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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과 열 세 남자,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 -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 우리 바닷길 3000km 일주 탐나는 캠핑 3
허영만.송철웅 지음 / 가디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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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외출 후 돌아오셔선 짐을 싸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모르는 사람의 채무를 짊어졌다든가, 빚쟁이들에 쫓겨 급하게 야밤도주하듯 이사를 가야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목회자 이시고, 직업의 특성상 어릴적부터 이곳 저곳 자주 이사를 해야만 했다. 도시에서의 삶에 푹 젖어있던 우리들 삼남매. 어릴적의 잦은 이사로 변변찮은 친구들도 못 사귀어보고 이곳저곳을 옮겨다닌다는게 우리에겐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물론 재미나고 좋은 기억들도 있지만). 그렇게 이사를 간 곳이 바로 '영덕 강구'였다. 우리가 이사를 가자마자 모 방송국의 드라마가 촬영하는 일이 벌어졌고 순식간에 내가 사는곳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푸르디 푸른 넓은 바다였다. 늘 말로만 듣던 바다. 새파란 바다. 넘실대던 높은 파도. 그리고 여기저기 널어 말리는 오징어들과 끼룩끼룩 울어대던 갈매기들까지.

 

우리들은 집이 좁고, 낡았고, 불편했지만 순식간에 동네를 점령하고 다니며 바닷가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한여름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태양이 내리쬐는 오후 1~2시때가 되면 '바다 가자~~~'라는 아버지의 말씀만 들렸다 하면 튜브에 바람넣고, 손과 발을 헹굴 식수를 넣어 바닷가로 달려갔다. 그렇게 두 세시간을 놀다 보면 금새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바다에서 놀기를 갈망했다. 언젠가는 폭풍 주의보가 내린줄도 모르고 바닷가로 뛰어가 앞으로, 뒤로 떼굴떼굴 굴러가면서(신이나서 꺅꺅대며)놀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온 몸엔 상처투성이었다! ^^

 

그렇게 바닷가에서 살기를 11년. 우리들은 지금 육지로 떠나 와 한적한 시골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산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간 바다를 늘 그리워하며 마음앓이를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서평도서로 올라온 이 책을 보고는 정말 뛸뜻이 기뻤다. 허영만 화백의 지난 책 <허패의 집단가출>을 너무나도 재미나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도 신청을 했다. 당첨이 되어서 너무 기뻤다.

 

지난번의 책은 <캐나다 로키산맥>위주의 등산 스토리였다면, 이번에는 국내 바닷길 3000km를 일주하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요트로!

사건의 발단은  '식객' 선술집에 모여든 '침낭과 막걸리' 멤버의 대장격인 허영만 화백의 한 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길은 어디나 있잖아? 돛단배를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을 가는 거 어때?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그렇게 시작된 허영만 화백과 13남자들의 항해 일주.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있었다. 바다 위에서의 처절한 사투, 어민들의 따뜻한 마음씨, '집단가출'이라 명명한 배의 이름을 보고는 웃음을 참던 해경들, 군복을 벗어던지며 싸인해 달라며 등짝을 내밀던 군인들까지 생생한 사진과 글 솜씨에 난 금새 흠뻑 빠져들었다. 책장을 한장한장 넘기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요트라면 늘씬늘씬하고 이쁜 아가씨들과 값비싼 포도주를 떠올리겠지만 중년 남성들 13명이 떠나는 여행에 그런게 있을리가. 한때 요트경기에서 이름을 날렸다는 배를 만나러 가니 온통 수리를 해야 할 판이었다. 13명이 달려들어 배 수리를 끝내고 바다위를 달릴때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좋은 풍랑을 만나 항해를 쉬이 한적도 있었고, 또 폭풍우와 비를 만나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여야 했던 적도 있었다. 선술집에서 농담 삼아 던졌던 말 한마디에 이리 똘똘 뭉쳐 멋진 여행으로 실천을 옮길 수 있음이 부러우면서도 그 패기넘침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육지에선 나름 가정도 꾸리고, 직장도 있듯이 사회에서 묵묵히 제 할일을 감당해나가며 살아온 중년 남성들 이었다. 하지만, 책을 펼쳐서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들의 표정은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고정된 사진속의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난 살아 펄떡펄떡 움직이는 싱싱한 모습을 본 것만 같다. 그만큼 그들의 표정은 살아있었고, 또 생생했고, 또 어떨 땐 어린 소년들 같았다.

