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누아르 2 : 창백한 범죄자 베를린 누아르 3부작 2
필립 커 지음, 박진세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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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 네시. 단잠을 깨우는 초인종 소리. 게슈타포가 방문했다. 

나는 주의 깊게 옷을 골랐다. 내가 가진 옷중에 가장 싸구려인 저면 포레스트 정장을 입고 낡은 구두를 신었다. 주머니에는 담배를 쑤셔 넣었다. <베를린 일러스트레이티드 뉴스> 한부도 챙겼다. 하이드리히의 아침 식사 초대란 것은 불유쾌한 방문이라는 것과 경우에 따라서는 장시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오후 네시, 옛친구의 방문을 쓰듯이, 마치 일상을 쓰듯이 담담한 필체다. 

공포스런 게슈타포의 방문을 공포의 경악없이 쓰는 것이 뭘 의미하는 걸까. 거짓말 처럼 느껴진다. 


파트너 브루너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바로 죽여 버리네. 

맞다. 느와르의 탐정에게 외로움은 정체성인데, 한쌍이면 안어울린 다는 거지. 



2. 

그렇다고 해도 일번적으로 지포라고 불리는 보안 방첩부와 게슈타포의 차이는, 이두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들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 차이를 보크부르스트 소시지와 프랑크푸르터 소시지의 차이 정도로 이해한다. 두 소시지는 각자 특정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모양도 맛도 정확히 똑같다. 

이런 유머를 첫시리즈 부터 줄곧 유지한다. 장점이다. 


공포의 황태자 하이드리히가 말한다. 

"어떤 미치광이가 베를린 거리를 배회하고 있소. 귄터씨."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걸 아시다니 놀랍군요." 내가 말핶다. 하이드리히가 성급하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난 돌격대원이 어떤 늙은 유대인을 두들겨 패는걸 말하는게 아니오. 살인자를 말하는 거지. 그놈은 몇달동안 네 명의 젊은 독일 여자를 강간하고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소."

하이드리히와 이런식으로 말장난 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새벽네시 게슈타포의 방문을 담담하게 쓴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듯이 


게슈타포, SS보안방첩부의 지휘자 하이드리히, 홀로코스트 계획의 입안자. 

악명높은 다하우의 강제수용소가 그의 관할구역이었고, 히틀러의 후계자로 불리던 인물.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젖은 사형집행인'으로 불리던 사내 

1942년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땅스의 공격을 받고 입은 부상으로 사망 

인간의 상상으로 소설에서 만들 수 있는 어떤 가공의 인물보다 악마에 가까운 사람이 현실에 있다는 거다. 

소설과 별개로 하이드리히 이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던 걸까, 공금해 진다. 



3. 

귄터는 하이드리히의 제안으로 다시 경찰이 되었고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팀이 구성된다. 

그는 동료들에게 냉소적이고 혐오한다. 

그는 이시기 독일국민들에게도 냉소적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열하고, 교활하고, 소녀들은 창녀같다. 

팀원중 유일한 여성인 정신의학박사는 브라우스가 터질듯이 가슴이 빵빵하고, 동료들은 뱀같이 사악하다. 

누구에게도 감정이입하기 어려워 읽기 매우 불편한 소설이다. 


가슴이 패인 가운 위로는 풍만한 젖가슴이 분홍색 바다 괴물의 쌍둥이 혹처럼 드러나 보였다. 낡은 깃털 목도리처럼 랑게 부인의 몸을 휘감은 라벤더 향에 코를 찡그린 채 굳은살이 박힌 그녀의 뒤꿈치께에 묵묵히 서 있었다. 

인간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문장은 불편하다. 

필립커는 가학적인 경찰과 게슈타포, 동성애를  혐오하더니 여성혐오도 빠트리지 않는다. 

느와르에서 여성혐오는 필수항목인듯이 서술되는 이런 문장은 맘에 안들고 

근본적으로 독일인들을 혐오하는 소설을 영국사람이 쓴거다.

독일 사람들이 이런 소설을 좋아할 수가 없겠다. 

왜 이시기의 독일을 배경으로 쓴걸까. 굳이, 영국사람이. 


그런 내 번뇌와 상관없이 길고 뜨거운 1938년의 여름, 아리안 르네상스라는 이름 하에 짐승같은 일이 태연히 자행되었다.

체계적으로 가스실에서 사람을 죽여 태워버렸던 수용소를 운영하여 인종청소를 했던 

나찌들의 세상에 동조하고 침묵하며 살았던 독일 사람들의 입장에서 씌어진 작품이 있기는 있다. 

그 유명한 책읽어주는 남자는 나찌의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침묵과 동조를 합리화해서 불쾌했었지. 

승전국 영국의 작가가 나찌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혐오하면서 쓰니, 이것도 불쾌하네. 

아직까지는 나찌에 저항했던 사람들, 피해자의 기록으로 만족해야 할 모양.


인간에 대한 신뢰를 찾기 어려운 문학은 읽기 어렵다. 

챈들러의 탈을 쓴 커에게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도 시리즈 마지막이라는 독일장속곡은 읽어볼 생각이다. 

낭만적인 느와르로 회귀하는지 끝까지 독일인 혐오를 밀고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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