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술관을 걷다 - 13개 도시 31개 미술관
이현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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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그로피우스를 제외하면, 이 책에서 주목한 예술가들은 나치에게 이른바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힌 이들이다. 나치는 요시찰 인물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으나, 하나의 이름표로 싸잡이 부르기에 그들의 삶과 예술은 구름처럼 다양했다. 그 각양각색을 보여주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독일 미술가를 처음 만나며 나치에게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힌 이들을 보는 것은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첫번째 소개되는 화가는 여자는 아직 미술학교에도 갈수없던 시절의 자의식 강한 파울라 

파울라는 다작을 남겼지만, 생전에 고작 석점을 팔았다. 구매자는 전부 친구나 지인이었다. 그중에는 이러한 말을 남긴 릴케가 있었다. "모든 예술작품과 더불어 새로운 것이 나온다. 세상에 한 가지가 더 나온다." 

파울라 편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페이지를 넘기면 두번째 소개되는 조각가 렘브루크 편의 제목이 보인다. 


정확한 자세로 좌절하기 

이현애의 책을 처음 읽는데, 인문학척 기본소양이 탄탄해 보이는 문장이다. 신뢰가 생긴다. 

1차세계대전 당시 그는 감독관이 제안한 것처럼 전투를 마친 군인이 비장한 자세로 칼집에 칼을 집어넣는 형상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전몰장병 묘지가 애국심과 영웅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1916년 그는 <목락한 사람>을 제작한다. 

그는 무릎과 팔이 꺽이고 고개를 땅에 처박고 넘어져 있다. 

상승과 몰락 사이에서 정확하게 좌절하기 

그리고 독일 언론은 혹평한다. 


뜨거운 열정과 병적인 몰입은 구분이 힘들다. 그는 손이 잘려서 그림을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환각에 빠졌으며, 군인들이 스위스 산골 마을까지 쫓아와 자기를 잡아갈 거라는 망상에 시달렸다. 그는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과 함병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화창한 6월 어느날 들판으로 달려나가 가슴에 총을 겨누었다. 향년 58세였다. 

키르히너의 청년시절 공동체 다리파는 1906년 첫 단독 전시를 드레스덴의 전기램프 공장을 빌려 열며 

지역 신문에 프로그램을 발표한다. 

우리는 창작하고 향유하는 신세대가 발전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청년을 부른다. 우리는 미래를 짊어질 청년으로서, 안락함을 추구하는 앍은 힘들에 대항하여, 가난과 삶의 자유를 얻고자 한다. 창작의 욕구를 격정적이고 거짓없이 표현하는 자라면 누구나 우리 편이다. 

패기있는 선언이다. 이 소박한 모임은 그러나 다리파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작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모더존-베커와 콜비츠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마땅한 해석을 해주어 편안하다. 

여성, 노동자를 주로 배제하는 남성들의 책에서 좀처럼 얻기 힘든 편안함이다. 

콜비츠이전에 누가 이토록 세심하게 여성노동자가 처한 현실에 형태를 부여했던가? 노동하는 남성은 콜비츠이전에 다수 그려졌지만 노동한느 여성은 타자 중의 타자였다. 


그는 하고 싶은데로 했고, 되고 싶은 대로 되었으며, 하고싶은 것과 되고싶은 것을 일치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삶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가족과 국가는 한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함부로 펼칠까봐 온갖 저항을 아끼지 않는다. 에른스트는 이와 같은 저항을 반기듯 즐기며 마찰을 일으켰으니, 그에게 마찰은 예술이요, 예술은 마찰이었다. 


그렇다면 다다는 뭇엇을 했을까? 다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했다. 규율, 관행, 도덕, 질서, 합리가 시키는 것이라면 아무것도. 다다이스트들은 시인과 미치광이가 되어서 떠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했다. 그들은 카페나 주점에 모여서 떠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전쟁과 군대와 경찰을 저주했고, 작시법에 해방된 시를 주절 댔고, 이것도 예술가인가 싶은 음악과 그림을 지어냈다. 그것이 다다.

몇명 안되는 청년들이 전쟁을 경험한 후 카페나 주점에서 떠들었을 뿐인데, 백년이상 화자되는 이야기가 되었다. 

전후 시대정신을 외쳤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그런것이다.  


나찌시대에 퇴폐미술로 찍혀 탄압받았던 미술가들이 

전후 <카셀 도쿠멘타> 전시를 통해 나찌를 반성하며 부활하지만 

건강과 퇴폐의 이분법이 냉전시대에 추상과 구상의 이분법으로 바뀌엇을 뿐 

이를테면 추상표현주의는 반공 및 자유이데올로기를, 리얼리즘은 전체주의와 계획경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뭘 반성한거니. 


1966년 [뉴욕 타임스]지가 마침내 미 중앙정보국이 벌인 첩보 활동을 폭로했다. 이로써 자유주의 진영의 자유 이데올로기가 '선전선동을 위한 엔진' 이었음이 만천하에 그러났다. 추상 미술이 보편적인 예술언어이며, 정치에 관해서 침묵한다는 믿음은 주입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햇다. 

마치 사회주의 국가의 미술과문학만 선전선동의 도구였던 것처럼 주장하는 저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횡횡한다. 

순수문학은 정치에 침묵 한다는 주입된 믿음 말이다. 

최근에는 좀 바뀌는 것 같아 다행이다. 

광화문에서 우리가 든 촛불이 혁명이었다면, 이제 시작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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