 

출렁출렁이는 파도위 바다에서만 생활하다 육지에 닿았을땐 모두가 힘껏 원없이 달리고 싶어 진다고들 한다.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단단한 땅 위를 달리는 그들의 표정은 정말 해맑았다. 개구진 소년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 또한 키득 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식사 후, 벌어진 윷놀이에서 진 OB(Old boy?)팀이 엄동설한에 차가운 물로 설겆이를 하는가 하면, 전날에 식량을 다 없애버려 먹을게 없을때 요리도구를 뒤집어쓰고 찍은 개구진 사진들도 재미있었다. 마라도에서의 먹다보면 누구 하나 업어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맛좋다는 선상에서의 자장면도 맛있어 보였고, 폭풍이 몰아쳐 배가 떠내려갈 상황에서 대원들이 배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일 때에 육지에서 마냥 지켜보기만 했을 허 화백의 심정은 또 오죽했을까.

 

여러 명이 여행을 하다보면 트러블도 많이 생길테고, 또 불미스런 일도 많이 생길텐데 끈끈한 정과 우정으로 다져진 남자들의 여행기를 읽을 때면 왠지 나도 모르게 그 무리의 일원이 된 것만 같았다. 함께 배 위에서 요리를 하고, 함께 폭풍속을 뚫고 항해를 하고, 함께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비박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일주기가 생생했고 또 마음에 와닿았다.

 

허 화백의 팬이 된 만큼 이러한 여행기가 또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그래야 또 그들의 일원이 되어 전국 방방 곡곡을 누비고 다닐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그들의 무리에 실제로 껴서 비박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밤 하늘의 초롱초롱한 별을 보며 잠이 들고, 자연 속에서 눈을 뜬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생활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오래오래 건강히 사시길 바라며, 이런 재미난 여행기가 또 우리들 곁으로 찾아와 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집단가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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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여행처럼 - 지금 이곳에서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법
이지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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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간만에 옷과 구두, 새 가방까지 장만을 했다. 실로 오래간만의 나를 (꾸미기) 위한 소비였다. 어색하고 참 적응이 안되는 것 같았다. 나를 치장하고 꾸미기 위해서 소비를 한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보았다. 아주 까마득한 옛일과도 같았다. 한때는 뮤지컬을 보러 다니느라 일주일에 5천원으로 살아간 적도 있었고 - 차비는 필요없었다. 걸어다녔다. 점심은 안사먹거나 컵라면으로 떼우곤 했었다.- 책과 음악CD들을 사모으느라 이 외의 소비에는 관심을 끊고 살아온 지가 오래되었다. 나 자신을 꾸미기 위한 물품보다는 책 한권을 더 사 보는 것이 난 더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뮤지컬을 보러 다닐 때에 일주일에 5천원으로 살아가면서 참 궁색도 많이 떨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안 먹고 안입고 사모은 돈으로 본 한 편의 뮤지컬은 나에겐 감동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없는 척 하며 살아갈 때에 힘들긴 했었지만 참 행복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에 부딪혀 뮤지컬도 책 사보는것도 끊은 요즘.. 난 정말 행복할까? 라고 자문해 본다.

 

돌파구가 필요했었다. 책이든 뮤지컬이든 훌쩍 떠나버릴 여행이든 오랜 시간동안 일과 돈벌기, 그리고 더 나은 직장 구하기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었다. 올해 안으로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도 가야 하고, 시집 가려면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때려치울수도 없다. 일을 하고 월급을 받고 그 와중에 10급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 게다가 몸이 불편하신 엄마를 도와 집안일 까지 해나가야 하는 나에게 돌파구가 필요했었다. 아니 지금 바로 난 돌파구가 필요하다.

