한, 말하자면 반동적 사상가들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러한 부분에 저자의 기만성이 있다고 본다.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는 철저하게 봉건적이지만, 그 수단적 이론 논쟁에 있어 주자학 좌파로 분류될 수 있는 사상들을 저자 마루야마는 근대적 사유의 단초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마루야마의 “연구”는 사회 경제적 차원을 구색 맞추기 위해 동원했을 뿐으로 관념적 논쟁사 이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셋째. 해제자 김용옥은 “독기학설”에서 실학이라는 개념의 성립 가능성을 부정한다. 지금 그 논변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체로 이른바 실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학파를 설립한 것도 아니고, 서로가 이런 저런 경향의 학문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학의 실체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김용옥이 보기에 실학이라는 개념은 서구 역사의 근대라는 범주를 한국 역사에 때려 맞추려고 현대적 관점에서 만들어낸 허위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마루야마의 “연구”의 안티-테제로 구성된 이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40년대에 나온 마루야마의 “연구”의 문제 설정의 한계는 그냥 눈감아 줄 수 있지만 그보다 50년이 더 지나 나온 김용옥의 시대착오적 문제 설정은 솔직히 좀 지나치다 싶다. 첫째, 조선 후기라는 시대는 서구의 주도에 의해 지구 위의 모든 인민들이 하나의 역사를 향해 모여들고 있는 시대였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정치 집단과 사상가 집단들은 중국 이외에도 또다른 강력한 세계가 있음을 의식하도록 강제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 서구라는 타자는 조선이나 일본의 실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둘째, 조선에서건 일본에서건 성리학적 보편주의는 사실상 중국 중심주의에 지나지 않음이 간파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자학 좌파를 매개로 하여 그 보편주의가 해체되고 새로이 시야에 들어선 것은 자신들의 역사, 자신들의 문화, 자신들의 정치, 자신들의 백성, 자신들의 학문 등등이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실학을 하나의 실체로 정의할 때, 그 정의가 꼭이 대자적인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대자적인 정의는 항상 대타적인 것을 경유한다. 지금의 경우에는 중국의 타자화와 동시에 타자로서의 서구의 발견이 조선이나 일본의 자기 자신의 발견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마루야마의 “연구”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일본이 자기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마루야마는 이를 자연에서 작위로의 변화라고 말하는데, 내 생각에 이는 완전한 억지인 것 같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2장은 너무도 어설퍼 보인다. 마루야마의 해석과는 달리 제2장은 성리학적 중국 중심주의가 해체되면서 일본 자신의 지역성이 발견되고, 그 지역성의 정체성을 담보할 장치로 천황이라는 제도가 발굴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중세 보편주의가 깨지면서 자신의 지역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은 유럽 세계에서도 똑같이 벌어진 일이었다. 훗날 일본의 군국화 과정에서 그 천황이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했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왜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 어떤 내재적 답변을 요구하는 한에서 이 질문은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이고 위험한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한에서 이 질문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리라. 만일 이 질문을 실증적으로 접근한다면 수 많은 우연성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 등등. 그리고 그 답은 중층적 관점에서 일본의 오늘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혹은 한국의 오늘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일본의, 혹은 한국 각자의 고유한 근대화 과정을 답변 구성 과정에 경유시키는 것. 그러므로 굳이 이런 질문을 설정할 필요도 없다. 일본이나 한국의 오늘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질문도 다 이런 식의 틀을 통해서 답을 제공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면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아시아권에서 서구적 자유민주주의에 근접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다. 어째서인가? 혹은 이러한 양상이 지속될 것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 경제 수준이 고도화하면 정치, 사회, 문화 영역 전반이 고도의 자율성을 누릴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지만, 대표적으로 싱가폴에서 그런 예측은 깨졌다. 일본도 정권 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기 보다는 일 당 내의 계파 사이에서 정권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중국도 일인 독재의 길을 열었다. 북한이 개방된다 하더라도 일당 독재 체제는 고수하려 할 것이다. 이들 나라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이들이 양당제나 다당제의 단점들을 부각시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오바마가 오바마 케어를 만들면 트럼프가 그것을 폐기하려 한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분열한다. 그러므로 다당제는 쓸데없는 혼란과 정력의 낭비만을 초래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당 독재에서 오는 부패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일당 독재론자들은 당내의 부패 방지 기구들에 의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 저것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본다. 어떤 체제가 더 나은가? 글쎄다. 이에 답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이제는 사회가 진전하면 필연적으로 서구적 모델에 안착하게 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목적론적 사고라고 비판받을 만한 시대라는 것이다. 여튼 선택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해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베트남이 곧 경제적으로 강력한 국가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베트남은 유교권 국가에 속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유교적'이라는 것이 곧 이데올로기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 토대와의 관련성 하에서 이러한 범주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동양권 나라들의 오늘을 이해하려는 실증적 노력을 통해 도출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들이 그동안 집요하게 추구되어 왔을까? 여튼 이러한 틀거리 속에서 “연구”를 읽었을 때 “연구”는 일본 근세의 사상들과 오늘의 우리들(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의 어떤 연속성을 자각하게 해주고 적잖이는 당황하게 한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나이든 사람이건 나이 적은 사람이고를 떠나, 이리 저리 자기 자랑하고 나대는 사람을 “인성이 안좋다” 라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그 사람의 기질지성으로 보지 않고 본연지성이 가리워져 있는 것으로, 즉 윤리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경향의 옳고 그름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과 우리들 사이의 친연 관계는 상상 외로 강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법론적으로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경유하는 것은 전혀 헛된 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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