 

40대든 30대든 지금의 20대든 입시경쟁속에서 가열차게 달리고 있는 10대 학생들이든 그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도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책의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어제 도착해 오늘 머물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살아라."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자문해보았다.

 

난 왜 이렇게 살지 못하는걸까?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걸까?

내 두 어깨와, 두 손과 마음엔 무엇이 그리 가득 들어차 있어서 이토록 욕심부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머리속이 복잡했다.

버리고 버리면서 청빈하게 이 세상을 살다간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에서의 가르침도 그러하다. 비고 비인 마음으로 살아가되 남에게 베풀면서 사랑을 행하면서 살아가라고 가르쳤고 또 그렇게 배워왔다. 그런데 난 너무나도 옹졸하고, 좁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여행처럼.

장기간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몇박 몇일이거나 아님 당일여행으로만 떠나보았지만, 여행을 떠날 때 많은 짐을 들고 다니진 않는다. 최소한의 짐들만 가지고 그리고 여행에서 꼭 필요한 짐들만 싸서 다니곤 했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과 두 손을 비우면서 살아가고 싶다. 어제 도착해 오늘 머물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살고 싶다.

 

늘 그러한 삶을 꿈꾸고 원하면서도 자꾸만 더 갖고싶고.. 욕심내게 된다. 여행지에서의 자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몸도 마음도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훌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앞으로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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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곽명단 옮김 / 물푸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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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럴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지극히 평범한 말 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 평범하고도 간단한 말들을 하기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30년간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해 온 아이라 바이오크라는 의사가 쓴 체험적 사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나와가까운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이 의사는 이런 말을 전해주라고 이야길 하고 있다.

 

"Forgive Me, Thank you, I love you... and Good-bye."

(용서해요, 감사해요, 사랑해요..... 그리고 잘 가요.)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다. 밖에서 교회 주변을 정리하던 엄마의 외마디 소리가 들려와서 뛰어나가보니 차디찬 땅 바닥에 쓰러져 계셨다. 아빠와 내가 일으켜드리자 허리와 척추가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급히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간 뒤에 X-RAY를 찍고보니 입원을 해서 몇주간 검사를 받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근 20여일간을 병원과 집을 오가며 간호를 했는데 엄마께서 하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나이에 다쳐서...... 너희들한테 짐만 되는구나.. 미안하다."는 것이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들은 "자식으로써 당연한 것이죠. 미안해 하거나 죄송해 할 필요 없어요." 라고 답해 드렸다.

 

그리고 그렇게 간호를 시작 했을 때 나에겐 새로운 힘이 솟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은 어떠 했을까? 자원(?)해서 간호에 뛰어들긴 했지만 알게 모르게 엄마에게서 받았던 크고 작은 상처들은 다 치유가 되었을까?

 

상처나 분을 냄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 풀어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을 위해 오랫동안 상처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은 마음속에 독을 품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마음의 오랜 기간동안 응어리 진 짐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갈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지금은 퇴원하셔서 (복대를 차고 있긴 하지만) 걸음도 잘 걸으시고 집안일도 조금씩 거들어 주시는 편이다. 많이 나아지셨다. 얼굴빛도 많이 밝아지셨고 표정도 많이 환해지셨다.

 

그리고 나 또한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그동안 엄마(외 다른 가족들에게서도)에게서 모진말을 많이 한 것들, 순종하지 못했던 모습들, 나 자신만 생각하며 내 입장에서만 서서 생각한 것들, 일부러 상처주려고 했던 말들을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용서를 빌고자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짐 지운 채살아온 내 어두운 모습들과 작별을 고하고자 한다.

 

부모로부터, 배우자로부터 크나큰 상처를 입고 절대 화해를 하지 못할것만 같은 사이였어도 이 책을 읽다보면 용기를 내어 죽기 전 마지막 말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삶이 놀랍도록 바뀐 걸 볼 수 있었다.

 

미움을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으면 품을 수록 어느샌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에까지 이르게 된다. 더 늦기전에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해보자. 그리고 그들의 삶이 조금 더 좋은 쪽으로 바뀌어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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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2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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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에 이모 공장 한구석에서 시다(보조)일을 해본적이 있었다. 이모 생전에 아르바이트라 명명하며, 부족한 일손을 보태어 보고자 공장엘 가끔씩 들러 도와드리곤 했었는데 내가 한 일은 고작 시다 밖엔 할 것이 없었다. 네대의 재봉틀에서 드드득 거리며 옷이 만들어 지고 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옷과 옷 사이에 연결된 실밥을 쪽가위로 따고 잘 개켜 놓는 일이었다.

 

이 일도 동작이 굼떠서 시간내에 못맞춰 이모와 엄마 동생에게 가끔 잔소리를 들을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책 속의 세 소녀의 삶에 금방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속에서 만난 세 소녀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싱그럽고 푸르른 풀밭위의 제목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은 너무나도 애절한 제목이었다.

 

시골에서 쭉 커온 세 소녀(순지, 정애, 은영)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짊어진 채 서울로 향하게 된다.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된 세 소녀의 꿈은 병 속에 갇혀있던 나비와 같이 으스러 지고 만다. 정애와 은영의 죽음으로 인해 순지는 말문을 닫아 버렸다. 언제고 함께하며 인생을 만들어 가자던 친구들을 잃은 순지의 마음속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읽혔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순지의 목소리다 못해 핏물 뚝뚝 흐르는 절규와도 같았다. 다니던 전자부품 회사에서 나와 다시금 일을 찾아 들어간 곳이 미싱공장 이었다. 이곳의 건물은 '불법' 이었다. 창문엔 창살로 막아놓았고, 십대 소녀들을 공장 직원으로 쓰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철제 셔터 문으로 위장을 해놓은 곳이었다. 그래서 화재가 났을 때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소녀들이 그곳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인생을 만들어 가자던..... 은영이가, 정애가 가버렸다.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친구들의 죽음을 들은 순지는 공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목놓아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그것은 소리없는 절규일 뿐이었다. 소리가 사라졌다. 재자불 재자불 예쁘게 쫑알 거리던 목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에 순지는 마음속에서만 외쳐댈 뿐인 그 말들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서 책을 읽는 내내 울었다.

 

요즘의 아이들은 어떨까? 자연스레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엘 들어간다. 그런 어찌보면 당연스런 정규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스레 생각되는걸까? 아님 아주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았을까? 궁금했다. 물어보고 싶었다.

 

순지의 엄마는 순지의 몸에 죽은 아이들의 혼이 붙어 있는 것이라고 믿어 굿을 한판 벌이려 한다. 굿이라니. 엄마. 정애와 은영이는 그런 애들이 아니야. 절대 그럴리가 없어. 라고 이야길 하고 싶지만 마음속에서만 외쳐댈 뿐이다. 굿은 순지의 오빠인 순식이가 순지를 들쳐업고 도망가버려 실패를 했지만 순지가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좋아해온 정애의 오빠인 정태가 순지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한다. 의사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순지는 조금씩 끔찍했던 화재의 순간들을 직면하게 되고, 마음속에 응어리 져 있던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웃지않던 순지가 조금씩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고, 불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대신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곤 하는 순지가 좋았다.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씩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 나가던 순지는......... 결국 말문이 트이게 되고 좋아하는 정태 오빠를 오빠.. 라고 부르게된다.

 

그 순간 순지의 어깨를 꼭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잘했어 순지야. 정말 잘했어... 인생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라고. 아마 그 순간을 정애와 은영이도 바라보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정애도 은영이도 오랫동안 순지의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들도 노오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올랐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땅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밝게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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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거품 오두막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7
멕 로소프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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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세번째다. 두번째의 학교에서도 퇴출당한 소년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성 오스왈드 학교'로 오게 된다.  집안과 학교에서 골칫덩이로 찍힌 소년의 부모들은 이번 학교에서만큼은 무사히 학업을 마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혹독한 추위와 일주일 째 입은 팬티, 그리고 늘 자신을 괴롭히지 못해 좀이 쑤셔대는 룸 메이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즈음, 소년은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외롭고 틀에 박힌 듯한 단조로운 일상에서 소년은 유일한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의 이름은 핀. 학교도 가지 않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그의 생활이 소년은 너무나도 부러웁다. 그를 따라 오두막으로 가게 되면서 소년은 핀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하고싶은 것들도 많다. 하지만 핀은 그저 조용히 그의 말을 들어주기만을 좋아한다. 실컷 떠들어 대던 그는 금방 풀이 죽는다. 학교와 사회제도에서 벗어나 있지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아는 핀은 그러한 소년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탐험하러 다니곤 한다. 바위산을 오르기도 하고, 게와 생선을 잡아 요리를 해먹기도 하고,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가 오래된 유적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한 삶에 소년은 금방 적응하게 되고, 점점 더 핀과 오래오래 있고 싶어한다. 하지만 소년은 학교와 자신만의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핀을 만나러 가지 못하는 날에는 그리움에 몸을 떨기도 한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좀 혼란스러웠다. 소년과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라니. 또 그러한 사랑 이야기가 아름답게 반짝이다 소멸되어가는 이야기라니. 혼란스러웠다. 핀의 진짜 이름은 무얼까? 왜 바다 한가운데의 오두막에서 사는걸까? 그녀의 부모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이야기의 후반부로 넘어가 클라이막스로 다달으면서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세찬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소년은 직접 노를 저어 핀의 오두막으로 가보았으나 핀은 집에 없다. 혼자서 난로에 불을 지피고, 주전자를 올려 차를 끓여먹던 중 핀은 비와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곤 이부자리위에 쓰러진다. 그를 위해 뜨거운 수프도 끓여주고 차를 끓여주며 간호하다 소년은 학교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며칠 후, 소년은 다시 핀의 오두막에 들르는데, 거기서 뜻밖의 상황을 맞게 된다.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이불속에 죽은듯이 누워 있는 핀, 오물로 뒤덮힌 담요, 그리고 다량의 피.

 

피를 본 소년은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린다. 피라니? 어찌된거지? 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자리에서 도망치긴 하였어도 응급센터에 전화를 걸어 핀이 병원에 입원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며칠 후, 병원을 물어물어 핀이 입원한 곳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 핀이 남자가 아닌 여자임을 알게 된다. 여자? 핀이.................... 여자? 그럼 그 피는 월경???? 그 상황에 사회에서는 이름도, 의료등록번호도 없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인 핀은 소년의 이름을 대고 입원을 하였고, 부모님이 달려오는 중이라고 한다. 어느쪽 부모님인것이냐는 말안해도 알리라. 그렇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고, 소년은 1년 후 비어있는 핀의 오두막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시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미 핀의 흔적은 사라져 버린 오두막을 보수하고 청소하여 자신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간다. 그리고 일터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찾은 수산시장에서 소년은 다시금 핀을 만나게된다. 하지만 이때는 남자로서의 핀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롤라로 다시 재회를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본 일본만화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그대에게>라는 만화인데, 높이 뛰기 선수인 사노에 반해 남장을 한 채로 남학교에 들어간(잠입한;) 아시야. 그런 아시야를 남자인 줄 알면서도 좋아하게 되는 나카츠가 떠올랐다. 나에겐 아직 첫사랑 이라고 부를 만한 제대로된 경험도 없지만 성별을 뛰어넘어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은 그러한 soul mate가 누구일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내 일상의 소소한 고민들과, 내 마음속에 담아놓은 내 고민과 걱정들을 툭 터놓을 수 있을 만한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일상 생활이 바빠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서로 얼굴 본지도 오래 된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 또한 핀과 같은, 아니 롤라와도 같은 -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친구가 되어야 겠다고 나는 오늘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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